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윤리적이고 무책임한 법의식이 ‘질곡사회’ 만들어"
"비윤리적이고 무책임한 법의식이 ‘질곡사회’ 만들어"
  • 한성욱 선임기자
  • 승인 2019.10.31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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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최자영 부산의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 공동대표-2회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1회에서 이어집니다.>

최자영 부산의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 공동대표 ⓒ위클리서울/ 한성욱 선임기자
최자영 부산의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 공동대표 ⓒ위클리서울/ 한성욱 선임기자

- 의료계 권위적 잔재도 문제지만, 범죄를 저질러도 의사자격증이 취소되지 않는 현실이다.

▲ 2000년 이전의 한국의료법만 해도 의료인이 업무상 과실치사나 일반형사 범죄로 금고 이상 형사 처분을 받으면 면허가 취소됐다. 그러나 2000년 의료법 개악에 의해 의료행위와 관련된 일정 범죄를 제외한 일반 형사범죄인 횡령, 배임, 강간, 업무상 과실치사, 일반특별법 위반 등으로 금고 이상의 처벌을 받아도 면허가 취소되지 않는다.

의사가 업무상 과실치사로 사람을 사망하게 해도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심지어 시체를 유기하고 달아났다가 체포돼도 마찬가지다. 성범죄를 저질러도 강간을 저질러도 면허는 취소되지 않는다.

 

- 잘못된 법체계가 사회분열을 조장해 왔다는 지적도 있는데.

▲ 의료인에 대한 빗나간 특혜는 전문지식의 배타적 독점과 정보은폐라는 관행과 궤를 같이 한다. 국회에서 은근슬쩍 통과된 ‘2000년 의료법’은 가능한 한 사회적 법적규제망을 피하려는 의료계의 집단이기주의가 관철된 것으로 사회적 폐해도 크다.

의사들의 무책임한 직업의식과 윤리부재가 환자피해를 키웠고, 질곡(桎梏)의 사회를 만든 원인이다. 이는 의료계 뿐 아니라, 우리사회 기득권층의 제대로 된 의식이 뿌리 깊게 정착되지 못했음을 방증해준다.

한국이 처한 의료계 상황은 상식을 벗어난 집단이기주의 산물이 되었고, 결국 사회 전체를 혼란에 빠뜨린 계기를 만들었다. 이 법이 통과된 것이 바로 김대중 정권하였다. 내 말뜻은 상대적으로 진보정권이라는 생각에서 마음놓고 있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수구보수 세력의 꼼수는 집요하게 틈새를 파고든다. 틈새는 경계심을 게을리할 때 생기는 것이다. 지금 정권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 판사도 알지 못한 상식을 벗어난 현행의료법이 있다는데.

▲ 지난 2016년 11월 가수 신해철 사망과 관련한 형사재판에서 의사의 업무상 과실치사에 대한 양형 설명을 보면 판사도 현행 의료법이 어떻게 상식을 벗어난 것인가를 알지 못했다. 이런 사실은 판사가 ‘과실의 정도나 중대한 피해를 고려할 때, 이 사건을 결코 가볍게 다룰 수 없다.

피고인에 대해 의사직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가벼운 형을 내리는 건 적절치 않다. 피고인에 대해 금고형을 선고한다.’고 적시한 데서 보인다. 최종판결문에는 이 문구가 들어가지 않았으나, 이런 재판부의 인식은 현행 의료법에 들어맞지 않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판사는 ‘금고형 선고 시 의사직 유지불가, 벌금형 선고 시에 의사직 유지가능’이라는 상식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나, 현행법에서는 금고형을 선고 받아도 의사직 유지가 가능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 의사의 면허취소나 자격정지 절차상의 문제점이라면.

▲ 면허를 취소하거나 자격을 정지할 사유가 발생한 경우에도 취소나 정지 절차도 허점투성이다. 면허취소가 되면 사법부가 보건소 등 보건당국에 통고해야 하지만, 의무사항이 아니다.

또 의료사고로 재판이 진행 중이더라도 재판이 끝날 때까지 어떤 행정조치도 취하지 못한다. 의료인의 성범죄에 대한 보건당국의 행정처벌도 솜방망이다. 의료인에 대한 면허가 취소되더라도 취소원인이 된 사유가 소멸되거나 개전의 정황이 뚜렷하다고 인정되면 면허가 재교부된다.

이것은 의료 특별법 원칙이 의료법보다 우선하기 때문이다. 이런 법의 맹점을 이용해 의료인들은 자신들의 면책범위를 확장해 왔고, 이런 관행들이 계속 이어졌다. 범죄를 저지른 의사가 자격도 박탈되지 않고, 의료직과 의료영업에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는다.

의료인에 대한 품위손상에 관한 범죄도 모두 빠져 있다. 마치 의료계는 형사범죄 무풍지대라는 전제를 깔고 만든 법과 같다.

 

- 외국의 의료법 사례를 보자. 의료선진국 독일의 의사에 대한 규제조항은 어떤가.

▲ 독일은 의사가 환자에게 의무적으로 의료정보를 제공하도록 되어 있다. 이를 어기면 법적 제재를 받는다. 만약 의사가 형사범죄와 관련되면 일반형사 처벌과 별개로 보안처분으로서의 직업금지명령이 가능하다.

이외에도 직무수행중 형법위반으로 확정판결이 났다거나, 법원명령에 따라 직무수행에 부적합하다거나 판단되면 면허취소나 사전정지가 가능하다. 독일도 1970년 이후, 의료과실 분쟁증가로 의사가 피소되는 일이 급증했다.

무엇보다 환자들이 진료기록 등 병원서류를 열람하거나 무료로 이용이 가능한 제도적 장치 덕분에 의료전문가 감정을 받기 위한 목적으로 의사를 형사고발하는 사례도 많았다.

