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에는 지역의 언어 특성과 시대 흐름을 반영"
"땅이름에는 지역의 언어 특성과 시대 흐름을 반영"
  • 한성욱 선임기자
  • 승인 2019.09.09 0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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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배우리 한국땅이름학회 명예회장-3회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2회에서 이어집니다.>

배우리 한국땅이름학회 명예회장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배우리 한국땅이름학회 명예회장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 선조들의 산줄기를 보는 지형적 개념이 지혜로워 보인다.

▲ 다시 말하지만, 산맥이라는 말은 일제가 써 온 말이다. 우리 한반도의 큰 동맥이라 할 수 있는 백두대간은 개마고원을 따라 서남쪽으로 흐르다가 동해안을 따라 동남쪽으로 뻗어 내리면서, 태백산 부근에서 다시 서남쪽으로 꺾여 멀리 남해안 끝까지 닿는다.

지금의 전남해안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계속 북쪽으로 가면, 어느 하천도 건너지 않고도 백두산에 이르게 된다. 우리 조상의 지형개념은 일본의 그것보다 훨씬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다. 따라서 지도에 나타나는 산줄기들을 이제부터 우리식 지형개념으로 바꿔 바로잡아야 한다. 일본식으로 된 산줄기 이름이나 모든 지리용어를 교체해야 한다.

 

- 북한은 산맥을 어떤 식으로 표기하는가.

▲ 북한은 지리용어를 쓸 때, '산맥' 대신 '산줄기'란 말을 사용하고 있다. 북한 지도에는 '~산맥'이라는 이름이 없다. 일제는 우리의 산줄기를 자연 지형(地形) 개념이 아닌 인본 지질(地質) 개념에서 지도를 그렸다. 이 땅의 본래 산줄기 이름인 '~대간' 또는 '~정맥'을 '~산맥'으로 붙이는 우를 범했다.

조선 초 우리 지도를 보면,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산을 분수령으로 하여 산이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건너지 않는다) 원리가 반영돼 왔는데, '~산맥'식으로 표시된 일본식 지도에는 산줄기가 강과 하천의 경계를 넘어 지나도록 표기하고 있다. 약 20여 년 전쯤에 남한강 본류를 따라 뗏목탐사를 한 일이 있었는데, 강이 산줄기를 넘을 수 없음에도 일본이 만든 지도에서 큰 산맥을 2개나 넘는 등 모순을 발견했다.

 

- 세계 이목을 집중시켰던 ‘트럼프-김정은’ 판문점 회동이 있었다. 판문점이란 말이 어떻게 유래 됐는지 궁금하다.

▲ 판문점(板門店) 획수를 보면 각각 8획이다. 8획 글자가 세 개, 즉 3.8선을 뜻한다. 우리 선조들은 외세에 의해 3.8선에 만들어진 ‘철옹성 같은 문’이 아니라, 우리 민족이 통일을 하려면 쉽게 부서지는 ‘판자대기 문’을 만들어야 할 것을 미리 내다보고 판문점이라는 지명을 썼다. 그 옛날 어떻게 현재의 상황을 내다보았는지 감탄스럽다.

과거에 판문점(板門店)은 한적하고 평범한 시골이었다. 풍광과 산세가 좋아 고려 때부터 송도(松都) 한량들의 놀이터였고, 임꺽정의 활약무대로도 잘 알려진 곳이다. 임진왜란 때는 몽진 길에 오르던 선조 임금이 잠시 쉬어 갔던 장소다. 이곳엔 '널문이'를 중심으로 점말, 감바위, 광이골, 선적골, 어룡개, 송곡, 발송 등의 마을들이 있었다.

또한 임진강 지류인 사천(沙川)이 지나는데, 지금의 판문점 근처에 이르러 물줄기가 넓게 퍼져 흐른다. 옛날 한 임금이 이 물을 건너게 되었는데, 다리가 없어 건널 수가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대문들을 뜯어 모아 뜬 다리를 만들어 임금을 무사히 건널 수 있도록 했다고 해서 '널문'이라 불렀다. '널문이'는 물줄기가 퍼져서 '널물' 또는 '널무리'가 변형된 이름이다.

판문점 회담장이 들어서기 전 이 마을에는 주막을 겸한 작은 구멍가게가 있었다. 그러다가 가게 앞 콩밭에 회담장 건물이 들어서자 이름을 '널문이 회담장'으로 지었지만, 한국전쟁 휴전회담에 참여한 중국 측 반대로 '판문점 회담장'으로 결정됐다. ‘널문’을 의역하면 판문(板門)이 되고, 가게가 있던 곳이라 해서 점(店) 자를 붙여 판문점이 됐다.

 

- 땅이름에는 고유의 뜻이 들어 있지만, 간혹 잘못 해석되기도 한다는데.

▲ 땅이름 속에는 우리의 말뜻과 역사성이 들어 있다. 더러는 지금의 말뜻을 나타내는 이름이 있는가 하면, 옛날에 쓰던 말들이 남아 있는 것도 있다. 또는 표준말로 남아 있기도 하고, 지방 고유의 말로 남아 있기도 하다.

