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채원 지음/ 문학동네

ⓒ위클리서울/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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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이주리 기자]  문학동네 시인선의 126번째 시집으로 정채원 시인의 '제 눈으로 제 등을 볼 순 없겠지만'을 펴냈다. 올해로 시력 24년, 1996년 『문학사상』을 통해 등단한 시인은 매 시집마다 치열하게 시세계를 쇄신해나가며, 시간이 흘러도 전혀 사그라들지 않는 시적 에너지를 왕성하게 발산하는 중이다. 문학평론가 황현산 선생 역시 생전에 시인의 “높은 필력”을 상찬한 바 있다. 정채원 시인의 네번째 시집 『제 눈으로 제 등을 볼 순 없겠지만』은 지난해 제2회 한유성문학상 수상작 「파타 모르가나」(외 9편)를 포함해 총 63편에 달하는 정채원 시의 정수를 아낌없이 한데 모았다. “존재의 왜소함을 벗어나 한없는 상상적 확장성”과 “존재의 평면을 훌쩍 넘어 존재의 심연”에 가닿는 목소리를 통해 “고독하고 서늘한 그녀만의 권역을 형성”했다는 심사평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 이번 신작 시집에는 시인 정채원만이 보여줄 수 있는 참혹하게 아름다운 생의 단면과 시공을 넘나드는 장엄한 스케일의 시편이 가득하다.

정채원의 시는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에서 출발해 아득히 먼 곳으로 우리를 데려다놓는다. 시인이 발견한 일상의 미세하고 얕은 균열은 그의 독특한 겹눈을 통하는 순간 낭떠러지가 되고, 손끝에 닿는 장미의 가시는 어느새 심장을 관통하는 칼날이 된다. 생의 충만함으로 가득한 오늘은 폼페이 최후의 날로 둔갑하고, 타인을 향한 암중모색은 “천 년 후”의 “도굴”(「도굴꾼들」)로 훌쩍 도약한다. 이처럼 정채원의 시에는 이미지와 시간의 중첩이 꽃잎처럼 포개져 있다. 시인은 깜빡 자신의 눈에 맺혔을 이미지와 시간의 중첩을 날카로운 핀셋으로 분리해, 때로는 “시간과 공간의 벽을 뚫으며”(「벌레구멍」) 디오라마로, 때로는 “꿈속의 꿈에서 또다른 꿈”의 모양으로 “절찬 상영중”(「자막 없는 꿈」)인 파노라마로 한껏 펼쳐 보인다.

정채원의 시를 읽다보면, “피로 써라, 그러면 당신은 피가 곧 정신인 것을 알게 되리라”라던 니체의 전언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정채원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피의 이미지는 “먹물인가 핏물인가”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을 자꾸 던”(「불구」)지는 행위에서 유추할 수 있듯, 핏물을 잉크 삼아 시를 쓰는 행위에서 연유한다. 그렇기에 “바늘을 피로 만”(「피, 피아노」)들어 쓴 그녀의 시는 “말과 말을 포개면/ 핏물이 흥건하고”(「너와 나의 체온조절법」), “펄럭펄럭/ 심장이 끓고 있”(「변덕스러운 수프」)다. 나아가 “여름에는 내 피로 너를 만들었고/ 겨울에는 뼛가루로 너를 만들었다”(「파타 모르가나」)고 말하는 시에 이르러 피와 뼈는 등가가 되며, 몸으로 쓰는 시에까지 다다르게 되는 것이다. 핏기가 가득한 생의 순간도, 핏기가 싹 가신 죽음의 순간도, 강렬함과 농밀함으로 들끓는 이 피의 기운으로 썼을 때 비로소 제 몸을 가진다는 사실을 시인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또한 시인 정채원에게 “피로 써라”라는 말은 “시로 써라”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들을 수 없는 것들을, 보이지 않는 것들을,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시로 써야 하는 불(가)능은, “아프고도 황홀한 계단을/ 끝없이 굴러떨어(시인의 말)”질 때에야 가까스로 시인의 눈에 피로 맺히지만, 이내 망각되거나 알아볼 수 없게 부서지거나 녹아버린다. 그러나 시인은 “피 흘려도 눈을 감지 않(「벌레 구멍」)”았던 기억을 바탕으로, 불현듯 그 이미지의 씨앗을 품은 사물과 풍경을 마주할 때면 “미세먼지도 악몽도 후회까지도 막을 수 있는 특수 팩”(「압축 보관」)에 보관해두었다 죽음마저 펄떡이는 시로 내어놓는다. “제 눈으로 제 등을 볼 순 없지만/ 그 혹등이 없다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시인은 “이따금 물 밖으로 힘껏 솟구”쳐 “다른 세상을 흘낏 엿보”(「혹등고래」)고 온 흔적을 피로, 시로 쓴다.

“기억 너머로 기억을 보내도/ 기억은 어김없이 돌아”오듯, “툭, 툭,/ 피어나는 봄꽃을 막을 수”(「무음 시계」) 없듯 죽음과 망각의 시간은 다가오지만, 정채원은 “더 많은 것을 잃기 위해” “나는 아직 살아 있다”(「위험한 분실물」)고 말하며 펜을 쥔다. “써지지 않는 볼펜을 꾹꾹 눌러쓰는”(「무음 시계」) 그녀는 “운명의 날은 피하지 않는 자에겐 오히려 더디게 찾아”(「파라다이스 리조트」)온다는 것을 잘 알기에, “아무도 노래하며 지나가지 않는다 해도” “존재하지 않는 터널을 뚫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죽는 건/ 죽어서도 다시 날아오르는 것”(「벌레구멍」)이라고 말하는 이 에우리디케가 손짓하는 터널의 끝에는 어쩌면 “환생역 9번 출구”(「압축 보관」)가 있을 듯도 하다. 핏빛 장미가 맞아주는 “언캐니 밸리”(「지루한 미트볼」)가 기다리고 있을 듯도 하다. 분명한 것은 “죽었다 살아 온/ 그녀의 노래를 들었다는”(「<색증시공>에 나올 그녀」) 사실, 그리고 이 치명적으로 황홀한 정채원의 시에 우리가 한 번쯤 죽었다 깨어날 것이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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