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경의 삶 난타하기]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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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맞다. 김치가 없다. 제목처럼 김치가 하나도 없다. 어쩜 배추 이파리 하나도 남지 않을 수가 있는지 김치 통에 김치가 똑 떨어졌다. 김치찌개나 김치부침개 할 때 양념으로 넣으려고 남겨 둔 김치 국물만이 김치통 바닥에 깔려 있다. 살림 20여년 만에 김치가 떨어지긴 처음이다. 추석이 다가 올 때쯤 손님맞이용으로 담근 김치가 며칠 전부터 바닥을 보이기 시작해서 사실 조마조마하고 있던 차였다. 10월은 너무 바빴다. 행사 섭외도 많았고 오지랖 넓게 옆 동네 성북구 행사에도 참여했다. 관심분야가 있어 신청한 대학 강의가 10월에 몰리는 바람에 주말은 대부분 집에 있지를 못했다. 워킹맘까지는 아니지만 나름 주중에는 이런저런 스케줄을 소화하다보면 주말에 밀린 살림을 해야 하는데 10월은 그러지를 못했다. 이럴 때는 친정엄마 찬스를 쓰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친정엄마는 그럴 형편이 못되었다. 당장에 김치를 담가야겠는데 배추는 왜 그리도 비싼지…. 슬슬 요령이 피우고 싶어졌다. 곧 김장철이 다가 오는데 지금 김치를 담가야 하나? 어떻게 버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엄마의 김치가 그립다.

내가 어릴 적 살던 집은 넓은 마당이 있는 한옥이었다. 12월 초에 들어서면 엄마는 어린 내가 네다섯 명이 들어가고도 남을 넓고 깊은 고무대야에 배추를 쪼개어 소금에 절이고 밤새 몇 번에 걸쳐 뒤집기를 한 다음 이른 아침부터 절여진 배추를 씻어 배추산을 만들어 놓으셨다. 무와 밤을 채 썰고 지렁이처럼 생긴 청각을 다지고 곰삭은 멸치젓을 달여 이름 모를 푸른 잎들과 함께 버무린 속을 배춧잎 한 켜 한 켜 마다 살포시 바른다. 흐트러지지 않게 감싼 다음 명주실로 묶어 내 키보다 더 커 보이는 김칫독 안으로 차곡차곡 쌓으셨다. 뭉툭하게 썰어 놓은 무를 독 안으로 던지는 놀이를 엄마는 틈틈이 허락해 주셨다. 아버지는 집에 잘 없었고 동생은 태어나기 전이었으며 나는 아직 어렸던 그 시절 엄마는 혼자서 배추 100포기 김장을 해내셨다. 이듬해 봄까지 먹을 김치를 담그신 것이다. 지금처럼 주방이 집 안에 있는 구조도 아니었다. 매서운 초겨울 날씨에 콧등이 발갛게 얼어붙고 하얗게 입김을 피워 내면서 김장을 하던 엄마의 모습은 김장철만 되면 떠오르는 그리움 한 조각이다.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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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뒤 엄마는 동생을 공부시키려 서울로 올라와 대학가에서 하숙집을 하셨다. 어느 해 겨울 엄마는 여전히 혼자서 김장을 하고 있었다. 퇴근하고 집에 온 나는 배추와 씨름하는 엄마를 못내 모른 척 했다. 피곤하기도 했고 엄마의 김치들은 모두 하숙생들의 차지일 것이니 굳이 내가 간섭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힘에 벅찼던 엄마는 내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나는 엄마의 가슴에 대못을 내리치고 말았다.

“누가 배추 30포기 하라고 했어요?” 나보다 동생을 더 보살피고 나보다 하숙생들을 더 챙긴 엄마가 미웠다. 나이만 성인이었지 뒤늦게 찾아온 사춘기로 모든 게 불만으로 가득 찬 철없던 시절의 나는 엄마의 고달픔과 외로움을 알고도 모른 척한 무심한 딸년이었다.

