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류지연의 중국적응기 '소주만리'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내 나이 38세.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안정적인 한국생활을 뒤로 하고 타국에서 하루아침에 외노자(외국인 노동자의 준말) 신세가 되었다. 지리적으로는 가깝지만 심리적으로는 아프리카만큼 멀게만 느껴졌던 중국이라는 나라, 과연 잘 적응할 수 있을까? 38살 아줌마의 중국 체험기, 지금부터 시작해본다.

 

초등학생 자녀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가장 두려운 시기는 언제일까? 열이면 열, 이구동성으로 긴 방학을 꼽지 않을까 싶다. 약 한 달 전, 여름방학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국에 있는 친구와 카톡으로 이야기를 하다가 방학 이야기를 꺼냈더니 친구는 벌써 겨울방학이 걱정된다고 했다. 같은 엄마로서 그 마음이 십분 이해가 간다. 한 술 더 떠 딸내미가 다니는 국제학교는 3학기제라 방학이 세 번이다. 그 외에도 우리나라와는 다른 공휴일이 많아 중간중간 쉬는 날이 있는데, 10월 초에 있는 ‘국경절’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큰 명절이 설과 추석이지만 중국에서 추석(중국에서는 ‘중추절(中秋节)’이라고 한다)은 그다지 비중이 큰 명절이 아니다. 일례로 올해의 경우 주말을 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음력 8월 15일 당일인 9월 13일 딱 하루만 공휴일이었다. 대신 10월 1일의 국경절은 10월 1일부터 7일까지 꼬박 일주일을 쉰다. 엄마들에겐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휴일이 아닐 수 없다.

집에만 있으면 뭐하랴 싶어서 어딜 갈까도 생각했지만 여러 이들에게 들은 바로는 어디나 미어터지기 때문에 차라리 집에 있는 게 낫다고 한다. 베프 J에 의하면 젊은 시절 국경절을 맞아 기차로 10시간 정도 걸리는 내몽골 여행을 떠났는데 멋모르고 입석표를 샀다가 출근길 서울 9호선 지하철마냥 사람이 꽉꽉 들어찬 기차에서 꼬박 10시간을 서서 간 적이 있다고 한다.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화장실까지 사람이 들어차서 볼 일 보기도 쉽지 않았다며, 그 후로 중국 연휴 때는 여행은 금물이라는 교훈을 얻었다는 슬픈 이야기다.

워낙 긴 연휴다 보니 춘절(한국의 설)마냥 고향을 향한 민족 대이동도 있고, 여행도 많이들 간다고 한다.

해외여행상품도 이맘때는 일찍 동나고 비싸다고 하니 아무래도 집에다 피난살림 챙기듯 먹거리를 쟁여놓고 시간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대체 국경절이 뭐기에 일주일씩이나 쉬며 큰 행사를 할까 싶어 찾아보니, 1949년 마오쩌둥이 북경의 천안문 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을 발표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라고 한다. 올해가 딱 70주년인지라 대대적인 칠순잔치(?)를 한단다. 국경절 당일 천안문 광장에서 벌어질 대규모 열병식의 예행연습을 위해 9월 중순부터는 한 번에 이삼일씩 천안문 주변 도로를 차단하고 버스는 우회, 지하철역은 폐쇄, 해당 역에서는 무정차통과 하는 등 완전한 통제 하에 연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9월 21일부터 국경절 당일까지는 자금성도 폐쇄한다고 하는 걸 보면 어지간히 성대한 칠순잔치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얼마 전부터 거리 가로등의 현수막이 온통 붉은색의 중국 국기로 바뀐 것을 볼 수 있었다. 거리 현수막이야 그런가보다 싶었는데 신기했던 것은 며칠 전부터 소주대학교 내 가로등에도 중국 국기 현수막이 나붙었다는 거다.

 

거리에 나부끼는 국기 현수막
거리에 나부끼는 국기 현수막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소주대학교 안 가로등에 붙은 국기 현수막
소주대학교 안 가로등에 붙은 국기 현수막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우리나라에서 개천절이나 광복절이라고 학교 안에 온통 국기 물결이 나부끼는 걸 본 적이 있었던가? 기억을 더듬어 본다. 학교를 졸업한 지 벌써 14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국립대학교임에도 불구하고 딱히 학교 안에서 국기를 무더기로 봤던 기억은 없는 듯하다. 가끔 중국의 사회주의적인 면모를 보면서 흠칫할 때가 있는데 나의 과민반응인지는 몰라도 학교 안의 국기 현수막이 그랬다. 더불어 한 달 전 갔던 북경여행에서의 자금성 풍경이 떠올랐다.

