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관 불법사찰과 권력남용 견제할 힘은 ‘의회와 시민’”
“정보기관 불법사찰과 권력남용 견제할 힘은 ‘의회와 시민’”
  • 한성욱 선임기자
  • 승인 2019.10.01 16: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층인터뷰] 곽노현 내놔라 내파일 시민행동 상임공동대표(전 서울시 교육감)-1회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우리 사회가 아직도 이념대결과 좌우대립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1960년대 미국과 구소련의 냉전체제는 대한민국을 남과 북으로 갈라놓았다. 공산권 팽창을 억제하려는 미국의 안보정책은 이 땅에 군사정권을 잉태시키는 역할을 했다.

무소불위 권력을 가진 역대 정권마다 영구집권을 위해 국민을 감시할 비밀정보기관이 필요했다. 국정원, 검찰, 언론 등이 결탁한 어두운 역사가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기득권세력들은 자신들 체제의 반대편에 선 세력들을 불법 사찰하는 등 반민주적 행태를 자행했다.

 

2017년 촛불혁명 정신은 제대로 된 인권 국가를 만들자는 거였다. 그러나 중앙정보부 후신인 국가정보원(국정원)과 군 기무사는 정권에 비판적인 인사들을 암암리에 불법 사찰해 왔다. 여야 정치인을 막론하고 국가기관, 지자체 단체장, 종교인, 연예인, 스포츠스타, 방송인, 시민단체 등 이들의 영향력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내가 언제 어떻게 사찰을 당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정보기관을 대상으로 정보공개 운동을 펼쳐 온 곽노현 내놔라 내파일 시민행동 상임공동대표(전 서울시 교육감)는 “2017년 시작한 내파일 시민행동 운동은 시민들의 알 권리와 정보인권을 통해 국정원의 불법사찰 전모를 파악하고, 개인정보공개를 요구하기 위한 단체다. 세간에 유명한 인물이거나 정권비판을 하거나 촛불시위를 했다는 사유로 정보기관의 사찰을 받는 야만적 시대를 끝내야 한다.”고 말한다.

곽 공동대표는 국정원의 불법사찰에 대해 1차로 800여 명이 집단소송을 했지만, 국정원이 일괄 기각했다. 박재동 화백과 명진 스님 등 4명이 모여 ‘테스트 케이스’ 시범적 소송을 통해 서울행정법원으로부터 승소판결을 받았다. “이제 모든 시민들과 각계 활동가, 명망인사들은 국정원에 대해 불법사찰기록물인 내 파일 공개를 법적으로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한다.

“국정원의 권력 남용을 막고 보다 유능한 정보기관으로 거듭나도록 의회와 시민의 힘으로 견제를 해야 한다.”고 소감을 밝히는 곽노현 공동대표를 만났다. 국정원과 보안사, 대공경찰의 불법사찰문제와 개인정보문제, 국내외 정보인권, 21세기 민주주의와 인권강국을 향한 고언을 들어 본다. 3회로 나눠 게재한다.

 

곽노현 ‘내놔라 내파일 시민행동’ 상임공동대표
곽노현 ‘내놔라 내파일 시민행동’ 상임공동대표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 국정원 불법사찰 정보공개 공익소송에서 승소했다. 법원의 정보기관 통제가 확립됐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큰 판결로 평가받고 있다.

▲ 박재동 화백, 명진 스님, 김인국 신부와 내가 진행해온 소송은 시범적 소송, 즉 테스트 케이스(Test Case) 성격이 짙다. 나는 서울시 교육감직을 수행할 당시, 국정원이 불법 사찰한 부분에 대해 정보공개판결을 받았다.

박재동 화백도 5건의 국정원 정보파일 공개판결을 받았다. 김인국 신부는 정의구현사제단 대표 시절 5건의 정보파일이 있었고 이 부분을 재판부가 들여다 봤지만, 국가안보와 관련된 정보로 판단돼 정보공개법 적용대상이 아니라는 판결이 나왔다.

명진 스님도 방북 활동 관련해서는 국가안전보장을 위해 수집된 것으로 보고 비공개로 했다. 단, 봉은사 주지 시절에 이명박 정권이 쫓아낼 목적으로 사찰해서 취득한 정보는 국가안전보장과 연관성이 없기 때문에 서울행정법원이 정보공개명령을 내렸다.

 

- 언제부터 파일정보공개 운동을 하게 됐나.

