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禍)와 복(福)과 착한 일
화(禍)와 복(福)과 착한 일
  • 박석무
  • 승인 2019.11.18 1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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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박석무 ⓒ위클리서울
박석무 ⓒ위클리서울

[위클리서울=박석무] 세상일이란 알 수 없는 일이 참으로 많습니다. 어떤 천재도, 어떤 영웅이라도 세상의 모든 이치를 다 알아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다산도 세상 이치나 “우주 간의 모든 일을 다 깨닫고 그 이치를 완전히 정리하고 싶었다(「노자 삼아 아들에게 내려준 가계」)”라고 말하며 온갖 이치를 다 깨치고 싶었으나 그렇게 하지 못함을 한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산이 알 수 없는 일의 하나를 분명하게 예를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의심을 풀 수 없는 문제가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화와 복의 이치에 대해서는 옛날 사람들도 의심해온 지 오래되었다. 충(忠)과 효(孝)를 한다고 해서 꼭 화를 면하는 것도 아니고, 방종하여 음란한 짓을 하는 놈이라고 꼭 반복하지만도 않다(禍福之理 古人疑之久矣 忠孝者未必免禍 淫逸者未必薄福)”라고 말하여 화와 복의 원리는 알 수 없다는 것이 다산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알아야 할 인간의 일을 다산은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그러나 선(善)을 행하는 것이 복을 받을 길이므로 군자(君子)는 애써 착하게 살아갈 뿐이다(然爲善是受福之道 君子 爲善而已:「示二兒家誡」)”라고 말하여 복을 받건, 화를 당하건 가리지 않고 착한 일을 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 군자의 길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의 세상은 너무나 야박해졌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화는 피하기를 바라고, 어떻게 해서라도 복만 받기를 원하는 것도 인간이라면 의당 행하는 일이지만, 문제는 복만 받을 때보다도 화를 당하는 경우, 아무리 해도 피할 방법이 없는 경우가 있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경우, 억지로 화를 피하려다가는 더 큰 화란을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기에 한걸음 더 들어가는 인간의 결단이 요구됩니다. 착한 일을 하다가 당하는 화란, 인간 능력의 범위에서 벗어난 일이라면,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이 다산의 뜻이었습니다.
 

다산 정약용
다산 정약용

“천리(天理)는 돌고 도는 것이니 한번 넘어졌다고 결코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天理循環 不必一 而不起也:「示二兒家誡」)”라고 말하고는 다시 일어날 방법을 강구해야지, 한번 당한 화란 때문에 포기하고 주저앉아서는 영영 끝장이라는 뜻의 이야기입니다. 아무런 죄가 없었지만, 모함과 비방에 걸려 ‘천주학쟁이’라는 누명을 쓰고, 겨우 사형에서 벗어나 언제 풀리리라는 기약도 없는 유배 살이 집안이어서, 언제나 자신의 집안은 ‘폐족’이라는 큰 화란을 당했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면서 아들들에게 주는 경계의 말에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착한 일을 하고 살아가는데 화를 당했노라는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과한 행위를 하다가는 더 큰 화란을 당하고 만다는 경계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화란을 당하더라도, 역시 군자가 해야 할 일은 착한 일일뿐이니, 착한 일만 계속해서 하라는 뜻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화와 복은 어떤 이치에서 오는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착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이 불의의 사고를 당해, 얼마나 큰 고통을 당하고 있으며, 세상에서 못된 일만 하는 사람들도 어느 순간 잘 먹고 잘 살아가기만 하는 꼴을 우리는 수없이 목격합니다. 그렇다고 군자가 악한 일을 할 수 없지 않은가요. 역시 착한 일을 하는 수밖에 딴 길이 없습니다.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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