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서울/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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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정다은 기자] 황은경 시인은 2015년 시집 『겨울에는 꽃이 피지 못한다』로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시집으로는 『겨울에는 꽃이 피지 못한다』와 『마른 꽃이 피었습니다』가 있다. 2017년 다온예술인협회 문학상 본상, 2018년 한국 여성문학100주년 기념 문학상, 2019년 작가와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2019년 호남문학상 수상, 대전 서구문학회, 시대읽기작가회 사무국장, 어린왕자문학관 사무국장을 역임했으며, 인터넷신문 학부모뉴스24 문화예술부장, 작가와 문학, 인향문단 편집위원, 2019년 문체부산하 상주작가 공모 어린왕자문학관 상주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2019년 대전문화재단 창작기금을 받았다.

이번 시집 『생각의 비늘은 허물을 덮는다』는 ‘진실의 나’와 ‘허위의 나’의 싸움의 기록이자 그 성찰의 결과라고 할 수가 있다. 생각의 비늘이 돋아나고 생각의 비늘이 떼어지는 과정 속에서 “몸살이 나도/ 비늘은 꼿꼿하게 은빛을 자랑하고”([생각의 비늘 2]) 더욱더 아름답고 역동적인 삶의 진경이 펼쳐지게 된다.

 

 

늘 애가 타던 세상

처음이 마지막이 될까 봐

돌아서는 등 뒤로

스며들어오는 차가운 물고기

팔딱이던 물고기 힘을 다해

비늘이 다 떨어져 나갈 때까지

뼈 시리게 온 힘으로 바다로 나갈 것이다.

눈물은 보이지 않게 물거품과 섞인다.

등대의 붉은 눈빛과 타는 속은 무르익어

갈빛처럼 물들어버린 저기, 저 물고기

꼬리 없이 나에게 헤엄쳐 온다.

바다의 뼈가 부딪혀 요란하다.

 

- 「생각의 비늘 3」 전문

 

 

위 시에서 시인은 있는 힘을 다해 “늘 애가 타던 세상” 밖으로 나아가려는 “차가운 물고기”의 삶을 여실히 표현하고 있다. 물고기는 (생각의) 비늘이 다 떨어져 나갈 때까지 온 힘으로 팔딱이며 바다를 향해 나아간다. 비늘은 강가의 수호신이라고 했다. 강가에 사는 물고기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 비늘이라는 말이겠다. 비늘을 떨어내는 고통을 감내하지 않으면 물고기는 바다로 나갈 수 없다. 바다로 나아갈수록 물거품과 섞이는 물고기의 눈물은 그래서 그만큼 더 많아진다. 시인은 “등대의 붉은 눈빛과 타는 속은 무르익어/ 갈빛처럼 물들어버린 저기, 저 물고기”라는 이미지로 물고기가 시간과 더불어 사는 방식을 표현하고 있다. 떨어져 나간 비늘이 물고기를 갈빛으로 물들인다. 그저 물드는 게 아니라 “무르익어” 물드는 것이다. 물고기 스스로 시간을 삭이지 않으면 무르익을 수 없는 것이 ‘갈빛’이라고 말해도 좋겠다.

수호신인 안개가 있어 물고기는 비로소 바위를 탁탁 치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면서 물고기는 바다로 나아가는 꿈을 꾸었고, 그 꿈이 커질수록 물고기는 온몸이 부서지는 몸살(「생각의 비늘 2」)을 앓아야 했다. 몸살 난 몸을 풀려면 끊임없이 움직일 도리밖에는 없다. 생명의 젖줄인 안개에 묶인 채로 어떻게 바다로 나아가는 꿈을 꿀 수 있을까? 강에서 바다로 가는 길은 이렇게 자기를 낳은 뿌리와 떨어지는 극한의 고통을 몰고 온다. 시인은 갈빛으로 물든 저 물고기가 “꼬리 없이 나에게 헤엄쳐” 오는 상상에 빠져든다. 새로이 태어난 저 물고기를 맞으려면 시인 또한 갈빛으로 물든 삶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온몸을 덮은 “생각의 비늘”을 떼어내고 저편 바다를 향해 묵묵히 가는 삶. 황은경의 시작(詩作)은 무엇보다 자기를 낳은 생명의 뿌리와 단절하는 지독한 고행 속에서 이루어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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