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과 함께 찾아온 변화들
10월과 함께 찾아온 변화들
  • 류지연 기자
  • 승인 2019.10.17 16: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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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류지연의 중국적응기 '소주만리'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내 나이 38세.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안정적인 한국생활을 뒤로 하고 타국에서 하루아침에 외노자(외국인 노동자의 준말) 신세가 되었다. 지리적으로는 가깝지만 심리적으로는 아프리카만큼 멀게만 느껴졌던 중국이라는 나라, 과연 잘 적응할 수 있을까? 38살 아줌마의 중국 체험기, 지금부터 시작해본다.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긴 국경절 연휴 끝에 되돌아온 일상, 그 끝자락에 새로운 변화들이 눈에 띈다.

첫 번째 변화는 부쩍 서늘해진 아침저녁 기온이다. 6월 5일 처음 소주에 입성한 후 어느덧 넉 달, 그동안은 다른 계절이 존재하지 않는 것 마냥 무덥고 습한 여름날 일색이었다. 중추절 즈음, 하루이틀 정도 찬바람이 불기에 드디어 가을이 오나 싶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30도를 넘길 정도로 다시 쨍쨍하던 9월을 뒤로하고 바야흐로 가을이 오려나 보다.

아직도 낮에는 25도 전후로 제법 햇살이 따가울 때도 있지만 아침저녁으로는 15~17도 정도로 제법 선선해서 긴팔을 걸치고 나가야 한다. 특히 밤에는 집안 공기마저 제법 차가워서 이번 주부터는 딸아이에게 긴팔 잠옷을 입히고 이불을 한 채 더 꺼냈다. 무더위는 무더위대로 달갑지 않았지만 서늘해진 날씨가 마냥 좋지만은 않다. 미세먼지의 계절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하긴 여름이라고 미세먼지가 딱히 좋지는 않았다. 미세먼지의 고향, 중국 본토에서 먼지를 논해 무엇하랴. 며칠 전 소주대학교 수업시간, 바깥공기는 육안으로 봐도 제법 뿌옇고, 휴대용 측정기로 재 본 결과 초미세먼지(PM 2.5)가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으로 최악(76㎍/m³ 이상)을 훌쩍 뛰어넘은 날이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오늘 날씨가 어떤지 물어보니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한 학생이 “多好啊!(duō hǎo a, 정말 좋아!)”라고 한다, 물론 그 날 배운 내용이 ‘多…啊’를 이용한 강조 구문이긴 했지만, 중요한 점은 선생님도 창밖을 내다보며 일말의 의심 없이 “很好(hěn hǎo 아주 좋아)”라고 했다는 사실.

불과 3~4년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미세먼지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그러나 온통 공사판인 지방 신도시에서 몇 년간 어린아이를 키우면서 살다 보니 어느새 미세먼지 민감군이 되어버렸다. 중국에 오기 전 어른용, 아이용 미세먼지 마스크를 각각 200매씩 구매하고 이미 공기청정기 세 대에 최신형 초대용량을 하나 더 구입해서 총 네 대를 갖추는 등 ‘공기의 질’이 중국살이의 가장 큰 화두였다. 그런데 중국에서 살다 보면 다들 먼지에 동화되는 건지, 아침저녁으로 만나는 한국인 학생과 엄마들을 보면 먼지가 최악인 날이라도 마스크를 쓰는 이가 거의 없다. 딸아이 학교만 하더라도 대기질지수(AQI: Air Quality Indax)가 200을 넘어야 바깥활동을 중단한다고 한다. 대기질지수가 200에 근접할 정도면 이미 미세‧초미세먼지는 최악 수준을 훌쩍 넘어서서 아이들의 폐를 녹이고 있다는 생각에 항상 불안하다. 그나마 먼지가 괜찮았던 저번 달을 그리며 닥쳐올 먼지의 계절을 잊으려고 노력해본다.

그러고 보니 학교의 달라진 풍경도 눈에 띈다. 소주대학교 개강 2주차였던 지난 9월 중순 월요일 아침. 부지런히 어학당으로 걸음을 서두르는데 운동장 여기저기에 군복을 입은 이들이 무더기로 눈에 띈다. 오전 9시도 안 된 이른 시각부터 훈련이 한창이다. 예비군 훈련을 대학교 운동장에서 하나 싶어서 신기하게 쳐다보는데, 여학생들이 꽤 많이 섞여 있다. 다른 외국인 학생들 눈에도 기이했던지 멈춰 서서 사진을 찍는 다. 궁금한 학생들의 마음을 알았는지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선생님이 설명해준다. 중국에서는 대학 신입생들이 의무적으로 군사훈련을 받아야 한단다. 군사훈련기간 동안 다른 수업은 일절 없고 오로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점심식사 시간을 제외하고) 훈련만 받는다고 한다. 기간은 학교에 따라서 다른데 통상 한 달 정도라고.

 

사진 1) 군사훈련중인 소주대 신입생들
군사훈련중인 소주대 신입생들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러한 군사훈련은 중학생부터 대상이라는데, 전 국민의 군인화가 가능한 무시무시한 정책이 아닐 수 없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전쟁이 발발한다고 가정했을 때, 남북한 인구를 다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수의 학생군인들이 전방에 선다고 상상하면… 정신건강에 좋지 않으니 상상하지 말도록 하자.

