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양미의 '해장국 한 그릇

손자들 넷에 딸 하나. 다섯 클로버.
손자들 넷에 딸 하나. 다섯 클로버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이외수 작가님의 <칼>이라는 소설을 꺼내 다시 읽었다. 실직한 아빠에게 딸이 말한다. 아빠 대신 껌팔이라도 하겠어요. 그 부분에서 예전 까마득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광화문에서 껌을 팔아본 경험이 있다. 진짜다.

그것도 애 낳고 30대에 말이다. 결혼 하고도 뻔질나게 친정을 드나들며 엄마 주머니를 축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막내가 얄미웠던지 어느 날 작은언니가 작심하고 쏘아붙였다.

“넌 엄마 없으면 어떻게 살라 그러냐?”

“없긴 왜 없어. 맨날 있을 거거드은.”

“그 나이 먹도록 애까지 낳고 참 자알 한다.”

“남이야!!”

아 씨. 이때부터 슬슬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염치없다 치고. 그런 자기는 염치가 차고 넘쳐서 애를 둘이나 맡겨놓고 곱고 고왔던 우리엄마 팍싹 늙게 만들었냐고오!

엄마는 마침 손자 손녀를 업고 걸려서 집 앞에 산책을 나가고 안 계셨다. 때문에 언니랑 나는 온갖 억지를 다 갖다 붙여가며 누가누가 더 불효자식인지 증명하겠다고 핏대를 세웠다.

 

 

그 시절 엄마는. 손자들과 철없던 딸까지 다섯을 키우고 계셨던 거다.
그 시절 엄마는. 손자들과 철없던 딸까지 다섯을 키우고 계셨던 거다.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초‧중‧고 시절을 막 훑어 올라가며 기억도 잘 안 나는 서로의 철없던 과거를 속사포로 다다다 퍼부어댔다. 두 살 터울의 자매는 본처와 후처 사이 같다고나 할까. 어려서부터 앙숙이 따로 없었다. 주로 언니가 막내인 나를 질투해서 싸움이 났다. 엄마나 아빠에게 내가 칭찬이라도 들을라치면 꼭 뒤에서 앙갚음을 하거나 골탕을 먹였다.

파리를 잡겠다며 나무로 된 야구 방망이를 있는 힘껏 휘두르다 내 머리에 내리쳐서 기절시킨 적도 있었다. 매번 실수였다고 변명했지만 그건 지나가는 개가 웃을 소리다. 질투에 눈이 멀어 사랑스런 막내를 지극정성으로 미워했던 언니였다. 오늘도 자기만 효녀인 척 내 인격을 모독하지 않았냐 말이다.

싸움이 길어지자 슬슬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고 언니가 먼저 싸움을 중단시켰다.

“자 여기까지. 니가 계속 이렇게 철없이 사는 게 걱정돼서 그런 거니까.”

그런데 거기다가 기막힌 말을 한 마디 덧붙였다.

“어디 나가서 껌이라도 한 통 팔아와 봐라. 그럼 내가 인정해준다. 자식을 위해 하다못해 껌 한 통도 못 팔 거면서 입만 살아가지고는. 쯧!”

입만 살아가지고? 내가?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자식을 위해 진짜 껌 한 통은 팔 수 있을까.

주섬주섬 츄리닝을 걸쳐 입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마트에 가서 자일리톨껌 한 박스를 샀다. 그 무렵 친정집이 구기동에 있었던 터라 버스를 타고 근처 광화문으로 나갔다. 그리고 거기서 껌을 팔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굉장히 빠른 걸음으로 지나쳐버리는 통에 눈조차 마주치기 힘들었다. 누군가 멈춰서서 내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주위를 살피다 근처 부동산으로 들어갔다.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어서 오세요. 집 보러 오셨나요?”

“그게 아니라… 저어기… 그러니까 껌을 쫌… 팔….”

처음엔 무슨 뜻인지 잘 못 알아듣더니 내가 쑥스럽게 내민 껌을 보고는 짧은 탄식 같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왜 이러고 다니냐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남편이 집을 나갔어요. 애는 아직 어리고….”

물론. 남편은 그때 직장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드라마 같은데서 보면 남편한테 버려진 여자주인공이 살아보겠다고 힘들게 직장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 회사 사장 아들한테 사랑을 받게 되고 무조건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하지만 현실에서 내가 쓰는 드라마는 ‘껌을 파는 아줌마’였다. 사장 아들은 개뿔.

마음 좋은 부동산 사장님은 자일리톨껌을 다짜고짜 들이밀며 앵벌이 코스프레를 하는 젊은 엄마가 안 돼 보였던지 껌 두 통을 사주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내가 껌 가격을 따따블로 불렀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첫 껌을 팔았다.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돈을 벌자 왠지 모를 감동과 뿌듯함 뭐 그런 게 은근슬쩍 밀려왔다. 앞으로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곳을 나와 몇 군데를 더 돌았으나 팔지 못했다. 하지만 일단 팔긴 팔았으니 그걸 들고 당당하게 집으로 갔다.

“애들이 엄마 찾고 난린데 어디 갔다 와?”

“껌 팔고 왔어요.”

“뭐어? 뭘 팔았다고?”

“언니가 나보고 껌 한번 팔아보라 그랬다고요.”

“아~니 이것들이 애는 안보고 뭐래는 거야!!”

 

영화 &lt;러브레터&gt;의 한 장면 캡쳐 ⓒ위클리서울
영화 <러브레터>의 한 장면 캡쳐 ⓒ위클리서울

작은언니는 그날. 겁나 열 받은 엄마에게 등짝을 수차례 얻어맞았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진짜 껌을 팔아오란 뜻이었겠냐고, 막내 쟤는 바보가 틀림없다며 언니는 항변했다. 엄마는 세상 천지에 지 동생을 껌팔이 시키는 언니가 어디 있냐며, 그리고 하란다고 진짜 하는 동생은 또 어디 있겠냐며, 집안 망신을 자매가 따따블로 시킨다며, 혀를 쉴 새 없이 쯧쯧쯧쯧 차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 참 엉뚱하긴 했다. 어쩌자고 그런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을까. 그건 아마도 내 뒤에서 든든히 내 편이 되어준 엄마가 계셨기 때문일 거다. 하지만 이젠 내 편을 들어 언니 등짝을 후려줄 엄마가 안 계신다. 철들자 엄마를 잃은 셈이다. 내가 좀 더 일찍 철이 들어 든든한 딸내미 모습을 보여드렸더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후회는 아무리 일찍 한다한들 되돌릴 수는 없는 거니까.

그건 그렇고.

“엄마 잘 계시지요오~~~~?”

“오겡끼 데스까아~~~~?”

“와다시와 오겡끼데스으~~~~!!”

“그리고오~~ 미안해요. 엄마아~~~!!”

이런 건 눈 덮인 산에 가서 외쳐야 제대론데. 영화 ‘러브레터’ 여주인공처럼 말이다.

 

<김양미 님은 이외수 작가 밑에서 글 공부 중인 꿈꾸는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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