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류지연의 중국적응기 '소주만리'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내 나이 38세.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안정적인 한국생활을 뒤로 하고 타국에서 하루아침에 외노자(외국인 노동자의 준말) 신세가 되었다. 지리적으로는 가깝지만 심리적으로는 아프리카만큼 멀게만 느껴졌던 중국이라는 나라, 과연 잘 적응할 수 있을까? 38살 아줌마의 중국 체험기, 지금부터 시작해본다.

 

주말 저녁, 지인 딸의 생일선물을 사고자 서점에 들렀다. 열 살 아이들의 취향에 대해서 잘은 모르나 이전부터 눈여겨 봐두었던 그림작가의 매혹적인 그림책이라면 무난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두 번째 서점 방문이지만 뭐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터라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때, 벽 한 면을 다 차지한 추천도서 서가에서 놀라운 광경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다섯 줄의 서가에서 제일 위의 두 줄을 빽빽하게 채운 책, 바로 ‘82년생 김지영’이다. 그녀의 이름이 나와 같은 ‘지혜 지(智)’자에 흔해서 서글픈 ‘꽃부리 영(英)’자를 쓴다는 걸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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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중심에 위치한 중국 서점 전경과, 추천 서가에 빼곡이 들어찬 ‘82년생 김지영’ 책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82년생 김지영’을 처음 접한 건 대략 2년 전이다. 한창 인터넷에서 떠들썩하게 화제가 되었던 책, 같은 해에 태어나 나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그녀와 나의 삶의 궤적은 얼마나 비슷할지, 혹은 다를지 궁금했다. 회사 앞 서점에 들러 단숨에 한 권을 독파했다. 어떤 부분들은 나에게도 더 윗세대의 일들처럼 느껴져 낯설었지만 대한민국에서, 한 명의 여자로 산다는 것에 대한 복잡함과 단순함의 사이 어딘가에 얽힌 서사는 충분한 힘과 여운이 있었다.

최근 동명의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했다는 뉴스를 얼핏 보긴 했지만 중국의 서점에서 불현듯 그녀와 조우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책 옆에는 ‘모든 여인의 일생은 한 권의 책으로 쓰일 가치가 있다(每个女人的一生都值得写成一本书)’는 문구와 ‘나는 편견에 사로잡히는 것을 거절한다 – 모든 당연한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我拒绝被偏见 - 所有的理所当然并非天经地义)’같은 푯말이 세워져 있었다.

 

빨간 바탕에 강렬하게 적힌 소개 문구들. 아이러니한 것은 표지 속의 그녀는 소개 문구와 어울리지 않게 여성에게 부여된 고정관념들(분홍색, 긴 생머리, 옅은 화장) 그대로의 모습이라는 점이다.
빨간 바탕에 강렬하게 적힌 소개 문구들. 아이러니한 것은 표지 속의 그녀는 소개 문구와 어울리지 않게 여성에게 부여된 고정관념들(분홍색, 긴 생머리, 옅은 화장) 그대로의 모습이라는 점이다.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우리나라의 책을 만났다는 반가움도 있었지만 그 전에 ‘김지영’으로 대변되는 여성의 서사, ‘류지연’일 수도, ‘김미희’일 수도 있는 ‘그녀’들의 이야기가 이렇게 대대적으로 소개된다는 것에 대한 일종의 감동이 더 컸다. 일부 책의 표지는 개봉한 영화의 장면과 이에 대한 뉴스, 감독 인터뷰 등이 빼곡하게 편집된 포장지로 싸여 있었다. 출판에 꽤나 공을 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중국의 여성들은 이 책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중국의 82년생들은 어떤 삶을 살았고, 또 살고 있을까. 중국은 가정 내에서 여성의 발언권과 영향력이 더 크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는데, 그들에게는 한국 여인들의 삶이 어떻게 비칠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저녁이었다.

중국인의 삶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중국어를 배우면서 중국인들의 사고방식이 궁금해졌던 단어들이 떠오른다. 제일 처음 나에게 충격(?)을 줬던 단어는 바로 ‘쾌락(快乐, kuàilè)’이다. 한국말로 치면 ‘축하해’나 ‘잘 보내’같은 인사를 할 때 중국인들은 단어 뒤에 ‘쾌락’을 붙인다. ‘생일 축하해’는 ‘生日快乐(shēngrì kuàilè)’, ‘성탄절 잘 보내’는 ‘圣诞节快乐(shèngdànjié kuàilè)’같은 식이다. 심리학 혹은 정신분석학 서적에나 나올 법한 ‘쾌락’이라는 단어를 일상에서 거리낌 없이 쓰다니 얼마나 직설적인가.

