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문학주간에 가다-1회] ‘찰방찰방, 동시랑 걷는 길’ 편

[위클리서울=김혜영 기자] 

다양한 문학인들이 운영하고 참여하는 축제, 문학주간이 열렸다. 지난 8월 31일부터 9월 7일까지 예술이 꽃피는 마로니에공원 일대였다. 운 좋게도 모니터링 요원을 맡아 문학주간의 행사와 프로그램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어떤 프로그램이 열렸는지, 참여한 이들은 무엇을 얻어갈 수 있었는지에 대해 두 편에 걸쳐 후기를 나눠보려 한다.

 

ⓒ위클리서울/김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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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주간의 다양한 전경 ⓒ위클리서울/김혜영 기자
문학주간의 다양한 전경 ⓒ위클리서울/김혜영 기자

시작은 뜻밖에도 SNS이었다. 평소 팬심으로 지켜보던 한 시인이 문학주간의 모니터링 요원을 모집한다는 글을 올렸다. 개강을 앞두고 정신이 없는 와중이었지만 난생 처음 들어보는 문학 행사를 쉽게 떨쳐버릴 수 없었다. 문학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이 개최된다는 것, 그것도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는 작가들이 직접 참여하고 꾸려나간다는 점에서 꼭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모니터링 요원을 지원해 합격했고, 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서 축제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모니터링 요원은 프로그램에 참석한 뒤 리뷰를 작성하는 일을 맡았다. 그래서 문학주간이 시작되기 전, 여러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을 듣고 좋은 리뷰를 쓰기 위한 글쓰기 특강을 받았다. 독자와 관객의 다양한 목소리를 수집하고, 더 나은 프로그램을 위해 피드백을 받기 위함이었다. 여느 행사가 그렇듯 예상치 못한 상황과 실망스러운 우여곡절이 일어날 수 있지만 발전해나가겠다는 그 취지만으로 애정을 갖고 열심히 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정 계층이 아닌 모든 사람들에게 열린 축제인 만큼, 유의미한 피드백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축제가 되기를 바랐다.

짧은 준비기간이 지난 뒤, 본격적인 문학주간이 시작되었다. 포럼, 전시, 방송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은 물론 작가들이 참여하는 스테이지와 야외 도서관까지 열렸다. 일주일 동안 수많은 프로그램이 열려 모두 살펴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다만 마로니에 공원에서 공짜로 중고책을 나눠주는 행사와 어린아이들이 부모님과 함께 책을 읽고 표현하는 야외 프로그램은 볼 수 있었다. 딱딱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소극적인 참여를 권유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뛰어놀며 자유롭게 책을 읽고 또 만들어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나는 다양한 프로그램 중 ‘찰방찰방, 동시랑 걷는 길’과 ‘독자와 만나는 새로운 방식’이라는 두 개의 프로그램을 맡았다. 후자는 다음 편에서 다룰 예정이고, 이번 편에서는 동시 프로그램의 후기를 나누려 한다.

 

문학주간의 다양한 전경 ⓒ위클리서울/김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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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클리서울/김혜영 기자
문학주간의 다양한 전경 ⓒ위클리서울/김혜영 기자

‘찰방찰방, 동시랑 걷는 길’을 참석하기 위해 주말에 대학로를 찾았다. ○○홀로 끝나는 건물이 밀집한 마로니에 공원에서 프로그램이 열리는 이음홀을 찾기는 어려웠다. 시행착오 끝에 아슬아슬한 시간에 도착했다. 이음홀 자체가 건물이 아니라 이음센터라는 건물의 5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연극센터 중 하나일 것이라 짐작하고 지나치기만 하던 그곳이 장애인문화예술센터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로 어쩐지 마음이 무거웠다.

무거운 마음과 달리 이음센터와 이음홀은 고요하면서도 복작복작한 생명력이 있는 공간이었다. 어느 음악인이 낡지만 반짝이는 기타를 꺼내 부드러운 선율을 들려줄 것만 같은 아름다운 스튜디오였다. 지각하는 사람 없이 앞자리부터 많은 관객이 자리를 잡고 이상교 시인을 필두로 네 명의 여성 작가가 무대 위 의자에 앉았다. 사회는 김유진 평론가가 맡고 김개미 시인과 정유경 시인이 참여했다. 46년간 동시를 쓴 이상교 시인이 여성 예술가로서 동시를 쓰는 삶을 돌이켜보고 후배 작가들과 어린이와 동시에 관해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마련된 프로그램이었다.

