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소주대!
안녕, 소주대!
  • 류지연 기자
  • 승인 2019.09.19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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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류지연의 중국적응기 '소주만리'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내 나이 38세.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안정적인 한국생활을 뒤로 하고 타국에서 하루아침에 외노자(외국인 노동자의 준말) 신세가 되었다. 지리적으로는 가깝지만 심리적으로는 아프리카만큼 멀게만 느껴졌던 중국이라는 나라, 과연 잘 적응할 수 있을까? 38살 아줌마의 중국 체험기, 지금부터 시작해본다.

 

모 인터넷 포털 웹툰 중에 ‘안녕, 대학생’이라는 제목의 웹툰이 있다. 나이 서른의 주인공이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대학 신입생이 되어 그려내는 학창 생활 겸 사랑 이야기다. 처음 그 웹툰을 보았을 때 주인공에 나 자신을 대입해보며 풋풋한 대학생들 사이에 다시 끼게 된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싶어 괜시리 마음이 설렜다.

그래서일까. 비록 어학당이긴 하지만 소주대학교 해외교육학원에 등록을 하러 가는 날은 전날부터 잠을 설쳤다. 학교 팸플릿에 나온 사진처럼 여러 머리색을 가진 이들과 친구가 되어 서양인들처럼 첫인사로 볼뽀뽀와 포옹을 익히고 잔디밭에 앉아 커피와 샌드위치를 즐기는 상상의 날개를 마음껏 펼쳤다.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동아리 활동도 있고, 문화 체험 및 답사로 주변 도시 여행을 가는 프로그램도 있다고 들었기에 마음은 이미 19살 대학 신입생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등록날인 9월 4일, 일찌감치 준비물인 여권과 사진 두 장을 챙겨들고 소주대로 향했다. 소주대는 시내 여러 곳에 캠퍼스가 흩어져 있는데 해외교육학원은 그 중 본교인 고소구(姑苏区, gūsūqū)에 위치해 있다. 지하철 1호선 상문(相门, xiāngmén)역에서 내려 1번 출구로 나가면 바로 보인다. 교문에서 일일이 학생증을 확인하는지라 아직 학생증이 없는 나는 여권을 내밀고 오는 길에 파파고를 돌려 연습한 문장을 말했다.

“등록하러 왔어.(来登记了. lái dēngjì le)”

경비아저씨의 “Okay.” 승낙과 함께 이전에 한번 가봤던 해외교육학원으로 부지런히 발을 옮겼다.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인데 쑤저우대의 첫인상은 건물이 상당히 낙후됐다는 느낌이다. 고등학생 시절, 사립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전임 이사장들이 돈 문제로 줄줄이 감옥에 갔다는 소문과 함께 실내체육관 천장 조각이 전교생 조회 시간에 풀풀 떨어져 내릴 만큼 낡았던 모교가 겹쳐 보이는 건 왜일까.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도시 이름이나 지역 이름이 붙은 대학이면 나름 알아주는 대학인만큼 학교 건물 관리도 잘 되어있을 것 같은데 중국은 다른가보다.

소주대학교의 위상이 문득 궁금해져 중국에 얼마나 많은 대학(교)이 있나 싶어 바이두(百度, 중국의 최대 인터넷 포털)에서 찾아보니 무려 2,879개(!)의 학교가 있다고 되어 있었다. 그 중 4년제 대학은 약 700여 개이고, 소주대학은 50위권 안팎을 차지한다고 한다. 국가 차원에서 100개 대학을 선발해 중점적으로 육성하는 사업인 ‘211 공정’에도 포함되어 있다고 하니 가난한 대학은 아닐 법한데, 시설 투자보다는 내실 투자에 중점을 두는 게 아닌지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해 본다.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소주대학교 정경, 입구부터 어지러이 늘어선 차들을 보니 주차의 달인들만 차를 갖고 올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소주대학교 정경, 입구부터 어지러이 늘어선 차들을 보니 주차의 달인들만 차를 갖고 올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교내 지도 - ‘천사장 교구’라고 되어 있는데 해석하면 ‘하늘이 내린 마을’ 교구(캠퍼스)라는 뜻이다. 학교는 생각보다 큰 편은 아니다.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정문을 지나 허름한 건물들 사이로 5분쯤 걸어가면 해외교육학원이 나온다. 오전 8시 반부터 등록 시작이었기에 10시 좀 전에 도착한 나로서는 많이 늦었으려나 싶었다. 등록하러 왔다고 했더니 번호표 한 장과 안내지 두 장을 주면서 교실로 들어가 기다리란다. 같이 온 이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앉아 있는 교실에 혼자 앉아 가만히 귀만 열어본다. 가장 많이 들리는 건 한국어와 일본어다. 이리 보나 저리 보나 온통 검정콩밭이고 상상 속에 그린 서양인은 가뭄에 콩 나듯 드문드문하다.

