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트 보니것 지음/ 이원열 옮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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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이주리 기자] 2019년 9월, 문학동네에서 커트 보니것의 '아마겟돈을 회상하며'가 출간되었다. '아마겟돈을 회상하며'는 문학동네가 '제5도살장' '고양이 요람' '세상이 잠든 동안' 등에 이어 열번째로 선보이는 커트 보니것의 작품으로,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아들이자 작가인 마크 보니것이 아버지의 미발표 작품들을 모아 출간한 책이다.

'아마겟돈을 회상하며'는 아들 마크 보니것의 서문으로 시작된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신문의 십자말풀이를 거침없이 풀어내는 탁월한 언어 감각의 소유자였지만 작가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던 아버지. 정신과 의사에게 우울증 진단을 받았지만 분명 우울증이 아닌 아버지. 그저 “내향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외향적인 사람 같았고, 외톨이가 되고 싶어하는 굉장히 사교적인 사람, 운이 없었기를 바라는 운좋은 사람 같은” 아버지. 지극히 모순적이면서 양극적인 성향의 괴짜 아버지 커트 보니것을 아들 마크 보니것은 진심으로 사랑했다.

물론 사람들은 아버지를 체제 전복적 인사라고 평했지만, 아들 마크가 보기에 아버지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식으로 체제 전복적이지 않았다. 읽고 쓰는 행위가 곧 ‘생각’을 전복하는 시도이니, 아버지 커트 보니것은 분명 체제 전복적인 인사이긴 했다. 하지만 마크는 본인이 아는 사람들 중 가장 과격하지 않은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였다고 술회한다. 마약도 하지 않고, 빠른 차도 몰지 않았으며 정의의 편에 서려 노력했던 사람이었고, 그저 글을 쓰는 과정에서—자기 자신과 독자들에게—일어나는 마법을 믿으며, 글이 잘 써질 때의 신나는 기분을 좀체 숨기지 못했던 작가였다고.

마크 보니것은 이런 아버지의 글 중 “언제 쓰였는지 대부분 표시되어 있지 않고 출판된 적은 한 번도 없는 것들이며, 그 자체로 아주 훌륭”한 작품들을―편지, 연설문, 단편소설 등―모아 책으로 출간했다. 그리하여 이제까지의 보니것의 작품집 중 전쟁과 평화, 폭력과 휴머니즘에 대한 고찰이 그대로 담겨 그를 가장 직접적이고 생생하게 보여주는 기록이 탄생했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세련되게 드러낸 아들 마크 보니것의 서문을 지나면, 일병 커트 보니것의 편지를 만날 수 있다. 독일군의 전쟁포로에서 풀려나 무사히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1945년, 스물셋 청년의 이 편지는 의미심장하다. 얼핏 단순한 생존 신고에 지나지 않는 듯한 이 글은 드레스덴 폭격이라는 역사적 순간을 청년 보니것이 어떻게 관통했고, 어떤 위치에서 받아들였으며, 이후 그의 생애를 통해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하는 잠재의식을 내포해, 전쟁과 평화에 천착해 앞으로 펼쳐낼 그의 작품세계를 암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커트 보니것은 이 글이 단순히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임에도 불구하고, 각 문단의 말미에 “하지만 저는 죽지 않았어요”라는 문장을 반복 배치하여 형식미를 부여했다. “뭐 그런거지”라는 문장을 반복하며 글 전체에 생동감과 리듬을 부여하는 그의 대표작 『제5도살장』을 고려한다면, 이 편지는 “구조와 리듬과 단어의 선택”에 주목하는 그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예고편이라 할 수 있겠다.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아마겟돈을 회상하며'는, 악마를 잡으려는 과학자들의 눈물겨운 사투라는 다소 황당하고 유머러스한 설정이 놓여 있는 맥락이긴 하지만 마치 현재를 이야기하고 있는 듯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커트 보니것이 세상을 떠난 후, 우리는 인류의 상황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는 해설자를 잃었다. 하지만 이 작품으로, 커트 보니것의 포스가 가득한 목소리가 되돌아왔다”는 <퍼블리셔스 위클리>의 리뷰가 이 책을 적확하게 설명하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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