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사랑하는 사랑이 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사랑하는 사랑이 될 수 있을까?
  • 한상봉
  • 승인 2019.09.17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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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일꾼] 한상봉 칼럼
ⓒ위클리서울/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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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가톨릭일꾼 한상봉] 1975년 여름, 비 온 뒤의 날씨는 눈부시게 청명하였고, 높다란 벽돌담 너머 아카시아 숲속에서 말매미가 스산하게 울고 있었다. 교도소 넓은 마당에는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는다. 이 적막한 공간에 수갑을 찬 사형수와 검은 제복의 교도관이 나타난다. ‘어머니의 면회’라는 소리에 따라나선 사형수는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스물 한 살의 홍안이다. 잔디밭이 있는 갈림길에 이르자, 교도관은 사형수의 팔을 나꿔채며 왼쪽 길로 몰아붙였다. 길 끝 집행장의 회색 쪽문이 열려 있었다. “아니, 지금 집행하는 겁니까? 그럼 어무이는 예...”

어린 사형수는 애원하듯 물었다. 그러나 상황을 알아차린 사형수는 이내 모든 걸 체념하고 높은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곤 진창을 피해 총총히 집행장 안으로 들어갔다. 오랏줄로 팔과 허리를 사정없이 묶인 사형수는 집행관 앞에 꿇어앉았다. “마지막 할 말은 없는가?” 의례적으로 집행관이 물었다. 어린 사형수는 두 뺨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우리 어무이 좀 보게 해주이소.” 형식적인 문답이 오고간 뒤 사형수는 이내 교수대에 목이 매달렸다.

이 글은 <주여, 이들을>(홍성사, 1982)에 실린 장기수 김훈이 복역 중에 보고들은 이야기다. 1997년 12월 30일 마지막 사형집행이 이루어진 뒤 10년 이상 기결수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지 않아 현재 대한민국은 국제사면위원회에 의해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되고 있지만, 사형제도가 법적으로 폐기된 것은 아니다. 가톨릭교회는 ① 아무리 중죄인이래도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을 인간이 빼앗아 갈 수 없다. ② 오판(誤判)으로 무고한 이를 죽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유로 사형제도를 반대한다.

사도법관으로 불리던 김홍섭 판사는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사상 최대의 오판’을 받아 사형 당했음을 기억한다. 1961년 ‘경주호 납북 미수 사건’ 때 김홍섭 판사는 피고인 3명에게 사형을 선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의 눈으로 보면 재판장석의 나와 피고인석의 여러분 중 누가 죄인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 사람이 능력이 부족해서 여러분을 죄인이라 단언하는 것이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고는 머리를 숙인 채 한동안 묵념을 했고, 피고인들도 눈물을 흘렸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앙갚음 하시는 분이 아니다.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만나자고 세상에 오신 분이다. 기름이 떨어진 등잔에 기름을 채우시고, 상한 갈대라도 아예 꺾지 않고 기다려 주시는 분이다. 나도 그분처럼 충분히 기다려주는 사랑이 될 수 있을까.

 

*이 글은 천주교 수원교구 주보 9월 15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한상봉님은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이면서 ‘가톨릭일꾼’ 편집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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