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과 공평 그리고 정의
공정과 공평 그리고 정의
  • 김경배
  • 승인 2019.11.08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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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이주리 기자
ⓒ위클리서울/이주리 기자

[위클리서울=김경배] 자유와 권리의 보장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우선시되어야 할 천부인권이다. 국가기관을 입법부와 행정부 사법부로 나누어 서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적용되게 한 것도 어느 일방의 독주로 인한 국민 기본권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편인 것이다.

빈부격차를 해소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은 당연한 것이지만 실제로 이 같은 정책은 일부의 반발을 불러온다.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는 국가의 두 축이요 근간이지만 민주주의보다는 자유주의 성향을 가진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들만을 탓하고 무한한 양보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비판해야 하는 것은 공정(公正)하지 못한 것이다. 공정하지 못한 방법으로 부(富)를 축적하거나 사회적 지위를 얻는 행위는 사회적 약자에게 괴리감과 자괴감 그리고 국가 존재에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한다.

국민통합이라는 측면에서 경계해야 한다. 한편으로 사회적 공정을 집행하는 국가기관이 검찰이다.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고 힘없고 소외된 사람을 돌보고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며 이해와 신뢰를 얻어내는 검사”. 이것이 ‘검사 선서문’의 내용이다. 검사는 공정의 집행관이다.

하지만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공정’만 가지고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바로 공평성에 대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잘잘못에 대한 시시비비는 당연히 가려야 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어느 한 집단에 편협된 공정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공정이란 이름 아래 자행되는 차별에 불과하다.

이리되면 정의로운 사회가 될 수 없다. 정의로운 사회란 어느 한쪽에 편협되지 않고 그리하여 계층간 지역간 세대간 차별이 존재하지 않으며 그러함 속에 국민통합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말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사회는 모든 것이 갈가리 찢겨져 있다.

검찰의 수사와 법의 심판이 공정하고 정의롭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선후가 있고 중요성에 차이가 있다. 그런데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사건에 대해서는 그리 진지하지 않고 순서에 있어서 별로 중요성이 느껴지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심혈을 기울인다.

물론 이러한 판단의 근거가 개인적일 수 있고 상대에 따라 각기 그 판단이 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보편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는 것이 문제다. 진실이 호도되고 핵심이나 본질을 파헤치기보다는 주변과 피상적인 것에 매몰한다.

더구나 여기에 그치지 않고 비슷한 류의 사건이나 사태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형식적으로만 일을 처리한다. 이것은 보편타당성에 어긋나는 행위이다. 즉 그 행위 자체가 공정하고 정의로울 수는 있지만 공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법이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국가 존립의 이유는 억울하고 가진 것 없는 서민들을 지켜주는 것이며 모든 이들이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이지 가진 자들을 위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칼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용도가 달라진다. 하지만 칼이란 약자한테 쓰는 것이 아니라 강한 자에게 쓰는 것이다. 맨손으로 이길 수 있는데 굳이 칼까지 들고 싸울 필요는 없다. 자신보다 강해서 맨손으로 이길 수 없는 상대일 경우 칼을 쓰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가치는 본인이 올리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주변의 평과 시선을 받으며 살아간다. 그것이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든 평범한 범인(凡人)에 불과하든 우리는 주변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그 시선은 생을 마감한 이후에도 따라다닌다.

우리 주변엔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차별이 존재할 수도 있으며 공정하거나 정의롭지 못한 일들도 분명히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억울하고 힘없는 약자들을 배려하지 못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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