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우울한 가을을 스스로 이겨낸다
그들은 우울한 가을을 스스로 이겨낸다
  • 이석원 기자
  • 승인 2019.10.21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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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기획]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살아보기 / 이석원
어둡고 습해지는 스웨덴의 가을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동안 우울함을 호소할 수 밖에 없는 계절적 악조건을 제공한다.
어둡고 습해지는 스웨덴의 가을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동안 우울함을 호소할 수 밖에 없는 계절적 악조건을 제공한다. ⓒ위클리서울/이석원 기자

[위클리서울=이석원 기자]  10월을 한참 지나고 난 스톡홀름은 짐짓 어둡고 을씨년스럽기 시작한다. 불과 한 달 여 전 세상을 그토록 찬란하게 비추던 화려한 태양의 향연은 끝났다. 이제 서서히 해는 짧아질 것이고, 축축하고 어두운 날씨가 이어질 것이다.

‘천고마비(天高馬肥)’로 불리는 높고 맑고 파란 한국의 가을 하늘과는 사뭇 다르다. 바야흐로 스웨덴은 우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는 바와 같이 스웨덴을 비롯한 유럽은 여름이 고온건조하고 겨울이 저온다습하다. 한국이나 아시아의 대부분 나라들이 여름에 우기가 오고 겨울에 건기가 오는 것과는 반대다. 본격적으로 가을이 시작되면서부터 스웨덴은 우기가 시작된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장마 같은 우기가 오는 것은 아니다. 맑은 날이 드물고 대부분의 날들이 흐리다. 하지만 비가 많이 뿌리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다. 조금 씩 조금 씩 자주 비가 내리는 날씨다. 그러다보니 스웨덴 사람들은 우산을 쓰고 다니는 것에 익숙지 않다. 우산을 써야 할 만큼의 비가 아니다보니 대개 모자 정도를 쓰고 그냥 비를 맞는 편이다.

문제는 적게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오히려 더 음습하다. 비는 적게 오는데 흐린 날이 잦다보니 사람들의 마음도 자연히 어둑어둑해지는 것이다.

서울과 비교해 큰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지만 스톡홀름은 아침에 해 뜨는 시간이 약 1시간가량 늦다. 요즘은 7시 30분이 넘어서 해가 뜬다. 해가 지는 시간은 큰 차이는 없다. 하지만 11월만 되던 이 차이는 급격히 벌어진다.

11월 스톡홀름의 해 뜨는 시간은 8시 30분대로 늦어지고 해 지는 시간은 오후 4시 무렵이 된다. 그러다가 11월 말에 가까워지면 해 뜨는 시간은 9시가 되고 해 지는 시간은 오후 3시에 이르게 된다. 북쪽 키루나(Kiruna) 같은 곳은 본격적으로 극야가 시작되고 완전히 해가 뜨지 않는다.

단순히 해 뜨고 지는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해가 떠 있는 시간이 점점 적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문제는 해가 떠 있는 동안에도 결코 밝고 맑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실제로는 해가 떠 있지만 흐리고 어두운 날씨 때문에 해가 떠 있다고 해도 어둑하기는 마찬가지다. 낮이라는 느낌이 드는 시간은 불과 서너 시간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 계절이 되면 스웨덴 사람들은 극도로 우울해질 수 있다. 지난 여름 종일 지지 않는, 게다가 구름 한 점 구경하기 어려울 정도로 하늘에서 내리 쬐는 태양의 작렬을 온몸으로 받던 그들은 그야말로 ‘중간 없이’ 흐려진 날씨 때문에 심리적으로 눈에 띄게 울적해 보인다.

여행자라면 이 무렵 일찌감치 거리를 비추기 시작하는 밝지는 않지만 멜랑콜리 한 가로등 때문에 스웨덴 도시의 거리들이 한결 더 차분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일찌감치 어두워진, 하지만 옅은 빛이 남아 있는 도심의 하늘을 배경으로 거리의 가로등들이 켜지면 마치 오래된 유럽 영화를 보는 듯한 감상에 젖을 수도 있다.

