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정부, 국내사찰 담당 2개국 폐지・정보파일 완전 ‘봉인’"
"文 정부, 국내사찰 담당 2개국 폐지・정보파일 완전 ‘봉인’"
  • 한성욱 선임기자
  • 승인 2019.10.02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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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곽노현 내놔라 내파일 시민행동 상임공동대표(전 서울시 교육감)-2회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1회에서 이어집니다.>

곽노현 ‘내놔라 내파일 시민행동’ 상임공동대표
곽노현 ‘내놔라 내파일 시민행동’ 상임공동대표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 ‘내놔라 내파일’ 운동이 정보기관의 불법정치사찰 관행을 깼다.

▲ 곽노현의 ‘내놔라 내파일’ 소송을 맡은 행정법원은 교육감 등 공직자 사찰은 정치사찰일 뿐 국가안보를 위한 정당한 정보수집이 아니라고 못 박았다. 국가안보라는 것은 영토의 보전, 국가의 독립, 헌법기관의 정상적 운용에 한정되는 개념이기 때문에 국정원이 국가안보 목적으로 정당하게 수집할 수 있는 ‘국내보안정보’란 국정원법이 명시하듯이 대공, 방첩, 대정부전복, 대테러, 국제조직범죄에 관한 정보로 한정되는 게 마땅하다. 공직자 부패비리정보는 위의 사항과 결부되지 않기 때문에 공직자사찰은 국정원법이 금지하는 정치사찰에 지나지 않는다.

 

- 예산과 조직, 인원도 모두 베일에 가려져 있는데.

▲ 국정원의 예산과 조직, 인원 등은 당연히 비밀사항이다. 알려지면 정보역량이 노출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걸 국회조차 알 수 없게 만든 건 얘기가 다르다.

미국 상원과 하원의 경우 정보위원은 물론 보좌관도 정보기관의 예산과 활동을 제한 없이 들여다볼 수 있지만 우리는 그게 안 된다. 결과적으로 국정원은 천하무적의 국가안보 방패를 휘두르며 국가 안의 국가로 꼭꼭 숨은 채 행세해왔다.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도 국정원특권법을 바로잡지 못했다.

 

- 정보기관 감독권이 있는 국회정보상임위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다.

▲ 우리나라 국회정보상임위원회는 미국 상하원의 정보상임위원회를 본 따 만들었지만, 사실상 어떤 실권도 행사하지 못한다. 정보위의 결의가 있으면 정보위원이 직접 국정원에 가서 국정원 정보문건을 열람할 수는 있다.

문제는 이때 미국과 달리 보좌관한테는 열람권을 주지 않아서 보좌관의 조력을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우리 정보위 소속의원이 다른 상임위에도 중복 소속돼 정보위 일에 할애할 시간 자체가 많지 않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왜 국회통제가 유명무실한지 이해가 될 것이다.

실은 사법부도 ‘내놔라 내파일’ 정보공개 청구소송 이전까지는 국정원 통제문제를 방기했다. 결과적으로 국정원을 통제할 수 있는 외부독립기관인 국회와 법원이 모두 정보기관을 통제하지 못했다.

 

- 불법사찰 지금도 할 수 있나.

▲ 그렇다. 국가안전보장이라는 게 고무줄 개념이라서 느슨하게 적용하다 보면 불법사찰이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최종 판단권을 갖는지가 중요하다. 과거에는 국정원이 마음대로 판단했고 국회나 법원이 손 놓고 있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남용이 가능했다.

이번에 행정법원은 정보공개청구가 있을 경우 사후적으로나마 국정원의 정보파일을 제출받아서 국가안전보장 목적을 위해 수집됐는지를 법의 눈으로 심사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사법심사가 확립될수록 국정원이 제멋대로 국가안보를 들먹이며 불법사찰에 나설 소지가 줄어들 거다.

 

- 정보기관이 사찰한 ‘곽노현 비밀문건’도 꽤 많은 것 같다.

▲ 행정법원은 과거 교육감 시절 나에 대한 국정원의 사찰활동을 불법적인 정치사찰로 판결하며 국정원이 당시 작성한 30건의 사찰문건의 공개를 명령했다. 물론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사찰자료들이 있을 테지만, 이번에 국정원은 나의 교육감 재직기간에 작성된 정보문건 중에서도 문건제목에 내 이름이 들어간 30건의 문건만을 법원에 제출해서 판단을 받았다.

