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야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야
  • 김일경 기자
  • 승인 2019.12.11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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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경의 삶 난타하기]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그래픽=이주리 기자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그래픽=이주리 기자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작년 이 맘 때인 것 같다. 정시를 준비하던 딸아이가 수능을 치른 후 구청에서 진행하는 진학설명회에 같이 가자고 풀이 죽어서 얘기했다. 뭘 하자고 또는 뭘 해달라고 요구하는 법이 없는 아이가 설명회에 같이 동행을 요구할 때부터 이미 나는 예견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본인의 수능 점수와 맞바꿀 수 있는 학교를 접하기가 두려웠을 것이다. 등급별로 진학 가능한 대학들을 서열화 하여 죽 나열하는 설명을 듣고 개별 상담을 마친 딸아이는 집에 오자 대성통곡을 하였다. 수능 점수가 예상했던 것보다 많이 심각했고 가고자 한 대학엔 어림도 없는 점수라는 것을 알게 된 아이는 폭포수 같은 눈물을 쏟아내며 자신을 질책하기 시작했다.

당장에 재수를 하겠다며 이 점수 받으려고 그간 고생한 게 아니라며(고생은 나도 했는데...) 듣지도 보지도 못한 문제들이 나왔다며 평소 점수보다 더 떨어졌다며 온갖 투정과 변명들을 쏟아내었다. 작년에 딸아이가 치렀던 수능은 3년 연속 불수능으로 출제 되었고 특히 국어는 역대급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어렵게 출제가 되어 전체적인 등급컷이 많이 내려갔었다. 평균의 성적을 간당간당 유지하던 딸아이는 불수능에 그만 좌초되어 예상하지 못한 성적에 재수를 울부짖었지만 나는 감정에 휩쓸리지 말고 이성적인 판단으로 결정하라고 했다. 결국 딸아이는 반수를 하겠다며 보험든다는 생각으로 일단 입학은 하되 2학기는 휴학을 하고 수능을 준비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지만 달콤한 대학 생활에 빠져 휴학이니 반수니 모두 포기하고 지금은 2학기 기말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사람의 일이라지만 울며불며 재수를 부르짓던 그 절박함은 어디로 갔는지 어쨌거나 지금의 학교생활에 만족하고 학점관리 잘 하면 그 또한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의 전부가 공부가 아닐진대 학교에서 배운 대로 인생이 살아지는 것도 아니고 나타나지 않은 내면의 잠재력이 언제 어느 순간에 불쑥 튀어 나와 인생의 흐름을 바꿔 놓을 수도 있는데 한 날 한 시 치러지는 수능에 인생을 걸어야 하는 청춘들이 가끔은 안 돼 보이기도 하다. 나 또한 배운 대로 살아지는 인생이 아니었기에 하는 말이다.

 

ⓒ위클리서울/김용주 기자

나는 학력고사 세대이다. 고등학교 3학년 2학기에 엄마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대신하기 위해서 서울행을 강행하셨고 나는 전혀 준비도 없이 지방에서 서울 소재의 대학에 지원해야 했다. 시험을 보러 가던 날 아침엔 진눈깨비가 흩날렸고 하숙생들과 남동생의 아침 식사준비에 여념이 없던 엄마 덕택에 수험생이 누릴 수 있는 다독임과 격려 등과는 관계없이 시험장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그 때는 선지원 후시험이었고 지원하는 대학에서 시험을 치렀다. 중학교 때 영어선생님을 짝사랑 한 덕택에 영어 선생님이 되려고 했지만 성적에 맞추느라 독어독문과에 지원을 했다. 학력고사를 치르고 며칠 뒤 면접을 보러 갔을 때 교수님이 왜 서울로 지원을 했냐는 물음에 “엄마가 서울로 이사를 와서요.”라는 철없는 대답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굳이 면접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보기 좋게 낙방했고 3년간 엄마의 눈치와 고졸의 설움을 견디며 직장과 학원을 전전하던 끝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을 했지만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은 때였다. 남의 나라 고전문학에 그만 녹초가 되었고 이해할 수 없는 영미시의 난관을 넘지 못하였다. 성적표는 총기 상을 해도 될 만큼 권총, 장총, 쌍권총들이 즐비했고 몇 년을 더 허우적대다가 경영학과에 편입을 하였다. 그 즈음 나는 회계법인에서 꽤나 인정받는 과장이었다. 업무와 관련된 학문이라 그런지 공부에 흥미가 느껴지고 성적도 웬만큼 나왔다. 나이는 서른을 넘겼고 육아와 학업을 병행하며 힘겨운 사투 끝에 졸업은 했지만 결코 행복하지는 않았다. 이력서에 한 줄 추가 정도의 성취감은 있었지만 그 졸업이 내게 미치는 영향은 더 이상 없었다. 워킹맘의 고단함을 이겨낼 수가 없어서 경력 단절 여성이 되었고 이력서에 추 가 될 한 줄 조차 더 이상 써 먹을 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난타를 접하게 되었고 난타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학교 방과후 강사로 활동하다보니 이제는 청소년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생기기 시작했다. 나도 내가 이해가 안 되는 것이 공부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왜 자꾸 공부를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단 말이다. 아이들에게 공부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줄 거라는 욕심이 추가되어 청소년교육과에 편입하여 고2, 중2였던 아이들과 정말 열심히 공부한 결과 장학금도 받고 무사히 올 봄에 또 졸업을 했으니 나의 학업 이력도 참 특이한 것 같다.

지난 주에 수능 성적표가 각 학교별로 배부가 되었다. 수학도 어려웠고 국어도 지난해 보다는 쉬웠지만 난이도가 상당했다고 한다. 대학별 수시모집에서 수능 최저학력 기준을 적용하지 않은 전형이 많아서 결시율도 역대 가장 높았다고 한다. 이제 수시모집 지원자들은 합격자 발표로 희비가 교차할 것이고 정시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은 등급컷에 따라 지원 가능한 대학들을 탐색할 것이다. 현재 고등학교 1학년인 아들은 학교에서 예비소집을 가는 3학년 선배들을 배웅하고 수능 당일에는 고사장에서 선배들을 응원하러 밤을 지새우고 오면서 수능의 분위기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끼며 2년 뒤 본인에게도 닥칠 운명에 살짝 겁을 먹기도 했다.

반드시 대학을 가야된다는 암묵적인 공식이 자리 잡고 있는 교육열 덕택에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대학 진학률은 엄청나게 높은 반면 대학 졸업자의 실업률도 높은 수치를 나타내는 아이러니를 나타낸다. 뿌리 깊은 학벌주의 풍토와 전후 급격한 경제성장을 뒷받침 해 줄 인재가 절실히 필요했던 과거와는 달리 다양한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인재들이 필요한 이 시대에 최고의 대학만을 고집하는 과거의 사고방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타임 워프의 행태를 보이고 있으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고달픈 삶이 애처롭기만 하다. 아들은 자신이 목표로 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 아니 학벌주의가 만연한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지켜보기 안쓰러울 정도의 엄청난 노력을 퍼붓고 있다. 대학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고 좋은 성적이 결코 행복으로 연결되지는 않을 텐데 무엇을 위해서 대입에 매달리는 것일까? 나는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사회가 좀 더 유연해졌으면 한다. 막연한 학벌주의를 위한 대입 경쟁보다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아도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사회, 수평적인 조직사회에서 합당한 인정을 받고 공정한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는 사회야말로 미래시대를 준비하는 우리 청춘들과 더불어 행복한 삶을 꾸려 갈 수 있을 것이다. <김일경 님은 현재 난타 강사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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