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류지연의 중국적응기 '소주만리'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내 나이 38세.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안정적인 한국생활을 뒤로 하고 타국에서 하루아침에 외노자(외국인 노동자의 준말) 신세가 되었다. 지리적으로는 가깝지만 심리적으로는 아프리카만큼 멀게만 느껴졌던 중국이라는 나라, 과연 잘 적응할 수 있을까? 38살 아줌마의 중국 체험기, 지금부터 시작해본다.

 

가을이 성큼 다가온 11월의 주말, 상해로 주말 나들이를 나섰다.

소주에서 비교적 가깝고 쉽게 놀러갈 수 있는 도시가 바로 상해이다. 차로 두 어 시간 남짓 달려야 닿을 수 있는 곳이긴 하지만, 넓디넓은 중국 대륙에서 차로 두 어 시간이면 한국인 체감 상 옆 동네 수준으로 가깝다고 봐도 무방하다. 우리나라 KTX보다 훨씬 빠르다는 고속철(高铁, gāotiě)을 타면 소주역∼상해역 기준으로 최소 25분 만에 상해에 닿을 수 있지만 중국에서는 기차를 탈 때도 국내선 항공기를 타는 것 마냥 시간을 앞당겨 기차역에 도착해야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걸리는 시간은 비슷하다. 가장 번거로운 점은 기차표를 온라인으로 사더라도 승차 전 기차역이나 지정 발권소에 가서 실물 표를 발권해야 한다는 점이다. 요즘은 일부 노선에서 (실물 표 없이) QR코드로 승차 가능하다고 하는데, 외국인은 열외이다.

한편 기차역에 들어갈 때 한 명 한 명 표와 신분증 검사, 검색대에서 짐 검사를 받는다. 기차역 입구 줄만 해도 주말이나 성수기에는 끝도 없이 길게 늘어진다. 기차역 안에 들어간 후에도 기차 출발 일정 시간 전까지는 플랫폼에 올라갈 수 없다. 로비에서 기다리다가 플랫폼이 열리면 그때 다시 한 번 표와 신분증, 짐 검사를 거쳐 플랫폼으로 올라간다. 이 줄을 통과하는 것도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린다. 기차를 내려서도 플랫폼 밖으로 나올 때는 반드시 기차표를 개찰구에 통과시켜야 한다. 이래저래 번거로움을 생각하면 차라리 자차로 가는 게 골머리가 덜 아프다.

그리하여 차를 몰고 토요일 낮, 세 식구가 상해로 향했다. 첫 번째 목적지는 템즈타운(泰晤士小镇, tài wù shì xiăozhèn – 템즈를 음역한 ‘泰晤士’에 ‘작은 마을’이라는 뜻의 ‘小镇’을 붙인 명칭)이라는 영국식 마을이다. 중국여행을 하면서 웬 영국마을이냐 싶겠지만, 아무래도 중국보다는 영국이 더 이국적이고 마음이 끌리는 것이 사실. 딸내미가 어려 영국을 실제로 가보긴 힘드니 아쉬운 대로 영국마을로 마음을 달래보고자 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자동차 여행은 항상 마음이 부산하다. 가장 큰 문제는 이동 중의 배변. 기저귀를 하던 시절에는 차라리 기저귀를 갈아 채워 해결하면 됐는데, 어린이가 되니 더 곤란하다. 아니나 다를까, 한창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딸아이가 화장실에 가고 싶단다. 더군다나 큰 거다. 일단 급하게 고속도로를 빠져나온다. 지도에서 공중화장실을 찾으니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한 군데가 있다. 급히 논밭 옆의 비포장도로를 달려 화장실 근처에 차를 세운다. 그런데 화장실 외양이 아주 을씨년스럽다. 냄새야 말할 것도 없다. 수세식이라 그렇겠거니 생각하며 화장실에 발을 들이는 순간, 이럴 수가... 수세식도 아닌 푸세식이다. 내 인생 만 37년에 말로만 듣던 푸세식을 처음으로 보게 된다. 칸막이도 없는 화장실에는 벽 한쪽을 따라 바닥이 20센티 정도 밭고랑처럼 파여 있고 그 안에 있는 건더기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도저히 배변이 가능한 수준이 아니다. 21세기에 푸세식 공중화장실이라니 대륙의 다양함에 놀람을 금할 길이 없다. 결국 딸아이의 배변은 그 옆 수풀에서 자연을 벗 삼아 해결해야 했다.

