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주나 – 세계여행] 서호주 브룸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여기, 주나>는 여행 일기 혹은 여행 기억을 나누고 싶은 ‘여행가가 되고 싶은 여행자’의 세계 여행기이다. 여기(여행지)에 있는 주나(Juna)의 세계 여행 그 열두 번째 이야기.

 

비행기 착륙 직전 익숙한 브룸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얼마나 설렜는지 모른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나는 현재 1년이 넘게 세계여행 중인데 아직도 브룸 바다보다 아름다운 바다를 본 적이 없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2009년, 태어나서 처음으로 브룸(Broom)이라는 곳에 도착해 비행기에서 내리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예쁜 하늘을 보고 감탄하면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익숙한 목소리로 “언니~ 언니~” 하고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방금 비행기에서 내렸고, 아직 짐도 찾지 않았기에 ‘잘못 들었겠지’ 생각하고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또다시 “언니~ 여기~” 소리가 들렸다.

‘비행기에 나 말고 다른 한국인이 탔었나?’ 의아함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세상에! 바로 앞에 보이는 건물 창문으로 내 동생이 고개를 내밀고 나를 부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뭐야? 너 왜 여기 있어?” 그렇게 나는 동생과 함께 내 수화물 찾는 것을 기다렸다. 브룸은 그런 곳이다.

‘국제공항’이라고 적혀있지만 몇 년 전부터 더 이상 국제선을 취항하지 않을 정도로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곳. 이곳엔 작은 건물이 두 개가 있는데 출발 건물, 도착 건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수화물 찾는 곳까지 마중을 나올 수 있고, 비행기 탑승 게이트 앞까지 배웅을 할 수 있다. 국내선이기에 여권 없이 보안대만 통과하면 가능하다. 도착하는 순간부터 떠나는 순간까지 함께할 수 있게 해주는 참 정이 많은 곳이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곳의 노을을 기다려도 “참 좋은 하루 였어”라고 말할 수 있을 거 같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야생 왈라비가 신기해서 빤히 쳐다보는 나를 빤히 쳐다보는 야생 왈라비.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바오밥 나무가 아프리카에만 있다고? 한여름이면 종종 40도를 넘기는 브룸에도 있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바오밥 나무가 아프리카에만 있다고? 한여름이면 종종 40도를 넘기는 브룸에도 있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그렇게 아담한 공항을 나서면 차로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브룸에 단 하나뿐인 쇼핑센터가 보인다. 그 쇼핑센터에서 10분을 달리면 세계 10대 바다 중 하나인 케이블 비치를 만날 수 있다. 이곳의 노을이 정말 환상적이다. 케이블 비치와 노을만으로도 브룸은 와볼만한 가치가 있다. 현재 1년이 넘게 세계여행 중인데 아직도 브룸 바다보다 아름다운 바다를 본 적이 없다.

엄청 작은 마을이기에 차로 15분이면 어디든 갈 수 있고, 계절은 딱 두 개로 나뉜다. 11월에서 4월까지는 우기인데 사실상 동남아의 우기처럼 엄청난 양의 비가 내리는 건 아니다. 평균 기온은 25도에서 33도.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평균이다. 내가 지낼 당시는 38, 39도까지 올라간 날씨가 수일동안 지속 되었고, 심지어 40도를 넘긴 날도 있다. 5월에서 10월은 17도에서 30도를 유지하는 건기이기에 여행 최적기라고 할 수 있다. 1년을 살아봤고, 3번째 방문한 나의 주관적인 기준으로 한국의 날씨와 비교해 보자면 여름, 한여름이라고 할 수 있을 거 같다. 그리고 그 계절에 따라 성수기와 비수기로 나뉜다. 당연히 건기가 성수기이다. 하지만 난 일정상 11월 초에 방문하게 되었고, 내가 이번에 방문한 비수기에는 버스가 9시부터 6시까지 한 시간에 한 대가 다닌다. 성수기에는 아침 7시 30분부터 저녁 7시까지 30분에 한 대씩 다닌다. 크게 다른 거 같지는 않지만 노선도 살짝 달라지고(주요 관광지를 비수기에는 가지 않는다), 심지어 비수기 일요일은 11시가 첫차이고, 크리스마스는 운행을 하지 않는다. 운전을 못해서 하루에 버스를 4번 탄 적 있는데 계속 같은 기사님을 만났었다. 나중에는 그 기사님이 먼저 알아보았다. 브롬은 그런 곳이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내가 브룸에서 가장 사랑하는 곳이자 세상에서 가장 오래 된 야외 영화관 ‘썬픽쳐’. 쏟아질 거 같은 별과 영화를 함께 볼 수 있는 낭만적인 곳이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이렇게 작은 마을 브룸에 가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최소 3대의 비행기를 타야 한다. 일단 한국에서 서호주 퍼스를 가야하는데 한국에서 퍼스까지 가는 직항이 없다. 경유를 해서 퍼스에 도착하면 다시 2시간 30분이 걸리는 브룸행 국내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그리고 국내선인데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호주가는 비행기 가격과 맞먹게 비싸다. 그만큼 수요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한 번 가려면 굉장한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이렇게 굉장한 곳에 3번째 방문을 하게 되다니. ‘죽기 전에 다시 가볼 수 있을까?’ 했던 곳. 정말 멀고도 먼 곳이다.

