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배우리 한국땅이름학회 명예회장-1회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만물은 제 나름의 이름이 있다. 우리가 사는 땅과 자연, 사람도 이름을 갖는다. 대대로 살아온 이 땅의 조상들이 지은 옛 지명을 보노라면 해학과 정감이 넘친다. 사람 사는 냄새와 지혜가 물씬 배어나온다. 하지만 1910년 일본에 의해 조선이 강제로 병합되면서 우리 고유의 옛 지명이 심하게 훼손당했다. 광복된 지 74년을 맞았지만, 우리 땅이름을 온전하게 회복하지 못했다. 도처에 일본식 지명이 그대로다. 사람이나 땅이나 이름을 잘못 지으면 그 속에 담긴 순수한 ‘정신’을 잃게 마련이다.

 

배우리 한국땅이름학회 명예회장 ⓒ위클리서울/
배우리 한국땅이름학회 명예회장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일본의 한국에 대한 역사왜곡과 경제침탈, 평화를 위협하는 아베 정권의 행태에 분노한 시민들의 ‘노! 아베’ 함성이 친일적폐 청산과 극일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때만 되면 터지는 표면적인 반일운동보다 아직도 이 땅에 남아 민족혼을 갉아먹는 일제(日帝)의 흔적들을 지워야 한다.

과거 식민지시대에 조선총독부가 우리땅이름 말살정책을 대대적으로 추진하면서 우리의 산과 강, 마을, 사람의 이름까지 일본식 이름으로 바꿔버렸다. 심지어 조선의 이름을 반쪽 섬나라라는 뜻인 ‘반도’(半島)로 바꾸었고, 지금도 대한민국을 일부에서 한반도(韓半島)로 쓰고 있는 상황이다.

배우리 한국땅이름학회 명예회장은 “일제가 행정구역정리를 이유로 우리 땅이름을 마구잡이로 훼손시켰다. 구역변경을 하더라도 이름을 안 바꿔도 될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고 말한다.

“땅이름은 그 민족의 언어이자, 민족의 얼을 묶는 결집역할을 한다. 우리 민족에게 너무나 중요한 무형의 자산이다. 이것을 눈치 챈 일제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국의 땅이름을 없애거나 퇴색시키면서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시켰다.”고 토로한다.

배 회장은 한글이름에 무지했던 시절부터 아름다운 한글이름을 뽑아서 한글이름 펴기 운동을 해왔다. 40년 동안 누가 알아주던 말든 오롯이 외길을 걸어왔다.

그는 “요즘도 한자이름이 워낙 몸에 배인 요즘 시민들은 한글이름을 호적에 올릴 수 없는 것으로 알 정도다. 하지만 내가 이 운동을 할 당시, 언론과 방송에 널리 소개되면서 상호나 이름, 단체명, 회사 이름도 한글로 이름을 짓는 게 한때 크게 유행했다. 하나은행과 한솔제지도 내가 지었다.”고 회억한다.

한글이름쓰기운동을 필두로 시작해 이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배 회장의 역할은 우리땅이름에 대한 국민적 반향을 일으켰다. 결국에 한국땅이름학회를 창립해 초대회장을 맡으면서 땅이름 회복과 이름 되찾기 분야에 선봉장이 됐다. “남들이 가지 않던 길이라 알아주지 않았지만, 요즘은 보람을 느낀다.”고 말하는 배 회장을 용산구에 있는 자택에서 만났다.

배우리 회장으로부터 우리땅이름의 유래와 역사, 일제에 의해 사라지고 왜곡된 지명과 강과 하천, 산, 계곡 등에 얽힌 서울의 풍수와 마을이름에 대해 들어 본다. 3회에 걸쳐 게재한다.

 

-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우리 땅이름이 많이 훼손됐다. 이 부분을 설명해 달라.

▲ 서울에 있는 여러 지역의 땅이름들이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면서 숱한 상처를 입었다. 조선 27대 순종 융희 4년(1910) 8월 29일, 한-일 합병조약이 발효되자 일본은 조선총독부를 설치해 민족혼이 서려 있는 우리 땅이름을 무참하게 말살해 버렸다.

1910년 10월1일, 총독부는 서울의 본래 이름인 ‘한성’(漢城)을 없애고 경성부(京城府)로 고쳐 경기도로 편입시켰다. 이어서 조선의 땅을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조선토지조사사업’을 통해 지형측량과 지도를 만들면서 전국의 땅이름들을 모조리 수집해 놓았다. 채집된 땅이름만 약180만 개였는데, 대부분이 일본제국 참모본부가 간행한 지형도에 기입되었다.

하지만 당시의 지명조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측면이 많았고, 일본인들이 사용하기 편한 이름으로 변경한 게 대부분이었다. 지형도에 쓰인 이름도 일본글자인 ‘카다카나’로 병용해 썼기 때문에 혼란이 심했다.

 

- 창지개명이 대규모로 이뤄졌는데.