이상교 시인은 <다 예쁘다>를 암송하며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스스로를 까칠한 도시의 늙은 여자인 ‘까도노녀’로 칭하며 유쾌한 분위기를 이끌었다. 김개미 시인과 정유경 시인이 동시 한 편을 골라 낭독하고 이상교 시인이 화답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김개미 시인은 <잠귀>라는 시를 통해 고요한 시간을 가지기 힘든 현대인과 화자가 뜻하는 근원적인 존재를 탐구하는 감상을 나누었다. 정유경 시인은 <가을 시작>을 골라 시에서 드러나는 낙관과 희망이 언어에서 발견된다는 점을 예찬했다. 이상교 시인은 후배 동시인이 들려준 감상에 화답하며 시를 쓰게 된 배경도 이야기해주었다. 그 후로는 사회자와 관객의 질문에 시인들이 답변하는 순서였다.

 

찰방찰방, 동시랑 걷는 길 1
 ⓒ위클리서울/김혜영 기자
찰방찰방, 동시랑 걷는 길 ⓒ위클리서울/김혜영 기자
 ⓒ위클리서울/김혜영 기자
찰방찰방, 동시랑 걷는 길 ⓒ위클리서울/김혜영 기자
프로그램들 ⓒ위클리서울/김혜영 기자

문학주간의 수많은 프로그램 중 동시를 찾아온 관객들은 어떤 이유와 마음에서였을까. 관객석의 조명이 어두워 사람들의 표정을 모두 살필 수는 없었지만 부드럽고 편안한 분위기를 만끽하고픈 소망과 그 성취는 느낄 수 있었다. 어린아이들이 짧게 즐기고 잊어버리는 시, 어른에게는 작은 파동도 일으킬 수 없는 작고 쉬운 시처럼 보이는 동시가 다른 문학이 줄 수 없는 즐거움과 편안함을 선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관객들은 무엇인가 대단한 것을 얻어가겠다는 기대나 욕심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시를 감상하고 함께 웃었다.

다만 즐거움과 편안함 이외의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는가에 관한 물음은 남았다. 어린아이에게 흥미를 끌 수 있는 몇 안 되는 실내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어린이 관객은 세 명 정도에 불과했다. 동시와 어린이의 목소리에 관해 생각을 해보자는 취지였지만 그 주체는 어른에 머물러있었다. 어린아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동시는 무엇이었는지, 그들에게 동시가 갖는 실질적 의미와 힘은 어떻게 발현될 수 있는지에 관한 고민 없이 어떤 동시를 써야 하는가에 관한 작가들의 고민이 되풀이됐다. 한 시간의 대담 동안 엄마 옆에 가만히 앉아있던 아이와 그 목소리가 궁금했던 관객은 작가들의 테이블에 앉을 자리가 없었다. 기획의도대로 여성작가들이 여성예술가로서 살아온 삶과 소회를 나누리라 기대했지만 본인이 여성적이지 않아서 여성작가로서의 정체성이 별로 없었다는 짧은 답변이 돌아오기도 했다. 공모를 통해 이루어진 프로그램인 만큼 문학주간의 취지와 프로그램의 기획을 끝까지 관철시키기 어려운 듯 했다.

나는 이상교 시인의 <수염 할아버지>를 읽으며 자랐다. 덕분에 독특하고 유쾌한 발상 속에서 상상력을 펼치고 평범한 소재에서 여러 이야기를 발견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었다. 어쩌면 동시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에서도 유약했던 어린 시절이 주인공이 되는 마법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약자를 위한 예술 공간이기에 더욱 그랬다. 그럼에도 동시에 몰두하는 삶을 살아온 시인의 일상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어 좋았다. 자유분방한 이야기와 분위기에 젖어들어 편안하고 즐거웠던 주말의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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