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위클리서울/김용주 기자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어떤 사람은 말한다. 조국 법무부장관은 선비의 전형이라고.

대한민국에서 선비란 전통적으로 고결함의 상징으로 읽힌다. 선비는 개인적인 이익을 탐하지 않으며, 누군가의 모략으로 큰 손해를 봐도 화를 내지 않고, 기억에 담아두고 복수를 하고자 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마냥 너그럽기만 한 것은 아니어서, 일단 혼을 내주기로 했다 하면 무섭고, 다시는 부활하지 못하게 뼈까지 태워버리고자 한다. 속물들은 이런 선비의 존재방식 자체를 매우 못 마땅해 하며, 어떻게든 똥물을 뒤집어 씌워 매장해 버리고자 별별 묘수를 개발해 낸다.

선비를 없애고자 하는 속물들이 일관되게 꾸준히 주장해 온 세계관에 따르면 지나치게 깨끗한 물에서는 물고기가 살아가지 못한다. 물고기가 살아가지 못하는 세상에서는 인간의 미래도 없다. 그러니까 어차피, 무엇인가를 먹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의 삶이란 그 자체가 속물적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이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옳다고 쌍수를 들어 올리며 고개를 끄덕거릴 수도 없는 나로서는 다만 서글플 따름이다.

사람이란 무엇이냐.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이냐.

요즘처럼 이런 질문이 나를 숨 막히게 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무겁다. 그리고 어지럽다. 하릴없이 방안을 오락가락 서성거리다가 오래 묵혀온 책 한 권을 끄집어내 보았다. 손을 대본 게 언제인지 알 수조차 없이 오랜만에 만져보는 책이다. 이른바 양장본으로, 표지가 엄청 두껍고 가격도 엄청 비쌌던 책이다.

방에 촛불을 켜놓고 딴 짓을 하다가 불이 나서 집이 홀랑 타버렸을 때도 이 책은 표지가 워낙 두꺼워서 다 타지 못하고 남았다. 타다가 남은 것을 내 손으로 다시 재본까지 해서 일편단심 보관해 온 것이니, 내게는 보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슨 대단한 명작도 아니고, 희귀본도 아니다. 제목조차도 흔해빠진 ‘수사실무론’이니, 속물 냄새가 잔뜩 배여 있는 책이다. 그런데도 나는 이 책을 버리지 않고 간직해 왔다. 내 인생의, 내 젊음의 추억이 올곧게 배여 있는 까닭에 버릴 수가 없었다.

내 나이 펄펄 끓는 이십대를 건너던 시기에 사법시험을 목적으로 고군분투한 적이 있었다. 종로 2가에 산재한 고시학원 중 한 곳의 야간반에 등록을 해놓고 낮에는 노동 현장에서 땀을 흘리고, 밤에는 헌법이니 민법, 형사소송법 등등 법률서적을 옆구리에 끼고 나름 열심히 드나들었다. 일본식 한자를 무지막지하게 직역해놓은 것 같은 법률용어들이 처음에는 너무 낯설고 재미도 없어서 지루했지만 전혀 몰랐던 사람도 알고 나면 친해지더라고, 차츰 흥미를 갖고 몰두해 들어갔다.

이른바 출세라는 것을 목적으로 사법시험을 겨냥한 것은 아니었다. 법치개념의 등장은 인류가 무지막지한 야만에서 벗어나는 신호탄이었다는 것쯤은 그 나이에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다. 내가 아주 어려서는 만화에 퐁당 빠졌고, 만화에서 빠져나온 뒤에는 무협소설에 경도되었고, 무협소설의 천편일률적인 스토리에 식상한 뒤에는 추리소설 내지 탐정소설에 흠씬 취해서 비틀거렸다. 그 시기에 발견한 것이 사립탐정이란 직군의 사람들이었다.

 

자체 제본
자체 제본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실타래처럼 배배 꼬인 문제를 명쾌하게 풀어내는가 하면, 법이 없어도 충분히 선량한 약자를 괴롭히는 깡패나 권력자들을 발본색원해서 만천하에 공개하고, 도둑이나 강도 같은 잡범들은 물론이요 전문 사기꾼이나 연쇄살인범 같은 강력범들을 귀신같은 솜씨로 잡아내는 탐정이야말로 사람이 사람으로 세상에 태어나서 해볼 만한 일인 것 같았다.

아아 이것이다, 탐정 일을 해야겠다, 그렇게 마음을 굳히고 그 일을 해보고자 했지만, 사립탐정을 길러내는 학교나 학원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사회의 범죄마저도 독점하고자 하는 권력기관 사람들의 농간 때문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기는 했다 해도, 그때는 전혀 눈치조차 채지 못했던 까닭에 우리나라는 후진국이라서 아직 그런 제도가 없나보다, 하는 선에서 이해를 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사립탐정에의 꿈을 포기한 것은 아니어서, 혹시 경찰관을 하고 나면 사립탐정을 할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을까 싶어 경찰관 직업을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그 당시의 경찰은 뭐랄까, 국민적 저주의 대상이었다고나 할까, 일제치하의 악랄한 순사 전설이 시퍼렇게 살아 있던 시절이라서인지 깡패보다 더 질이 안 좋은 직군으로 여겨졌다고나 할까, 그리 썩 내키지가 않아서 고민하던 중에 발견한 것이 검사라는 직군이었다.