▲ 일본은 1914년 4월1일 한반도에 대한 행정구역 통폐합을 하면서, 이른바 ‘창지개명’(創地改名)을 했다. 이때 우리의 고유지명들이 일본식으로 바뀌었다. 문화거리로 유명한 ‘인사동’과 ‘통인동’도 일제 때 바뀐 이름이다.

관인방의 ‘인’자와 절이 많았다는 대사동의 ‘사’자를 합쳐 인사동이 됐다. 통인동도 기존 지명인 ‘통동’에 ‘인왕동’을 임의 합성해 만들어졌다. 회나뭇골은 법을 집행하는 의금부가 있다고 해서 공평동(公平洞), 탑골(탑이 있는 동네)은 낙원동 등으로 바뀌었다.

한옥을 개조한 가게들로 북적였던 종로구 익선동도 구역통폐합으로 익동과 정선방 두개의 동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서 만든 합성지명이다. 인천의 송도(松島, 소나무 섬-소나무는 일본을 상징)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참전해 승리한 일본의 군함이름인 ‘마츠시마(松島)’를 따서 비롯된 이름이다.

 

- 조상대대로 써온 지명들이 일본식으로 바뀌었다.

▲ 한양(서울)에 있던 수많은 땅이름과 토박이 마을들이 일제에 의해 사라지는 수난을 겪었다. 일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앞에 말 한대로 부제(府制)라는 행정통합을 구실로 우리 땅이름을 뿌리째 없애려는 흉계를 드러냈다. 서울의 동 이름 절반 이상이 뜻도 모를 명칭으로 뒤죽박죽 뒤바꿔 놓았다.

유구한 세월동안 조상들과 함께 해오던 무형문화재급 땅이름들이 일본인 입맛에 맞게 변조됐다. 종로만 해도 조선 초부터 벼슬아치들이 많이 살았고 마을도 많았다. 고유의 토종 땅이름도 마을 수만큼 많았다.

그러나 일제는 토박이 땅이름을 버리고 생뚱맞은 지명을 갖다 붙였다. 지금의 종로구 관수동이나 동숭동, 공평동, 권농동, 예지동, 낙원동, 원남동, 원서동 같은 동 이름들도 본래의 땅이름을 없애고 일제에 의해 강제로 만들어 붙였다.

 

- 도심대로가 있던 을지로는 어떤가.

▲ 을지로는 예부터 땅이 질어서 ‘구리개(굴개)’라 불렀다. 한자로 ‘동현(銅峴)’이다. 구리가 많다는 뜻이다. 그런데 일본은 구리 동(銅) 자가 일본에서는 황금(黃金)을 뜻한다고 하면서 황금정(黃金町, 고가네 마찌)이라는 엉뚱한 이름으로 바꿨다.

을지로에 이어 종로 같은 큰길에도 일본식 거리이름인 ‘정목(町目)’이란 이름을 붙였다. ‘정목’은 일본에 있는 큰 도시 거리마다 붙이는 전통적 이름이다. 우리가 쓰는 종로 1가(街)나 을지로 2가(街)에 붙이는 것과 같다. 그렇게 해서 큰 대로마다 1정목 또는 2정목으로 일본식 지명이 자리를 잡는다.

을지로가 황금정(黃金町)으로 불렸고, 신문로가 서대문정(西大門町), 원효로가 원정(元町), 충정로가 죽첨정(竹添町), 의주로가 의주통(義州通), 남대문로가 남대문통(南大門通), 한강로가 한강통(漢江通), 태평로가 태평통(太平通) 등으로 불렸다.

이렇듯 행정구역 개편으로 이름이 아예 바뀌거나 합성지명화 된 것이 상당히 많다. 토박이 이름들이 행정구역 변경으로 역사 속으로 파묻힌 것이 너무 뼈아프다. 구역조정만 없었다면, 그 많은 이름들이 지금도 살아서 불렸을 것이고, 우리 민족에게 유형무형의 큰 유산이 되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일제가 인사동이란 마을이름을 만들지 않았다면, 그 안에 있던 마을인 탑골(塔洞-탑동)이나 댓절골(大寺洞-대사동), 수전골(水典洞-수전동), 승동(承園洞-승원동), 이문골(里門洞-이문동), 향나무우물골(香井洞-향정동) 같은 이름들을 지금도 부르고 있을 것이다.  <2회로 이어집니다.>

 

▲ 배우리 한국땅이름학회 명예회장은...

    전 국토교통부 국가지명위원
    전 국토지리정보원 중앙지명위원?
    서울대학교 고운이름 자랑하기 심사위원?
    1980년대 초부터 지명(땅이름) 연구 활동 
    1984년 한국땅이름학회 창립 초대 회장
    서울시 교통연수원 교수(20년간 근속) ??
    1997년 도로 명 제정 작업. 
    지방 단체 추진 길 이름 제정 및 자문(행정자치부)?
    1970년 이름 짓기(상호-인명) 실적 1만 여 개
    하나은행, 한솔제지, 웅진그룹 등 작명
    연세대학교 사회교육원 '땅이름 연구' 과정 주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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