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양미의 '해장국 한 그릇'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열두 개의 떡을 얻었다. 그리고 그 중에 아홉 개를 이미 먹어 치웠다. 남아 있는 떡은 이제 세 개 뿐이다. 이걸 가지고 그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꿀떡꿀떡 먹어버린 아홉 개의 떡값까지 치루기 위해 지금부터 세 배는 더 빨리 뛰어야 할 상황이 되어버렸다. 내가 허비한 시간들과 남겨진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부터 해야 한다. 10%의 반성과 90%의 변명 정도로 끝나 버릴까봐 쓰기도 전에 겁부터 난다.

달리기 선수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 있다. 그런데 열심히 달리지 않는다.
수영 선수가 되겠다고 큰소리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물에 들어가지 않는다.
멋진 글을 쓰는게 꿈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열심히 쓰지도 않는다.

이러니 이것들이 어떻게 되겠냐 말이다.

2년 전, 이외수 선생님께 글을 배우겠다고 처음 화천에 왔을 때만해도 솔직히 글 쓸 생각을 심각하게 해보지 않았다. 특별히 재주가 있다고 생각지도 않았고 이 나이에 뭔가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는 것은 왠지 인생을 번거롭게 만들고 좌절만 맛볼 뿐이라고 지레 겁부터 냈다. 그랬던 초심을 굳건히 지켜나갔어야 했다. 달리지 않는 달리기 선수와 물을 무서워하는 수영선수처럼 말이다. 하지만 인생은 늘 꼬이기 마련이다. 길눈 어두운 길치답게 빼도 박도 못 하는 길로 잘못 들어와 버렸다.

이게 다 선생님 때문이다. 한 달에 한 번 수업에 갔다 오면 뭔가가 내 안에서 팔딱팔딱 뛰었다. 처음엔 별 거 아니라고 무시했다. 그러다 팔딱이는 것의 정체를 알게 됐다. 딱히 주소도 없고 지름길도 없으며 어떤 경로로 도달할 수 있는지 내비게이션에도 나타나지 않는 그곳. 사람들은 이것을 ‘꿈’이라고 불렀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작가가 될 수 있다고, 글을 열심히 쓰다보면 언젠가는 꽤 괜찮은 글을 써낼 수 있을 거라는 희망 같은 게 생겨버렸다. 때문에 선생님이 내주시는 과제를 열심히 했고 그것을 카페 게시판에 올리고 나면 뭔가 해낸 것 같아 뿌듯했다.

 

이외수 선생님에게 수업받는 화천 모월당
이외수 선생님에게 수업받는 화천 모월당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이외수 선생님과 글쓰기 수업하는 모습.
이외수 선생님과 글쓰기 수업하는 모습.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그러기를 2년 째. 그동안 내가 올린 글들을 쭈욱 읽어 보았다.
오~~ 생각난다. 이거 리뷰 쓰느라 시집 한 권을 완전 분해했었잖아.
맞아. 이 과제 할 때 새로운 단어 찾느라 진짜 한 달 내내 온통 이 생각만 했었는데….
이야… 이 글 쓰면서는 거짓말 조금 보태서 백 번은 더 고쳤던 거 같다. 범진이가 나보고 웃기고 가벼운 글 말고 진중한 글을 좀 써보라고 해서 이때 진짜 심각하게 고민하고 썼었지.
제일 힘들었던 과제는 시를 써내야 할 때였어. 나는 시를 쓰는 게 참 자신이 없었거든.

이렇게 내가 쓴 글들을 읽다보니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오늘 나는 지금의 내 모습을 돌아본다. 마치, 끝이 뭉툭해져버린 연필 같은 느낌이 든다. 처음 먹었던 그 마음도, 생각도, 목표도 뭉툭해져 버렸다. 말로만 글을 쓰겠다고 떠들어대며 사실 해놓은 거라고는 한 달에 한 번 과제 하나 근근이 해낸 거 말고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이제 세 달만 지나면 다시 새 해가 돌아오고 나는 또 다시 열두 개의 떡을 손에 쥐겠지만 이 또한 올해처럼 꿀떡꿀떡 먹어 치워버릴지도 모른다.