화장실 해프닝을 뒤로 하고 영국마을에 도착한다. 테마공원처럼 돈을 내고 들어가서 보는 건가 했는데, 보아하니 실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다. 웃긴 건 마을 초입에 떡하니 스타벅스가 자리잡고 있다는 점. 영국신사도 미국의 자본주의 맛은 이길 수 없는 건가 하는 생각에 쓴웃음이 나온다.

영어로 된 길 이름들과 함께 길가에 드문드문 세워진 빨간 공중전화 부스를 보니 영국 느낌이 물씬 풍긴다. 저층으로 지어진 빌라 형태의 아파트들이 제법 운치가 있다. 마을 한쪽으로는 분수가 있는 광장과 커다란 호수가 있다. 상가가 밀집한 곳으로 가니 영국 느낌이 더 강해진다.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에서 볼 법한 트럼프 모양을 연상시키는 나무 장식의 박공지붕집, 해질녘 어두컴컴한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솟아오른 성당의 십자가, 끝없이 이어지는 갈색 벽돌집들. 간판에 붙어있는 한자와 사람들 사이에서 들리는 중국어만 아니었다면 런던이라고 해도 손색없는 광경이다.
 

사진 1)길가에 서 있는 공중전화부스. 해리포터 속의 마법부 사무실로 가는 통로가 떠오른다.
길가에 서 있는 공중전화부스. 해리포터 속의 마법부 사무실로 가는 통로가 떠오른다.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영국마을의 이모저모. 간판만 떼면 진짜 영국 같다.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영국마을의 이모저모. 간판만 떼면 진짜 영국 같다.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영국마을의 이모저모. 간판만 떼면 진짜 영국 같다.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생각해보면 과거 조차지였던 관계로 이렇게 커다란 외국인 마을이 형성될 수 있었다는 것은 아시아 국가들에겐 아픈 과거이다. 짓밟힌 주권을 그 어떤 미사여구로 포장할 수 있을 것인가. 세월이 흘러 역사의 아픔은 파묻히고 이제는 그저 관광명소 중 하나일 뿐인 장소가 돼버린 것을 생각하니 일순 가슴이 아린다.

부끄럽지만 나의 사회적 자아와는 별개로 개인적 자아는 나도 이 동네에서 ‘중국이지만 영국에 살듯이’ 살아보고 싶단 유치찬란한 생각을 펼쳤다는 것도 밝혀야겠다.

슬슬 해가 넘어가기 시작할 무렵, 상해 도심을 향해 차를 몰았다. 상해 여행의 핵심이라는 와이탄(外滩, ‘바깥 여울’이라는 뜻으로 상해 황포강 일대의 고층 빌딩 밀집 지역을 가리킨다)을 보기 위해서다.

작년에 상해 디즈니랜드를 방문했을 때 4D 놀이기구로 상해의 야경을 체험한 적이 있다. 그 당시 눈앞에 4D로 펼쳐지는 상해의 야경은 비교 대상이 없을 만큼 아름다웠기에 꼭 한번 실제로 보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드디어 그 소망(?)을 이루게 된 것이다.

보통 기대를 하면 실망도 큰 법인데, 와이탄은 다행히도 명불허전이었다. 상해 시내를 보다 보니 소주가 시골처럼 느껴졌다던 지인의 말이 와 닿았다. 소주도 인구 천만이 넘는데다가, 서울의 열네 배 이상 되는 면적(소주의 면적은 8,488.82㎢, 서울의 면적은 605.25㎢라고 한다)을 가진 도시이니 결코 작지 않다. 면적으로는 오히려 상해(6,340㎢)보다 더 넓을 정도이다. 그렇지만 인구 이천사백만의 위용은 당해낼 수 없는 것일까. 상해가 각도에 따라 끊임없이 색깔을 바꾸는 만화경이라면, 소주는 점잖은 한 폭의 동양화 같은 느낌이다.

황포강을 사이에 둔 양쪽 강둑으로는 고층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최신 건축 박람회의 ‘조명’ 부분에라도 온 듯이 건물마다 신기한 무늬와 색깔의 조명을 내뿜는다. 강 위에는 관광객들을 태우고 바쁘게 오가는 유람선이 한가득이다. 거리에는 영국풍의 빨간색 2층 관광버스가 달리고, 역시나 조차지 시절 세워졌을 듯한 유럽풍의 석조 건물이 환하게 빛난다.
 