자금성의 관문인 ‘천안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천안문 사태’인지라 광장을 들어설 때부터 ‘다크 투어리즘’(잔혹한 참상이 벌어졌던 역사적 장소나 재해, 재난 현장을 돌아보는 여행-두산백과 주)을 온 듯한 묘한 느낌이 들었다. 천안문을 거쳐 자금성에 발을 디디니 입구에서부터 수많은 군인들이 사람들의 행렬을 정리하며 길목을 통제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복을 입었기에 군인이 아닐 가능성도 있으나, 맞춰 깎은 듯 짧은 머리와 풍겨 나오는 냉기, 위압적이고 지나치리만큼 반듯한 자세에서 다른 가능성은 떠오르지 않았다. 가끔 멈춰 서서 사진을 찍느라 늦어지는 사람에게는 빨리빨리 이동하라고 큰 소리를 내기도 했다. 자금성 초입인 널찍한 광장에 노상매점들이 있고 우측으로는 사택(말이 사택이지 자금성의 일부인 옛날 양식 건물들)처럼 생긴 1층 건물들이 죽 늘어서 있었는데, 그 넓은 공간을 온통 군인들이 차지하고 연병장처럼 쓰고 있었다. 열병훈련을 하는가 하면, 훈련이 끝난 병사들은 숙소로 추정되는 한 켠으로 우르르 몰려들어가고, 우리나라의 대형경찰버스처럼 생긴 군대차량들이 줄줄이 서 있었다. 관람객용 보도 위로도 장교용(으로 추정되는) 군대차량이 지나다니고 관내순찰인지 훈련인지 모르게 한 무리의 무장한 군인들이 오열을 맞춰 직각으로 꺾어 행진하는 등 위압이 느껴지는 광경이었다. 폭동이 일어날 시 언제든지 제압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느껴졌다.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상점가에 붙은 국경절 광고와 아파트 단지 안의 국경절 기념등
상점가에 붙은 국경절 광고와 아파트 단지 안의 국경절 기념등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만약 우리나라의 경복궁이나 광화문 한복판에서 동일한 풍경이 벌어진다면 어떨까? 모르긴 몰라도 당장 국민청원부터 온오프라인의 각종 논쟁까지 온 나라가 떠들썩해지지 않았을까.

하긴 멀리 북경까지 가지 않아도 우리와 다른 일상의 억압은 자주 느낄 수 있다. 대표적인 게 바로 한국 포털사이트와 SNS가 잘 안 열리는 것이다. IP 주소를 우회한다는 VPN(Virtual Private Network, 가상사설망)을 켜야 제대로 접속이 될 때가 다반사인데, VPN마저도 어떤 때는 막아버리는 경우가 있어서 ‘폰이 있어도 보지를 못하는’ 운수 나쁜 날이 이어질 때가 많다. VPN을 켜서 간신히 접속이 되더라도 포털사이트에서 검색은 되는데 막상 검색 결과인 블로그나 카페를 누르면 내용이 안 열리는 등, 인터넷에 대한 통제 수위가 높다. 심지어 구글은 아예 접속불가라 삼성 휴대폰을 사도 플레이스토어는 안 깔려 있고 요상한 갤럭시스토어가 대체품으로 깔려있다.

그렇다 보니 중국에 건너오기 전 컴퓨터와 휴대폰에 최소 두세 가지의 VPN 프로그램을 깔아 오라는 게 가장 유용하고 중요한 조언 중 하나다. 무료와 유료가 있는데 유료가 무료보다 꼭 잘 되는 건 아니다. 무료와 유료를 막론하고 잘 되던 프로그램도 어느 날 일시에 막히는 경우가 있다. 그저 중국 내에서 큰 사회적인 이슈가 없기를 바라며 하루하루 근근이 인터넷 생활을 이어나갈 뿐이다. 하긴 국경절 영향인지는 몰라도 얼마 전부터 집의 와이파이 연결도 시원치 않은데 어서 국경절이 끝나 좀 더 후련한 인터넷 생활이 찾아오길 바란다. 더불어 아이 등교 후의 여유로운 낮 시간까지 기대해 본다.

가장 중요한 국가 행사 중 하나인 만큼 뭔가 특별한 음식이라도 먹을까 싶은데, 국경절이라고 딱히 먹는 음식은 없다고 한다. 하긴 추석인 중추절에도 특별한 음식이라고는 ‘월병’ 정도. 워낙 지역별로 다양한 음식이 산재돼있어 그런지 명절 음식이 우리처럼 유별나지는 않은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나저나 월병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많다. 요약하자면 ‘시도하지 말라’는 거다.