‘거리 구경을 하다’는 뜻의 단어 ‘逛街’(guàngjiē)도 놀랍기는 마찬가지다. ‘逛’이라는 한자는 ‘미칠 광’자 밑에 달려가는 모양의 책받침을 달아놓았으니 ‘미친 듯이 돌아다닌다’ 정도로 이해가 된다. 우리나라 표현에도 ‘미친 듯이 쏘다닌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점잖은 자리에서 쓰기는 어려운 표현이다.

중국인들은 원초적 본능에 더 충실한 것일까. 아니면 대륙의 호방한 기상이 직설적인 표현을 만들어낸 것일까.

색깔 중에서도 충격적인 이름이 있다. 우리로 치면 ‘살구색’인 황인종의 피부색을 중국말로는 ‘육색(肉色, ròusè)라고 한다. 고기색이라니, 내가 아는 고기는 분명 살구색 보다는 빨간색에 가까운데…. 아무리 좋게 봐줘도 연분홍색이라기보다는 진분홍색에 가까운데…. 사람의 육신도 한낱 고깃덩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오묘한 이치가 담겨있는 걸까? 그것보다는 솔직히 수호지에서 자주 나오는, 인육으로 만두를 만든다는 이야기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중국의 또 다른 문화를 접할 기회가 생겼다. 바로 결혼식이다. 그간 일본소설을 통해 일본의 결혼식장에 대한 묘사는 익히 읽은지라 본 적은 없어도 대충 머릿속에 상상되는 정경이 있는 데 반해 중국의 결혼식에 대해서는 아무런 감이 없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기나긴 학창시절 옆 나라 과거사에 대해서는 국가순서까지 달달 외워가며 배웠음에도 중국의 현대사나 생활에 대해서는 거의 접한 적이 없다. 우리는 과연 현대사회에 적합한 교육을 받은 것일까 하는 오래된 의문점이 다시금 고개를 든다.

남편이 회사 동료 자제의 결혼식에 간다는 얘기를 듣고 마침 좋은 기회라는 생각에 나와 딸아이도 동행하기로 했다. 일요일 저녁 6시 예식이었는데 결혼식장은 소주 외곽에 위치해 있어 꽤 오래 차를 타고 가야 했다. 환하게 불이 켜진 화려한 건물은 외곽 지역이라 허름할 것이라는 예상을 단번에 날려버렸다. 호텔 3층에 위치한 예식장으로 올라가니 양복을 입은 신랑 아버지와 붉은 치파오를 입은 신랑 어머니가 예식장 입구에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예식장 앞 로비는 웨딩 촬영 스튜디오를 방불케 할 만큼 화려한 조화 장식과 (아마도 기념사진 촬영을 위한) 단상 따위들로 꾸며져 있었다. 예식장 안은 식을 보면서 식사하는 형식으로 무대와 원형식탁이 차려져 있었는데 식탁에는 이미 8~9가지의 음식들과 갖가지 술, 음료수가 빼곡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하객 선물로 자리마다 식기 옆에 작은 초콜릿 상자가 놓여 있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사진 5) 식탁에 차려진 전채 요리와 술, 음료수
식탁에 차려진 전채 요리와 술, 음료수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첫 번째 인상은 무대가 굉장히 화려한데 촌스럽다는 것, 그리고 하객들이 전혀 옷차림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무대 위는 로비처럼 온갖 조화들과 조명들로 장식이 되어 있는데, 꼭 지방 소도시의 철 지난 행사 무대를 보는 느낌이었다. 하객들의 옷차림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후드 티부터 요란한 무늬의 티셔츠에 청바지 등 집 앞 마트에서 볼 법한 일상적인 옷차림이었다.