그래도 가장 기초반인 1단계만 피하면 한국인이 덜하겠거니 자위하며 이제나저제나 내 번호가 불리기만을 기다린다. 두어 번 정도 직원이 나타나 중국어로 무언가를 말하니 몇몇 학생들이 일어나 따라나간다. 그러길 한 시간여, 번호를 부르긴커녕 직원이 한 번 더 나타나더니 남은 학생들은 모조리 다 따라오라고 한다.

그리고는 다음 교실로 가서 다시 세 줄로 나누어 줄을 선다. 사전등록 여부와 학비를 확인하는 줄이라고 한다. 왜 교실에서 한 시간이나 기다리게 한 건지는 불가사의다. 앞사람을 보고 눈치껏 여권과 준비해 온 사진을 내밀고, 혹시 온라인 등록에 실수가 있어서 누락되지는 않았는지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다행히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직원이 내 이름을 무사히 찾아냈다.

이제는 세 번째 교실로 가서 학비를 내란다. 이건 뭐 교실 순회도 아니고 한 자리에서 다 해치우면 오죽 좋으랴. 그렇지만 힘없는 학생은 그저 시키는 대로 갈 뿐. 학비를 내는 줄도 교실 밖까지 길게 이어져 있어 또 줄을 선다. 그때가 11시 반이 다 되었을 시각이다. 그런데 11시 반부터가 점심시간인지 교실 안에서 직원이 한 명 나오더니 내 앞에 있는 이들에게 돌아갔다가 오후 1시 반에 다시 올 수 있냐고 묻는 거다! 앞에 사람들에게 중국어와 일본어로 물어보길래 어차피 나에게 직접 물어본 게 아니니 눈이 마주치지 않게 고개를 돌리며 못 들은 척한다. 두세 명은 설득되어 돌아갔지만 나는 기어이 줄을 사수해서 교실 안까지 들어간다.

학비는 한 학기에 7500위안(한화 약 127만5000원)인데 학비를 내는 방법이 또 복병이다. 웨이신이나 즈푸바오는 안되고 현금, 은행카드만 된다는 거다. 만일을 대비해 한국에서 만들어 간 유니온페이 카드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기껏 줄을 사수한 보람도 없이 학비를 못 내서 되돌아올 뻔 했다.

학비 납입이 끝이 아니고 분반을 위한 시험을 봐야 한다. 시험도 1시 반까지는 기다려야 된단다. 눈물을 머금고 점심을 먹기 위해 1층의 카페테리아로 향했다. 교실 한 칸에 자리 잡고 있는지라 크기는 작은데 음료 말고 간단한 식사류를 파는 게 의외였다. 주방이 따로 있는 건지 피자, 파스타 같은 음식도 메뉴에 있었다. 20위안(한화 약 3400원)짜리 치킨부리또는 나름 푸짐하고 맛도 괜찮았다.

 

카페테리아에서 시켜먹은 20위안짜리 치킨부리또
카페테리아에서 시켜먹은 20위안짜리 치킨부리또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기나긴 기다림 끝에 1시 반이 되어 분반시험을 치렀다. 쓰기와 말하기 시험이었는데 쓰기는 중국어는 몰라도 한자로 대충 뜻을 짐작해서 쓸 수 있었다. 총 4장의 시험지가 있었는데 1장을 끝내면 즉석에서 직원들이 채점을 하고 일정 점수 이상이 되어야 다음 장을 순차적으로 나눠주는 것 같았다. 세 장째에 가니 제법 복잡한 작문이 등장해서 한자로만 어림짐작하기에는 한계가 왔다. 아니나다를까 채점하더니 네 장째 시험지는 주지 않고 다음 교실로 가란다. 다음 교실에서는 중국어를 얼마나 배웠는지 물어보더니 교과서를 펴서 한 쪽을 읽어보라고 했다. 병음(중국어 발음)은 모르지만 뜻만 아는 단어들을 영어로 말했더니, 웃으면서 영어는 잘하는데 회화는 2단계란다. 쓰기 시험과 합산한 분반 결과는 다음날 와서 확인하라고 한다.