무더운 날씨에 긴팔 군복을 입고 군모까지 눌러 쓴 학생들의 몇몇 얼굴은 복장에 어울리지 않게 앳되기 그지없어서 매일 아침 운동장을 지나칠 때마다 살포시 짠한 마음이 들곤 했다. 그런데 연휴가 끝나 다시 찾은 학교에는 더 이상 훈련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소주대 학생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훈련 기간이 2주였나 보다.

군사훈련의 정체가 궁금한 분들을 위해 ‘바이두’에서 찾은 북경대학교 학생들의 올해 군사훈련 동영상 주소를 올려본다. 시작 부분에선 무려 새벽 5시 반부터 집합을 한다고 나온다. (https://www.bilibili.com/video/av64908647)

가을과 함께 찾아온 세 번째 변화는 바로 먹거리다. 가을은 자고로 하늘이 높고, 말조차도 살이 찌는 계절이 아닌가. 소주가 딱히 유명한 먹거리가 있는 도시는 아닌 듯하지만, 소주에서 아주 유명한 먹거리가 있으니 바로 양청호(阳澄湖, yángchénghú)에서 나는 따자시에(大闸蟹, dàzháxiè, 직역하면 ‘큰 수문 게’라는 뜻)라는 민물털게다. 소주에 와서 알게 된 지인으로부터 따자시에가 그렇게 맛있다는 소문을 들었던 터. 제철인 10월이 됐으니 한 번 먹어볼까 하던 참이었다.

마침 남편이 지인을 통해 주문했단다. 10월 첫 주말에 배달된 큰 스티로폼 상자, 산 채로 배달된다기에 혹시 기어 나오면 어쩌나 싶어 외출한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상자를 열었다. 그랬더니 웬걸? 상자 속에는 줄로 꽁꽁 동여매서 옴짝달싹 못하는 게 5쌍이 얌전하게 포개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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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로 꽁꽁 묶어진 따자시에, ‘털게’라는 이름이 헛되지 않게 양쪽 다리에 무성한 털을 달고 있다.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재미있는 건 집게발에 QR코드가 같이 달려있다. 무슨 QR코드인가 싶어 위챗을 꺼내 찍어보니, 원산지 정보 화면이 뜨고, 양청호산 정품보장이라는 등기증서가 뜬다. 꽤나 믿음직스럽다.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QR코드에 담긴 원산지 정보. ‘소주시 양청호 대갑게 행업 협회’에서 발행하는 증서라고 되어 있다.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사실 난 게를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다. 손을 더럽히는 것도 별로지만, 먹을 때 투입하는 품에 비해 얻는 결과물(게살 양)의 크기가 시원찮아 효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에게는 맞지 않는 달까. 그렇지만 중국에서의 새로운 시작을 감안했다. 따자시에를 찌기 위해 시장에서 생강과 황주를 사오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중국인들은 따자시에를 먹을 때 꼭 암수 한 쌍을 같이 쪄서 먹는다고 한다. 암컷이 크기는 더 작은데 알을 배고 있어서 더 고소하고 맛이 있단다. 게의 암수 구분은 배딱지의 모양으로 한다고 하는데 나이 38살에서야 처음 배웠다. 배딱지가 둥글면 암컷, 세모나면 수컷이란다.

 

배딱지가 보이는 두 마리의 게 중 왼쪽이 암컷, 오른쪽이 수컷이다.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인터넷에서 본 대로 찜통에 생강 조각을 깔고 황주를 붓고 그 위에 산 채로 따자시에를 올렸다. ‘미안해’라고 말한 후 15분을 찌니, 딱 봐도 먹음직스럽게 주황빛이 돈다. 그런데 찌고 나니 색상대비 효과인지는 몰라도 살아있을 때보다 색이 더 진해져서 털이 빽빽하게 난 집게발은 미관상 좋지 않다. 털 때문에 껍데기 채 입에 넣고 씹다가 살은 삼키고 껍데기만 뱉어내는 편한 방법을 시전할 수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가위와 젓가락을 부지런히 놀려 살을 발라낸다. 맛은 별다를 게 없었다. 게는 그저 게일뿐, 한 번 먹는 경험으로 충분한 것 같다.

다음날 수업 시간에 주말을 지낸 이야기를 했다. 양청호산 따자시에를 먹었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아마 목욕게(洗澡蟹, xǐzǎoxiè)일 거라고 한다. 양청호산은 대부분의 수량이 국가연회 등을 위해 높으신 분들에게 가고, 양청호에 사는 양식업자나 되어야 맛을 본단다. 목욕게는 다른 지역 출신의 게를 양청호에 며칠 담갔다가 다시 깨끗이 닦아(목욕) 양청호산으로 둔갑해서 팔리는 게라고 한다. 비슷한 말로는 물 건넌 게(过水蟹, guòshuǐxiè)가 있단다. 6개월만 우리나라에 들어와 살면 국내산이라는 표딱지를 붙이는 국내산 육우가 생각나는 순간이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6개월을 머무르면 합법적으로 산지를 인정해주니 양반이라고 해야 할까? QR코드를 보고 안심됐던 순간이 생각나 씁쓸해진다. 이 기분을 다른 먹거리로 달래 보리라 자위해본다.  <류지연 님은 현재 중국 소주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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