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半島)는 본래 우리 말 아닌 일제가 폄하한 말"
"‘반도'(半島)는 본래 우리 말 아닌 일제가 폄하한 말"
  • 한성욱 선임기자
  • 승인 2019.09.05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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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배우리 한국땅이름학회 명예회장-2회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1회에서 이어집니다.>

배우리 한국땅이름학회 명예회장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배우리 한국땅이름학회 명예회장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 일제가 '땅이름‘을 바꾼 근본적 이유는.

▲ 일제는 행정구역을 변경해야 하니 지역명칭도 당연히 바꿔야 한다는 논리로 개명을 강행했다. 하지만 행정구역을 변경하더라도 이름을 바꾸지 않아도 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땅이름은 그 민족의 언어이자 민족의 얼을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만큼 중요한 민족의 무형적인 재산이다. 이것을 알게 된 일제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국의 땅이름을 없애거나 퇴색시키면서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시키려 했다.

 

- 창씨개명도 했는데.

▲ 식민지시대에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 정책을 통해 창씨개명(創氏改名)을 단행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다. 이름도 그들 방식의 땅이름을 쓰게 했고, 일본에 있는 현지의 땅이름을 우리 땅 곳곳에 하나하나 붙여나갔다. 이 땅을 송두리째 일본 땅으로 만들어 가려는 저의가 깔려 있었다.

땅이름이란 한번 붙여지게 되면 여간해서 잘 바뀌지 않는다. 조선총독부의 '땅이름 바꾸기' 작업은 집요했고, 멈추지 않고 지속되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의 끈질긴 속성과 비협조로 그들의 목적은 쉽게 성취되지 못했다. 1945년 해방되면서 35년간 일제의 지배에서 벗어나면서 땅이름 훼손도 없어지게 되었다.

 

- 올해가 해방 74년 주년을 맞았지만, 일제 잔재는 곳곳에 남아 있다.

▲ 학교만 해도 일제식민지 당시의 문화잔재가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 친일파가 남긴 유-무형의 잔재도 많다. 친일파가 작사-작곡한 교가를 부르는 학교만 서울에 113곳이다. 그중에 구로중학교가 처음으로 교가를 교체했다. 구로중학교 교가 작곡자는 동요 ‘섬 집 아기’와 군가 ‘진짜사나이’를 만든 이흥렬이다.

그는 일제 말기에 군국가요를 연주하거나 반주, 지휘한 연유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다. 수업 전에 선생님에게 하는 ‘차렷’과 ‘경례’도 일제의 군대식 거식경례다.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바친다는 일제의 흔적이다.

교장선생이 학생에게 하는 훈화(訓話)도 군대식 용어다. 감시와 통제를 위해 사용되던 일제문화다. 수학여행도 일제가 1907년부터 조선인 학생을 일본으로 보내어 일본문화를 체험시켜 민족정신을 없앨 목적으로 만들었다.

 

- 서울은 땅이름만 들어도 정겨운 이름이 많다.

▲ 서울은 다양한 지형을 가진 특성 때문에 지명도 그만큼 다양하다. 마포구 아현동의 ‘애오개(아현=阿峴. 兒峴)’도 작은 고개가 있어 붙은 이름이고, 그 옆의 ‘큰 고개(대현=大峴, 만리재)’는 높은 고개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종로 4가의 ‘배오개’(이현=梨峴), 충무로 입구의 ‘진고개’(니현=泥峴), 을지로 2가의 ‘구리개’(동현=銅峴) 등도 고개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구름재’(운현=雲峴, 운니동), ‘솔고개’(송현=松峴), ‘당고개’(당현=堂峴, 상계동), ‘밤고개’(율현=栗峴), ‘갈고개’(갈현=葛峴), ‘박석고개’(박석현=薄石峴, 갈현동), ‘논 고개’(논현=論峴), ‘한치’(대치=大峙) 등도 모두 고개가 있어 붙은 이름들이다.

