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희란 지음/ 창비

ⓒ위클리서울/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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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이주리 기자] 삶에 대한 첨예한 시각과 밀도 높은 문장을 갖춘 작가, 젊은작가상을 받으며 오늘의 한국문학을 이끌어가는 젊은 작가 중 하나로 인정받은 천희란의 소설 '자동 피아노'가 출간되었다. 창비에서 펴내는 ‘소설Q’ 시리즈의 세번째 책이다. 자기 자신에 갇힌 인물의 끝없이 분열하는 목소리가 죽음을 음악처럼 연주하는 작품으로, 죽음에 대한 욕망과 충동, 이에 맞서는 삶에 대한 열망을 집요하게 그려낸다. 죽음에 대한 깊은 사유와 조각한 듯 정교하게 다듬어진 문장이 특히 돋보인다. 스물한개의 각 장 제목은 저자가 즉흥적으로 떠올린 피아노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작품에 대한 해석은 독자를 향해 자유롭게 열려 있다. 소설 뒤에 실린 ‘작가의 말’에는 작가가 겪은 자살사고에 대한 묵직한 발언이 담겼고, 음악평론가 신예슬이 쓴 해설은 ‘자동 피아노’라는 기계장치를 중심으로 작품을 신선하고 아름답게 풀어주었다. “평생 변하지 않는대도 괜찮다. 그러나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라고 말하는 작가의 목소리에서도 알 수 있듯, 끊임없이 재생되고 반복되는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도 이 책은 역설적으로 삶에 대한 열망을, 내일을 생각할 수 있는 미약하지만 분명한 빛을 전달한다. 

첫 장을 열면 다음과 같은 인용구가 등장한다. “나는 지금 증언을 하고 있는 것이지 설득하려는 게 아니다.”(장 아메리 『자유죽음』) 인용구가 말하는 것처럼, 이 소설은 독자를 결코 설득하려 들지 않는다. 다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죽음의 연주를 끈질기게 들려줄 뿐이다. 각 장 제목에 실린 피아노곡은 소설에서 그려내는 죽음의 이미지와 다채롭게 결합하여 읽는 이를 죽음과 삶에 대한 깊고 날카로운 사유로 이끈다. 

죽음을 생각하는 소설 속 ‘나’의 고민은 단순하지도 명백한 답을 갖고 있지도 않다. ‘나’는 홀로 자기 자신 안에 갇혀 치열한 싸움을 벌인다. 누구도 도울 수 없고, 끝이 어딘지 알 수도 없는 힘겨운 싸움. 화자는 ‘죽고 싶다’고 몇번이나 말하지만, 그럼으로써 죽음을 망설이는 자기 자신을 깨닫는다. 그러면서 그 어떤 순간보다, 그 누구보다 정직하게 자신과 대면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여러 갈래로 끝없이 분열하고 반복 재생되는 목소리를 듣는다. 고통은 끝나지 않을 것 같고, 나는 영원히 내 안에 갇혀 있는 듯하고, 문 밖에서는 죽음이 호시탐탐 나를 노리며 엿보고 있지만. 결국 소설은 끝난다. 자동 피아노의 연주는 끝난다. 끝날 것 같지 않던 그것이 끝난다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이것은 희망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언젠가 끝난다는 위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고통 끝에 서 있는 누군가에게 뜨거운 위로를 전할 것이다.

매일, 매 순간 죽음을 갈망하던 때가 있었다고,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고백한다. 작가로서 그 고백이 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솔직하게 독자들 앞에 자신의 경험과 목소리를 내어놓았다. 끝없이 죽음을 노래하면서도 아름답고 매혹적으로 직조된 이 작품은, 작가의 고백과 더불어 새삼 뭉클하게 읽힌다. 

음악평론가 신예슬은 이 작품을 두고 “쉼 없이 방식을 바꾸어가며 죽음을 다루는 근본적 이유에 대해 내가 덧붙일 수 있는 말은 거의 없다”고 이야기하면서도, “다만 나는 그가 죽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죽음을 반복적으로 소환하면서도 그 안에 꽉 찬 삶의 의지를 드러내 보이는 것도, 죽고 싶다고 말하는 화자가 살아내기를 바라게 만드는 것도, 이 작품이 지닌 강렬한 역설의 힘이다. 

죽음과 고통이라는 가볍지 않은 주제를 연주처럼 물 흐르듯 탁월하게 그려낸 이 작품을 통해서, 누군가는 벼랑 끝에 선 타인을 이해하는 기회를, 누군가는 자신을 잡아주는 마지막 손을 발견할 것이다. 이 책은 ‘당신이 살아 있기를 바란다’는, 천희란 작가가 용기를 내 전하는 유일한 한마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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