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민들레국수집 서영남 대표-1회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민들레의 꽃말은 ‘사랑’과 ‘행복’이다. 민들레는 담장 밑이나 길가 등 어디에서나 잘 핀다. 늘 옆에 있고 친숙하며, 높은 곳보다 항상 낮은 지대에 자생한다. 잎이 필 때도 낮게 옆으로 핀다. '낮고 겸손한 꽃’ 민들레처럼 우리사회에서 소외되고 굶주림에 고통받는 노숙인에게 빛과 소금이 되어 온 인천의 ‘참 민들레’가 있다.


인천에서 가장 낙후된 달동네 화수동에 있는 민들레국수집(서영남 대표)은 간판이 국수집이지만 국수를 팔지 않는다. 서영남 대표는 2003년 4월 소외된 노숙자를 위해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처음에는 3평 남짓한 곳에 식탁 한 개와 의자 여섯 개로 시작했다. 2005년에 건물 집 주인 ‘모세 할아버지’가 본인이 쓰던 작은 사무실을 무상으로 기부해 식당이 6평으로 넓어졌다. ‘모세의 기적’이었다. 2009년에는 옆집 쌀가게로 옮기면서 18평 식당에 25명이 식사할 수 있는 중형식당이 됐다.

“민들레식당은 줄서기 경쟁도 없어요. 여기서도 경쟁하면 이분들을 다시 지치게 만드는 일이죠. 몇 날을 굶주린 노숙인들이 배불리 밥을 먹고 나면 아무런 욕심을 안 내요.”라고 말하는 서 대표는 가난한 집안의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8세 때 부친을 여의고, 23세 때 수도회로 들어갔다. 수도사 생활 25년 만인 2000년에 환속(還俗)을 위해 수도복을 벗었다.

노숙인 무료배식과 함께 세상에 나가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서였다. 가톨릭 수사시절 때부터 20여 년간 해왔던 교도소 장기수 돕기(교정 사목)를 지금도 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이 곧 재개발된다는 소식이다. "한때 임해공업지대로 번성했던 이 지역이 재개발로 사라질 것 같아요. 언젠가 정든 이 마을을 떠나야겠죠.”라며 여운을 남기는 그의 말에 “그러면 어디서 이 일을 하실 건가요.”라 묻자, “어디가 됐던 가장 가난한 지역을 찾아 다시 민들레국수집을 열어야지요.”라 말한다.

지난 8월 여름 폭염에도, 서 대표는 휴가를 대신해 부인 베로니카 여사와 딸 모니카와 함께 전국의 교도소를 찾았다. 매년 해오던 일이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무기수와 사형수를 찾아 위안과 도움을 주었다.

‘노숙인의 대부’이자 ‘작은 예수’의 삶을 걸어온 서영남 대표를 민들레식당에서 만났다. 국민소득 3만 불을 달성한 경제선진 대한민국. 하지만 사회양극화로 인한 빈부격차로 인한 소외계층과 경쟁사회에서 낙오돼 노숙인이 된 사람도 많다. 서 대표로부터 민들레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본다. 3회로 연재된다.

 

17년 된 간판이 빛이 바랬지만 _바꾸지 않을 것_이라고 말하는 서영남 대표의 노숙인에 대한 사랑은 세월이 가도 빛을 잃지 않는다.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 가장 낮은 곳에 늘 배고픈 자가 있다. 인천의 달동네에서 출발한지 올해로 17년 된 민들레국수집이 ‘노숙인 쉼터’로 전국에 유명해졌다. 소회가 어떤가.

▲ 2003년 민들레국수집을 처음 시작할 때, 배고픈 노숙인들에게 그저 밥만 잘 대접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중에 어떤 분들은 조금만 옆에서 도우면 노숙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는 분들이 보였다. 그래서 이런 분들을 만나면 월세 방을 하나씩 얻어주었다.

간섭도 덜하고 편안하게 살도록 해드렸다. 그러면서 이웃의 공부할 생활형편이 안 되는 가난한 아이들도 보였다. 작지만 공부방을 만들어 주고, 간식과 저녁도 주었다. 어린이 책방도 만들었다. 어릴 때부터 서로 돕고 배려하고 나누면, 노숙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숙하는 우리 ‘손님’들도 각자 개성이 다르다. 지독한 개인주의와 이기심에 갇힌 분들이 많다. 조금만 도우면 이들도 스스로 힘으로 벗어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민들레희망센터를 만들었다. ‘손님’들이 스스로 빨래도 하고 몸을 씻고 공부하고 쉬면서 힘을 얻도록 했다.

 

- 하루 수백 명의 사람들이 찾는데, 밥과 국, 반찬 마련은 어떻게 했는지.

▲ 민들레국수집을 열면서 네 가지를 다짐했다. 정부예산과 기금공모, 후원조직, 부자들의 생색용 후원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고마운 것은 많은 분들이 십시일반 도와준다. 사실, 배고픈 이들에게 밥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진심어린 따뜻한 마음이다. 밥한 그릇보다 더 소중하다. 밥 대접은 큰돈이 필요 없다.

그래서 민들레국수집에는 시작할 때부터 ‘예수 살이 공동체’가 추구하는 소유로부터의 자유,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기쁨,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투신을 정신으로 삼는다는 글귀가 식당 벽에 걸려 있다. 올해 2019년에는 민들레국수집 VIP 손님들이 돈 없어도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민들레카페를 꾸밀 예정이다.