광화문 네거리 근처의 ‘황토마루’(황토현=黃土峴), 강서구의 ‘등마루’(등촌=登村), 성북-도봉구의 ‘되너미’(돈암=敦岩), ‘무너미’(수유=水踰) 등은 등성마루나 고개이름으로 붙은 것이다. ‘매봉’(응봉=鷹峰)은 봉우리 이름이 들어간 경우이고, ‘간뎃골’(중곡=中谷), ‘가는골’(세곡=細谷) 등은 골짜기 이름이 들어간 경우다.

 

- 풍수와 관련된 지명을 알려 달라.

▲ 산모양이 용의 머리를 닮았다는 ‘용머리’(용두=龍頭)가 동대문구 용두동에 있었고, 땅모양이 벼루를 닮아 문필가들이 많이 난다는 ‘벼루말’(연촌=硯村)이 노원구 월계동에 있었다. 그러나, ‘벼루말’은 대개 비탈이나 벼랑이 있는 곳에 많이 붙는 땅이름이다.

산모양이 시루를 닮아 부유한 사람들이 많이 살게 될 것이란 예측으로 이름붙은 ‘시루뫼(증산.甑山)’이 은평구 증산동에 있다. 서울은 군데군데 넓은 들이 있어서, 들과 관계된 땅이름들도 더러 있었다.

마포는 ‘삼개’라는 들이 있어 나온 이름으로, 이것은 ‘마포(麻浦)’라는 한자로 옮아갔다. ‘신촌(新村)’도 전에는 새로 일군 터라는 뜻의 ‘새터말’이었고, 이 마을의 서쪽의 서교동도 좁은 들이 있어 ‘잔다리’(세교=細橋)라 불렀었다. ‘노들’(노량=鷺粱), ‘너벌섬’(여의도=汝矣島), ‘갯들’(포이=浦二), ‘개패’(개포=開浦) 등도 들 관련 땅이름이었다.

 

- 식물 이름이 들어간 지명도 있다.

▲ 마포구에 있는 ‘복삿골’(도화동=桃花洞)은 복숭아나무가 많았고, 성동구의 ‘은행나뭇골’(행촌동=杏村洞)은 은행나무가, 송파구 ‘가락골’(가락동=可樂洞)과 중구 ‘갈울’(갈월동=葛月洞)은 갈나무가, 강남구 ‘대춧말’(대조동=大棗洞)은 대추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삼밭’(삼전동=三田洞), 약밭(약전=藥田, 약현=藥峴, 중림동), ‘미나릿골’(미근동=渼芹洞) 등도 식물이름을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서래’(반포동=磐浦洞)나 ‘서리풀이’(서초동=瑞草洞)는 풀이 많이 서렸다고 해서 나왔다.

 

- 그 밖에 어떤 이름들이 있었나.

▲ 각 구마다 먹거리나 유명한 것들이 있는 것을 뜻하는 지명도 많다. 용산구 신창동의 ‘새창고(신창=新倉)’ 동대문구 회기동의 ‘떡전거리’, 중랑구의 ‘먹굴’(묵동=墨洞), 마포구 용강동의 ‘독막’(동막=東幕, 옹막=甕幕), ‘조개우물’(합정=蛤井, 合井), 은평구의 ‘역말’(역촌=驛村), 강남구 역삼동의 ‘말죽거리’, 성동구 사근동 ‘사근절’(사근=沙斤), ‘마장안’(마장동=馬場洞, 장안동=場安洞), 동작구 상도동의 ‘장승백이’, 종로구 ‘사직골’(사직동=社稷洞), 중구 ‘다방골’(다동=茶洞), ‘배다릿골’(주교동=舟橋洞), ‘갓우물골’(입정동=笠井洞), ‘붓골’(필동=筆洞) 등은 모두 그러한 예들이다.

 

- 우리 땅은 강과 하천이 많다. 이에 대한 지명유래와 역사를 말한다면.

▲ 옛날에는 강을 나타낼 때 '하(河)'와 '강(江)'이란 말을 썼다. 작은 강에서는 '하'란 말은 거의 쓰지 않았다. 나루를 나타낼 때는 '도(渡)', '진(津)', '포(浦)' 등의 말을 썼다. 이 중 가장 큰 나루를 의미한 것이 '도(渡)'였다. 그리고 이런 이름들은 '강(江)'과 혼용해 사용하기도 했다.