결혼을 하고도 한참의 세월이 흐른 뒤 나는 배추 아홉 포기로 생애 첫 김장을 해보았다. 엄마가 하던 대로 무와 밤을 채 썰고 지렁이 같은 청각과 동태포를 다진 다음 이제야 이름을 알게 된 갓과 미나리와 함께 버무렸다. 엄마와 다른 게 있다면 초겨울 날씨지만 주방이 집 안에 있으니 콧등이 발갛게 얼어붙고 하얗게 입김을 피워낼 일이 없다. 고맙게도 남편과 아이들이 번갈아 가며 도와주니 그 옛날 엄마의 김장에 감히 비교할 바가 아니다. 배추 30포기로 시비 걸던 딸의 김치를 엄마는 맛있다고, 잘했다고 하시면서도 예전에 내가 박아 놓은 뼈아픈 말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하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으이그, 빌어묵을 년! 다시는 김치 처 묵지도 않을 것처럼 지랄하더니 어쩜 이렇게 맛있게도 잘허노!” 해마다 김장철이 되면 엄마는 그 때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나를 민망하게 하셨지만 이제는 내 김치의 간을 봐 줄 입맛도 잃어버리고 나를 민망하게 할 기억조차 놓쳐버린 채 남은여생을 당신만의 세계에서 보내고 계신다. 엄마의 김치는 더 이상 없다.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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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김치를 담가야 해서 시장에 나오긴 했지만 배추도 비싸고 갱년기 우울증이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중이라 무기력에 빠져서 그 무엇도 하고 싶지 않았다. 오호라 근데 이게 웬일이야? 마침 기성품 김치가 세일을 한단다. 이 좋은 핑계가 없다. 세일이라잖아….

포장된 김치를 얼른 주워 담았다. 빛의 속도로 집에 와서 김치 통에 옮겨 담고 포장지는 물로 헹궈서 재활용에 내다 놓았다. 아무도 모를 것이다. 모든 게 완벽했다.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김치 없이 식사를 했는데 다음 날 떡하니 김치가 그것도 아주 알맞게 잘 익은 김치가 있으니 남편은 반가운 표정이다.

“오! 김치다. 샀어?”

“어? 아니. 김치 없다고 걱정하니까 옆집 엄마가 조금 줬어.”

뻔뻔하게도 나는 완벽하게 옮겨 놓은 김치를 옆집 엄마의 작품으로 둔갑시켜 버렸다. 왠지 모르겠지만 차마 김치를 샀다고 할 수가 없었다. 같잖은 날라리 주부의 하나 남은 자존심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예전에도 종종 옆집 엄마와 김치를 바꿔 먹은 적이 있던 터라 그 집의 김치 맛을 남편은 알고 있을 텐데 아무 말이 없는걸 보면 알고도 모른 척 하는 건지 정말 모르는 건지 의문이긴 하다. 이런 내 사정이 불쌍해 보였는지 실제로 옆집 엄마는 묵은 지 몇 포기를 찌개해서 먹으라며 건네주었다.

“마트에서 산 김치는 친정 김치라고 하고 묵은지는 시댁 김치라고 해.”

절임배추를 예약해 두었다. 이달 말에 김장을 할 참이다. 갈수록 꾀만 느는지 올 해는 좀 간단하게 해보려 한다. 무도 조금만 채 썰고 푸른 잎들도 넣지 않을 생각이다. 다듬고 씻는 게 일이다. 난데없이 친정 김치, 시댁 김치로 둔갑시킨 옆집 엄마에게 김치 빚도 갚고 비혼을 고수하며 멋진 인생을 꾸려가고 있는 남동생 김치통도 채워줘야지. 엄마는 내 김치의 맛을 기억해낼까? 엄마가 보고 싶다. 엄마의 김치가 그립다. <김일경 님은 현재 난타 강사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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