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인 전 경기대 교수 / 소설가
이재인 전 경기대 교수 / 소설가

[위클리서울=이재인] 인간이란 본래 화장실 다녀오기 전과 다녀온 후의 행동이 다르다는 게 동서고금의 진리이다. 특히 정치에 입문해서 권좌에 오른 이의 전후의 처신이 크게 클로즈업된다.

우리 역사에서도 백제 의자왕이 그 대표적이라 지적한다. 그러나 신라에 의해 기록된 역사라서 왜곡된 사실도 없지 않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역사라는 게 사실 패자가 아닌 이긴 자의 기록이기에 실각한 쪽의 진위의 신빙성에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백제 의자왕은 무왕 33년(632년) 태자로 책봉되었는데 삼국사기에 ‘어버이를 효성으로 공경했고 형제들을 우애로 섬겨 해동증자’라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효와 우애를 실행에 옮긴 성인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의자왕은 신라를 공격하여 빼앗긴 강토를 수복했고 백제 중흥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저간의 정사와 사사를 통하여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훌륭한 왕이었던 그가 말년에 궁녀들의 치마폭과 유흥에 젖어 자신의 나라를 멸망의 길로 이끌었다는 것은 우리의 권력자들이 집권 초기와 끝이 시종일관하지 못해 비운의 운명을 초래하는 것과 일치된다고 하겠다.

다시 말하면 처음과 끝이 같다는 평가를 듣는 일은 칠월 백중 화톳불 쬐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교훈을 주게 된다. 그러니 패망하거나 멸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건은 언제나 시종이 여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 전 친한 친구가 내게 전한 말이다.

“내게 재산이 있었지……. 살만큼 근검절약으로 기술직에서 50여 년……. 자녀들에게 명절 때나 공휴일에 오면 용돈과 차비를 주었었지. 그런데 80 초반에 갑자기 병이 들어 죽기 전에 재산을 분할했어. 그런데 이 병이 낫게 되었는데 수중에 돈이 없고 세월은 흐르고 자녀들이 재산 분할 받은 후 발길을 뚝 끊었는데 챙피해서 남들한테 이야기를 할 수도 없고…….”

신세 한탄을 들은 친구가 아이디어를 냈다는데 그 처신이 기발했다.

“자녀들을 부르기 전에 내가 돈을 5천만 원을 일주일만 빌려줄 테니 만원 지폐로 바꾸어다 금고에다 차곡차곡 쌓아놓고 있다가 자녀들을 부르게. 그다음에 금고를 슬며시 열고 돈 무더기를 슬쩍 보이게나. 그럼 이들의 반응이 다를 거야…….”

아니나 다를까? 금고 안의 돈 무더기를 본 자녀들이 자신들 몰래 숨겨둔 돈인 줄 알고 참새 둥지 드나들 듯 다시 부모를 찾아서 오더라는 이야기.

필자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세상인심이 이처럼 달라진 게 어찌 의자왕 뿐이겠나 싶다. 자녀들이 이처럼 한결같지 않은 이유는 수없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례가 우리들 스스로가 사회적 규범 속에서 지켜나가는 <습관교육의 부재>가 아닌가 싶다.

백제 의자왕이 처음 등극할 때 그 마음에야 권력의 칼날 위를 조심조심 걸었을 것이다. 잃어버린 영토의 수복, 전쟁에서의 자신감이 결국은 백제 멸망의 길로 이끈 것과 같다고 하겠다.

권력에는 반드시 절제력이 있어야 한다. 그것을 지키는 일을 우리는 뜨거운 감자가 식기를 기다리는 슬기를 가져야 성공한 권력자가 된다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의 총선도 얼마 남지 않게 달력도 너풀거린다. 권력의 쪽배에서 이들이 과연 ‘처음처럼’ 나라와 국민을 위하여 처음 가졌던 의지를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정치의 성공은 그가 처음 먹은 생각대로 끝까지 의지를 지켰는가 되짚어 보는 슬기가 있어야 한다.

이게 바로 시종일관의 미덕이고 해동증자의 반열에 서게 하는 비결이다. <처음처럼> 소주의 상표를 말하는 게 아니다. 출마를 준비하는 내 고향 후배에게 한마디 하게 되었네…. 쯧쯧. 충고는 나를 허무는 일이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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