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 제3자 개입이 해결하는 ‘갑질’
적극적 제3자 개입이 해결하는 ‘갑질’
  • 이석원 기자
  • 승인 2019.09.24 0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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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기획]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살아보기 / 이석원
고객을 응대하는 모든 직업에 있어서 스웨덴은 감정 노동자가 고객의 항의에 직접 상대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사진은 스웨덴 최대 NK 백화점.
고객을 응대하는 모든 직업에 있어서 스웨덴은 감정 노동자가 고객의 항의에 직접 상대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사진은 스웨덴 최대 NK 백화점. ⓒ위클리서울/이석원 기자

[위클리서울=이석원 기자]  “시민님의 말 한 마디가 시민님의 응대 상담사를 아프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상담사를 가족이라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산업안전보건법 고객응대 근로자 보호조치에 의거하여 고객응대 근로자에게 성희롱 폭언 등을 하지 말아주세요. 이를 위반할 경우 관련법에 의해 법적 조치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서울시 다산콜센터 120에 전화하면 상담사와 통화하기 전에 들을 수 있는 음성 안내다. 서울시 다산 콜센터 뿐 아니라 이동통신 고객 센터나 전자제품 서비스센터 등 전화로 상담 업무를 하는 경우에는 표현은 조금 씩 달라도 같은 내용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다.

위 다산 콜센터의 안내 메시지에서 볼 수 있듯이 이는 고객응대 근로자 보호법, 정확히 말하자면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해 취해진 조치다. 이 법은 2018년 10월 18일부터 개정 시행된 것으로, 고객응대 근로자, 즉 감정 노동자에게 건강장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자는 법이다.

이 법에 따르면, 고객을 응대하는 업무를 하는 사람이 응대하는 고객의 성희롱이나 폭언 등으로 인해 건강장해가 발생할 경우, 업무의 일시적인 중단 또는 전환, 근로기준법에 따른 휴게 시간의 연장, 치료 및 상담 지원, 고소 고발에 대한 지원을 해야 한다.

즉 이 법은 감정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사업주를 제어하는 법이다. 감정 노동자가 건강장해가 발생했는데도 사업주가 위와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5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또 이로 인해 감정노동자가 업무상 불리한 처우를 받거나 해고당할 경우 사업주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범금형을 받을 수 있다.

왜 이런 법이 생겼는지 대한민국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이른바 사회적인 ‘갑질’ 때문이다. 전화로 고객을 응대하는 감정 노동자 뿐 아니라 백화점의 판매원이나 여객항공기의 승무원, 카페나 레스토랑의 종업원 등이 이른바 이 사회의 ‘갑’들에 의해 무수히 언어적 신체적 폭행을 당했던 대단히 후진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스웨덴에도 이런 ‘갑질’이 존재할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존재할 수 없는 사회적 여건, 제도적 장치들이 돼 있다. 고객응대 근로자 보호법이라고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같은 법은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했고, 이와는 상관없이 감정 노동자를 보호해야 할 특별한 이유도 발생하지 않는다.

인간적인 이유와 사회적인 이유 두 가지가 있다.

우선 사람들의 성품 자체가 그렇지 않다. 전통적인 스웨덴 사람들은 대체로 남에 대한 배려심이 강하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필요 이상으로 친절하다. 그건 고객을 응대하는 감정 노동자이든, 그 감정 노동자에게 응대를 받는 고객이든 마찬가지다. 상관이 있든 없든 대인 관계에 있어서 친절한 것이 그들의 습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갑질’이 없을 수는 없다. 이미 스웨덴 사회는 전통적인 그런 습성을 가진 스웨덴 사람 뿐 아니라 수많은 이민자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 중에는 중국 사람도 있고, 일본 사람도 있으면, 아랍 사람들도 있다. 거의 전 세계 전 인종이 모여 사는 사회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이 인간적인 이유보다 강한 것이 사회적 장치다. 스웨덴 사회는 모든 분쟁이나 갈등을 당사자 간 해결 방식이 아닌 제3자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해결한다.

예컨대, 아파트에서 층간 소음이 발생했다고 하자. 어떤 경우라도 아래층 사람이 위층 사람에게 직접 찾아가서 항의하는 일은 없다.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담배 연기 때문에 위층 기관지염 이웃이 고통을 받는 일이 생겼다고 해도 당사자들이 직접 만나는 일은 거의 없다.

 

제3자의 개입은 이해 당사자간의 과도한 감정 대립을 완충해주는 역할을 한다. 가장 대표적인 감정 노동자들이 일하는 공간인 호텔. (사진 = 이석원)
제3자의 개입은 이해 당사자간의 과도한 감정 대립을 완충해주는 역할을 한다. 가장 대표적인 감정 노동자들이 일하는 공간인 호텔. ⓒ위클리서울/이석원 기자

이런 일이 생기면 포레닝(Förening)이라고 불리는 주택 관리 조합에 연락을 한다. 그러면 그 조합에서는 담당자를 보내 피해자의 항의 내용을 가해자 측에 전달하고 시정을 권고한다. 물론 그저 권고만 하는 정도가 아니다. 이런 식의 권고가 누적되거나, 권고한 것이 시정되지 않을 경우 포레닝에서는 가해자가 세입자이건 집주인이건 퇴거나 계약 연장 거부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백화점에서 상품이나 서비스에 항의하는 고객이 발생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불만이 있는 고객이 아무리 해당 종업원에게 항의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차라리 애초부터 담당 매니저를 불러달라고 해서 그에게 항의하는 것이 유익하다.

종업원 또한 고객의 항의가 일정 수준을 넘어선다고 판단하면 그 고객을 직접 응대하지 않고 담당 매니저를 부른다. 이런 경우 고객이든 종업원이든 담당 매니저가 갈등의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과도한 감정의 대립이 생기지 않는다. 매니저 또한 본인이 담당자가 아니므로 필요한 조치만을 취할 수 있고, 고객에게 지나친 사과를 한다거나 종업원을 다그칠 일이 없다.

앞서 언급한대로 거의 대부분의 종업원 등 감정 노동자들은 고객을 응대하는데 있어서 무척 친절하다. 이는 단순히 습성이나 성품에 의한 것만이 아니라 철저한 서비스 교육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해서 결코 우리 식의 ‘을’의 입장을 강요하는 업체나 기관은 없다. 감정 노동자 본인도 자기 업무 범주의 서비스만을 제공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분명하고 확실하게 제3자가 개입해 문제를 해결한다.

이런 제3자 개입 방식은 작업환경법(Arbetmiljölagen)에 명시돼 있다. 1977년에 제정된 이 법 제2장 1절에는 ‘노동 조건은 노동자의 육체적 정신적 조건에 맞게 설계돼야 하고, 노동자가 질병이나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육체적 긴장이나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야 한다고 명시한다.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분명한 산업재해로 처리된다.

최소한의 법이 존재하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필요불가결한 일이다. 하지만 법이 있어도 ‘갑질’이 발생한다는 건 이 문제가 결코 법의 문제만은 아닌 인간의 문제라는 것을 알려주는 일일 것이다. 법과 인간 둘의 유기적인 완성이 이뤄졌을 때 우리의 ‘갑질’도 사라질 것이다.

<이석원 님은 한국에서 언론인으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스웨덴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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