중요한 것은 법원이 공직자에 대한 반부패비리정보나 공직수행평판정보 수집을 국정원의 정당한 업무로 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건 임명직이건 선출직이건 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의 전-현직 기관장에게 두루 적용될 획기적 판결이다.

 

- 1991년 진보 법학연구회 회장 당시부터 사찰당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았을까.

▲ 그렇다. 과거청산과 법치주의의 관점에서 국보법 개폐와 국정원 개혁을 주창하던 1990년대 초반부터 국정원의 불법사찰이 시작했을 것 같다. 내가 비밀정보기관의 활동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민주주의법학연구회’라는 진보법학자모임의 회장을 맡은 1991년부터다.

민주법연은 1989년 출범이래 줄곧 ‘민주법학’이라는 진보적 학술지를 발간했는데 당시만 해도 이른바 ‘불온서적’으로 몰려 교도소 반입금지도서로 지정됐었다. 나는 그때부터 볼온서적을 만들어내는 불온단체의 회장으로 안기부의 사찰대상에 올랐을 거 같다.

 

- 김영삼 정부 당시 정보기관개혁 어떻게 단행했나.

▲ 비밀정보기관을 개혁한 건 김영삼 정부가 처음이다. 전두환 정권은 보안사와 안기부 정권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당연히 정보기관 개혁이 문민정부의 핵심과제 중 하나였다. 먼저 안기부 수사권을 대폭 축소시켰다.

우리나라 비밀정보기관이 무서운 이유는 단순한 정보수집뿐 아니라 밀실수사권을 가졌기 때문이다. ‘너 같은 놈은 여기서 고문하다 쥐도 새도 모르게 갖다 버리면 돼.’ 이런 식으로 겁박을 했고 실제로 죽이기도 했다.

김영삼 정부는 안기부의 수사권을 대폭 축소해서 ‘검은 잠바’들이 할 일이 없어졌다. 불과 2년 만에 김영삼 정권은 안기부법 개악안을 날치기해서 안기부의 수사권을 거의 원상회복한다. 그때 내가 안기부법 개악반대 운동을 맹렬하게 했다.

그 일환으로 외국의 전문가 4인을 초청해서 ‘비밀정보기관의 민주적, 법적 통제’를 주제로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했다. 그중에 한 분이 미국 FBI를 상대로 한 정보공개청구운동 얘기를 해줬다.

 

- 어떤 얘기를 했나.

▲ 그분이 속했던 시민단체가 FBI를 상대로 소송을 내서 1만 쪽에 달하는 정보파일을 돌려받았다. 주요 부분을 새카맣게 지운 채로 공개된 방대한 문서를 기를 쓰고 읽으면서 자신들도 매우 놀랐다고 한다.

예전에 강연 하루 전에 취소통보를 받았던 사안이나 사무실이 털렸던 사안이 모두 FBI가 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서 우리나라에서도 때가 되면 정보기관 통제를 위해 알권리를 사용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됐다. 그것이 무려 20년 만에 내놔라 내파일 시민행동으로 구체화됐다.

 

ⓒ위클리서울/그래픽=이주리 기자
ⓒ위클리서울/그래픽=이주리 기자

 

- 국정원 개혁법안이 심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 문재인 정부 초기에 국정원개혁위를 6개월 동안 가동해서 과거의 잘못된 흑 역사에 대한 재조사와 함께 개혁법안을 만들어 냈다. 국내정보수집권을 경찰에 넘기고 국정원을 순수 해외정보기관으로 재편하는 획기적인 법안이다. 하지만 자유한국당 반대로 아직까지 국회통과가 되지 않고 있다. 내년 총선 이후에나 본격적 심의를 거쳐 입법될 전망이다.

 

- 법원의 정보기관에 대한 강력한 심사기준이 요구된다.

▲ 국정원은 박재동 화백과 내가 국보법 폐지주장과 국보법위반자 석방청원, 국정원 축소재편주장을 해왔기 때문에 국가안보 차원에서 적법하게 사찰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정원은 재판부에 그 사유로 작성된 사찰문건을 제출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재판부는 구체적 사건과 문건을 통해 위의 주장의 당부를 가릴 수가 없었다. 나는 이 점이 몹시 아쉽다. 다만 어떤 경우에도 재판부가 국정원의 손을 들어주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국보법 폐지나 국정원 축소를 주장하는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국정원 축소를 강도 높게 주장하는 순간, ‘정보기관을 약화시켜서 국가안보를 저해할 흑심이 있는 자’로 찍혀서 사찰을 당할 것 아닌가. 그러면 국보법과 국정원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 된다.

