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일꾼] 한상봉 칼럼

김점선, 만세
김점선, 만세 ⓒ위클리서울/ 가톨릭일꾼

[위클리서울=가톨릭일꾼 한상봉] 


"두 팔을 하늘 높이 쳐들고 만세를 부르자.

만세를 부르면 회색빛 심장이 뚝 떨어져 나간다
어떤 치욕이 짓누를지라도
벌떡 일어나 만세를 부르자.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도 힘들다고 징징 울지 말자.
일어나서 만세를 부르자.
몸에서 툭 소리를 내며 고통이 떨어져나간다.
만세를 부르면 힘이 난다.
아무데서나 벌떡 일어나 만세를 부르자."


김점선의 <10cm 예술>에 나오는 ‘만세’라는 글이다. 사는 게 지루할 때마다, 할 말을 잃고 멍청한 나를 탓할 때마다, 한정 없이 기운이 바닥에 내려앉을 때마다, 입맛이 없고 살맛이 더 없다고 느낄 때마다, 우울하고 적막하고 ‘세상에 나 하나 외롭게 더 있는 섬’처럼 앙앙거릴 때마다, “몸에서 툭 소리를 내며 고통이 떨어져” 나가도록 만세를 부르자고 한다. 아내가 얼마 전에 우리 집 식구들이 만세 부르는 모습을 색연필로 하나하나 그려서 책상에 놓아두었다. 아내에게 김점선 이야기를 듣고 무릎을 쳤다. 그래, 지금 내게 이런 게 필요한 거였구나!

하느님은 우리 앞에서 모든 문이 닫혀 있을 때 다른 새로운 문을 내어주시는 분이라고 한다. 그분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분이니까, 참으로 그러하겠지, 생각한다. 작고하신 소설가 박완서는 김점선을 두고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그 여자처럼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여자를 본 적이 없다. 아무도 그 여자를 길들이지 못한다. 그 여자는 어떤 권위도 인정하지 않으니까. 사다리를 놓고 대작을 그리는 것이 꿈인 김점선에게 오십견이 왔다기에 당분간은 그림을 못 그리려니 했다. 그러나 웬걸, 그 여자는 컴퓨터를 이용해 수백 점의 그림을 그렸다.”

<10cm 예술>은 그렇게 창조한 그림에 자기 이야기를 덧댄 책이다. 절망적 상황마저 창조의 기회로 삼는 사람이 김점선이고, 그렇게 새로운 일을 도모하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믿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2009년에 난소암으로 선종한 김점선이 생전에 어느 잡지에 남긴 인터뷰에선, 그런 모습이 더욱 또렷했다. 항암치료 중이었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쩌렁쩌렁했고, 항암치료 부작용에 몹시 시달렸던 그에게 한의사가 체질식을 처방하면서 몸이 많이 회복되었던 때였다. “병명이 풍선암이야. 체중이 11kg 늘었어. 의사들이 새로운 병 샘플을 얻으려고 몰려들 거야.” 하면서 김점선은 웃었다. 암에 걸렸는데, 몸이 오히려 풍선처럼 불어났다는 거다.

‘피할 수 없는 것은 즐겨라’ 하는 말이 떠올랐다. 그 낙관적인 마음의 배후는 아무래도 그분뿐이다. 살아도 죽어도 그분 하느님 손바닥에 위에 놓여 있다는 안도감이다. 그래서 아멘.
 

*이 글은 수원교구 주보 10월 6일자에 실린 것입니다.

<한상봉님은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이면서 ‘가톨릭일꾼’ 편집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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