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구하는 보기, 듣기, 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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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혜리 기자
  • 승인 2019.12.02 1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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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위클리 마음돌봄: 첫 번째 돌봄, 자살은 예방할 수 있다

[위클리서울=구혜리 기자] 

아프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죽음 이전에 질병과 사고를 완전하게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잘 이겨낼 수는 있다. 도리어 이를 회복해가는 과정에서 어떤 이의 삶은 더 단단해지기도 한다. 몸이 아프면 온 신경은 아픈 부위에 집중된다. 하물며 감기나 생채기 하나에도 처방을 받거나 적절한 요법을 취하는데 마음에 난 상처에는 유독 무관심하다. 하지만 마음에도 돌봄이 필요하다. ‘위클리 마음돌봄’은 정신건강에 관한 단편 에세이 모음이다. 과열 경쟁과 불안사회를 살아가는 당사자로서 스스로와 사회를 돌아보는 글이다. 글쓴이의 마음의 조각을 엿보는 독자에게도 작은 위로를 전할 수 있길 바란다.

 

ⓒ위클리서울
ⓒ위클리서울/ 그래픽=정다은 기자

최근 유명 연예인의 자살 소식을 잇따라 접하며 자살이라는 말이 일반인의 삶 깊숙이 침투했다. 누군가의 죽음을 목격하며 무거운 감정을 쉬이 떨쳐내는 이가 몇이나 될까. 베르테르 효과(닮고자 하는 이상형이나 사회 유명인의 자살을 모방하여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라는 말이 대중화되고, 보건복지부는 작년 우리나라 자살률 상승의 원인을 ‘모방자살‘로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모방자살로 자살의 원인을 단순하게 규명하는 이 해석에 대해 비판한다. 보다 근본적인, 그래서 해석이 어렵고 불편하지만 반드시 되감아야할 일, 자살은 예방할 수 있었다는 점에 초점을 둔다.
 

이유 없는 죽음은 없다

사실 죽고 싶어서 죽는 사람은 없다. 추후에 소개할 중앙심리부검센터에서 분석한 바에 의하면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평균 3∼4개의 스트레스를 복합적으로 안고 이것이 쌓여 감당할 수 없는 정도가 될 때 자살을 생각하고, 생각이 계획으로, 계획이 구체적인 시도로 옮겨진다. 자살을 생각에서 계획으로 옮기기까지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과 감정적인 결단을 요하지만 계획에서 시도까지는 빠르게, 또 가장 높은 위험성을 보인다. 그래서 자살을 눈앞에 둔 사람들은 끊임없이 신호를 보낸다. 故 구하라의 경우 이전 자살 시도 이력과,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정황 상 자살 위험에 대한 신호를 보여 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신호를 보지 못했거나, 보지 않은 것은 바로 우리들이다. 그러니 “힘들면 그럴 수도 있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라는 말은 이율배반적인 것이다. 이는 죽음의 원인을 단순히 개인의 책임으로 축소시키기 때문이다. 죽을 수밖에 없었거나 죽을 만 해서 죽는 사람은 없다. 살아 있는 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을 진다. 누구나 때로 삶을 포기하고 싶은 감정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사실 우리는 그런 아픈 감정을 겪으면서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어간다. 하지만 혼자서 어른이 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배움을 얻고, 관심을 통해 위기로부터 서로를 지켜낼 수 있다.
 

자살을 암시하는 신호 <보기>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자살을 생각하거나 삶을 포기하려고 한다는 것을 먼저 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의 70~80%는 자신의 불안정한 상태와 위험성에 대해 신호를 보낸다. 이들은 도움을 바라고 있지만 단지 우리가 알아채지 못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신호를 보고, 발견하고, 알아채야 한다. 한 경비원은 지하주차장에서 번개탄으로 자살시도를 하려는 사람을 발견하고 그를 꾸짖어 돌려보냈지만 며칠 뒤 같은 곳에서 다시 자살을 시도해 싸늘하게 숨진 그를 발견하고 상심을 호소했다. 자살시도는 그 자체로 자살과 직결되는 큰 신호이며, 그 외에도 언어적 행동적 상황적 신호를 주의 깊게 읽을 필요가 있다. 신호를 발견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예컨대 가족과 주변인에게 알리고, 문제의 상황을 해결할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적극적인 관심으로부터 한 사람의 소중한 삶을 지키는 것이 시작된다.