▲ 미국 인권단체들이 FBI(미국연방수사국)를 대상으로 정보공개운동을 벌여서 성공을 거둔 사실을 1997년 2월에 처음 알게 되면서 언젠가 국정원을 대상으로도 정보공개청구운동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내놔라 내파일’ 운동을 2017년 9월부터 시작했으니 꼭 20년 만이다.

2017년 5월에 들어선 문재인정부가 곧바로 국정원 개혁에 본격 착수하는 걸 보고 때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했다. ‘내놔라 내파일 시민행동’을 조직해서 국정원에 정보공개청구운동을 벌였다. 신청인원은 2차례에 걸쳐 모두 700~800명에 달한다. 하지만 국정원은 국가안보정보기관이 수집한 정보는 정보공개법 적용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일괄기각 했다.

그래서 앞의 네 사람이 시범적으로 소송을 냈다. 우리소송은 당사자의 알권리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국정원의 정보사찰활동과 사찰정보파일에 대해 법원의 사법통제 의지를 확인하고 모든 시민의 알권리를 신장하기 위한 것이다.

 

- 미국 정보기관인 FBI 불법사찰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는데.

▲ 미국에서도 FBI는 오랫동안 불법사찰로 악명이 높았다. 공산주의자와 혁명주의자, 급진주의자와 반체제주의자는 활동분야를 막론하고 미행과 도청, 조직원침투와 와해공작 등을 당했다고 보면 된다. 그래도 시민단체는 속수무책이었다.

미국에서도 정보기관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제대로 확립된 건 1960년대와 70년대 들어 몇 건의 굵직한 스캔들과 조사특위를 거치고 나서다. 1970년대 후반 미 의회는 FBI와 CIA(미국 중앙정보부) 등 비밀정보기관에 대해 비로소 본격적인 의회통제를 확립하기 시작한다.

 

- 인권단체들의 정보공개운동이 본격화 됐다.

▲ 1970년대 후반에 미국에서 정보공개법과 개인정보보호법이 제정됐다. 인권단체들은 곧 이 법이 미국의 연방수사국이자 국내정보기관인 FBI의 국내정보파일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있음을 간파하고 FBI를 상대로 정보공개청구를 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미 법원은 개인과 단체의 공개청구정보가 법적용 대상인지 아닌지, 공개대상인지 아닌지를 심사할 수 있게 됐다. 결과적으로 정보기관에 대한 사법통제가 확립되고 FBI의 비밀문서고가 열렸다. 돌이켜보면 미국은 이미 1980년대부터 정보기관에 대한 의회통제와 사법통제가 얼추 지금의 모습을 갖출 정도로 선진적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당시 민주주의 최고선진국이었던 미국에서도 1980년대 들어서야 비로소 비밀정보기관에 대한 법의 지배가 어느 정도 확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촛불혁명을 거치고서야 간신히 그 길을 걷는 걸 보면 비밀정보기관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지 알 수 있다.

 

- FBI 정보를 과연 믿을 수 있을까.

▲ 그게 문제다. FBI가 일방적으로 수집, 분석한 정보가 정확한 정보라고 누가 단정하고 확인할 수 있겠나. 오히려 FBI가 처음부터 ‘위험한 사람’으로 지목해 부정적인 편향을 갖고 입맛에 맞는 정보를 수집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만약 이런 정보를 정보주체가 죽고 나서 공개할 경우에는 정보주체에 의한 반론기회마저 봉쇄된다. 그래서 불법사찰정보는 본인 공개를 넘어 폐기될 필요성이 거론된다. 국정원 정보도 다르지 않다. 미국에서는 이미 고인이 된 유명인사를 대상으로 FBI가 몰래 수집한 비밀정보에 대해 호사가와 역사가의 궁금증이 몰리면서 정보공개청구가 빗발쳤다.

이를테면 양자물리학자 ‘아인슈타인’, 비틀즈 멤버 ‘존 레논’, ‘마틴 루터 킹’ 목사, 사회주의자였던 ‘헬렌 켈러’ 같은 분들이 대표적이다. FBI는 이미 고인이 된 유명인사 수천 명의 정보파일을 누구에게나 공개한다.

예민한 개인정보 부분만 새까맣게 지우고 공개한다. 이 그룹에 속해있지 않더라도 과거 유명인사에 대해 전기를 쓰는 작가들은 FBI에 정보공개를 신청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 내용의 진위에 대해선 늘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 한국 법원도 정보기관의 권력남용을 통제할 수 있게 됐다.