 

비싸지만 맛없는 월병 선물상자, 아래쪽에 한 입 베어먹고 처리 못한 蛋黄肉松 월병의 잔해가 보인다.
비싸지만 맛없는 월병 선물상자, 아래쪽에 한 입 베어먹고 처리 못한 蛋黄肉松 월병의 잔해가 보인다.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월병(月饼, yuèbǐng), 순 우리말로는 달떡. 이름만 들으면 달에서 떡방아를 찧는 토끼와 오밀조밀한 손으로 떡반죽을 곱게 빚어내는 항아가 떠오르며 입에 침이 고이는 참 예쁜 단어다. 나에게 그러한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월병과의 첫 만남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나와 베프 J는 여름을 맞아 1박 2일로 인천 여행을 떠났다. 인천하면 ‘차이나타운’인지라 차이나타운에 들러 첫 번째인가 두 번째로 유명하다는 중국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거리 구경을 나섰다. 원래도 빵이라면 마다하지 않는 나는 사람들이 제법 몰린 월병 파는 집을 보고 멈춰 섰다. J는 그 당시에도 나에게 ‘딱히 맛은 없는데 안 먹어봤으면 그냥 한번 먹어보되 기대는 하지 말라’고 말했다. 아무리 베프라지만 나는 J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예쁜데 맛이 없다고? 겉은 빵이랑 비슷하고 안에는 소가 들었을 뿐인데 맛이 없을래야 없을 수가 있나? 아쉽게도 우리 입맛은 좀 차이가 있나보군’ 같은 생각을 해댔다. J는 여러 종류의 월병을 들여다보다가 그나마 괜찮을 거라며 두어 종류의 월병을 골라줬다. 견과류 종류의 소가 든 월병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맛은 생각보다 실망스러웠다. 다식처럼 정교하고 예쁘게 찍어낸 겉모습에 비해서 안에 든 소는 인상적이지 않았다.

그 후로 딱히 월병을 접할 일이 없어 잊고 지내다가 작년 중추절, 남편이 선물로 월병을 받아왔다. 7년만의 재회인지라 그때만 해도 월병과의 첫 만남을 잊고 있었다. 포장이 무척 거창하기에 그저 비싼 월병이니 맛있겠거니 생각하며 포장을 뜯었다. 그런데 색깔은 팥소와 비슷한데, 한약을 연상시키는 냄새와 함께 뭐라고 형용할 수 없이 거북스러운 맛의 이 소는 대체 정체가 무엇일까. 아무리 선물이라지만 도무지 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 두어 군데에 나눠주었다.

그리고 올해 중추절, 세 번째 월병과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이번에는 무려 H호텔 로비에서 대대적으로 전시해놓았던 비싼 월병이었다. 작년의 뼈아픈 기억이 있었지만 그래도 외국인들이 많이 묵는 호텔에서 만들어 파는 월병이니 맛있겠지, 라는 기대와 함께 월병 포장을 벗겼다. 총 12개의 월병 중에 빨간색과 노란색 월병이 하나씩 있기에 보기에도 좋은 빨간색 월병을 먼저 골랐다. 빨간 월병은 소도 빨간색이었다. 딸내미는 맛이 없다고 한 입 먹고 말았지만 내 입맛에는 먹을만했다. 역시 호텔에서 파는 월병이라 좀 다른가, 하는 기대와 함께 다음날은 노란 월병을 뜯었다. 역시 소도 노란색이었고 맛 또한 평범했다. 며칠 지나 세 번째로 일반적인 색깔의 월병을 뜯었다. 한 입 깨무는 순간 단호박색의 소가 보였고, 그와 동시에 입 안에 기괴한 맛과 향이 펼쳐졌다. 입이 짧은 딸내미에게 평소 아무리 싫은 음식이라도 한 입은 뱉지 말고 꼭 삼키라고 입이 아프도록 잔소리를 하는 나인데,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하긴 싫지만 이건 도무지 목구멍으로 삼킬 수 있는 맛이 아니었다. 건더기가 목구멍을 넘기기 전에 뱉어내고 물로 입 안을 헹궈내고 말았다. 부족하나마 표현하자면 이틀 내내 신은 양말을 입 속에 욱여넣는 기분이랄까? 나중에 J에게 물어보니 아마 ‘蛋黄(dànhuáng, 계란노른자)’이나 ‘肉松(ròusōng, 소나 돼지 따위의 살코기 또는 생선을 말려 간장·향료 따위를 넣고 보송보송하게 잘게 찢어 만든 식품)’일 거라고 했다. 둘 다 고급 월병이고 중국인들은 엄청 좋아한단다. 그때서야 포장지에 자그맣게 새겨진 이름을 확인해 보니 무려 두 개가 합쳐진 ‘蛋黄肉松’이었다. 어쩌다가 맛있는 계란노른자와 고기로 이런 괴상망측한 맛을 만들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저 팥소만 넣어도 맛있는 월병이 될 텐데,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요즘은 신세대를 겨냥해서 초콜릿이나 치즈가 들어간 월병도 나온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지만 차마 바라지 않는다. 그저 내년에는 월병 선물을 받지 않길. <류지연 님은 현재 중국 소주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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