사실, 내 지나온 삶이 그랬다. 이거 아니면 절대 안 된다는 심정으로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게 없었다. 하루에 세 가지 일을 목표로 정했다가 그 중에 하나밖에 못하고 지나간다 해도 조바심 내지 않았다.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서 늘 후회를 달고 살았고 아플 때는 병원에 가기보다 아플 만큼 아파야 건강하게 낫는다는 무식한 논리로 이불 속에서 며칠을 혼자 끙끙 앓다가 일어나곤 했다. 내가 먼저 전화해서 술 사달라고 조른 적은 없지만 누군가 술 한 잔 하자고 전화를 걸어오면 만사 제처 두고 뛰어나가는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왔고 무엇을 하든 무계획이 최고의 계획이라는 생각으로 대책 없이 살아온 인생이었다.

 

모월당 하늘에 뜬 달
모월당 하늘에 뜬 달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그러니 글인들 어디 제대로 썼을까. 마냥 저냥 페이스북에 글 하나 올리는 걸로 하루의 위안을 삼으며 살아왔다. 욕심이 없는 것과 열정이 없는 것은 다른데 말이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빵이 땡기면 빵을 사러가듯 글이 쓰고 싶을 때면 밥처럼 빵처럼 글이 나에게 오면 좋겠다. 노트북 앞에 앉아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고 엉덩이가 배겨 더 이상 앉아있기 힘들만큼 써내려가 보면 소원이 없겠다. 나비처럼 팔랑팔랑 쥐새끼처럼 빨빨거리며 정신없이 싸돌아다니면서 무슨 글을 써내겠다는 건지 내가 생각해도 나는 참 한심한 인간이다.

글쓰기 수업을 듣고 오면 늘 내 꿈에 대해 다시 되새김질 해보지만… ‘되새김질’이라고 쓰고 보니 갑자기 머릿속에 소가 그려지면서 소고기가 부위별로 떠오른다. 오늘 저녁엔 고기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다가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내 손을 조용히 내려다본다. 머리를 못 바꾼다면 손이라도 성실하게 자판을 두드리는 손으로 바꿔버리고 싶다. 한 번 더 말하지만 나란 인간은 참말로 한심하다. 무언가를 진득하고 끈기 있게 해내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질투가 날 정도로 부럽다. 나와 같은 꿈을 가지고 이곳에 오는 사람들 중에는 표내지 않고 묵묵히 글을 써나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비록 성큼성큼 나아가지 못한다 해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아~~’처럼 돌아보면 한 발짝씩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 게 분명하다. 그런 사람들에게 꿈은 아침에 눈뜨면 사라지는 허황된 것이 아니라 밥처럼 빵처럼 고팠던 희망을 채워주고 손에 쥘 수 있는 한 권의 책으로 구체적인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이외수선생님 캘리그라피 작품
이외수선생님 캘리그라피 작품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내 꿈이 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아니 “좋은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좋은 작가가 뭐냐고 묻는다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내 안에 잔뜩 품고 사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야기를 억지로 만들어내는 사람은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잔뜩 품고 살아가려면 많은 곳을 돌아다니고 많은 사람을 만나며 위아래 좌우를 가리지 않고 많은 것을 생각하고 반성하고 느끼며 사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꿈을 이루는 사람들은 방법을 찾아 움직이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은 구실을 찾아 머문다. 지나버린 시간은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남겨진 시간은 아직 내 손에 있다. 그러니 더 이상 육중한 문 앞에 서있지만 말고 손을 내밀어 이제는 손잡이를 돌려야 할 시간이다.

<김양미 님은 이외수 작가 밑에서 글 공부 중인 꿈꾸는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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