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뉴스지금여기] 정민아의 영화이야기

[위클리서울=가톨릭뉴스지금여기 정민아]  같은 사람을 다른 방식으로 조명하는 영화 두 편이 있다. 한 편은 다큐멘터리로 그의 현재를 기록한다. 또 다른 한 편은 극영화로 그가 현재의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여정과 그의 과거를 보여 준다. 두 영화의 주인공은 바로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다큐멘터리 '프란치스코 교황: 맨 오브 히스 워드'는 11월 21일에 개봉하여 관객과 만나고 있고, 극영화 '두 교황'은 넷플릭스에서 투자한 영화로 12월 11일에 극장에서 개봉하여 일주일 뒤 넷플릭스 사이트를 통해 감상할 수 있다. 주인공의 빼어남 때문인가. 두 영화는 모두 수작이며, 두 영화가 주는 묵직한 감동은 2019년을 꽤나 아름답게 마무리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 맨 오브 히스 워드', 빔 벤더스, 2018. (포스터 제공 = 백두대간)
'프란치스코 교황: 맨 오브 히스 워드', 빔 벤더스, 2018. ⓒ위클리서울 (포스터 = 백두대간) 

말과 삶이 일치하는 한 사람 '프란치스코 교황: 맨 오브 히스 워드'

2013년에 새로운 교황으로 선출된 아르헨티나의 추기경 베르골료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따서 프란치스코란 이름을 최초로 고른 266대 교황이 되었다. 1200년대 인물인 성 프란치스코는 평생 청빈을 실천하였고, 지구 위에 사는 모든 생명체와 자연에 대한 깊은 사랑을 실천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궁 대신 소박한 방을 선택했고, 고급 리무진 대신 소형 승용차를 타며, 축구에 열광하고 탱고를 즐기며 유머를 사랑하는 몹시도 인간적인 인물이다. 빔 벤더스 감독은 전 세계를 돌며 빈곤 문제, 환경 문제, 그리고 평화와 사랑을 이야기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여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인터뷰를 통해 그의 솔직한 속내를 보여 준다.

빔 벤더스는 1970년대와 8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뉴저먼 시네마를 대표하는 이로, '파리 텍사스'(1984)로 칸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하고 '베를린 천사의 시'(1987)와 같은 걸작을 남겼다. 뉴시네마의 시대가 저문 뒤 벤더스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세상과 사람을 관찰한다. 쿠바 음악 열풍을 되살린 '부에나 비스터 소셜 클럽'(1999)이나 한 전설적 안무가의 정신적 깊이를 다룬 '피나'(2011) 같은 작품에서 그는 자신의 영역에서 초인적 힘을 가지고 헌신해 온 사람들을 통해 세상을 읽는다. 그런 그에게 로마 교황청이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의뢰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빔 벤더스는 카메라 초점을 로드무비 속 유랑하는 젊은이에서 점차 진실의 기록인 다큐멘터리 속 현명한 노인으로 옮겨 갔고, '프란치스코 교황' 속 피사체인 교황을 앞에 두고 감독은 질문을 던진다. 미소 띤 교황의 대답은 한 편의 잠언록처럼 가슴속에 깊숙이 파고든다.

 

'프란치스코 교황: 맨 오브 히스 워드'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백두대간)
'프란치스코 교황: 맨 오브 히스 워드' 스틸이미지. ⓒ위클리서울 (이미지 = 백두대간)

성 프란치스코의 삶을 무성영화처럼 재현한 흑백 장면이 군데군데 삽입되고, 교황이 세계를 다니며 전하는 메시지들은 쉽고 명료하게 전달된다. 가난, 노동, 환경, 정의, 이주와 같은 전 지구적 문제이자 삶의 보편적 문제에 대한 교황의 대답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지침이 된다.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말이다.

성 프란치스코의 정신을 이어받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청빈의 삶과 개혁적 메시지를 세상에 전파하고 있다. 남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소통 능력을 발휘한 그는 이렇게 세계인의 친구가 되었다. 그 교황님이 성 토마스 모어의 ‘유머를 위한 기도’하며 매일 웃는 연습을 한다고 한다. “주님, 제가 먹은 음식을 잘 소화하도록 해 주시고, 아울러 소화하기 좋은 음식도 내려 주소서”로 시작하여, “주님, 남을 즐겁게 해 줄 유머 감각을 선사하시고, 제 삶 속에 스며 있는 많은 행복을 느끼며, 그 행복을 내 이웃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은총을 내려 주소서”로 끝맺는 사랑스러운 기도다.

