[가톨릭일꾼] 한상봉 칼럼

[위클리서울=가톨릭일꾼 한상봉] 벌써 오랜 전 이야기다. 1999년 가을에 귀농해서 전라도 무주 산골에서 6년을 살고 경주로 이사를 갔으니까. 그렇게 외지에서 10년 살고 서울로, 일산으로 도시에서 옮겨 살고 있다. 옛정을 잊지 못해 광탄에 텃밭을 조금 얻어 농사지으며, 안심(安心)하고 있다.

처음 무주 산골 광대정이란 곳에 자리 잡았을 때, 봄 농사를 시작하자면 밭부터 일구어야 했다. 헌데, 우리밭 한가운데 찔레나무가 있었다. 마침 하얀 꽃이 예쁘게 피어있어서, 그 나무를 남기고 주변만 밭을 일구었다. 이때 주변 사람들이 모두 “결국은 베어낼 텐데...” 하며 혀를 찼다. 꽃 보긴 좋아도 농사일에 찔레나무가 영 성가신 존재일 게 뻔했기 때문이다.

 

ⓒ위클리서울/정다은 기자
ⓒ위클리서울/정다은 기자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시골에 남아있던 노인들조차 기력이 다해 산 중턱 너머까지 일구었던 밭들이 죄다 묵정밭이 된지 오래다. 묵정밭을 볼 때마다 신산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밭이랄 수도 없고, 산이랄 수도 없다. 고라니와 멧돼지가 자주 출몰하는 바람에 엽사들이 이따금 마을에 올라와 총포를 쏘아대는 바람에, 산골이라고 ‘평화’ 가득한 낙원은 아닌 셈이다. 농사라 해서 다 ‘생태적’인 것은 아니다. 사실 짐승들이 살던 터를 사람이 밀고 들어와 밭을 일구었으니, “적당히 농사짓는 지혜”가 필요한 시절인지도 모르겠다.

시골 살면서 자연에서 배운 첫 번째는 “어디서든 꽃들은 보는 이가 없어도 만발하다”는 것이다. 모든 생명들은 최선을 다해 살고,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목숨을 버린다. 서리 내린 다음날 녹아내린 호박잎을 볼 때마다 “생사의 냉정함”을 느끼곤 했다. 이런 날은 서둘러 염불이든 기도든 해야 한다. 허나, 죽음이야 우리가 다스릴 수 없으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잘 사는 일”뿐이다. 나무들은 평생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고, 사람은 평생 하느님을 향해 마음을 돋우어야 한다. 신앙인이란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아도, 하느님만은 나를 헤아리신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분 손끝에서 춤을 추자고 작심한 사람들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찬미받으소서>에서 “가장 하찮고 덧없는 생명조차도 하느님 사랑의 대상이며, 아주 잠깐 살아 있어도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사랑으로 감싸 안아 주신다”(77항)고 했다. 지혜서에서도 “하느님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시며 당신께서 만드신 것을 하나도 혐오하지 않는다”(11, 24)고 말한다. 정말 그러하다면, 너무 다행한 일이다. 내 보잘 것 없는 목숨 하나에도 그분의 사랑이 듬뿍 담겨 있고, 이처럼 다른 피조물들도 하느님 자비의 그늘 아래 있다 하니, 보살피고 잘 돌볼 일이다. 찔레꽃도 내 몸의 연장이요, 지구행성 자체가 더불어 살아야 할 가족이라는 걸 다시 곱씹는 주일 아침이다.


*이 글은 천주교 수원교구 주보 9월 1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한상봉님은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이면서 ‘가톨릭일꾼’ 편집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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