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곽노현 내놔라 내파일 시민행동 상임공동대표(전 서울시 교육감)-3회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2회에서 이어집니다.>

곽노현 ‘내놔라 내파일 시민행동’ 상임공동대표
곽노현 ‘내놔라 내파일 시민행동’ 상임공동대표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 현재 국회정보상임위 위원장이 과거 정권과 달리 야당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다.

▲ 그렇다. 이번 정부에서 처음으로 그렇게 했다. 전에는 국회정보상임위원장을 언제나 여당 출신이 맡았다. 현재 국회정보위 위원장은 바른미래당 이혜훈 의원이 맡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야당위원장에게 정보위를 맡긴 것은 수 십 년 동안 국정원이 정권안보에 남용돼 왔고, 특히 박근혜 정부에서 심했기 때문이다. 야당에게 정보위원장을 준 것은 국정원의 정치중립성을 보장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의지의 표현이다.

 

- 정보상임위가 제 역할을 못하는 것 아닌가.

▲ 이혜훈 위원장이 해야 할 일이 있다. 당장 국회상임정보위를 소집해서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국정원의 과거 불법사찰기록에 대한 처리방안을 논의하고 국정원에 상세하고 합리적인 정보공개기준 마련을 촉구해야 한다.

불법사찰기록 공개판결로 국정원에 대한 사법통제가 확립되려는 이 순간에 국정원에 대한 의회통제를 강화하려는 노력을 함께 경주해야 한다. 정보기관에 대한 법의 지배를 의회통제와 사법통제를 선진국수준으로 정비해서 확립하면 세계가 우리나라를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아, 역시 한국이다. 촛불혁명을 통해 민주주의와 인권을 한 단계 높인 나라답게 비밀정보기관까지 제대로 통제하는구나. 한국은 역시 멋져!” 이렇게 세계가 우러러 보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데 국회정보상임위가 적극 기여하기를 바란다.

 

- 선진국 정보전문가 등을 초빙해 토론하는 절차적 과정들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은데.

▲ 내가 보기엔 미국, 독일, 스웨덴, 호주, 캐나다가 비밀정보기관의 민주적 통제에서 제일 앞선 법치선진국들이다. 이들 나라의 정보기관 통제 법리와 기구를 참고하고 우리나라 현실을 감안해서 실효성 있는 법과 규정을 만들어 내야한다. 그러려면 먼저 유엔과 EU, 미국과 캐나다,

독일과 스웨덴 등 각국의 정보기관 통제전문가, 이를테면 전현직 독립감찰관, 전문심사위원장, 의회정보위원장과 수석전문위원 등을 초청해서 경험을 전수받는 학습과 토론과정이 필요하다. 세계최고의 전문가들을 초청해서 입법토론회를 개최하는 데 국회정보위만한 적임자는 없다.

 

- 한국은 70여 년간 쌓인 적폐청산이라는 중차대한 과제를 남겨 놓고 있다. 특히 검경과 정보기관, 공직자부패, 언론개혁, 재벌개혁, 양극화 해소 등에 대한 촛불시민의 열망이 아직도 뜨겁다.

▲ 우리 국민은 촛불혁명의 힘으로 대통령탄핵과 조기 정권교체를 해냈다. 나라다운 나라 만들기를 다짐하며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적폐청산의 이름으로 전직 대통령, 대법원장, 국정원장, 삼성총수를 구속했다.

하지만 촛불시민의 요구였던 검찰개혁을 먼저 하지 못하고 청산대상인 검찰을 내세워 적폐청산 작업을 진행했다. 초기의 80~90% 지지율을 갖고도 여소야대 국회 속에서 개혁입법 연대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오늘날 그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다. 한편에선 형사처벌 위주의 적폐청산과정이 장기화되면서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됐고 다른 한편에선 극단적인 정쟁으로 식물국회가 계속되며 개혁동력이 크게 상실된 상태다.

 

- ‘조국 사태’로 주춤했던 개혁의 불꽃이 정치권으로 튀고 있는 시점인데.

▲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 내놔라 내파일 판결로 국정원 개혁이, 조국사태로 검찰개혁이 다시금 전면에 부상한 상황이다. 게다가 검찰개혁은 오래전부터 선거제개혁안과 함께 ‘패스트 트랙’에 태워져 동일운명체다.

만약 우리사회가 조만간 정치개혁, 검찰개혁, 국정원 개혁에서 일제히 돌파구를 마련한다면, 다시 말해서, 검찰개혁과 반부패개혁에서 성공하고, 민간인 불법사찰과 공직자 불법사찰에서 완전히 벗어나며, 대표성과 비례성을 강화한 선거제개혁에서 성공한다면, 촛불혁명의 제도개혁 요구가 상당부분 실현되는 셈이라고 할 수 있다.

 

- 정보기관에 대한 개혁은 그에 따른 보상도 크다.

▲ 정보기관에 대한 민주적, 법적 통제수준은 민주법치국가의 최종 척도 중 하나다. 그만큼 성공하기 어렵다. 우리정보기관은 1963년 창설 이래 간단없이 국내정치에 깊숙이 관여해왔다. 무차별적인 민간인 불법사찰기록도 반세기 넘게 쌓여있다.

우리는 이제야 불법사찰기록을 정보주체에게 넘겨 줄 것인지, 본인 열람만 하게 할 것인지, 아니면 전면 폐기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단계에 와있다. 불법사찰시대를 박물관으로 보내는 가장 합리적인 방안을 강구하기 위해서는 광범위한 사회적 토론과 합의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국화와 학계, 전문가, 시민단체가 머리를 맞대고 국민의 집단지성과 다짐을 보여주며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성숙함을 드러내면 얼마나 바람직할까. 이것이 촛불혁명이 바라던 나라다운 나라의 모습일 것이다. 우리나라가 이런 모습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우리나라를 둘러싼 4대 열강, 곧 미・중・러・일도 대한민국을 가볍게 여기지 못한다.