▲ 이번 승소는 정보기관에 대한 사법통제권을 확립한 대단히 큰 걸음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법치국가를 향한 많은 진전들이 있었지만, 이번 판결 덕분에 비밀정보기관의 불법사찰을 당할 위험성이 크게 줄어들었다.

왜 그런가 하면, 우리 4인의 소송을 맡은 행정법원은 국정원에 우리4인의 원고에 대해 국정원이 갖고 있는 정보파일을 제출하라고 명령했다. 국가안전을 위해 수집된 정보인지를 법원이 직접 보고 판단하겠다는 것이었다.

만약 국가안전을 위해 수집된 정보라면 보호하고 그렇지 않으면 공개하게 해서 법원이 사후적으로나마 국정원의 직권남용 여부를 따지겠다는 것이었다.

법적으로 말하자면 국정원에 대한 사법심사권과 사법통제권을 확립하고 그 결과로 국민의 알권리를 강화했다. 이제 국정원과 보안사, 경찰의 정보수집활동에 대해서도 법원이 직권남용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게 됐다.

 

- 문재인 정부의 국정원 개혁 가시적 성과가 있었나.

▲ 문재인 정부는 출범직후부터 종전과 다르게 야심차게 국정원 개혁을 추진했다. 제일 먼저 국내사찰담당 2개국을 폐지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동안 국내사찰부서에서 수집한 방대한 양의 정보파일들을 활용하지 못하게 봉인했다.

그동안 국정원이 사찰했던 대상은 입법부와 사법부, 행정부, 지자체장, 언론기관, 종교기관, 노동조합, 수협, 농협, 시민단체 등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특히 이명박 정권 당시에는 4대강 사업에 비판목소리를 높였던 환경단체도 사찰대상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국가기관과 지자체, 공공기관과 시민단체, 금융기관과 대기업에 대한 국내정보관(Information Officer)의 출입도 금지시켰다.

 

- 정치사찰, 완전히 종식 됐나.

▲ 문재인 정부는 국내 사찰국 2개를 공식 폐지하고 국내 정보요원의 기관출입을 금지했으며 과거의 불법정치사찰기록을 봉인했다. 하지만 훗날 다른 정권이 들어서면 별 어려움 없이 다시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다. 과거 사찰기록도 기밀번호만 알려주면 다시 볼 수 있고 기관출입도 제한적으로 허용할 수 있다. 이걸 막으려면 국정원법이 바뀌어야 한다.

 

- 정보기관의 ‘국가안보’ 잣대가 정권유지를 위한 칼날로 작동됐는데.

▲ 간첩조작은 물론이고 총풍, 세풍, 댓글공작 등 국정원의 스캔들은 정권유지목적의 노골적인 불법행위들이었다. 여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공직자의 부패비리정보 수집을 국정원의 업무로 인정할 것인지가 문제된다.

공직자 부패비리는 범죄행위로서 관련정보 역시 범죄수사기관인 경찰과 검찰이 수집할 일이다. 이렇게 보지 않으면 국정원이 모든 고위공직자를 사찰해야 해서 정보관이 모든 국가기관과 공공기관을 수시로 출입할 빌미를 제공한다.  <2회로 이어집니다.>

 

▲ 곽노현은...
   서울대학교 법학 박사
   미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법학대학원 법학 석사
   2010.7~2012.9 제18대 전 서울특별시 교육감
   1991. 3 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교수
   1991. 7 민주주의 법학연구회 회장 
   1995 인권운동사랑방 운영위원
   1997 5.18특별법제정 범국민대책위원회 대변인[5.18 시민상 수상]
   2000 인권연대 교육위원
   2003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
   2005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
   2009 경기도학생인권조례제정 자문위원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주) 뉴텍미디어 그룹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 다 07108 (등록일자 : 2005년 5월 6일)
  • 인터넷 : 서울, 아 52650 (등록일·발행일 : 2019-10-14)
  • 발행인 겸 편집인 : 김영필
  • 편집국장 : 선초롱
  • 발행소 :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목로 72(신정동)
  • 전화 : 02-2232-1114
  • 팩스 : 02-2234-8114
  • 전무이사 : 황석용
  • 고문변호사 : 윤서용(법무법인 이안 대표변호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리
  • 위클리서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05 위클리서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aster@weeklyseoul.net
저작권안심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