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양미의 '해장국 한 그릇'- 아들과의 여행기 2편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라오스에 여행 와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재미와 스릴이 넘치는 이야기만도 한 보따리. 하지만 나는 그것들을 한쪽으로 쑤욱 밀쳐놓고 지금부터 다른 이야기 하나를 해보려 한다. 라오스에는 COPE 센터(1997년 설립된 비영리 기관으로 재활의료센터를 통해 베트남 전쟁 당시 투하된 폭탄과 지뢰로 팔, 다리를 잃은 피해자들에게 재활치료와 보조기구를 제공해주고 있다)라는 곳이 있는데 입대를 앞두고 있는 아들을 데리고(질질 끌고) 이곳을 찾았다.

“좀 있으면 군대 가는 나한테 왜 이래 엄마.”

“전쟁이 얼마나 나쁜지 알아야 열심히 나라를 지킬 거 아냐.”

해리포터가 호그와트로 가기 위해 런던 킹스크로스역 9와 3/4 플랫폼의 벽을 통과했듯, 나는 아들의 손을 끌고 코프센터라는 플랫폼을 통해 라오스라는 나라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런데 우리가 도착한 역은 라오스가 아닌 베트남이었다. 먼저 이 나라에 대한 역사적인 배경을 알아야만 라오스가 겪은 아픔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가장 큰 피해를 입혔던 무기는 클러스터 밤이라는 산탄식 폭탄. 이 폭탄 중 일부분이 불발탄으로 남아 지금까지도 라오스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가장 큰 피해를 입혔던 무기는 클러스터 밤이라는 산탄식 폭탄. 이 폭탄 중 일부분이 불발탄으로 남아 지금까지도 라오스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베트남은 오랫동안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때문에 독립을 위해 프랑스와 싸워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호찌민이라는 지도자가 있었다. 그는 베트남 국민의 높은 지지를 받았고 결국 호찌민이 이끄는 베트남군은 1954년에 프랑스를 몰아냈다. 그런데 미국을 비롯한 서양 강대국들은 베트남이 사회주의 국가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베트남을 남과 북으로 갈라놓았다. 이에 따라 베트남의 북쪽에는 호찌민이 이끄는 독립국가가 들어섰다. 미국의 존슨 대통령은 미국 전함 두 척이 베트남과 중국 사이에 있는 통킹만에서 북베트남의 공격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이것이 바로 ‘통킹만 사건’이다. 사실 이것은 미국이 북베트남과 전쟁을 벌이기 위해 꾸민 일이었다. 이로써 본격적인 베트남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미군은 북베트남을 무자비하게 공격했다. 밀림에 불을 지르고 고엽제를 뿌려댔다. 베트콩들이 숨을 곳을 없애고 식량 보급을 막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았고 그 불똥은 옆 나라인 라오스와 캄보디아에까지 튀게 된다. 미국은 라오스를 베트콩 전쟁물자 보급로로 의심하면서 전역에 약 200만 톤의 폭탄을 58만 번에 거쳐 무작배기로 뿌려버린다. 계산해보면 9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8분에 한번 씩 폭탄이 투하된 셈이니 그게 어디 제 정신으로 할 짓인가. 전쟁은 베트남이랑 하면서 폭탄은 죄 없는 다른 나라에 쏟아 부은 거다. 그렇게 무자비하게 라오스에 뿌려진 폭탄은 5만여 명의 사상자를 냈다. 하지만 더 잔인한 건 이 폭탄 중 30% 가량이 UXO(활성 미 폭발물)로 남아 라오스 전역에 아직까지 박혀있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제거된 불발탄은 채 1%도 못 된다고 한다.)

