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노을 바라보는 시간이 낭비라면, 평생 그 낭비를 하고 싶다
한없이 노을 바라보는 시간이 낭비라면, 평생 그 낭비를 하고 싶다
  • 김준아 기자
  • 승인 2019.09.20 1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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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주나 – 세계여행] 호주 퍼스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여기, 주나>는 여행 일기 혹은 여행 기억을 나누고 싶은 ‘여행가가 되고 싶은 여행자’의 세계 여행기이다. 여기(여행지)에 있는 주나(Juna)의 세계 여행 그 열 번째 이야기.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내가 호주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을 추억하는 의자.
내가 호주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을 추억하는 의자.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고, 상쾌한 공기와 맑은 하늘과 함께 하루를 시작했다. “Good morning!” 좋은 아침이라니. 정말 예쁜 표현이다.

퍼스의 중심가에서 진행하는 무료 영어 수업을 듣기 위해 동생 집을 나서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다가 Alice의 차를 보았다. 내가 그의 차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던 이유는 호주는 차 번호판을 숫자가 아닌 본인이 원하는 문구로 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나도 Juna차를 갖고 싶어 졌다. 그렇게 즐거운 상상을 하며 따뜻한 바람과 함께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서 표지판을 확인했다. 우리나라처럼 ‘몇 분 전, 몇 번째 정류장 전’ 이라고 전광판에 적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매시 몇 분에 버스가 오는지 글자로 적혀 있다. 과연 정말로 그 시간에 버스가 올까? 걱정할 필요 전혀 없다. 버스는 항상 적혀 있는 그 시간에 도착한다. 그렇게 정확한 시간에 도착한 버스를 탔다. 정말 신기하다. 아마 교통체증이 없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버스를 타면 항상 버스 기사님이 먼저 인사를 해주신다. “Hello!” 기분이 좋아진 나는 내릴 때는 먼저 인사를 한다. “Thank you!” 고마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하루이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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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얼굴은 모르지만 이름은 알 수 있는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짐작이 간다. 가족들에게 참 소중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서호주 퍼스에는 시티에 위치한 한 교회에서 진행하는 무료 영어 수업이 있다.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하지만 종교에 상관없이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고, 다양한 레벨로 진행하기 때문에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다. 미리 예약할 필요도 없이 안내되어 있는 시간에 도착하면 간단하게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반을 나눈다. 테스트를 하는 건 아니고 본인이 원하는 레벨에 들어가면 되는 거다. 선생님들은 모두 자원 봉사자다. 초급반 수업을 한번 들어 본 나는 기초반 수업이 궁금해서 들어갔다가 ‘apple’부터 다시 배웠다. 다음 수업 때는 다시 기초반에 들어가겠다고 내 자신에게 사과했다.

수업이 끝나고 내가 호주에서 가장 좋아하는 ‘bench’를 찾아 공원으로 향했다. 호주에는 공원뿐만 아니라 곳곳에 쉬어 갈 수 있는 의자가 많다. 참 친절하다. 그리고 이 친절한 의자 대부분은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의자이다. 아름다운 나라 호주에 있는 그리움을 가득 담은 의자. 정부에서 만들어 준 의자이다. 떠나보낸 사람을 추모하기 위해 정부에 신청을 하면 그 의자에 원하는 문구를 적은 고유 안내판을 붙여준다. 그리고 누구나 그 곳에서 쉬어 갈 수 있다. 이제는 멀리 떠나 만날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기억할 수 있게 도와주다니 무척 낭만적이다. 그리고 휴식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안식처가 되어주는 따뜻한 의자이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버스는 항상 제시간에 온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버스는 항상 제시간에 온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TAKE CARE. 조심하세요. 건강하게 지내세요. 정말 친절한 호주씨.
TAKE CARE. 조심하세요. 건강하게 지내세요. 정말 친절한 호주씨.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나도 그렇게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싶었는데 내가 도착한 공원의 모든 의자에 사연이 붙어 있는 걸 보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의자의 문구를 읽으며 걷기 시작했다. ‘나의 자랑스러운 아빠. 아빠는 항상 강했어요.’, ‘사랑하는 남편이 가장 좋아하던 공원입니다. 모두가 그처럼 이 공원을 좋아하게 되길.’, ‘우리는 영원히 엄마를 잊지 못 할 거야.’, ‘소중한 내 딸, 항상 그립고 보고 싶다.’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하고,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궁금해지기도 하고, 참 여러 가지 마음이 드는 순간이다. 하지만 정말 신기한 건 누군가를 떠나보냈다는 건 분명 슬픈 이야기인데 이렇게 의자로 만들어 놓으니 참 따뜻하게 느껴진다는 거다.