아주 예외적이고 아주 드물게 그런 주장 자체 때문이 아니라 주장의 맥락과 주장자의 이력 때문에 국정원의 사찰이 정당할 수도 있다. 법원의 역할은 이런 예외적이고 엄격한 기준을 제시하는 데 있다.

 

- 각계 기관과 단체들의 정보공개 청구소송이 봇물처럼 일어나지 않을까.

▲ 법원에서 정의로운 분별기준들이 지속적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앞으로도 숙제가 많이 남아 있다. 법원이 판단기준을 발전시키려면 불법사찰을 당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다양한 직역의 개인과 단체들이 적극적으로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예를 들어 참여연대, 경실련, 환경운동연합 등 주요 시민단체들이나 민주노총과 주요노조들은 설립당시부터 모든 지도부가 국정원의 사찰대상이었을 것이다. 통일운동과 북한지원활동을 해온 시민단체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분들이 모두 국정원에 정보공개를 청구하고 비공개처분에 대해선 행정법원에 정보공개소송을 내야 사법통제가 법리적으로 정교해질 수 있다. 합리적인 의심이 들 때 일단 소송을 내면 법원은 원고 관련파일을 모두 제출받아 국가안보 관련여부와 공개여부를 판단할 권한을 갖는다.

그러고 보니 2년 전 국정원개혁위 활동시절에 성남시장, 아산시장, 성북구청장, 은평구청장 등 민주당 소속 지자체장 30~40명에 대한 국정원 불법사찰사실이 드러났었다.

이분들도 국정원에 내놔라 내 파일 소송을 할 수 있다. 물론 이른바 좌파, 진보성향의 문화예술단체와 문화예술인들, 특히 이름만 대면 알만한 영화감독이나 배우, 연예인, 방송인들이 내놔라 내파일 운동에 합류하면 제일 좋다.

 

- 국정원이 서둘러 정보공개업무 처리기준을 마련해야 하는 것 아닌가.

▲ 정확한 지적이다. 향후 수 천 명이 한꺼번에 행정소송을 제기한다면, 법원이 감당하기 버거울 것이다. 이런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국정원이 먼저 공개원칙과 공개기준을 세워서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처리해야 한다.

어떠어떠한 조건 아래서 국가안보 목적성이 있고, 어떠어떠한 경우에는 국가안보 사안이 아닌지를 국정원이 먼저 광범위한 의견수렴과정을 거쳐서 만들어 내야 한다. 그러면 국정원이 정보공개청구를 일괄 기각하지 않게 돼 행정소송으로 다툴 건수도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다.

 

- 국제적 인권기준에 부합한 안이 나올까.

▲ 국정원이 만들어낼 내부기준은 국가안보 목적과 범위를 상대적으로 느슨하고 넓게 잡을 개연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국정원이 내부기준을 만들어 적용한다고 해서 그에 대한 사법심사와 사법통제의 필요성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인권과 국가안보의 균형점을 찾는 일이 중요한데 정보수집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분야마다 머리를 맞대고 심도 있는 토론을 해서 세밀한 균형점을 찾아내야 한다.

 

- 청와대와 국회정보상임위도 불법정보수집에 대한 법안마련이 시급한데.

▲ 그러려면 인권전문가, 국가안보전문가, 피해자집단,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국정원과 머리를 맞대야한다. 이를 위해 국정원은 먼저 그간의 분야별 정보수집 관행과 기준을 정리해서 스스로 취약점과 개선책을 내놓아야 한다.

국회정보 상임위원회도 적극적으로 정부와 국정원의 기준설정작업을 견인해야 한다. 정보위원장은 위원회를 소집해 법원의 이번 내놔라 내파일 판결의 의미가 무엇이고 국정원이 이 판결의 취지에 맞춰 과거의 불법사찰기록을 정보주체에게 어떻게 공개할 방침인지를 보고받고 더 나은 방안을 강구할 수 있어야 한다.

국정원의 정당한 정보수집과 불법정보수집에 대한 판단기준을 어떻게 더 정교하게 다듬을 것인지를 놓고 고민하며 필요한 법안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3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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