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1회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사람이 태어나면 천부적으로 부여받는 인권은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권한이다. 우리사회가 아직도 피부색이나 인종, 성별, 신체적 특징에 따라 부당한 대우를 하는 경향이 많다. 20세기 모든 인간은 일정한 기본권리를 부여받았다는 합의에 기초해 1948년 세계인권선언이 마련됐다. 하지만 개선돼야 할 인권사각지대가 각 분야에 많이 남아 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인권(人權, Human Rights)이 보편적인 사회적 요구로 현실로 받아 들여 진지는 16~17세기다. 1215년 마그나 카르타나와 1628년 권리청원, 1689년 영국 권리장전 등이 천부인권사상을 반영했다. 18~19세기 들어 인권개념이 발전되면서 노예폐지와 노동법제정, 공공교육, 노동조합, 보통선거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1980년대 들어 각국의 사법기관에서 국제인권보장에 준하는 인권보호법 제정이 시도됐다. 민간조직 활동도 왕성해지면서 사상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 언론의 자유 등을 침해한 사례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남북한 대치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태동한 군사정권의 안보체제 유지를 위해 사회적 억압과 인권유린이 심했다. 여기에 검찰과 경찰, 국정원이 정권과 결탁한 어두운 역사를 갖고 있다. 최근에 많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군대 내 자살자도 많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전두환 정권 당시 연 3천명에 가까운 병사들이 구타나 가혹행위로 많이 죽었다. 자살이나 의문사도 많았다. 지금은 연 75명으로 대폭 줄었고, 20대 젊은이 자살율과 비교하면 5분의 1수준이다. 그런 면에서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고 말한다.

인권연대가 가장 깊게 관심을 갖고 있는 검찰개혁과 검경수사권이 과연 얼마나 인권개선을 할지 주목하고 있다. 국정원과 경찰, 군대, 감옥은 어느 정도 인권개선 진전이 있었지만, 유독 검찰만 개혁의 무풍지대로 남이 있다.

“지금 국회 ‘패스트 트랙’에 올라간 수사권조정도 개인적으로 반대다. 진짜 수사권조정이 되려면 검찰이 수사를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검찰이 ‘특수수사 등을 할 수 있다’로 되어 있다. ‘특수수사 등’ 즉, 수사 이외의 모든 건들을 가져다 붙일 수 있다는 말이다.”고 밝히는 오창익 사무국장을 용산 사무실에서 만났다.

한때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사무국장을 지내고, 현재 검경수사권 조정자문위원회 위원인 그로부터 인권연대의 5대 인권감시 대상인 검찰과 경찰, 국정원, 감옥, 군대 인권문제, 검경수사권, 재산비례 벌금제, 문재인 정부 인권개선 등을 짚어 본다. 3회로 나눠 게재한다.

 

- 시민단체로는 인권연대가 복잡한 정관이나 규약, 대표를 두지 않고 있다. 평등적 관계에서 출범을 했는데 운영에 불편한 점은 없나.

▲ 20년 전 제가 이 단체를 처음 만들 때, 남들처럼 똑같이 하고 싶지 않았다. 먼저 생각한 것이 남들처럼 우르르 몰려다니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시민단체가 지금도 그런 관성들이 많이 남아 있고, 20년 전에는 특히 더 심했다.

성명문 하나를 발표하더라도 수백 개 단체가 함께 한다고 해서 누가 알아주고 쳐다 봐주지 않더라. 내용이 중요하다. 수백 개 단체가 관심을 가질만한 일이라면 우리까지 굳이 낄 일이 없지 않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또 하나 문제가 그렇게 관심 갖는 사람 말고, 오히려 관심 없는 사람, 버려진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래서 우리 단체는 남들이 하는 일은 하지 않고, 남들이 안하는 일만 하겠다고 방침을 세웠다.

이것은 전 미국 지미 카터 대통령이 운영한 카터재단 방식과 운영을 벤치마킹 했다. 지금까지 별 문제없이 왔다. 중요사안은 서로 합의하고 안 되면 미뤄놓고 다시 논의를 한다. 현재 상근 6명과 운영위원 20명, 회원이 3100여 명 된다.

 

-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조직문화와 직함주의를 철폐한 것인데.

