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버섯 캐는 할머니
독버섯 캐는 할머니
  • 김양미 기자
  • 승인 2019.09.30 1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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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양미의 '해장국 한 그릇
ⓒ위클리서울/ pixabay.com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남편은 2박3일 제주도로 연수가고 나 혼자 오늘도 산에 올랐다. 가을이라 솔솔 바람이 불어 나뭇잎을 기분 좋게 샤샤 훑어주고 간간히 들려오는 산새소리의 청량함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 할머니를 보기 전까진 말이다.

한참 산을 오르고 있는데 길옆 수풀에서 할머니 한 분이 까만 비닐에다가 뭔가를 부지런히 주어 담고 계셨다. 처음엔 도토리나 밤을 주우시나 보다 그랬다.

“그거 주워가면 다람쥐가 겨울에 굶어요. 할머니!”

뭐 이런 참견 한 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그냥 눈길만 흘큼 주고 지나가려했다. 그런데 내 눈에 휘딱 들어온 건 할머니 손에 들린 버섯이었다. 예전에 누군가가 말해주었던 광대버섯 같이 생겼는데 먹으면 큰일 나는 독버섯이었다. 아 진짜! 요즘 슈퍼만 가도 먹을 수 있는 버섯이 오만가지인데 뭐 하러 산에 와서 저런 위험한 걸 따 가시나 말이다. 나는 어떻게든 할머니를 말려야겠다 싶었다.

“할머니. 그거 먹는 버섯 아니에요!”

“(휘딱 한번 돌아보더니) 나도 알어 못 먹는 거.”

“(이 할머니 킬러인가?) 그럼 갖다가 뭐 하시려구요!”

“사람 다니는 길에 피었자너. 눈에 띄길래 그냥 캐다 버릴라 그래. 애들이라도 손대고 눈 비벼봐. 클나.”

 

산에는 이름모를 버섯들이 지천이다.
산에는 이름모를 버섯들이 지천이다.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사람 다니는 등산로에 자란 독버섯을 행여 누가 따다 먹거나 애들이라도 만질까봐 캐다 버리시려는 거였다. 할머니, 와 씨… 갑자기 코가 찡 눈물이 핑글 돌았다. 아름답다 저 마음. 할머니 예쁘고 착한 사람이네 진짜. 못 먹는 버섯을 따러 다니는 이상한 할머니라니!

저렇게 쭈그리고 앉으면 무릎도 아프실 텐데 말이다. 힘드니까 그만하시라는 말은 차마 못하고 돌아서서 다시 산을 올랐다. 뭔가 엄청 아름다운 꽃을 본 듯도 하고 뭔가 엄청 따뜻한 풍경을 바라본 듯도 한 느낌이었다.

그 느낌으로 다시 산을 오르다 내 앞에 걷고 있는 한 사람을 보게 됐다. 한 아이는 등에 업고 또 다른 아이는 손을 잡고 산을 오르는 젊은 아빠. 그리고 몇 발짝 앞에서 빈 몸 빈 손으로 가볍게 걸어가는 젊은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내내 아이 둘 돌보느라 힘들었을 아내 대신 두 아이를 업고 걸려 산을 오르고 있었다. 밝게 웃고 있었고 행복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옛날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둘째가 초등학교 1학년 때였을 거다. 주말이었고 남편은 집회에 나가고 없었다. 심심하다며 아파트에서 쿵쿵 뛰는 에너자이저 두 놈을 데리고 광교산에 올랐다. 신나게 한참을 뛰어올라가던 둘째가 저만치서 갑자기 우뚝 서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다리를 꼬는가 싶더니 산 한쪽에 쭈그리고 앉았다. 나는 아이에게 다가가 물었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만큼 힘든 일이다. 누구나 부모는 될 수 있지만 누구나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만큼 힘든 일이다. 누구나 부모는 될 수 있지만 누구나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동환아. 너 왜 그래? 킁킁.. 헉! 너 똥 쌌니?!”