임진강도 원래 나루와 그 강을 가리켰는데, 그냥 '임진(臨陣)'으로 불러오던 것을 나중에 '강'이란 말을 덧붙어 '임진강'이 되었다. 임진강의 갈림내는 엄청나게 많다. 이중에 가장 잘 알려진 것이 '한탄강(漢灘江)'이다.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지점을 '교하(交河)'라 한다. 두 줄기 큰 강이 서로 합한다는 뜻이다.

‘임진’은 ‘임나루’를 한자로 적은 것인데, 이 말은 ‘앞나루’란 뜻인 듯하다. ‘임’은 ‘앞’이란 뜻의 옛말이다. 지금의 전북 임실군의 ‘임실’도 원래 ‘앞마을’이란 뜻이다. 아무런 막힘이 없이 앞을 향해 나가는 배들이 출발하는 '앞나루' 처럼 이 지역도 어쩌면 통일의 길을 열어 줄 ‘힘’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 한국은 명산이 많아 인걸(人傑)을 많이 배출한 나라다. 일본은 그런 명산들을 ‘산맥'과 ‘반도'라는 이름으로 지맥을 끊어 버렸다.

▲ 지리교과서에 그와 관련한 일본의 잔재가 남아 있다. ‘한반도(韓半島)' 또는 ‘조선반도(朝鮮半島)'에 쓰이고 있는 ‘반도(半島)'라는 단어만 해도 그렇다. ‘반도'는 ‘반쪽 섬'이라는 뜻이다. 일본인들이 자기네 땅은 ‘온전한 섬나라'라는 뜻인 ‘온섬(全島)'이라 불렀고, 우리는 일본의 반쪽밖에 안 되는 ‘반쪽 섬'에 살고 있다는 뜻에서 반도라 불렀다.

‘반도'라는 말은 본래 우리 민족이 써 온 말이 아니다. 일본이 우리 겨레를 ‘조센징(朝鮮人)'이라 비하했듯이, 반도 민족이라는 ‘한또진(半島族)'이란 말도 우리를 깔보는 말이다. ‘반도'라는 말을 예부터 써 온 ‘곶'이나 그 밖의 다른 말로 바꿔야 한다.

‘산맥(山脈)'이란 말도 우리 조상이 썼던 말이 아니다. 일본인이 쓰던 말을 우리가 그대로 받아썼을 뿐이다. 우리말로는 ‘산줄기'다. 일본지도에서 ‘지맥(地脈)'으로 많이 썼다. 우리는 이름난 산줄기를 두고 ‘대간(大幹)'이나 ‘정간(正幹)', ‘정맥(正脈)'이라 불렀다. 옛 지도를 보더라도 ‘백두대간(白頭大幹)'이나 ‘호남정맥(湖南正脈)' 등 산줄기 이름을 썼다.

 

- ‘대간'(大幹) 명칭은 어떻게 쪼개 놓았나.

▲ 일본은 크다는 뜻의 ‘대(大)'자나 ‘한(韓)'자가 들어가는 명칭은 무조건 바꿔 버렸다. 국토의 등줄기인 백두대간을 ‘태백산맥', ‘소백산맥'으로 갈라놓았다. 물론, 산줄기의 개념도 우리와 일본이 달랐다. 일본은 지질(地質) 개념적 산줄기를 지도에 이름을 붙였지만, 우리는 지형(地形)적 개념으로 산줄기를 지도에 표시했다.

일본식 지도는 산줄기가 강-하천을 그냥 지나는 것으로 지도상에 나타내지만, 우리는 땅모양을 기본으로 한다. 때문에 옛 지도에는 절대로 산줄기가 하천(河川)을 지나는 일이 없다. 예를 들어, 일본식 지도는 광주산맥이 금강산(金剛山) 북쪽에서부터 뻗어 나와 한강 줄기를 넘어 아산만 쪽으로 향하게 되어 있지만, 우리 옛 지도는 그에 해당하는 한북정맥(漢北正脈)이 한강 줄기와 임진강 줄기 사이로 뻗어 내릴 뿐, 절대로 하천을 넘지 않는다. <3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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