 

코프센터 앞에 세워진 모자상. 폭탄의 잔해를 이용해 만들어졌다
코프센터 앞에 세워진 모자상. 폭탄의 잔해를 이용해 만들어졌다.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동네 친구들과 축구를 하거나 물고기를 잡으러 나갔다가 팔 다리를 잃거나 집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 하지만 더 슬픈 건 무자비한 폭탄이 이제는 그들 삶의 일부분이 되어버려 거기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체 인구의 80퍼센트가 농사를 지어 먹고 사는 나라에서 논과 밭으로 갈아 써야 할 땅의 37퍼센트가 불발탄 오염지대로 묶여있다. 논밭을 갈다 터져버린 폭탄에 남편과 자식을 잃고서도 먹고 살기 위해 가족을 뺏어간 폭탄의 잔해를 주우며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다.

“죽음의 씨앗을 들입다 갖다 부은 거네.”

아이가 혼자 중얼거리듯 말 했다. 맞다. 건드리면 발아하는 죽음의 씨앗은 라오스 사람들의 폐부 깊숙이 박혀 수시로 꽃망울을 펑펑 터트린다. 죄 없는 사람들의 팔과 다리, 그리고 목숨을 빼앗아 핏빛으로 피어나는 죽음의 꽃. 뿌린 놈들이 결코 거둬가지 않는 무책임의 씨앗. 전쟁에서 결국 희생되는 것은 이렇게 평범하고 무고한 사람들일 뿐이다.

“동환아, 저거 좀 봐….”

“엄마가 뭘 보라고 하면 겁부터 나.”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 손끝을 따라 걸려있는 저것은 사람의 다리였다. 폭탄에 다리를 잃은 사람들이 어떻게든 살아내려고 자기 손으로 나무를 깎고 철판을 우그려 만들어 썼던 의족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센터 입구 쪽에 전시돼 있는, 하늘에서 눈처럼 떨어져 내리는 폭탄 송이들과는 또 다른 충격이었다. 그 중에는 자기 다리를 뺏어간 폭탄의 탄피로 만들어진 의족도 있었다. 그나마 제대로 사포질도 되어있고 다리 모양을 갖춘 것은 아이들의 의족이었다. 내 새끼 다리가 날아간 것을 보고 어떤 마음으로 아버지는 저 의족을 만들었을까. 조금이라도 더 진짜 다리 같은, 번듯한 의족을 만들어주고 싶어 사포질을 하고 발가락도 파고 종아리의 곡선을 다듬지 않았을까.

결국 베트남은 미국을 이겼다. 수많은 희생을 치루긴 했지만 그들 나라를 위한 싸움이었다. 그렇다면 라오스는 왜? 베트남 편도 미국 편도 아니었던 한 나라가 왜 이렇게 쑥대밭이 되어야 했을까. 이 전쟁을 사람들은 ‘Secret War’라고 부른다. 미국이 쉬쉬하고 덮어서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생각보다 남의 나라 일에 관심이 없다. 라오스에 와서 관광을 하고 블루라군의 쪽빛 물속으로 뛰어들어 물장구를 치고 똠양꿍을 맛있게 먹고 돌아갈 뿐이다. 다른 나라 아이들이 비눗방울을 퐁퐁 터트리고 놀 때, 여기 아이들은 어딘가에 묻혀있던 폭탄 방울이 펑펑 터지며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그런 나라에 우리가 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이불로 덮어놓은 폭탄 밭에서 라오스는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 어찌 보면 전쟁보다 폭탄보다 더 무서운 것은 우리 모두의 무관심인지도 모른다.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전쟁을 겪지 않은 것은 저나 나나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라오스가 겪은 참상을 보고나니 우리는 둘 다 착잡해졌다. 아이는 미국 대통령에게 전화를 한 통 하고 싶다고 했다. 무슨 말을 할 거냐고 물었다. 짧은 한 마디였지만 너무나 적확한 말이었다. 그래. 나 역시도 바로 그 말을 해주고 싶었던 거다.

“너희가 싼 똥은 너희가 치워!”

알겠니? 부끄럽지 않으려면 너희가 싼 똥은 너희가 치워야 하는 거야. 

<김양미 님은 이외수 작가 밑에서 글 공부 중인 꿈꾸는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