한자로 표기된 이름 중에는 소리 빌기(音譯)에 의해 된 것도 있는가 하면, 뜻 빌기(意譯)로 된 것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한자나 한글로 된 땅이름을 무조건 글자 그대로 풀어서는 안 된다. 왜냐 하면 땅이름은 그 생긴 지역의 언어적 특성이나 시대흐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데다가, 그것이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본래의 원형이 많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표기하는 사람의 표기방법에 따라 똑같은 땅이름도 여러 가지로 다양하게 나타날 수가 있다. 따라서 땅이름 연구에는 우리의 옛말과 방언, 음운현상 등 깊은 언어지식을 필요로 한다. 보다 많은 땅이름을 접하면서 우리말과 관련한 역사와 관계성이 요구된다.

 

- 지명 혼용과 오용으로 사회적 혼란과 낭비요소도 많다는 지적이다.

▲ 광복 후에 청소년이나 시-읍-면 사무소 직원이 한자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부정확한 발음과 오기(誤記)로 인해 땅이름에 대한 혼용과 오용이 빈번했다. 이런 혼란은 군사작전에도 큰 지장을 주었다. 군사지도상에 적힌 땅이름과 현지의 땅이름이 서로 틀리는 일이 많아 작전상 막대한 차질을 빚기도 했다.

또한 미군이 로마자 표기로 채택한 맥쿤-라이샤워(McCune-Reishawer) 식 표기로 미군과의 작전수행에 불편도 따랐다. 이에 땅이름 호칭과 로마자 표기의 통일을 위해 1958년 국무회의에서 국방부 산하 지리연구소와 중앙지명제정위원회를 설치했다. 이어서 전국의 시-도-군-읍-면 지명제정위원회가 구성되었고, 남한지역 124,198개에 달하는 땅이름을 모두 심의했다.

이를 토대로 신판 지형도 편찬과 간행이 마무리 되었고, 땅이름 제정사업이 일단락됐다. 이것이 새로 제정된 측량법에 흡수되었지만, 아직도 땅이름 오기(誤記)와 작명(作名), 개작(改作)에 따른 혼란은 여전히 심각하다. 땅이름 정리 작업이 꾸준히 연구되고 계속해 나가야 할 것이다.

 

- 정부의 지명 정비작업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나.

▲ 일본식 땅이름을 당장 모두 고칠 때 따르는 혼란도 예상되지만, 그런 상황은 일시적이다. 당장 손대기 어렵다면 우선 고쳐도 별 문제가 없는 것부터 하나씩 고쳐 나가야 한다. 예를 들어, 내(川)나 산, 섬 이름 같은 자연지명은 당장 고쳐도 그리 큰 문제가 없다. 길이름(路名)도 마찬가지다.

문제가 되는 것은 대도시의 구(區)나 동(洞) 이름이다. 이것은 사람들 입에 너무 익숙해 있기 때문에 갑자기 지명변경을 단행할 경우, 그에 따른 혼란도 예상된다. 이러한 땅이름은 분구(分區)나 분동(分洞) 할 때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새로운 길이 생기거나 지하철이나 공원 같은 시설이 생길 때마다, 그 이름을 쓰는 것도 좋다. 일제 때 변경되기 이전의 땅이름도 철저히 색출해서 가급적 많이 살려서 쓸 필요도 있다. 부-방-계-동의 이름으로 붙여졌던 많은 옛 땅이름들을 모두 찾아 정리하고, 이를 법-행정 동명으로 활용하거나 길-공원-아파트 등의 이름을 지을 때 넣어 줘도 좋을 것이다.

광복 74년을 맞았지만, 지금도 일제잔재 이름을 이 땅에 남기고 있는 현실이 너무 부끄러운 일이다. 혼란을 최소화 하는 선에서 지명정비작업이 차분하고도 꾸준하게 추진돼야 한다.

 

- 지명에 대한 본래의 뜻을 되찾으려면.

▲ 우리 땅이름에 관한한 지금이라도 우선적으로 생각할 점은 일본식 땅이름을 하나씩 없애 나가야 한다. 해방된 지 74년 넘도록 일본이 남겨 놓은 땅이름을 그대로 계속 지도에 표기하거나 우리들 입에 오르내리는 일은 겨레의 큰 수치이자 후세에게 주체성을 잃은 조상으로 창피스런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특히, 수도인 서울만 해도 일본식으로 된 동 이름이 30% 가 넘는다. 그런데도 모두가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상황은 전국 어디나 비슷하다. 땅이름에 대한 일제의 잔재는 지금부터라도 손질을 해서 우리식 이름으로 단계적으로 정리해 나가야 한다. 우리 땅엔 우리식의 땅이름이 자리해야 민족정기가 바로 잡히기 때문이다.

 

- 민족의 혼과 얼이 서린 땅이름을 회복해야 민족정기가 살아난다. 정부와 국민 모두 어떤 자세로 나가야 할지 마지막으로 짚어 달라.

▲ 우리의 땅이름들은 순수한 토박이 우리말로 이뤄진 것이다. 우리말로 된 땅이름이 한자로 바뀌는 과정에서 뜻 빌기(의역)가 소리 빌기(음역)로 되어 버렸다. 따라서 땅이름에 담긴 원래의 뜻을 제대로 밝히는 데 노력을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들은 아직도 우리 땅이름이 어떻게 생성됐는지 잘 모른다. 단지 눈에 보이는 글자 자체를 놓고 뜻을 해석하고 있어 안타깝다. 땅이름을 잘 들여다보면 우리말 뜻이 깊이 배어 있다. 외국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년의 역사를 간직한 땅이름은 민족의 얼이 담긴 세계에서 찾기 어려운 훌륭한 문화유산이다. 정부 당국도 무형(無形)의 정신적 유산인 우리 땅이름을 좀 더 연구하고, 보존하여 미래의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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