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그의 시선을 눈여겨 봐주었다면…
누군가 그의 시선을 눈여겨 봐주었다면…
  • 구혜리 기자
  • 승인 2019.11.08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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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뷰티풀 마인드’로 다시 바라보는 정신보건: ‘조현병’에 관하여

[위클리서울=구혜리 기자] 

영화 ‘뷰티풀 마인드’
영화 ‘뷰티풀 마인드’ 포스터 ⓒ위클리서울

조현병, 그는 누구인가

영화를 본 뒤 나는 내 세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했다. 내가 지금 보고 듣는 것은 진짜인가, 진짜라는 건 무엇인가. 누가 정상의 기준을 만들고 비정상이란 무엇인가. 밤 12시가 넘어 이불을 덮고 누운 그 때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악기 소리에 이것이 실존하는 소리인가 환청인가 또는 이 시간에 악기를 만지는 저 자가 미친 걸까 고민했다. 하지만 그 어느 쪽도 ‘비정상’의 존재를 만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이건 수학이 아니에요.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을 공식으로 만들 수는 없어요. 어떤 가설도, 증거도 없어요. 논리적인 것도 소용없소. 당신의 정신(mind)이 문제의 근원이기 때문이죠.” - 영화 ‘뷰티풀 마인드’ 中

미국의 천재 수학자이자 경제학 게임이론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내쉬 균형’ 이론을 정립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존 내쉬의 실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 ‘뷰티풀 마인드(A beautiful mind)’. 조현병, 이른바 정신분열증에 걸린 주인공 존 내쉬의 삶은 그의 천부적인 수학적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장기간 그를 괴롭힌 정신질환으로 인해 가히 연민에 가까울 정도로 그려진다.

조현병(정신분열병, Schizophrenia)은 1898년 독일 정신과의사 Emil Kraeplin에 의해 ‘조발성치매(demetia praecox)라는 질병으로 소개되었다. 청소년기의 이른 나이에 발병해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붙은 명칭이었다. 하지만 1911년 스위스 정신과의사 Eugen Bleuler는 이 정신질환이 회복될 수 있거나 심각하지 않은 케이스에 주목하며 이 ‘극도로 와해된 행동을 보이는 하나의 증후군’을 희랍어인 schizophrenia(정신분열병)로 명명했다.

우리나라 역시 일본에서 조발성치매를 난치성 개념으로 해석한 ‘정신분열병’을 그대로 사용했는데, 정신분열증이라는 명명에는 다소 부정적인 편견이 담긴다. 인격이 분열된다는 것은 ‘지킬 앤 하이드’의 이중성처럼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내포하고 있고, 비정상의 영역은 지킬 박사가 하이드로 돌변하는 것처럼 기괴하고 위험한 것으로 인식된다. 이런 편견을 없애기 위한 대한조현병학회의 노력 끝에 정신분열증은 2011년 10월 약사법을 비롯하여 ‘조현병’(調絃病, Attunement disorder)이라는 새 이름으로 개정된다. 조현병이라는 명칭의 함의는 가히 아름답다. 조현(調絃)은 ‘현악기의 줄을 고름’을 의미하여 병으로 인한 정신의 부조화를 치료를 통해 조화롭게 하고, 좋은 소리를 내는 현악기처럼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뇌신경망의 이상으로 인해 발병하는 조현병의 특성상 뇌신경망을 너무 느슨하거나 단단하지 않게 적절히 조율해야 한다는 의미도 담겼다.

일반에서는 조현병과 망상을 혼동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망상은 조현병의 주요 증상 중에 하나로 실존하는 현상에 대한 잘못된 판단이나 확신, 사고의 이상 현상을 의미한다. 배우자가 자신을 해할 것 같다거나, 충분한 근거에도 불구하고 특정 현상이나 사실에 대해 부정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반면 현실이 아닌 것을 보고 드는 환각, 환청이 조현병의 전형적인 증상이며, 이 밖에도 횡설수설해서 와해된 언어를 사용하거나 건망증 또는 어색한 움직임, 사회성과 업무 능력이 눈에 띄게 떨어지는 것 등이 조현병의 증상이다.