와이탄 거리의 석조건물. 건물은 유럽인데 깃발은 중국인 게 묘하게 위화감이 든다.
와이탄 거리의 석조건물. 건물은 유럽인데 깃발은 중국인 게 묘하게 위화감이 든다.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와이탄의 야경, 몇몇 건물들은 쉴 새 없이 글자와 무늬, 색깔이 바뀐다.
와이탄의 야경, 몇몇 건물들은 쉴 새 없이 글자와 무늬, 색깔이 바뀐다.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아이의 바람을 따라 50분 동안 와이탄을 오간다는 2층 유람선에 올랐다. 번쩍거리는 빌딩들이야 사실 50분 동안 줄창 볼만한 볼거리는 아니었지만 배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는 데 의미를 두었다. 셀카봉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인터넷 방송을 중계 중인 듯한 서양인이 눈에 띄었다.

와이탄의 열기를 뒤로 하고 외곽의 해양공원 근처에 예약해둔 숙소로 향했다. 그런데 아뿔싸, 여권을 챙겨오는 걸 깜빡했다. 근거리 여행이고 비행기나 기차를 안 타다보니 외국인 신분을 잠시 망각한 것이다. 신분증 없이는 호텔 숙박이 불가능하다. 이미 밤 열 시가 훌쩍 넘은 시각, 그냥 돌아가라고 하면 어쩌나 마음을 졸였다. 다행히 호텔에서 파출소에 미리 찍어 뒀던 여권 사진을 보내 이리저리 확인을 한다. 1시간처럼 느껴지는 십 여분이 지나 숙박이 가능하단 말을 들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따. 집에 가자마자 아예 여행가방에 여권을 넣어두리라 다짐한다.

다음날은 해양공원(상해해창해양공원)으로 향했다. 이름은 공원인데 들어가보니 놀이기구와 수족관·전시관이 반반씩 섞여 있는 곳이다. 바다 근처라 그런지 공기가 깨끗하고 가을볕이 적당히 내리쬐는 완벽한 날씨였다. 펭귄을 시작으로 고래, 상어, 가오리, 물고기, 등등 각종 바다생물들을 만나보았다. 물고기를 먹거나 키우는 것엔 관심이 없지만 해수어들의 알록달록한 색감은 언제 봐도 기분이 좋다. 여담이지만 해수어의 이미지 메이킹에는 디즈니가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아이들에게 크라운피쉬는 무조건 니모고, 블루탱은 무조건 도리이며, 더할 나위 없이 귀여운 생물들이다.

공원을 가로지르는 케이블카를 한 번 이용해보고, 집 근처에 있는 피자집과 똑같은 상표가 보여 점심을 먹으러 들어갔다. 대도시라 그런지 피자도 집 근처보다 맛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원을 거닐다 보니 공원 안의 강 위에서 수상스포츠 쇼를 하는 게 보였다. 몇 년 전 TV로만 잠깐 보았던 ‘워터제트팩’쇼였다. TV에서 봤을 때는 잘 몰랐는데, 실제로 보니 스파이더맨 영화에 나오는 ‘그린 고블린’(1편에 나오는 친구 아빠, 녹색 옷을 입고 비행물체를 탄 악당)이 떠올랐다. 할리우드 액션영화의 컴퓨터 그래픽 처리마냥 위엄 있고 중후해 보였다.

본전을 뽑기 위해 놀이기구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아이용 놀이기구는 한 곳에 오밀조밀 모여 있었다. 그 중 십여 미터 높이 정도로 축소해놓은 아이용 자이로드롭이 있었는데, 딸아이는 재밌어하는데 나는 어찌나 무섭던지… 기구 정원 16명 중 제일 크게 비명을 지른 것 같다. 분명 스무 살 전후에는 성인용 자이로드롭을 연속으로 두세 번씩 탔던 기억이 있는데, 그 시절 어찌 그럴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신기하다. 아이를 낳으면서 용기도 같이 낳아버린 건가 싶다.

자이로드롭에 꽂혀 계속 타고 싶다는 아이의 성화에 남편과 둘이 번갈아가며 연속 5번을 도전했다. 알찬 하루를 끝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간만에 보낸 보람찬 주말이다.
 

해양공원 입구, 범고래 분수가 관광객들을 반겨준다.
해양공원 입구, 범고래 분수가 관광객들을 반겨준다.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류지연 님은 현재 중국 소주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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