어딘가 자그마한 선술집에서는 진한 위스키 한 잔을 앞에 놓고 홀로 고민하는 젊은이가 있을 듯도 하고, 트렌치코트를 입은 여성들이 거리를 한가하게 걷다가 노란 가로등 아래서 연인이 오기를 기다리는 그런 로맨틱한 장면도 그려질 것이다

하지만 실상 스웨덴 도심의 거리에는 오히려 지난 여름보다 술을 마시는 사람이 더 적고, 실내의 스산한 조명 아래 머무는 사람이 없다. 그렇게 우울함과 적막함을 달래기에 그들의 가을과 겨울은 너무 길어서 이내 지치기 마련이다.

 

10월에 들어서면 급격히 해 뜨는 시간이 늦어지고, 해 지는 시간이 빨라진다. (사진 = 스웨덴 기상청 홈페이지 화면 캡처)
10월에 들어서면 급격히 해 뜨는 시간이 늦어지고, 해 지는 시간이 빨라진다. ⓒ위클리서울/스웨덴 기상청 홈페이지 화면 캡처

가을이 되면 가장 붐비는 곳이 피트니스 센터나 배드민턴 코트 같은 운동을 하는 곳이다. 워낙 평소에도 운동이 생활화돼 있는 사람들이긴 하지만, 여름휴가를 마치고 나서 날씨가 우중충해지면 그들은 한사코 운동복을 챙겨 입고 운동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뛰쳐나간다.

피트니스 센터에는 그 어느 때보다 남녀노소 운동하는 사람으로 북적이고, 자연 운동복이나 용품을 파는 매장에는 그 어느 때보다 손님이 많아진다. 비트니스 센터 뿐 아니라 도심이든 변두리든 시도 때도 없이 조깅을 하는 사람들을 볼 수가 있다. 운동복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계절인 것이다.

이 무렵 스웨덴 북쪽에 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트레킹 코스인 쿵스레덴(Kungsleden)도 사람들로 붐빈다. 여름에는 외국 사람들이 이 트레킹 코스에 많이 도전하는데 반해 스웨덴 사람들은 오히려 가을이 되면 더 많이 도전한다. 최고 300km에 이르는 이 코스는 조금 더 시간이 지나 겨울에 들어서면 더 이상 위험해서 함부로 걸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겨울이 되기 전에 우울함을 극복하기 위해서 스웨덴 사람들이 즐기는 것 중 또 하나는 세일링이다. 보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11월 말 호수들이 얼어붙기 전에 마지막 세일링을 즐긴다. 그래서 주말 뿐 아니라 평일에도 퇴근하고 나서 다만 몇 시간일망정 보트를 끌고 호수로 나간다. 11월 말이 되면 이 보트들은 오랫동안 동면에 들어야 한다.

여름보다 술을 덜 마시는 이유도 우울함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밝고 찬란한 태양 아래서는 어지간히 술을 마신다고 해서 심리적으로 더 우울해지지는 않지만, 어둡고 축축한 계절에 마시는 술은 오히려 더 우울해지고, 심지어는 알콜 중독으로 몰고 갈 우려가 있다고 그들은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스웨덴 사람들이 더 활동성을 높이고 술을 줄이는 것은 오랜 시간동안 스스로 터득한 원리다. 실제 이렇다고 해도 10월 말, 11월에 들어서면 스웨덴 거리 곳곳에는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우울한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난다. 그들은 술을 마시고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기도 한다. 또 이 시기 우울증 치료를 위해 정신과를 찾거나 자살하는 사람도 부쩍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계절적인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스웨덴 사람들이 덜 우울하고 더 행복한 것은 스스로 그것을 이기려는 부단한 노력들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면 된다. 그들의 방법으로.

<이석원 님은 한국에서 언론인으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스웨덴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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