검사라는 것은 뭐랄까, 내가 무식한 탓이었겠지만 검사 자신이 수사를 하는 한편 경찰관들의 수사를 관리 감독하는 등의 지휘권까지 갖고 있다는 점에서 아마도 요새 흔히 쓰는 말로 하자면 훅 갔었을 것이다. 내가 관심을 갖는 방면의 수사는 수사대로 하면서 경찰관이 하는 다른 방면의 수사를 지휘하기도 한다는 것은 여러 말 보탤 필요도 없이 범죄와 관련된 정보를 굉장히 많이 갖고 있다는 방증이고, 그 정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이런저런 계산도 해보는 것이니, 세상에 이렇게도 긴장감 넘치게 짜릿한 사명감을 가질 수 있는 직업이 또 무엇 있겠는가 싶었다.

자, 이제 고민은 끝났다. 고시학원으로 달려간 나는 당당하게 사법시험 종합반 등록을 했고, 옆구리에 헌법총론이니 민사소송법해설 따위 법서들을 끼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흘쯤 지난 뒤에 알았다. 수강생들 태반이 법과대학 졸업생들이고, 그 중에 삼분의 일 이상은 1차 시험에 한 번 이상 합격한 경력자들이었다.

법대는커녕 대학 문턱도 밟아본 경험이 없는 나는 그들보다 한 권의 책을 더 갖고 다녀야 했으니, 법률용어사전이 그것이었다. 한글로 적혀 있는데도 그 뜻을 알아먹을 수가 없으니 어쩔 것인가. 툭하면 법률용어사전을 뒤적이고 있는 나를 일부 수강생들은 매우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곤 했다. 어떤 녀석은 아예 대놓고 피식피식 웃어대며 고개를 흔들어대고 있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래 웃어라, 지금 너의 웃음은 일 년쯤 뒤에 아마 참회의 눈물로 변할 것이다. 그렇게 혼자 내심 결기를 다지고 있었던 내가 일 년도 채 안 돼서 환멸을 느끼고 학원 다니기 자체를 그만둬 버릴 줄이야, 그때는 차마 꿈에서도 몰랐으리라.

 

수사실무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수사실무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처음에는 아마 살짝 주눅도 들어 있었을 것이다. 모두가 법대를 다녔거나 1차 시험에 합격한 경험을 훈장처럼 달고 다니는 수강생들 속에 끼여 있자니 아무래도 편하지가 않았다. 그래서 아마 보면서도 못 보는 게 처음에는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 달, 두 달, 아마 세 달쯤 지나서부터 그것을 발견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법률용어사전이나 뒤적이고 있는 나와는 달리, 1차 합격이라는 훈장을 달고 있는 수강생들은 자기들끼리 따로 모여앉아 나름의 실무연습을 하고 있었으니, 그 중에 하나가 눈싸움이었다. 한 과목 강의가 끝나면 따로 무슨 공지나 약속이 있었던 것 같지 않은데도 그들은 마치 물이 아래로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두 명씩 짝을 지어서 앉거나 혹은 선 채로 상대의 눈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뛰어다니는 개구리를 옴짝달싹 못 하게 묶어버리고자 하는 뱀의 날카로운 눈빛 같기도 하고, 철천지원수를 만나서 각자의 내공으로 상대를 제압하고자 안간힘을 다하는 칼잡이들의 눈초리 같기도 했다. 그 하는 짓들이 너무 이상하고 신기해서 나는 빙긋빙긋 웃어가며 그저 구경이나 하고 있었지만, 나보다 훨씬 전부터 고시를 준비해 온 선배들은 경험자로부터 한 수 배운다는 식의 공손하고 엄숙한 태도로 지그시 바라보며 간간이 고개까지 끄덕거리고 있었다.

남의 눈싸움을 보면서 왜 그렇게도 엄숙한 표정으로 고개까지 끄덕거리지? 의아해 하는 내가 한심하다는 듯이, 촌놈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흡사 적선이라도 해주듯 귀띔해주는 목소리가 있었는데 그 목소리가 경천동지할 만한 것이었다. 법을 다루는 자는 모름지기 피의자를 일거에 제압하고 들어가야 하는데 그 핵심적인 기술이 눈싸움에 있다는 얘기였다.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아하, 하고 고개를 끄덕거리긴 했지만, 끄덕거린 순간 알겠다는 마음보다 훨씬 더 큰 의구심이 바위처럼 머리통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이상했다. 미련한 내 상식으로 보자면 법을 다루고자 하는 자는 약한 자의 억울함과 슬픔을 해소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은가 하는 뭐 그런 토론을 벌이는 게 정상일 것 같았다. 인류가 법치라는 개념을 정립한 동기가 무엇이었는가 말이다. 일관성과 지속성 그리고 약자보호 원칙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법은 ‘네 죄를 네가 알렸다’식의 전근대적인 장치밖에 안 된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사람의 가장 약한 부분이 무엇인가를 파악해놓고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왜? 무엇을 목적으로?

