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플레이션 공포’, 한국 경제 덮칠까
‘디플레이션 공포’, 한국 경제 덮칠까
  • 김범석 기자
  • 승인 2019.09.10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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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꽁 닫힌 소비 심리

[위클리서울=김범석 기자] 추석 연휴를 전후해서도 냉랭한 경기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경기부진에 추운 추석이라는 한숨까지 나올 정도다. 경기부진이 장기화하고 경제 불안심리가 고조되면서 소비가 좀처럼 살아날 조짐을 보이지 않아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른바 ‘디플레이션 경기’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요구가 줄잇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과 한일 경제전쟁 등 대내외 리스크가 계속되는 가운데 수출과 투자가 동반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디플레이션 우려’를 잠재울 수 있을지 살펴봤다.

 

ⓒ위클리서울/김용주 기자, 그래픽=이주리 기자
ⓒ위클리서울/김용주 기자, 그래픽=이주리 기자

경제 여건이 악화되면서 소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일자리와 소득에 대한 불안심리는 날로 확대되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등 관련 기관에 따르면 우리경제는 지난해 말 이후 수출과 투자가 동반 감소세를 보이며 경제활력이 크게 떨어진 것으로 진단됐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소비도 급격히 약화하고 있는 추세다.

한은이 조사하는 소비자심리는 지난달 92.5로 기준치(100)를 크게 밑돌며 2년 7개월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소비자심리지수는 올 4월 101.6으로 일시적으로 기준선을 웃돌기도 했으나 이후 4개월 연속 감소세를 지속했다. 현재생활형편 및 전망, 가계수입 및 소비지출 전망 등도 모두 하락했다.

기재부가 각 업종단체들의 속보치를 집계한 결과도 밝지 않다. 백화점과 할인점 매출, 국산 승용차 판매량이 6월 이후 동반감소하는 가운데 감소폭도 확대되고 있다. 소비자들의 구매 행태가 온라인으로 크게 바뀌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가계소비에 이상신호가 나타난 것으로 보기에 충분하다는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가계소비’ 이상신호

통계청의 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소매판매액(소비) 지수는 올초까지만 해도 소폭이나마 증감을 반복했다. 하지만 최근 자료인 6월과 7월엔 2개월 연속 감소했다. 소비의 급격한 위축은 전반적인 경기부진 속에 일자리·소득에 대한 불안심리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가계부채 부담, 부동산·주식 등 자산시장 위축, 노후에 대한 불안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광의의 소득지표인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올 1분기에 전분기대비 0.3% 감소한데 이어 2분기엔 0.2% 증가하는데 그쳤다.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4분기 GNI가 전분기와 같았던 것(0.0%)을 감안하면 지난해 후반부터 1년 가까이 소득이 정체한 셈이다.

현재 소득이 부진하더라도 일자리가 안정돼 있으면 희망을 갖고 지갑을 열 수 있지만, 일자리 사정도 만만치 않다. 취업자 증가폭이 5월 이후 20만명을 상회하고 있지만, 핵심인 제조업 분야는 지속적인 감소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60세 이상 고령층 취업자를 제외하면 취업자는 사실상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이에 따라 장기불황의 신호탄인 디플레이션 우려에 직면해 있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물가가 안정되면 바람직한 일이지만, 경기부진으로 전반적인 수요가 감퇴하면서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은 경제를 위축하게 만드는 가장 위험한 신호다.

추석 특수가 상당 부분 사라지면서 후반기 경기도 밝지만은 않다. 오히려 경제상황에 대한 비관적 심리는 더욱 확산되면서 악화될 우려도 적지 않다.

이 같은 우려를 반영이라도 하듯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나타냈다. 경기 침체로 올해 경제성장률이 2%에도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물가마저 떨어지자 저물가 상태가 장기간 이어지는 디플레이션이 현실화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통계청은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지난해 같은 달보다 0.04% 하락했다고 발표했다. 올 들어 7월까지 유례없는 0%대 행진을 이어가더니 8월에는 급기야 뒷걸음질친 것이다. 월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를 나타낸 것은 분기별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65년 이후 처음이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등은 저유가, 농산물 출하 증가 등 공급 요인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며 수요 부진으로 유발되는 디플레이션 상황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유가와 농산물 가격 등의 영향을 배제한 근원물가도 외환위기 때를 제외하면 사상 최저 수준이라는 점에서 반론도 적지 않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으로 인건비가 오른 데다 정부가 재정지출을 대폭 확대하는 상황인데도 물가가 바닥을 기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디플레이션에 진입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국가 위기’ 우려

경기 하강 속도도 심상치 않다. 한은은 지난 2분기 경제성장률(잠정치)을 1.0%로 7월 속보치보다 0.1%포인트 하향 수정했다. 당장 올해 2%대 성장이 불투명해졌다.

이를 달성하려면 남은 3분기와 4분기에 각각 0.6∼0.7%가량 성장해야 하는데 최근 경기 상황을 고려하면 쉽지 않을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5.5%)과 금융위기 때인 2009년(0.7%)에 이어 세 번째로 낮은 성장률을 기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일본식 장기불황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경고음을 울리기도 한다. 정부가 단기적인 경기 부양에 그칠 게 아니라 국가 위기라는 인식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디플레이션으로 인한 ‘일본식 장기 불황’이 한국에도 닥칠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8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0.04% 하락했다. 물가는 올 1월(0.8%)부터 7월(0.6%)까지 0%대의 불안한 상승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급기야 0% 아래로 떨어지기에 이른 것이다.

적정 수준의 물가 상승(인플레이션)은 경제의 윤활유 역할을 한다. 물가가 오르면 기업 수익성이 좋아지고 근로자의 소득이 오른다. 소비와 투자가 활성화되고 다시 물가를 끌어올리는 선순환이 이뤄진다.

2%를 밑도는 물가상승률, 즉 저물가는 이런 선순환을 기대하기 어렵지만 긍정적 효과도 있다. 소비자의 구매력이 올라가 내수를 회복시키는 힘을 만들어준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물가가 떨어지는 디플레이션은 상황이 다르다.

일본은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까지 디플레이션으로 신음했다. 디플레이션이 심해지면 정책 효과도 확 떨어진다는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일본의 소비자물가는 1999년 0.3% 하락한 뒤 2005년까지 줄곧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올해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모든 경제활동을 반영하는 종합적 물가지수)’ 상승률이 13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GDP 디플레이터가 마이너스를 기록하면 디플레이션(장기적인 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고, GDP 디플레이터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정부의 국세수입 전망치 등도 빗나갈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연간 GDP 디플레이터(2015년=100) 상승률이 통계를 파악할 수 있는 2000년 이후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2006년(-0.2%)밖에 없었다.

올해 경상성장률이 정부 예상치인 3.0%를 크게 밑도는 1%대를 기록할 경우 국세수입과 재정 건전성 지표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최근 한국 정부에 재정 정책을 과감히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보호무역주의의 대두와 세계적으로 경기 전망이 나빠지는 상황에서 재정 여력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재정을 투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한국 경제는 아직 경기 부양이나 확장적 재정 기조를 펼쳐도 견뎌낼 충분한 여력이 있다"며 디플레이션 대응에 실패한 일본의 전철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국 경제에 드리운 디플레이션 공포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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