 

- 소문을 듣고 ‘수도권 손님’들이 많다고 들었다.

▲ 저희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오는 ‘손님’들은 온갖 곳에서 온다. 처음에는 인천지역인 민들레식당 주변이나, 여기서 가까운 동인천역 주변에 계시는 노숙인들이 우리집 VIP 손님이었다. 그러다가 점점 멀리 1~2시간 걸어서 오는 분들도 생겼다.

인천 석바위와 신기촌, 부평에서 버스나 전철을 탈 형편이 안 되는 분들이 힘겹게 걸어온다. 나중에 주안역과 부평역, 부천역에서 노숙하는 분들이 오더니, 서울 영등포역과 용산역, 서울역, 시청역, 을지로역, 청량리역, 심지어 의정부에서 오기도 한다.

언젠가는 부산역에서 온 분도 있었다. 우리 ‘손님’들이 사는 곳도 다양하다. 인천의 자유공원이나 인근에 있는 화도진공원, 동인천역 지하도, 병원대기실, 쪽방, 여인숙, 찜질방, 만화방, 계단 밑, 버려진 옷장 속, 헌옷 수집 통, 폐가 등이 이분들에게 유일한 잠자리다.

 

- 요즘 경제악화로 노숙 신세가 된 사람이 많다는데, 문제는 배고픔이다. 이들을 위한 식사 시간과 메뉴는 어떤가.

▲ 민들레국수집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항상 문이 열려있다. 다만 월, 화, 수, 토, 일요일만 운영하고, 목요일과 금요일은 열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 ‘손님’들이 휴일인 토요일과 일요일이 되면 어디 가서 밥 먹을 곳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또 평일인 목, 금요일에는 제가 오래전부터 해 온 교도소 재소자면회 일을 해야 한다. 설날이나 추석에는 명절 당일만 쉬고, 전날과 다음날은 반드시 문을 연다. 그런데 문을 열지 않는 날에도 배가 고파 문을 열어보는 분들도 있다. 그럴 때는 컵라면이라도 드린다.

요즘 경제가 어려워진 여건 때문에 노숙하시는 분도 늘었다. 민들레국수집은 하루에 2~3차례 언제든 오셔도 괜찮다. 마음껏 배불리 먹도록 뷔페식으로 반찬도 많이 준비해서 드린다. 줄도 길게 설 필요 없이 바로 오셔서 식사하면 된다.

 

노숙인 점심을 준비하고 있는 서영남 대표
노숙인 점심을 준비하고 있는 서영남 대표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 처음에 마을 주민들 반대가 심했을 텐데.

▲ 민들레국수집을 시작했을 때 알코올 중독자와 노숙자,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 이 동네로 몰리면서 소란이 잦았다. 동네사람들의 불만이 대단했다. 마을 주변에 소변을 보고, 툭하면 술에 취해 싸우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게으른 사람들에게 왜 밥을 주느냐’고 불만이 컸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희한하게도 얼마 안 되어 마을사람들의 태도가 따뜻하게 바뀐 것이다.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는 것은 좋은 일’이라며 돕겠다고 나섰다.

이웃들이 ‘손님’들을 따뜻하게 대하자 우리 ‘단골손님’들도 변화가 왔다. ‘손님’들은 되도록이면 민들레국수집 동네에서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 거리의 꽁초와 쓰레기를 줍기도 하고, 눈이 오면 골목길을 쓸기도 했다.

요즘은 민들레국수집이 문을 닫는 목요일과 금요일이 되면 동네에 인적이 없어 적막하다고까지 이야기한다. 민들레국수집 주변에도 무료급식소가 몇 곳 있지만, 점심과 저녁뿐이다. 밥을 먹으려면 줄을 길게 서야 한다.

그나마 운이 나쁘면 ‘밥이 떨어졌다’는 소리에 발걸음을 돌려야 한다. 민들레국수집은 비록 작고 누추한 곳이지만, 아침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식당 문을 열어 놓는다. 아무 때나 오가다 들러서 눈치 보지 않고 밥한 그릇 배부르게 드실 수 있다. 얻어먹는 설움도 없다.

 

-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는지.

▲ 참 희한한 일들이 많다. 한번은 20여일을 굶다가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와 밥을 드시던 어떤 분이 요행히도 직장을 구해 자립해 나간 손님도 있다. 어떤 분은 큰 회사에 정규직 직원이 되었다며 인사차 찾아오기도 한다.

단 한 번도 직장을 구하라고 잔소리를 하지도 않았는데도 직접 손수레를 끌고 고물을 줍기 시작한 손님도 많았다. 어떤 때는 택시를 탔다가 내리려는데 요금을 안 받는 분도 있다. 자기가 어려울 때 민들레국수집에서 식사를 했었다고 한다.

민들레국수집은 단순한 무료급식소가 아니다. 가난하고 힘든 분들이 사람다운 대접을 받는 곳이다. 어른이든 아이들이든 차별이 없다. 여기서 자립의 꿈을 키울 수 있다. 갈 곳이 없으면 무료로 커피도 제공한다.

민들레 희망센터 안에 작은 카페를 열었다. 인문학 강의도 월 1회 하고, 매주 볼만한 영화도 보여준다. 매일 책 독후감을 발표하면 3000원씩 용돈도 드린다. ‘민들레 씨앗’은 이렇게 싹을 키워가고 있다. <2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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