이 작품은 교황을 단지 지켜보며 관찰하는 다큐가 아니라, 그의 삶 안에서 자신에게 내려진 숙명 같은 신의 숙제를 푸는 한 인간을 보게 한다. 이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시대에 말과 삶이 일치하며 인종, 국적, 종교, 문화를 초월해 세계에 사랑과 평화를 전파하는 보편적 인간이자 따뜻한 세계 리더가 있다는 게 참으로 다행이다. 거장의 카메라는 그의 정신적 깊이를 꿰뚫는다. 거인인 프란치스코 교황을 담아내기에 적절한 명장의 솜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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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맨 오브 히스 워드' 스틸이미지. ⓒ위클리서울 (이미지 = 백두대간)

내 친애하는 적 '두 교황'

종교 영화? 아니, 이 영화는 긴장감이 넘치는 스릴러다. 영화를 만든 페르난도 메이렐레스는 브라질 출신 감독으로 '시티 오브 갓'(2002)이라는 폭발적 액션 스릴러 영화로 세계영화계를 놀라게 했다. 무법천지 도시의 갱단을 그리던 그가 교황 이야기를 다룬다는 것이 어울리지 않아 보일 것이다. 하지만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그 뒤를 이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일대일 대결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박진감이 넘친다. 대결이라고 해서 서로 상처를 주거나 피를 쏟는 싸움이 아니다. 자신의 신념과 개성을 양보하지 않으며 상대방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우아하게 주고받는 말들의 교향곡이다.

명예욕이 가득한 야심가 베네딕토 16세는 바티칸의 비리와 신부들의 성추문 스캔들을 해결하지 못한 채 자진 사임하기로 한다. 아르헨티나의 정치적 격변 속에서 신의 명령을 이해해 온 추기경 베르골료는 베네딕토 16세의 내심을 모른 채 은퇴하기 위해 교황청을 방문한다. 오랜 준비 끝에 교황이 되었지만 교회의 추락을 막을 수 없다는 한계를 깨닫고 베네딕토 16세는 자신과 다른 길을 걸어온 베르골료를 후임으로 설득한다. 다른 신념, 다른 성정, 다른 목표, 다른 취향을 가진 두 라이벌이 일주일간 함께 지내는 동안 교황 자리를 서로 양보하는 핑퐁게임의 결론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두 교황',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2019. ⓒ위클리서울 (포스터 = 넷플릭스 영화)

악당 같은 베네딕토 16세일지언정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떠나야 할 때를 알며 라이벌을 인정하는 자이므로 그 또한 거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리더가 되기를 소망하지 않았으므로 진정한 리더가 되었다는 역설을 보여 준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걸어온 사적 인생사를 알아가는 것도 영화를 보는 또 하나의 재미다.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고, 탱고를 열심히 추었고, 민주화에 역행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 플래시백으로 삽입되는 젊은 날의 교황의 오류와 영예가 하나하나 쌓여 지금의 존경스러운 지도자가 되었다.

두 차례의 콘클라베 장면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장면이며, 세계를 방문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여정은 다큐멘터리 장면으로 삽입된다. 한국을 방문하는 장면도 짧게 들어간다. 베네딕토 16세 역할은 아카데미 수상자인 명배우 안소니 홉킨스가, 프란치스코 교황은 칸에서 수상한 조나단 프라이스가 맡았다. 조나단 프라이스는 원래 프란치스코 교황을 닮은 배우로 유명한데, 이번에 실제로 교황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는 내년 초에 열릴 아카데미영화제 남우주연상의 강력한 후보다.

두 거인들의 고뇌와 결심은 인생사의 아이러니와 정의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끈다. 교훈 이전에 재미있는 영화로서도 손색이 없다.

<정민아(영화평론가, 성결대 연극영화학부 교수)님은 영화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깊이 이해하며, 여러 지구인들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영화 애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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