언어적 신호로는 “죽고 싶다”라는 직접적인 표현과 신체적 불편함의 호소가 대표적이다. 절망감과 죄책감을 느끼는 상황적 요소로 인해 이를 표출하는 감정표현 못지않게 신체적인 건강상태도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매일 아침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면 느끼는 감정이 고통이라면 어느 누가 삶을 이어가고 싶겠는가. 어디가 아프다, 어디가 불편하다는 사랑하는 사람의 신호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될 이유다. 또 우울과 불안의 동반으로 이전과 달라진 감정적 변화를 보이거나 업무상 능력, 일상적인 수행 능력과 집중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인다면 관심을 기울이자. 표면적인 증상뿐 아니라 감정적인 면을 들여다보면 더 근본적으로 위험을 예방할 수 있다. 행동적 신호로는 자살을 준비하는 행동, 자해흔적, 전에 없던 행동들, 외모의 변화, 일상생활 능력의 저하 등이 있다. 부쩍 컨디션이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거나, 소중히 아끼는 것을 양도하거나 정리하는 행동을 예로 들 수 있다. 또 가까운 사람이라면 상황적 신호를 발견할 수도 있는데, 심한 감정노동 환경에서의 스트레스, 해고나 실직 위기, 업무상 급격한 변화 등이 있다.
 

너를 꼭 살리고야 말겠다는 <듣기>

일반적으로 자살은 불편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야기다. 누군가의 죽음을 앞에 놓고 가볍게 이야기 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죽고 싶다는 말을 들으면 당황하거나 이야기의 주제를 돌리고, 못 들은 척하거나, 야단치고 설득하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이런 반응들은 생명을 구하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 듣기법이다. 일반적으로는 당연한 반응이지만 정작 위기 상황에 대해 문제를 축소하거나 회피하기 때문이다. 비난, 비판, 화내거나 충고하는 말투, 섣부른 해결책을 제시하는 대처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자살 예방에 도움이 되는 듣기란 무엇인가? 첫째로 들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즉, 듣기 위한 자세를 준비하는 것이다. 앞서 우리는 ‘신호’를 감지하는 법을 배웠다. 이 신호를 가볍게 흘리거나 놓치지 않고 충분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조성한다.

들을 준비가 되었다면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에 경청하라. 경청의 사전적 의미는 ‘공경하는 마음으로 들음’인데, 그 자체로는 너무 진부하고 쉬이 쓰이는 감이 없이 않아 크게 와닿지 않는 편이다. 또 때로 경청은 수동적인 뉘앙스를 비친다. 하지만 소중한 누군가의 생명을 앞에 두고 우리는 ‘적극적인 경청’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적극적 경청이란 의도를 담아 듣는 것이다. 즉 적극적 경청의 핵심은 결국 ‘너를 꼭 살리고야 말겠다’는 의도에 있다.

그렇다면 적극적인 경청은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우선적으로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고, 공감의 표현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기술적으로 가장 쉽게 공감을 전하는 방법은 상대방이 했던 말을 같은 의미이나 다른 어휘로 대체해 간결하게 되풀이해주는 것이다. 또한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이 왜 죽고 싶은지에 대해 들었다면 ‘살아야 할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죽어야겠다는 마음과 동시에 누군가 자신을 도와주길 바라는 마음을 동시에 갖고 있는데 바로 이 양가감정을 이용해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다.
 

<말하기>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언제부턴가 다정해지는 게 어려운 사회가 되었다. 바빠서, 곁에 있는 사람만큼이나 나도 힘들어서,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무관심이 가장 편한 방법이 되었다. 하지만 함께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스스로를 고립에서 구해낼 필요가 있다. 그래서 말하기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내가 아플 때 아프다고 말할 연습, 누군가 힘들 때 괜찮냐고 물어볼 연습. 괜찮냐고, 돕겠다고, 함께 풀어나가자고. 또 작은 행복을 함께 되찾아 가자고.

평균적으로 1년에 1만2463명이, 1일에 34명이, 1시간 1.42명이 자살을 선택해 죽음에 이른다. 당신이 이 글을 읽는 데 1시간 썼다면 여기까지 읽는 동안 어디선가 누군가는 이생을 떠난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죽음은 막을 수 있었다. 이유 없이 죽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의 아픔을 함께 지기 싫어서 외면하고 도망쳤던 우리들만 남아있을 뿐이다. 어둠을 빠져나오는 가장 빠른 길은 스스로를 혼자 두지 않는 것이다. 고립되지 말자. 스스로를 혼자 두지 말자. 좋아도 나빠도 나를 사람들 사이로 던져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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