무대 양 옆과 식장 뒤쪽 커다란 화면엔 스튜디오 촬영 사진 및 신랑신부의 데이트 사진, 유년시절 사진 등을 띄워놓는 건 똑같았다. 신랑이 먼저 입장하고 신부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것도 동일했다. 다만 서양식으로 남녀 각각 세 명의 도우미가 있다는 점과, 신랑이 무대 끝부분까지 신부의 마중 나와서 마치 프로포즈를 하듯 신부 앞에 무릎을 꿇고 꽃다발을 바친다는 점이 달랐다. 따로 주례는 없고 사회자가 식을 진행했는데, 식이 진행될수록 사회자의 놀라운 능력(?)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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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한 무대 위에서 한없이 작아 보이는 신랑과 도우미 세 쌍에 이어 마지막으로 행진하는 신랑, 신부의 뒷모습
과한 무대 위에서 한없이 작아 보이는 신랑과 도우미 세 쌍에 이어 마지막으로 행진하는 신랑, 신부의 뒷모습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생각보다 식은 짧아서 약 30분 만에 끝이 났고, 식 중간 정도부터 식탁에 새로운 음식들이 날라져 오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 식탁을 보았을 때 딱히 먹을 게 없다고 살짝 실망했는데, 남편 동료의 설명으로는 처음에 깔린 음식들은 전채인 차가운 요리들이고, 메인요리는 일반적으로 13~14종류가 나온단다. 마지막으로 과일이 나오면 끝난 거라고. 메인요리라는 이름에 걸맞게 큼지막한 쟁반에 따끈따끈한 요리들이 육해공을 넘나들며 부지런히 날라져왔다.

그동안 양가 혼주와 주인공들, 여섯 명의 도우미로 이루어진 도합 12명의 대부대는 각 식탁마다 돌며 인사를 시작했는데 남자 도우미들은 부지런히 손님들에게 담배 두 개비씩을 나눠주고 여자 도우미들은 술병을 들고 다니며 원하는 이들에게 따라 주었다.

중국에서는 ‘희연희주’(喜烟喜酒, xǐyānxǐjiǔ)라고 해서 하객들에게 가장 좋은 담배와 술을 내놓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식장에서 그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셔주는 것이 축하의 표시라고. 식탁마다 담배 열두어 갑씩을 놔두어 손님들이 가져갈 수 있게 해둔 것도 눈에 띄었다.

먹고 마시는 잔치가 무르익어가는 가운데 사회자는 만능 엔터테이너로 탈바꿈한다. 단독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노래 실력은 기본, 사람들을 무대 위로 불러들여 장기자랑부터 ‘가족오락관’까지 온갖 종류의 게임을 진행한다. 한편 무대 양쪽의 대형 화면에는 인터넷 방송의 실시간 댓글처럼 화면의 QR코드를 스캔해서 하객들이 즉석으로 보내는 축하인사가 끊임없이 올라오고, 사회자는 게임을 진행하며 통 크게 상품을 뿌린다. 딸아이도 남편을 끌고 무대 위로 올라가 제법 큰 인형 네 개를 받아오는 데 성공했다.

놀라운 사실은 인형과 함께 자그마한 빨간 봉투에 돈(20위안)까지 넣어줬다는 것. ‘홍포’(红包, hóngbāo)라고 부르는 빨간봉투 용돈은 중국 핸드폰 어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데 일종의 상금 같은 것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제법 짭짤한 수입인데, 식이 끝나갈 무렵이 되자 몇몇 종업원들이 아예 포대자루를 들고 다니며 자그마한 인형들을 아이들에게 뿌린다. 딸아이는 포대마다 부지런히 쫓아다니며 인형 네 개를 추가로 획득했다. 혼주가 꼬마 손님들에게 나눠준 ‘홍포’(100위안)까지 포함하면 가히 두둑한 일당이다.

 

결혼식에서 획득한 선물들. 우측의 초콜릿 상자와 빨간 봉투 사이에 놓인 빨간 담배가 중국 담배 중에는 가장 비싼 담배라고 한다.
결혼식에서 획득한 선물들. 우측의 초콜릿 상자와 빨간 봉투 사이에 놓인 빨간 담배가 중국 담배 중에는 가장 비싼 담배라고 한다.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그나저나 82개의 식탁을 가득 채운 음식, 술과 담배, 무수한 경품과 홍포까지… 집 기둥의 뿌리를 뽑을만한 지출이 아닐까 싶다. 남편 말로는 중국에서 결혼식은 원래 돈을 뿌려가며 성대하게 하는 행사란다. 아니면 혹시 남편의 회사 동료가 숨은 갑부였을지도. 그 답은 중국에서 더 많은 결혼식을 경험하면 찾을 수 있으리라.

 

식장 입구에 놓인 좌석 배치도. 한 식탁에 10명 정도가 앉았으니 근 800명 넘는 하객이 온 셈이다.
식장 입구에 놓인 좌석 배치도. 한 식탁에 10명 정도가 앉았으니 근 800명 넘는 하객이 온 셈이다.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류지연 님은 현재 중국 소주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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