사실 2012년도에 브룸에서 워킹홀리데이를 끝내고 호주 한 바퀴 여행을 해봐서 이번 세계 여행 일정에서 호주는 제외 했었다. 그런데 세계여행 기간 중 퍼스에 살고 있는 친여동생이 출장을 갈 일이 생겼다고 나도 함께하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그 순간 망설임 없이 모든 여행 일정을 변경했다. 브룸은 그런 곳이다.

호주 사람들조차 브룸이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는데 호주의 서쪽과 북쪽 사이에 위치한 브룸은 호주 시드니보다 인도네시아 발리와 더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겨울이 없고, 우기가 짧고 더운 이 지역에서는 아프리카에 산다는 바오밥 나무도 만날 수 있다. 호주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휴양을 오는 이곳에는 리조트가 많은데 종종 리조트 잔디밭에서 야생 왈라비를 만날 수가 있다.

브룸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곳은 썬픽쳐(Sun picture)이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100년 된 야외 영화관으로, 쏟아질 것 같은 별과 함께 영화를 보다보면 종종 머리 위로 비행기가 지나가는 곳이다. 비가 내리면 비를 맞고, 모기가 있으면 모기에 물리고, 날이 더우면 더위 속에서 영화를 보는 이곳이 왜 이렇게 낭만적인지 모르겠다. 그냥 마냥 좋다.

9년 전 처음 왔던 이곳에서 김밥 집 ‘배고파’를 꿈꿨고, 6년 전 ‘배고파’를 위해서 왔던 이곳에서 세계 여행을 꿈꿨고, 세계여행을 하면서 찾은 이곳에서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도착한 순간 나의 모든 추억을 떠오르게 해 준 브룸. 머무는 내내 내가 그곳에 서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게 해 주었던 브룸. 브룸은 그런 곳이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6년 만에 다시 만난 내 친구들. 나의 기억은 그때에 멈춰 있었지만 내 친구들에게 그곳의 시간은 진행형이었다. 하지만 고맙게도 모두 그 자리에 있었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수하물 찾는 곳 까지 마중 나올 수 있고, 비행기 탑승구까지 배웅할 수 있는 브룸 공항.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공항이 아닌가 싶다.
수하물 찾는 곳 까지 마중 나올 수 있고, 비행기 탑승구까지 배웅할 수 있는 브룸 공항.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공항이 아닌가 싶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꿈같은 시간을 보내며 새로운 꿈을 찾지 못했기에 떠나고 싶지 않다는 좋은 핑계로 오래오래 머물고 싶었다, 솔직히 떠나기 싫은 가장 큰 이유는 헤어짐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나의 오랜 친구들이 여전히 브룸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살았던 집은 여전히 그 곳에 있고,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도 대부분 그 곳에 있었다. 하지만 친구들은 변했다. 분명히 내가 브룸에 살 때 연인이었는데 이제는 두 아이의 부모가 된 친구, 나보다 먼저 그곳을 떠났었는데 어느새 다시 돌아와서 자리를 잡은 친구, 오랜 기간 운영하던 가게를 내놓았다는 친구 등. 내 기억은 그때에 멈춰 있었지만 친구들에겐 그곳의 시간은 진행형이었다. 변화는 당연한 건데 기분이 참 이상했다. 친구들은 오히려 나를 보며 놀랐다. “연극배우가 되었다며?” 친구들과 함께 했던 그 시절의 나는 연극 영화학과 휴학생이었기 때문이다. 연극배우가 된 지 오래됐기에 놀라는 친구들에게 더 놀라웠다. 친구들에겐 나 또한 그때에 멈춰있는 것이겠지.

또다시 기약 없는 헤어짐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참 두려웠다. 2012년도에 떠날 당시 “언젠가 꼭 다시 돌아올게!”라고 말을 했었다. 그리고 그 언젠가가 되어서 다시 돌아왔기에 분명 또다시 언젠가라는 때가 올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어짐은 언제나 슬프다.

그래도 한 가지 설레는 것이라면, 얼마나 많은 변화 뒤에 다시 만나게 될 것 인지다. 물론 브룸은 항상 그 자리에 있겠지. 변하지 않는 브룸에 변함없이 살고 있는 친구들의 변화가 궁금해졌다. 브룸은 그런 곳이다.

‘죽기 전에 다시 가 볼 수 있을까?’라고 생각할 만큼 멀리 있던 브룸을 다시 찾게 해준 나의 고마운 세계 여행.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여행길이다.

 

김준아는...
- 연극배우
- 여행가가 되고 싶은 여행자
- Instagram.com/junatour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