 

- 세계가 감동할 창조적인 촛불헌법 나올까.

▲ 한국인의 저항정신과 적폐청산, 민주화 과정은 독재와 부패로 물든 라틴 국가와 제3세계의 많은 나라에 강렬한 영감과 자극을 주고 있다. 홍콩의 반송환법 시위가 가장 최근의 사례다. 우리나라보다 인구가 많고 잘 사는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이탈리아는 전부 제국주의 나라였다.

더욱이 독일, 이탈리아,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이었다. 한국은 그런면에서 자유롭다. 1960년대의 세계 최빈국 독재국가가 지금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이자 5천만-3만 달러 7대 국가의 하나로 우뚝 섰다.

한국의 반도체와 자동차, 전자제품이 5대양 6대주로 수출된다. 나는 한국최고의 수출품에 우리 국민이 만들어낼 촛불헌법이 들어가기를 희망한다. 유례없는 촛불혁명을 해낸 시민의 힘으로 세계가 놀랄만한 촛불헌법을 만들어내면 좋겠다.

 

- 현대사에서 보여준 촛불혁명 저력 어떻게 평가하나.

▲ 대의민주주의에서는 우리나라가 후발국이었고 지금도 최선진국이 아니다. 그렇지만 대의민주주의에서도 우리나라가 제일 앞서 갈 수 있는 분야가 없는 건 아니다. 직접민주주의로 보완된 대의민주주의에서는 우리나라가 세계 1등을 할 많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촛불혁명이 보여주듯이 우리 현대사의 고비마다 국민들은 직접 저항권을 행사하며 돌파구를 내왔다. 우리 국민은 폭발적인 참여와 저항으로 직접민주주의를 관철해온 빛나는 전통을 자랑한다. 나는 우리의 직접 민주적 전통을 21세기 상황에 맞게 권리화,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국민의 원포인트 개헌발의권과 법안발안권 확보가 핵심이다. 우리 국민의 높은 정치적 에너지를 감안할 때 국민개헌발의권과 국민법안발안권은 우리나라 민주정치를 높은 에너지 수준으로 충전하며 대의민주주의를 한층 더 높은 수준으로 견인하고 자극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9월 28일 서초 촛불집회 ⓒ위클리서울/이주리 기자

- 한때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상이 컸다.

▲ 국가인권위원회는 김대중 대통령이 자신의 3대업적 중 하나로 꼽을 만큼 자랑스러워했던 국민인권보장기관이다. 헌법기관으로 만들진 못했지만 독립성과 실효성이 상당히 담보돼 국내외에서 큰 기대와 호평을 받을 만큼 활동력을 보였다. 전 세계에 내놓을만한 작품이었다.

‘이명박근혜’ 정권 때 잠시 뒷걸음질 쳤지만 다시 살아나고 있다. 독립성과 실효성을 강화하려면 인권위법 개정이 필요한 데 그때마다 법무부와 대법원이 반대해왔다. 두 기관 모두 국가인권위를 라이벌로 여기는지 인권위의 권한강화를 반기지 않는다.

김명수 대법원과 조국 법무부는 다를 것으로 기대한다. 국가인권위의 독립성과 실효성을 좀 더 강화해서 아시아는 물론 세계 인권계의 등불로 만들어내는 건 내 오랜 소망사항 가운데 하나다.

 

- 21세기 민주주의와 인권강국을 위한 미래세대 양성도 중요하다.

▲ 다이내믹한 역량을 보여준 우리 국민, 특히 청소년세대는 민주주의와 인권분야에서 가장 진보적인 법제들을 가질 자격이 충분하다. 촛불헌법과 그에 걸맞은 선진입법을 갖춰서 세계가 우리나라를 'BTS'급 민주인권국가로 인정하면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더 높아지고 외교안보입지도 덩달아 튼튼해질 것이다.

이쯤 되면 세계가 우리나라를 존경하고 선망하게 돼 미・중・러・일도 우리를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그런 비전으로 가는 거대한 길을 2017년 촛불혁명과 함께 열었다. 아직도 재벌개혁과 양극화 해소, 인공지능 시대와 생태위기시대 대비에서 갈 길이 멀지만 쉬지 말고 청년세대를 앞세우며 큰 그림을 그려 나가야 한다.

 

- 국민들은 ‘자주적이고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열망한다. 한반도가 100년 전처럼 미국, 일본 등 4대 강국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어떤 자세로 가야 할지 마지막으로 말해 달라.

▲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우리나라는 4대 강국에 이리저리 휘둘리다 결국 국권상실의 고통을 겪었지만, 지금의 국력은 그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우리의 경제력과 영토, 인구 규모는 4대 열강에 비해서만 작을 뿐 결코 작지 않다.

4대 열강과 가깝다는 사실은 역으로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에게 큰 기회를 주기도 한다. 우리가 상대적으로 작아도 4대 열강들이 감히 흔들 수 없는 OECD 상위권 국가로 발전할 충분한 역량과 재능이 우리 민족에게 있다.

문 대통령이 제시한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는 국민 모두가 뜻과 힘을 모으면 반드시 도달 가능하다. 더욱이 우리에겐 한반도 평화시대가 열어줄 새로운 경제도약 기회가 기다리고 있다. 다만 우리 국민이 하루바삐 분단 75년이 우리에게 심어준 편협한 섬나라 기질을 극복하고 대륙풍의 호방한 대인기질을 회복하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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