돌아오는 길에 회화는 2단계지만 쓰기는 네 장 중 세 장이나 썼으니 적어도 4~5단계는 되는 게 아닐까?(총 7단계까지 있다)라고 혼자 으쓱하며 자신감을 불태웠다. 그러나 다음날 학교에 가서 확인한 결과… 이름 옆에 써진 2단계라는 결과에 어제 불타오른 학구열이 급속히 스러져버렸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지난 석 달 간 공부를 좀 할 것을, 뒤늦은 후회가 소용없다.

주말이 지나 월요일, 드디어 첫 수업날이 되었다. 교재를 대충 훑어보니 매 과마다 새로운 단어의 뜻, 설명 부분의 주요 문장들은 영어로 되어 있길래 수업은 영어로 하나 싶어 기대가 되었다. 아직 초보인 중국어보다는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근 25년 간 접하고 산 영어가 더 익숙하니 말이다. 그런데 이게 웬걸? 첫 시간인 아침 8시 반, 교실로 들어온 앳되어 보이는 여선생님은 속사포 같은 속도로 100% 중국어로 수업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2단계라고 해서 나름 쉽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선생님의 속도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다. 중간중간 “이해했니? 질문 있니?”라는 중국말은 이해하겠는데, 정작 본문은 알아듣기가 힘들어 질문을 할 수가 없다는 게 슬픈 현실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2교시의 다른 여선생님은 회화 선생님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발음이 훨씬 더 또렷하고 속도가 보통이라 알아듣기가 좀 더 수월했다.

얄미운 건 첫날 뒷자리에 앉은 한 학생이 있었는데 중국어 공부를 좀 했는지 선생님 말을 제법 알아듣는 것 같았다. 그런데 선생님이 “질문 있니?”라고 물어볼 때마다 누구보다도 빨리 “없어요”라고 대답해버리는 거다. 타인의 질문까지 원천봉쇄하는 기술이라 하겠다. 이상한 데서 의협심이 불타올라 얼른 공부를 열심히 해서 질문 있냐고 물어보면 재빨리 내가 먼저 질문을 해버리겠다고 결심한다.

매일 오전 세 시간씩 강제 중국어 듣기를 하다 보니 스파르타 교육마냥 하루가 다르게 귀가 트인다는 느낌이 들긴 한다. 매일 숙제가 있고, 받아쓰기 쪽지 시험도 있기 때문에 수업을 허투루 들을 수가 없다. 위안이 되는 건 첫날 나만 못 알아듣나 싶어서 걱정스러웠는데, 며칠 지내다 보니 다른 학생들도 잘 못 알아듣고 서로 물어보거나 하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는 거다. 총 스물너댓 명의 학생 중 서양인이 너댓 명쯤 되는데 특히 그 중 두어 명은 수업 시간에도 영어로 종종 질문을 해서 덤으로 설명을 주워듣는 경우가 많다.

학생들은 생각보다 나이대가 다양하다. 내 또래면 거의 최고령이 아닐까 싶었는데 아줌마들은 나보다도 훌쩍 나이가 많아 보이는 분들이 꽤 있었다. 세대차이를 느낀 사건이라면 중국에 온 지 불과 5일 됐다는 대학생이 집에 돌아갈 때 보니 벌써 전기오토바이(电动车 diàndòngchē)를 타고 가는 걸 목격한 일이다. 역시 젊은이들은 빠르다고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교내에 빽빽하게 세워진 전기오토바이와 기숙사 앞마당 철봉에 내걸린 빨래들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중국에서는 이 전기오토바이가 거의 자동차만큼이나 많이 보이는데, 인도마다 빽빽하게 주차되어 있어서 보행에 지장이 될 때도 많고, 전기로 가는 거라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오토바이와는 다르게 큰 소음이 없다 보니 불쑥 나타나도 알아채기가 쉽지 않아 길을 건널 때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길을 걷다 보면 전기오토바이 한 대에 두 명, 혹은 아이까지 세 명씩 타고 가는 이들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워낙 전기오토바이가 많다 보니 차도의 제일 오른쪽 차선은 일반 차선보다 좁은 폭으로 오토바이 및 자전거 전용 차선으로 따로 만들어 놨다. 2000~3000위안이면 제법 괜찮은 제품을 살 수 있고 유지비도 적게 든다고 해서 대중화되어있다는데, 자전거도 두 발이 자신 없어 아이를 안전하게 태운다는 핑계로 성인용 세 발 자전거를 모는 나로서는 시도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나중에 대학생들이랑 친해지면 한 번 뒷자리에 태워달라고나 해봐야겠다.

<류지연 님은 현재 중국 소주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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