그렇게 공원을 거닐다가 의자에 적혀 있는 문구 중 ‘stroll’이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영어 초급반 수업을 들은 나는 학구열에 불타올라 단어를 검색했다. ‘거닐다’, ‘산책하다’ 이 단어의 뜻이다. 오늘부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단어가 되었다. 공원을 거닐다(산책하다) 만난 ‘stroll’은 나를 계속 거닐게(산책하게) 만들었다.

나는 지금 지구를 ‘strolling’하는 중이고 그 중에서도 내가 처음 지구 여행을 꿈꾸었던 호주에 와 있다. 2012년 여름, 호주에서 호주 여행을 계획하며 세계지도를 보다가 문득 어린 시절 지구본을 보면서 했던 놀이가 생각났었다. 눈을 감은 채 지구본을 돌리고 손가락으로 아무 곳이나 찍어서 거기에 가보는 상상하기 놀이. 그 놀이가 생각나서 한참 세계지도를 바라봤었다. 그리고 혼자 꿈을 꾸었었다. “세계 여행….” 그렇게 막연하게 꿈을 꾸었던 세계 여행 속에 들어와 거대한 지구를 만나다 보니 인간이라는 존재가 굉장히 작게 느껴진다. 우주 속의 먼지로 살아가는 우리가 이렇게까지 치열해야하나 싶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한없이 노을을 바라보는 게 시간 낭비라면 난 평생 낭비를 하면서 살고 싶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우주의 먼지로 살아가면서 굳이 치열 해야 할까? 적어도 싫어하고, 미워하지는 말자.
우주의 먼지로 살아가면서 굳이 치열 해야 할까? 적어도 싫어하고, 미워하지는 말자.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21살 때부터 리포터로 방송 활동을 하다가, 26살 때부터 연극배우로 살아가며 매일 오디션을 보고, 선택 받아야 하며, 평가받는 위치에 있던 나. 정말 치열한 20대를 보냈던 거 같다. 물론 내 직업을 사랑한다. 공연이 끝난 뒤 관객들에게 박수 받는 순간을 정말로 사랑한다. 세상에 일을 잘했다고 박수 받는 직업이 얼마나 있을까?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누군가를 궁금해 하고, 그들에게 질문을 던져야 하며, 내가 아닌 타인의 삶 속에 들어가야 했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세계여행을 하는 지금 이 순간은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고,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세계 여행을 꿈꿨던 2012년의 내 자신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누군가는 물었다. 적지 않은 나이에 1년이라는 시간을 쓰는 것이 두렵지 않냐고. 나는 시간을 버리는 것이 아니고 쓰는 것이기에 전혀 두렵지 않다. 시간 낭비가 아니라 시간 활용이라고 하고 싶다. 아니, 그리고 그냥 잠시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되는 것일까? 한없이 노을을 바라보는 시간이 낭비라고 한다면 난 평생 그 낭비를 하고 싶다.

매일 아침 눈을 떴다는 사실에 “Thank you”하며 “Good morning”을 맞이해서 작은 ‘apple’ 하나를 들고 ‘bench’에 앉아 오늘은 어디를 ‘stroll’할까 하는 고민이 유일한 고민인 ‘Juna’로 살아가는 이 순간이 참 좋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여행길이다.

 

김준아는...
- 연극배우
- 여행가가 되고 싶은 여행자
- Instagram.com/juna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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