“정신분열증(조현병)은 퇴행성 질환이에요. 어느 날은 아무렇지도 않다가 시간이 지나면 더 심해질 거예요.” - 영화 ‘뷰티풀 마인드’ 中

조현병의 명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심인성질환이 아닌 유전적 취약성, 환경적 요인, 개인의 성향들이 상호작용해서 일어나는 뇌 질환으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조현병은 항정신병약물과 심리사회적 개입을 통해 치료가 가능하다. 1950년대 초 인공동면을 유도하는 동물실험에서 우연히 클로르프로마진(Chlopromazine)이라는 약물이 저체온증을 유발함이 발견됐고, 이 약을 통해 공격성, 긴장, 망상 등 증상에 진정효과와 치료적 효과가 있음이 전해지면서 이후 이와 유사한 약물들이 빠르게 개발됐다. 쉽지 않은 투병과정 때문에 완치가 안 되는 질병으로 알려져 있지만 조현병은 사망을 포함해 치료되지 않는 예후는 약 25%에 불과하다. (Torrey, Surviving Schizophrenia, 2013)

“정신분열이 무서운 이유는 무엇이 진짜인지 모른다는 거죠. 상상해보세요. 어느 날 갑자기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나 장소, 순간이 사라지지 않고 죽지 않고 더 나빠진다고 믿게 된다면, 계속 그래왔다면.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 영화 ‘뷰티풀 마인드’ 中

하지만 약물치료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운동기능을 방해해서 다양한 부작용을 야기한다. 신경학적 부작용으로는 긴장이상증, 좌불안석증, 가성파킨슨증후군과 손발이나 얼굴이 불수의적으로 움직이는 만발성 운동장애 등이 있고, 비신경학적 부작용으로는 식욕 증가, 호르몬 이상(생리불순), 입마름, 흐린 시야, 발기불능, 혈압저하 등이 있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서 약물치료 중인 존 내쉬의 엉거주춤한 걸음걸이를 따라하며 조롱하는 학생들, 단순한 일상생활에도 어려움을 겪는 존 내쉬의 모습들은 이런 부작용을 표현한 듯하다. 또한 발기부전 역시 빠질 수 없이 중요한 부작용으로 되었는데, 이는 단순히 신체적 정신적 불화뿐 아니라 부부관계를 포함한 주변 환경과의 사회적 기능에서 야기되는 문제들이 조현병 환자에게 큰 장애로 인식됨을 뜻한다. 이처럼 조현병 당사자는 병식 부족, 약물 부작용에 대한 거부감 등을 이유로 지속적인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은데,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약물치료뿐 아니라 심리사회적 개입과 재활서비스의 필요성이 제고된다. 남들과 똑같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조현병 당사자의 가장 큰 소망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진을 치고 일상 속에서, 사회 속에서 바깥으로 내몰고 있는 것은 과연 누구인가.
 

영화 ‘뷰티풀 마인드’ 포스터 ⓒ위클리서울
영화 ‘뷰티풀 마인드’ 스틸컷 ⓒ위클리서울

차이가 혐오를 만든다

조현병은 아직 많이 이질적인 말이다. 정신질환과 관련해서는 “정신병 걸렸어?” “미친놈이네!” 라는 말로 자신 또는 집단과 다른 상대방에게 비하의 의미를 담아 속되게 사용되곤 한다. 그 뉘앙스가 비치듯이 정신질환은 쉽게 혐오와 조롱의 대상이 되어왔고, 정신질환자는 동등한 개인으로서가 아닌, 집단에서 배제되고 격리되어야 할 존재로 낮잡아 간주되었다. 정신질환 중 가장 전형적이자 심각한 상태라고 할 수 있는 조현병, 정신분열증은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처럼 낯설고 두려운 대상으로, 혐오와 공포의 대상으로, 비과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조현병 환자들은 항상 예측 불가능한 존재, 위협이 되는 존재, 일상과 동떨어진, 아니 나의 일상을 침범해서는 안 되는 존재로 가둬진다.

올해 봄에는 유독 조현병에 대한 이슈가 뜨거웠다. 진주 방화 사건을 비롯해서 정신질환을 가진 가해자의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자 언론에서는 이들을 ‘조현병’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어버렸다. 정신질환은 범죄의 필요조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많은 범죄는 사실 조현병(뇌 질환) 자체가 아닌 인격(성격) 장애에 의해 이뤄진다) 무분별한 보도와 매체를 통한 잘못된 정보의 와전이 조현병 당사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만들어냈다. 상업주의적 대중매체를 통한 반복적인 학습과정은 조현병 당사자에 대해 ‘흉악한 정신병적 살인자’ 고정관념과 편견을 만드는데, 이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위험성’이라는 선정적 특성을 부각하는 언론 보도, 수사기관의 의식구조문제이기도 하다. 특히 조현병이라는 정신질환을 이유로 일터에서 쫓겨나거나 취업 기회를 잃는 것 또한 문제로 지적되는데, 이는 조현병 당사자를 경제적 사회적 자원에서 배제시켜 효과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또다시 조현병 당사자를 고립시키는 악순환이 된다. 우리는 일상 속 작은 차이에도 경계하고 두려워하거나, 이를 억압하기 위해 폭력적으로 누군가를 조롱하고 비하해오지 않았는가.

