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나의 엄마와 나
[신간] 나의 엄마와 나
  • 이주리 기자
  • 승인 2019.12.12 15: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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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음 지음/ 글항아리
ⓒ위클리서울/글항아리

[위클리서울=이주리 기자]  이 에세이의 첫 부분은 암투병으로 몸져누운 엄마가 자식들의 정성으로 비행기에 태워져 연변의 용하다는 의사에게 보내졌고, 그 엄마를 문병하러 가는 여정으로 시작된다. 여행은 저자를 과거로 이끌어 열 살 전후의 유년 시절로 데려다놓는다. 저자는 성장기에 경멸하는 엄마의 눈빛을 피하며, 짓밟히는 가운데 피어나는 자기 생을 그리는 가운데, 엄마와 함께한 결정적 순간들을 빛나는 글로 써낸다.

엄마에게 어느 날 ‘담낭암’이라는 병이 난입했고, 그 증세는 가팔랐다. 단 두 달 만에 천하 여장군 같던 엄마는 알갱이 빠진 마른 옥수수 대처럼 변했다. 엄마는 스스로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맑고 투명한 가을날이었다. 멀쩡한 대낮에 엄마와 딸 단둘이 있게 되자 결연한 어조로 엄마는 불쑥 말했다. “내가 널 평생 무서워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일까? 엄마, 길을 막고 물어봐. 내가 엄마를 무서워했지, 그게 무슨 말이야? “니가 잘난 사람이다. 이걸 명심해라. 내가 머리털 나고 여태까지 너처럼 대 센 사람을 못 봤다.” 그러더니 믿을 수 없는 말을 입 밖으로 흘려보냈다. “문음아, 나를 밟아라. 나를 밟으라고!”

이건 물리적으로 엄마를 폭행하라는 뜻이었고, 딸은 울기 시작했다. 밟으라니? 엄마, 몸도 안 좋은데 왜 그래? “빨리 날 밟아라. 그래야 니가 산다.” “엄마 나 행복하게 잘 살 테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엄마가 다시 말했다. “문음아, 꿈속에서라도! 내가 나타나거든 눈 딱 감고 나를 밟아버려. 알겠니?”

엄마는 이 말을 뱉은 뒤 맥을 탁 놓았다. 평화로운 얼굴이었다. 작가는 그 후 세월이 흐르면서 ‘니가 잘난 사람이다. 명심해라’라는 말 한마디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딸이 자기 삶을 헤쳐나가는 데 ‘나를 밟아라’라는 이 한마디는 지난 수십 년에 걸친 엄마의 저주의 에너지에 맞설 만큼 힘이 셌다.

엄마는 한국전쟁 중 남으로 휩쓸려 내려와 무능력한 남편과 자식 셋을 먹여 살리던 여자였다. 거친 삶의 파괴력은 애초 그 인간의 형상이 어떠했는지 짐작도 못하게끔 위력을 떨친다. 아무도 엄마에게 태초엔 부드러운 과육이나 생명의 씨앗 같은 게 있었으리라 상상도 못했으리라.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목격한 것은 괴물처럼 변해가는 한 여인이었으니까.

엄마가 유년 시절 자기 첫딸에게 가장 많이 지었던 표정은 ‘치를 떠는’ 것이었다. 치를 떤다. 위아래 입술을 약간 앞으로 내밀고, 소름 끼치는 듯 고개를 좌우로 부르르 떤다. 그리고 말한다. “네 머리를 깨서, 가루를 만들어 마셔도 내 분은 안 풀린다.” 그러면서 때린다, 자기 울화가 풀릴 때까지. 거기엔 이런 뜻이 담겨 있다. “애비 닮은 년.” “미물微物!” “약 맞은 파리 같은 년.” 어려서부터 살림을 돕고, 여섯 살 아래 여동생을 거둔 큰딸이지만, 엄마에겐 써먹을 데라곤 아무 데도 없는 존재였다.

어쩌다 큰딸이 공부나 글짓기를 잘해서 상이라도 타오면, 엄마는 코웃음을 치며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고 말했다. 잘하면 잘하는 대로 아이에게 그건 창피하고 죄스러운 일이었다. 그건 덫이었다, 하나의 존재를 옭아매는. 딸은 기록한다. “엄마의 절망, 엄마의 붉은 울화, 나의 슬픔, 깊이를 알 수 없는 슬픔, 시간도 증발해버리는 새하얀 공허, 그리고 슬픔.”

“내가 분명히 말하는데, 넌 평생 사람 구실 못 한다. 알간? 니가 사람 구실하게 되면 내 손에 장을 지져라이!” 어느 날 이 말을 듣는 순간 저자는 자신을 버렸다. 그냥 ‘어떤 나’이길 포기한 채 투명인간, 허수아비가 되었다. 알맹이는 버리고 쭉정이가 되었다. 그런 채로 육십 평생을 살아왔다.

꽃같이 예쁜 젊은 아낙이 머리에 까만 연탄을 이고 사뿐사뿐 걸어온다. 아직 생떼같은 새끼 삼남매, 무능한 남편과 오빠, 남동생을 부양해야 하는 생존의 압박에 치여 자신이 장차 얼마만큼 괴수처럼 변해갈지 모르는 얼굴이다. 그저 한 가닥 불안을 머금고, 입술을 꼭 다문 채 행여라도 정신이 흐트러질세라 한곳만을 응시하는, 골몰한 얼굴이다. 목을 꼿꼿이 세우고 있다.

작가는 이미 미래의 엄마 모습을 아는 전지적 관점에서 젊은 날의 여인이 어떻게 삶의 마수에 걸려 흉측하게 변해갈지 짐작한다. 그러나 그런 엄마를 사랑한다. 엄마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내고서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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