▲ 시민활동가로서 여러 단체들을 보면, 특히 한국사회가 심한데 그 사람의 신분을 나타내는 직함을 너무 따지는 ‘네임밸류’(Name Value) 서열사회임을 절감한다. 단체에서 혼자서 일하는 것도 아닌데, 총장이나 처장, 사무국장, 공동대표, 상임대표, 고문, 상임고문, 이사장이니 이런 걸 아주 좋아한다.

시민운동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변화를 하자는 건데, 구태의연한 조직형태로는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인권연대는 처음 출발할 때부터 대표를 두지 않기로 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 멕시코 ‘사파티스타’를 본 따 단체를 설립한 이유는.

▲ 1994년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 주에서 조직한 민족해방군 ‘사파티스타’(Zapatista)는 인디오 농민으로 조직됐다. 이들은 부사령관은 있지만, 사령관을 두지 않았다. 사령관이 ‘민중’이었기 때문이다.

사파티스타는 1994년 1월1일 체결된 멕시코와 미국, 캐나다가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에 격렬히 저항했다. 멕시코가 원주민 권익을 무시한 뿌리 깊은 차별과 사회적 모순을 타파와 신자유주의에 맞서 싸웠던 저항세력을 말한다.

하지만 미국 농산물을 수입을 개방하게 된 멕시코농업이 결국 붕괴됐다. 당시 사파티스타 부사령관이 마르코스였다. 눈, 코, 입만 보이는 검은 털모자에 파이프 담배를 문 모습이 쿠바의 혁명아 ‘체 게바라’와 비슷하다. 우리가 인용한 사파티스타는 ‘1994년 판’을 본뜬 단체다. 저희 단체는 정관이나 규약, 회칙이 없다.

제가 첫 직장을 정의구현사제단에서 있을 때였는데, 회칙이 없었다. 정의구현사제단이 1974년에 설립됐으니 45년 동안 정관 없이 이끌어 온 단체다. 많은 사람들이 정관이니 규약이 당연히 필요하다 생각을 하는데, 정관 없이도 20년 째 잘 해왔다.

 

- 창립 때부터 검찰, 경찰, 국정원, 감옥, 군대 등 5대 기관을 감시활동 해왔다.

▲ 막강한 권력을 가진 검찰, 경찰, 국정원, 감옥, 군대 등 5대 국가기관을 상대로 감시하겠다고 시작해왔고 지금도 계속 하고 있다. 나름의 진전도 있었다. 검찰처럼 아무런 변화도 없는 허무맹랑한 조직도 있고, 만족할 수준은 아니지만 군대도 많이 바뀌었다. 올해 4월에 시행한 병사들 핸드폰 사용과 평일외출도 허락됐다.

상상도 못하던 일이다. 그런데도 병사들이 외출을 잘 안한다. 핸드폰 게임을 즐기고 온 세상 정보가 폰에 들어있는데 굳이 밖에 나갈 일이 없기 때문이다. 구타나 가혹행위도 사라졌다. 요새 군대 다녀온 사람에게 물어보면 군대에서 한 대도 맞지 않다고 말한다.

 

- 군 내 사망자도 많이 줄었다.

▲ 저희가 주목하는 데이터는 군 사망자 숫자가 대폭 줄었다는 점이다. 전두환 정권 당시에는 연간 3천명에 가까운 병사들이 구타나 가혹행위로 많이 죽었다. 자살이나 의문사도 많았다. 지금은 연 75명으로 대폭 줄었다.

놀라운 것은 인구 10만 명 대비 20대 젊은이들의 자살율과 비교하면, 5분의 1인 20%다. 과거에 군대 가면 자살 많이 한다는 게 일반적 상식이었는데, 군대자살률을 계속 줄여 온 것이다. 그런 면에서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경찰도 지금 물대포도 안 쏘고, 태극기부대도 자유롭게 데모하는 변화가 있었다.

국정원도 국내문제에 개입 안한지도 좀 됐다. 물론 정권교체에 따른 일시효과이긴 하지만, 공공기관의 변화가 있었다. 감옥도 많이 변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유독 검찰만 개혁이 안 되고 있어 답답한 상황이다. <2회로 이어집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사무국장
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전 경찰개혁위원회 위원
전 검경수사권조정자문위원회 위원 
현 인권연대 사무국장
현 국민중심 보훈혁신위원회 위원
현 광운대학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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