 

수사실무 본문
수사실무 본문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그들의 실무연습은 당연한 얘기겠지만 눈싸움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수백 수천, 아니 수만 수십만 번의 눈싸움으로 눈초리를 날카롭게 벼리고 나면 취조실무 연습이 이어지는데 그 가운데 으뜸이 ‘너는 왜 태어났지?’라는 질문이다.

너는 왜 태어났느냐, 출생 목적이 뭐냐는 질문만큼 압도적으로 사람을 궁지로 몰아넣는 만행도 아마 없을 것이다. 갑자기 튀어나온 이런 질문 앞에서 사람은 대개 허둥거리기 마련이다. 그것이 연습인 줄 알면서도, 훈련 중에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한동안 말문을 잃고 눈만 깜빡거린다. 그나마 재치가 있어서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식의 국가관이 투철한 답변이라도 하면 그 사람은 십 점 만점에 칠팔 점 정도의 점수를 얻지만, 할 말을 찾지 못해서 장시간 허둥거리면 그 사람은 십 점 만점에 영점 처리가 돼서 망신을 당한다.

이런 방식의 연습과 훈련으로 단련된 사람들이 훗날 실무에 투입되었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는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다. 문제는 이런 방식의 취조실무 연습의 배경에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기 마련이라는,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인간 세상에 있을 수 없다는 강고한 선입견이 깔려 있다는 점이다.

누구나 죄를 짓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다 수사를 해서 재판에 넘기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기준은 오직 하나, 수사실무자의 판단이다. 그리고 이 판단은 무슨 대단한 국가관이나 사상의 기반 위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오늘날 한국의 검사들이 조국 법무부장관의 낙마를 치열하게 원하는 이유는 단 하나 돈이라고, 소위 전관예우라고 하는 케케묵은 관행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미래의 수익을 조국씨가 법무부장관 직을 본격적으로 수행하게 되면 물거품이 되고 만다는 두려움 때문에 조국의 일가족을 그렇게도 탈탈 털어대고 있다는 것이다.

 

불에 탄 수사실무
불에 탄 수사실무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정해진 법조항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는 판사와는 달리, 검사는 어떤 사건에 대한 수사를 할 수도 있고 안하고 뭉갤 수도 있으며, 기소를 할 수도 있고 안 하고 슬쩍 덮어버릴 수도 있는 등 재량의 범위가 대단히 넓은 까닭에 전관예우라는 특별한 권한을 누릴 가능성도 대단히 많다. 그래봐야 전관예우를 받는 이삼 년 동안 일이십 억 정도 수익을 올리는 것에 불과하고, 그까짓 돈이라는 것이 강남의 주택 한 채 값이나 겨우 될까말까일 뿐이이긴 하지만, 어쨌든 영혼이 가난한 검사들에게는 그 자체가 특별한 권한으로 여겨지는 까닭에 누리고 싶어 하는 것은 아마도 인지상정이라고 해줘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소녀의 일기장을 탐낼 일인가? 이쯤 되면 환장이라는 단어를 써야만 한다. 그 이상의, 그 이하의 무슨 말로 해석을 할 것인가.

소녀란 인간 사회에서 갓난아이 다음으로 예민한 약자이다. 약자 중에 약자인 소녀의 일기장을 발견하고 여기에 범죄음모가 있을 거라는 확증편향을 갖고 압수하고자 하는 검찰 집단은 지금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궁지에 몰려 있다. 하긴 그렇기도 할 것이다. 아무리 털어도 이렇다하게 나오는 티끌이 없으니,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고 살아간다는 사상에 경도돼 있었던 그들은 아마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도 쉽게 미치고 환장해 버리는 사람들이 검사 역을 맡고 있는 나라의 국민들은 그렇다면 무엇인가?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것인가?

과정만을 놓고 보자면, 검찰개혁의 당위성을 검사들 스스로 앞장서서 날마다 조금씩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 셈이다. 만약에 이런 절호의 기막힌 기회마저 놓친다면,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무소불위의 대한민국 검찰은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자기들만의 성 안에 갇혀서 영혼 없는 소인배들 행세나 하게 될 것이다. 굳이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울 필요도 없이, 검찰개혁은 검사들 자신의 떳떳한 인생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어떻게 태어난 인생인데 언제까지나 그렇게 욕이나 먹고 살아갈 것인가 말이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