“당사자는 그 모순 안에서 스트레스를 흡수해버리는 사람이 돼요. 나머지 구성원은 상대적으로 당사자한테 원인을 전가해버리면 다른 사람들은 평화가 유지가 돼요. 문제를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 개인의 문제로 던져버리면 되는 거죠. 그리고 그 이면에 있었던 사회적 원인이나 환경 속의 폭력은 회피하는 거죠.” (정신장애인 인권 단체 ‘파도손’ 이정하 대표)
 

ⓒ위클리서울/ 일러스트=정다은 기자
ⓒ위클리서울/ 일러스트=정다은 기자

우리는 서로를 바라봐 줄 누군가가, 마을이 필요하다

사회가 각박해지면 조현병 당사자들은 “죽어”라든지 “너는 틀렸어” 같은 공격적인 환청을 듣는다. 하지만 환경이 긍정적으로 바뀌면 “넌 좋은 사람이야. 열심히 하고 있구나” 같은 목소리로 바뀐다. 일본 훗카이도의 정신장애인 지역공동체 ‘베델의 집’의 설립자이자 사회복지학 교수인 무카이야치 이쿠요시는 조현병 당사자를 ‘광산 안의 카나리아’(위험의 전조증상을 의미하는 비유로 쓰임)에 비유한다. 사회의 여러 불균형이 그 사람에게 발현될 때 개인의 문제 이상으로 사회가 어떻게 바뀌어가야 하는지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영화 속 존 내쉬의 삶은 고독을 반영한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이루어 왔던 것을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무엇을 향해 쫓고 쫓기는 삶은 과도한 경쟁에 몰려 있는 우리 사회를 담고 있다. 어쩌면 자신만의 이론을 만들고자 했던, 그래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 안에 자신을 가두어야 했던 존 내쉬의 삶은 그의 정신질환을 악화시키기에 충분한 여건일 수도 있었다. 누군가 그의 시선을 눈여겨봐주었다면, 그의 가장 오랜 친구인 찰스와 함께 관계를 맺고자 했다면, 조금 더 관심을 가져주었다면 영화의 내용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영화 초반부에서 제시된 ‘내쉬균형’ 이론은 이미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의 단서가 된다.

“아담스미스가 말하기를 최고의 성과는 개인의 경쟁을 통해 창조되는 공동의 재화라고 했어. 이것은 완벽하지 않아. 최고의 성과는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의 이익을 함께 고려할 때 비로소 가능한 거야. 아담스미스는 틀렸어.”

조현병을 앓은 또 다른 실존 인물이자 미국 남캘리포니아대(USC) 법대 교수 엘렌 삭스는 한 미디어 연설을 통해 조현병을 극복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약을 잘 복용할 수 있었던 환경과, 남편의 지지, 지역사회 안에서의 네트워크를 꼽았다. 조현병의 치료는 약물 치료를 통한 정신질환의 소거와 동시에 복합적이며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경제적, 사회적, 심리적 문제들을 이해하고 이를 공동체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 나아가 함께 살아가기 위한 공동체의 노력이 있을 때 가능하다.

“정신 질환 자체가 심해지면 불안 증세도 굉장히 심해지거든요. 불안할 때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어요. 원래 사람이 불안하면 뭔가 자기한테 안정감을 주는 사람이라든가 공간이 불안을 진정시켜줄 수 있잖아요.”

정신장애인인권단체 ‘파도손’의 이정하 대표가 파도손 사무실을 만들면서 그 위층을 당사자들이 자유롭게 오가며 쉴 수 있는 쉼터로 만든 이유다. 가장 좋은 치료는 좋은 사람, 좋은 공동체라는 이정하 대표의 말을 끝으로, 우리 사회 전체가 모든 사람을 위한 쉼터로 커지길 바란다.

 

 

참고문헌
- 정신보건사회복지 총론, 유수현, 신정, 2017
- 영화 속 심리학 : 영화를 통해 정신병리를 쉽게 이해한다, 박소진, 소울메이트, 2014
-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 : 한 정신 의학자의 정신병 산업에 대한 경고, Frances, Allen, 사이언스북스, 2014
- EBS 다큐멘터리 <시선> ‘우리는 조현병 당사자입니다’, 2019.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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