이에 따른 대책으로 독일 연방 각 주에 있는 의사협회들이 1975~1976년 당시의 의료분쟁을 법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기 위해 각 연방주에 의료중재원과 의료감정위원회를 개설했다.

1975년 4월에 바이에른 의사협회가 처음으로 독일 보험회사 HUK연합과 계약을 맺었다. 그러면서 의료배상문제를 다루는 의료중재원도 개설했다. 그해 12월 노르트라인 의사협회가 의료감정위원회를 만들면서 독일 전역으로 확대됐다.

 

- 독일에서는 의사에게 입증책임을 무겁게 두고 있다는 말인데.

▲ 그렇다. 독일은 의사가 모든 입증책임을 진다. 동시에 의료감정을 받을 수 있다. 의사들은 질환 자료에 대해 환자에게 진실을 말하도록 제도화 되어 있다. 또 환자가 형사고소만 하면 모든 병원진료 기록을 열람할 수가 있고 의료감정까지 무료다. 한국처럼 의사들이 침묵하는 가운데 전문지식이 없는 환자에게 모든 입증책임을 떠넘기는 일은 없다.

독일은 입증책임이 의사에게 있기 때문에 형사고발을 저지하기 위해 자발적 조정기구를 만든 것이다. 반대로 전문의료 지식을 취득하기 어려운 한국의 환자들은 자신에게 지워진 입증책임을 완화를 위해 마지못해 조정중재원을 찾는다.

 

- 일본 의사들은 어떤가.

▲ 일본은 벌금형만 받아도 면허취소나 3년간 의료업 정지처분을 받는다. 최근에는 민사책임일 경우에도 행정처분을 하고 있다. 미국도 면허를 교부받기 위해서는 도덕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고, 형사사건 전력이 있으면 면허교부가 안 된다. 심지어 유죄판결의 근거가 된 범죄가 의료행위와 연관성이 없어도 마찬가지다.

 

- 의료행위는 생명을 살리는 존엄한 윤리적 행위다. 따라서 의사윤리강령이 중요한데 우리나라와 유럽의 강령조항은 어떤지 밝혀 달라.

▲ 한국은 국가차원에서 제정된 의사윤리강령 자체가 없다. 있다면 1997년 의료인의 권익보호와 집단적 이해관계를 도모하기 위해 대한의사협회가 제정한 강령만 있을 뿐이다.

한국의 의사윤리강령 19조에 ‘의사는 의학적으로 인정되지 않은 시술을 행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동료 보건인들의 행위를 비난하지 않는다.’와 20조 ‘의사는 동료 보건인들이 의학적, 윤리적 오류를 범하는 경우 그것을 알리고 바로 잡아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그러나 1987년에 제정된 유럽의 의사윤리강령 28조를 보면, 단체규칙이 환자의 입장을 고려해서 만들어졌다. 의사들 간의 부당한 경쟁의 희생물이 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의사들은 자신의 동료 의사들에 의해 인정된 전문지식을 합법적으로 발언할 수 있다.

강령 30조에도 만일 의사가 의료윤리 위반과 자신이 알고 있는 작업지식에 대해 권위 있는 전문 집단에게 의견을 표하는 것은 신뢰의 의무를 저버리는 것은 아니다.

 

- ‘의료인 윤리 (Medical Moral) 면에서 격차가 많아 보인다.

▲ 한국은 일정한 경우를 제외하고 ‘동료 보건인을 비난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으나 유럽은 ‘합법적 발언’ 또는 ‘의견 표명’이 가능하게 함으로서 집단 이기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명할 수 있다.

앞서 말한 한국의 20조 강령도 환자에 대한 의무나 범사회적 의무가 아니다. 의료인 상호 간 관계를 전제로 설정했고, 사적으로 은밀하게 공유할 뿐, 환자의 권리나 사회적 책무는 빠져 있다. 의료인이 동료의 잘못을 바로 잡지 않아도 법적 책임 없다. 따라서 동료 의료인의 잘못에 대해 묵인하는 경향이 있다.

환자에 대해 최선의 진료와 능력구비, 도덕성 등 일부 추상적인 문제에 대해서만 다루고 있지만 소극적이며 내용도 빈약하다. 국민건강을 볼모로 한 의사윤리강령은 의료인과 환자의 입장을 국가차원에서 다시 제정할 필요가 있고 환자의 권익을 제대로 보장하고 반영시킬 필요가 있다.

 

- 한국의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은 어떤지.

▲ 2011년 이명박 정권이 외국인환자를 유치를 하려는데 의료사고 대비 제도정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등의 사정으로 의료분쟁조정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이 법에 기초하여 2012년에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하 조정중재원)을 만들어졌다.

이것은 직권중재제도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권위주의적인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탄생했다. 의료감정과 조정기능을 모두 장악한 무소불위의 ‘의료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 의료사고 입증을 전문지식이 없는 환자에게 전가시키고 있는 현실인데.

▲ 한국은 현재 의료사고가 나면 의사가 아닌 환자가 모든 것을 입증해야 한다. 이런 비상식적인 관행을 깨기 위해 시민단체 등이 나서서 입증책임 공방을 벌인지 20년이 흘러오면서, 2007년 들어서서야 입증책임을 의료인에게 전환하도록 한 세 가지 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 소위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이 만든 의료조정법에서 이것을 다 무시해버렸다. 대신에 조정중재원 내에 감정단(鑑定團)의 감정제도를 두었다. 이것은 또 다른 형태의 의료인 형사면책 기관을 둔 것에 불과한 것이고, 한마디로 의료인 면책법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환자보다 의료인 중심의 직권주의에 뿌리를 박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3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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