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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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준아 기자
  • 승인 2019.10.16 1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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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주나 – 세계여행] 호주 퍼스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여기, 주나>는 여행 일기 혹은 여행 기억을 나누고 싶은 ‘여행가가 되고 싶은 여행자’의 세계 여행기이다. 여기(여행지)에 있는 주나(Juna)의 세계 여행 그 열한 번째 이야기.

 

2012년 김밥소녀로 불리던 시절. 얼마나 설레던지 오픈 전 날 내 방에 미리 세팅을 해 보았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 진다."는 말은 간절히 원하면 행동하기 때문이 아닐까?
2012년 김밥소녀로 불리던 시절. 얼마나 설레던지 오픈 전 날 내 방에 미리 세팅을 해 보았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 진다."는 말은 간절히 원하면 행동하기 때문이 아닐까?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2010년 9월, 당시 동생이 살고 있던 서호주의 작은 마을 브룸(Broome)에 놀러 갔었다. 브룸에서 가장 인상이 깊었던 곳은 태어나서 처음 가본 외국의 주말 마켓이다. 한국의 재래시장과는 사뭇 다른 그곳의 분위기가 마냥 좋았다. 길거리 예술가들의 음악과 그림, 망고 스무디, 여유로운 사람들, 아시안 푸드 트럭 등등. (당시만 해도 한국에 푸드 트럭 열풍이 시작되기 전이어서 더 신선하게 느껴진 듯하다.)

그런데 그곳의 수많은 푸드 트럭 중에 한국 음식을 파는 곳은 없었다. 그 당시 브룸은 호주 사람들조차 잘 모르는 작은 마을이었는데 아시안 슈퍼를 가면 한국 라면은 딱 세 종류만 만날 수 있었다. 매운 라면, 짜장 라면, 다시마 들어 있는 라면. 그만큼 한국인이 적은 작은 마을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도대체 20대 중반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참 신기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아… 안 되겠어. 내가 브룸에서 한국 음식을 팔아야겠어.’

그렇게 1년이 조금 지난 2011년 여름 방학, 갑자기 새벽에 영감이 떠올랐다. 일기장을 꺼내 브룸 주말 마켓에 있는 내 모습을 스케치하고, 음식점 이름을 짓고, 메뉴를 정했다. 김밥 집 “배고파” 내 인생의 첫 사업을 그림으로 시작하다니. 참 어리고 무모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도전 할 수 있었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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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마켓이 자리 잡은 "배고파" 자세히 보아야 보인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2012년 4월, 김밥을 팔겠다고 손수 태극기 앞치마를 만들어서 혼자 호주로 날아갔다. 동생은 이미 한국으로 돌아온 상태였고, 영어는 “Hello” 밖에 못하던 내가 무슨 배짱으로 경유를 2번이나 하며 그 먼 곳으로 날아갔는지 신기하다. (호주 브룸은 한국에서 직항이 없고, 최소 3대의 비행기를 타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오로지 일을 할 수 있는 워킹홀리데이 비자와 앞치마만 들고 브룸에 도착했다. 현지에서 발로 뛰어 본 결과, 생각보다 간단하면서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생각보다 간단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건, 메뉴를 김밥으로 정한 이유가 집에서 만들어 가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내가 음식을 만드는 주방만 검사를 하면 되어서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시간이 단축되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까다롭다고 말한 건 내 영어 실력 때문이었다. 어학원을 다닐 형편이 되지 않았던 나는 슈퍼에 가서 사람들 이야기를 엿들으며 회화 공부를 하고, 진열된 물건들을 보면서 단어 공부를 했다.

간절하게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일단 저지르면 어떻게든 흘러가는 것 같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라는 말은 간절히 원하면 그 행동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일단 관공서를 찾아 서류를 내고, 마켓 관리자와 인터뷰를 했다. 그 후 관리자들은 내가 머무는 집으로 찾아와 직접 주방 검사를 했고, 며칠 후 음식을 팔아도 된다는 연락을 주었다. 그렇게 자격증을 받은 나는 매주 금요일 저녁에 장을 봐서, 토요일 아침마다 김밥을 말고, 작은 테이블과 김밥을 들고, 버스를 이용해 마켓에 갔다.

 

다시 만난 벨 할머니가 차려준 호주인의 밥상. 제주도에서 사 온 김을 꺼내 주셨다.
다시 만난 벨 할머니가 차려준 호주인의 밥상. 제주도에서 사 온 김을 꺼내 주셨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2012년도에 찍은 사진을 들고 함께 사진 찍은 2018년도의 주나와 벨 할머니&할아버지. 지구 한바퀴를 돌아 언젠가 다시 만날 그 날을 기약하며.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지금 생각하면 그때 당시 25살인 내가 어떻게 그런 일들을 했는지 참 신기하다.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그래서 돈은 벌었어?”라고 종종 물어보기도 했다. 나에게 돈은 중요하지 않아서 그 질문이 항상 의아했다. 그래도 궁금해 할까봐 이야기하자면 엄청 많이 벌었다. 말로는 표현이 안 되는 돈 보다 귀한 엄청난 것들을 얻었다. (금전적으로도 벌었다.)

팔고 남은 김밥은 친구들도 주고, 내 도시락도 하고, 볶아 먹고, 부쳐 먹고, 튀겨 먹고, 꼬치로 만들어 먹고, 할 수 있는 모든 김밥 요리를 다 해 먹었다. 김밥과 함께 내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6개월 정도 마켓을 운영하면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중에서 절대 잊지 못할 몇몇의 손님이 있다. 맨 처음 내 김밥을 사준 옆 가게 사장님 프랑. 지금은 마켓 관리자로 있다고 해서 이번에 가서 다시 만났다. 나를 기억하는 척 해주는 프랑의 유쾌함은 여전했다.