평소에 장이 약했던 아이가 아침부터 아이스크림을 두개나 먹더니 그만 실수를 해버린 거다. 큰아이는 이미 산 위로 뛰어올라가 버린 뒤라 보이지도 않았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던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갈아입힐 옷 가지고 여기로 빨리 좀 와줘.”

“나 사람들하고 집회 끝나고 한 잔 하고 있어.”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지금 올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일단 나는 큰아이를 잡아오기 위해 산위로 뛰어올라갔다. 숨이 턱까지 찬 뒤에야 겨우 큰애를 따라잡았다. 손을 끌고 둘째가 있는 곳까지 뛰어내려왔다. 아이는 쪼그려 앉아 떨고 있었다. 둘째를 업었다. 산 밑까지 어떻게 내려왔는지 다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집에 가서 빨리 씻기고 싶었지만 냄새 때문에 버스를 탈 수 없어 그냥 걸었다. 하지만 집까지 걸어갈 거리가 아니었다. 택시를 잡아 사정사정을 했다. 요금에다 세탁비 까지 드리겠다고. 하지만 고개를 젓고 가버리는 택시 두 대를 보내고 나자 눈물이 터져버렸다. 내가 울자 큰아이가 택시를 잡겠다고 찻길가로 뛰어갔고, 나는 그 아이를 잡으려고 또 뛰었다. 그때 등에 업혀있던 둘째가 내 귀에다 대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미안… 울지 마.”

 

아이를 업고 걸려서 산을 오르던 아빠의 뒷모습. 마치 순례자의 뒷모습 처럼 숭고하게 느껴졌다.
아이를 업고 걸려서 산을 오르던 아빠의 뒷모습. 마치 순례자의 뒷모습 처럼 숭고하게 느껴졌다.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집에 와 목욕을 시키고 아이에게 약을 먹이고 저녁을 먹여 재우는 동안 나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입을 꾸욱 다물고 있었다. 아이는 엄마가 자기에게 화가 나있다고 생각했을 거다. 남편에 대한 원망과 미움 때문에 그때는 아이의 감정까지 살피지 못했다. 나는 그 일이 오늘까지 미안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괜찮아”라고 따뜻하게 말해줬어야 했는데 말이다.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세상에 조금 더 보탬이 되는 일을 하기 위해 늘 바빴던 남편이지만 럭비공 같은 아들 둘 키워내느라 나 혼자 동동거리며 울 때도 참 많았다. 그 때문인지 지금 내 앞에 보이는 저 아내가 나는 참말로 부러웠다. 그리고 남편이 아내와 아이들을 바라보는 얼굴에서 조금 전 만났던 독버섯 캐던 할머니의 미소를 보았다. ‘남을 위한 배려’는 저렇게 사람 얼굴에서 빛이 나게 만들고 예뻐 보이게 만드는 구나….

욕심과 아집과 어리석음에 쩔은 못난 얼굴들이 떠올랐다. 이런 시국에 얼굴에 시멘트를 쳐 발랐는지 세상 근엄하고 굳건하고 딱딱한 표정으로 몰려다니며 자기가 얼마나 어리석고 추한지조차 모르는 무리들. 같은 인간 참 다른 얼굴들이다.

산을 내려오며 나는 할머니가 따간 독버섯 개수만큼 산삼의 기운이 되어 오래오래 건강하시라고 빌어드렸다. 힘들었을 아내 대신 아이들 업고 걸리며 열심히 산을 오르던 그 젊은 아빠도 하는 일마다 술술 잘 풀리고 어디서든 대박나라고도 빌었다.

도대체 가을은 어쩌자고 이렇게 자꾸 아름답냐 말이다. 더도 덜도 말고 딱 두 달만 이렇게 가을을 만끽하다 놓아주고 싶다.

<김양미 님은 이외수 작가 밑에서 글 공부 중인 꿈꾸는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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