그리고 한국인이 정말 없었던 그곳에서 내 김밥을 사준 한국 언니. 그 언니는 당시 세계 일주를 하고 있다고 했었다. “우와! 멋있어요!”라고 말을 했었는데 지금은 내가 그 멋진 일을 하고 있다고 전하고 싶다.

 

2012년 배고파 첫 손님이었던 옆 가게 프랑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2018년 브룸 주말 마켓 관리자가 되어 다시 만난 프랑과 함께. 나를 기억 하는 척 하는 그의 유쾌함은 여전했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마지막으로 가장 신기했던 손님은 누가 봐도 호주 사람인데 “안녕하세요”라며 다가온 할머니, 할아버지이다. 나는 그 후로도 그분들보다 정확한 발음으로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는 외국인을 본 적이 없다. 1970년대에 한국에서 몇 년 동안 지냈다는 호주 노부부. 호주 시골에서 태극기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나를 보고 놀랐고, 1980년대에 태어난 나는 태어나기도 전에 한국에서 지냈다는 그분들을 보고 놀랐다.

그렇게 인연이 되어서 집에도 초대받았었는데 한국 밥그릇에 흰쌀밥을 주시고, 불고기를 만들어서 김치랑 먹으라고 젓가락을 주셨다. 호주 가정집에서 호주 사람이 해주는 한국 음식 먹어 본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그 후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안타깝게도 연락이 끊기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 세계 여행을 하면서 6년 만에 다시 브룸에 가게 되었다. 2010년 동생을 만나러 처음 여행을 갔다가 2011년 김밥을 팔겠다고 다시 찾았던 브룸. 호주까지 갔는데 그곳에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아니, 사실 브룸을 가기위해 호주를 간 것이다.

변하지 않은 브룸과 여전히 브룸에 살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면서 문득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 오래되어서 이름도 기억이 안 나고 내가 가진 건 처음 만난 날 찍은 사진 한 장이 전부였다.

2011년도부터의 일기를 모두 휴대폰에 보관하고 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찾아봤다. 브룸을 떠날 때 만났던 모든 사람의 이름을 적어놓은 일기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일기의 맨 마지막에 적혀있었다. ‘벨 할아버지, 벨 할머니.’

 

여행을 하며 이보다 더 아름다운 바다색을 본 적이 없다. 발리에서도 마이애미에서도 볼
여행을 하며 이보다 더 아름다운 바다색을 본 적이 없다. 발리에서도 마이애미에서도 볼 수 없는 진짜 애매랄드 빛 브룸 바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브룸에서 마켓을 준비할 때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벨 할머니, 할아버지를 아냐고 물어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두 모른다고 했다. 다급해져서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물어보기 시작했다. 길 위에서, 버스 옆자리에 탄 할머니에게, 마트 직원 등등. 모두 모른다고는 했지만 벨 할머니, 할아버지 찾기를 응원해 주었다. 그리고 한 마트 직원이 SNS 브룸 페이지에 올려 보는 건 어떠냐고 했다. “너무 좋은 생각이잖아!!!”

그렇게 또다시 간절한 마음으로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글과 사진을 올렸고, 몇 시간 뒤 댓글이 달렸다. 벨 가족의 이웃이라며 전해 주겠다고 했다! 오 마이 갓!!!!! 그런데 또 몇 시간 뒤, 벨 가족의 댓글이 달렸다. 나를 다시 만나면 무척 기뻐하실 텐데 지금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여행을 가셔서 집에 안 계신다고 했다. 다급해진 나는 내가 곧 떠난다는 사실을 알렸고, 돌아오면 연락 주겠다고 한 이후 하루가 48시간인 듯 기다렸는데….

내가 브룸을 떠나기 정확히 3일 전, 연락이 왔다. “안녕하세요. 주나?” 그렇게 연락이 된 지 두 시간 만에 집으로 초대를 받아서 함께 점심을 먹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이번에 제주도로 여행을 다녀왔다고 하셨다. 세상에. 한국에 사는 나는 브룸으로 여행을 오고, 호주에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제주도로 여행을 가고. 아주 조금의 시간만 엇갈렸어도 못 만날 뻔 했기에 더욱 소중한 시간이었다. 제주도에서 돌아왔는데 내가 올린 글을 옆집 사람이 프린트해서 줬다고 한다. 내가 이래서 브룸을 사랑한다. 이제는 한국말을 거의 못하시지만 아직도 정확한 발음으로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벨 패밀리! 목포에서 아들을 낳았었다고 했었는데, 이번에 그 아들의 자녀들을 만났다. 진짜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한국이 어려웠던 시절, 우연한 기회에 한국을 가게 되었고, 한국 미혼모들을 위해 일하셨다고 했다. 한국인을 도우며 목포와 제주도에 살았던 호주 할아버지와 할머니. 내가 태어나기 전의 한국 이야기를 호주 가족에게 듣다니. 다시 들어도 참 신기했다.

그리고 문득 하나도 변하지 않은 브룸과 벨 가족이 참 놀라웠다.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 변하지 않음에 놀라는 나 자신에게도 놀랐다. 우리는 왜 변한다고 놀라면서 변하지 않는 것들에도 놀라는 것일까.

나의 변화로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고, 여행을 하면서도 나는 조금씩 변하고 있지만,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는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지구 한 바퀴를 돌아 언젠가 다시 만날 그날을 기약하며 오늘도 나는 여행길이다.

 

김준아는...
- 연극배우
- 여행가가 되고 싶은 여행자
- Instagram.com/juna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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