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시집간다는 나이에 떠났다
남들 시집간다는 나이에 떠났다
  • 김준아 기자
  • 승인 2019.12.18 0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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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주나 캐나다 살기-13회]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여행은 살아 보는 거야.” 내가 가장 좋아하는 광고 문구이다. 좋아하는 걸 실행하고자 무작정 캐나다로 왔다. 여기서 무엇을 하고,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그저 로키 산맥에서 살아 보고, 오로라 보러 다녀오고, 나이아가라 폭포가 보이는 곳에서 일 해보고, 캐나다 드라마에 출연하고 싶다. 내 꿈은 소박하다. 캐나다에 도착한 순간 다 이룰 수 있는 꿈이 되었으니까. 꿈을 좇는 그 열세 번째 이야기.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동갑내기 보라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워킹홀리데이 막차(워킹홀리데이 비자는 만 18세부터 만 30세까지 발급이 가능하다. 만 30세에 마지막 기회를 가진 사람들을 막차를 탔다고 말한다)를 타고 캐나다에 온 나는 정말 많은 동생들을 만났다. 캔모어에 한국사람 자체가 많지 않기에 ‘많은 동생을 만났다’라는 표현이 맞지 않을 수 있지만 만나는 한국인은 전부 동생이었다. “시내야, 너 몇 년생이지?” “저 97년생이요.” “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직 만 18세 동생을 만난 적은 없다. 만 18세 동생을 만나면 나한테 언니(누나)라고 부르라고 해도 될까?

한국사회에서 20대 후반 혹은 30대 초반의 여자가 갑자기 하던 일을 다 그만두고 외국에 간다고 할 때 “시집 안 가?”라는 말을 들을 확률은? 아마 70%는 되지 않을까 싶다. 내 경험에 비춰 보았을 때 말이다.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하지 않은 나머지 30%는 우리 가족과 친한 친구들이었다. 만약에 7:3의 비율이 바뀌었다면 난 캔모어에 있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감사하게도 가까운 사람들은 모두 응원 해주었다. 또 감사하고 신기하게도 캔모어를 떠나기 직전, 나랑 동갑인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97년생 시내가 소개해주었다. 그녀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캐나다에 들어와 현재는 영주권 준비를 하고 있다.

“보라야(이보라, 만 32세), 너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 영어 이름 있어?”

“어 이름? 대학생 때 브라질로 교환 학생을 갔었는데 그때 ‘쏘냐’라는 이름을 썼었어. 하지만 지금은 그냥 보라라고 사용해. 한국에서는 내 이름이 너무 흔해서 싫었는데, 여기서 외국인 친구들에게 보라는 한국어로 보라색이라고 설명하다보니 괜히 예뻐 보이더라? 그 이후로 내 이름이 좋아졌고, 이제 '쏘냐'라는 이름은 안 써. 하하하.”

“보라. 너무 예쁘다. 여기가 약간 그런 곳 인 거 같아. 모든 게 예뻐 보이는 곳. 캔모어에 온 지는 얼마나 되었어?”

“캐나다에 도착해서 바로 캔모어로 왔으니 벌써 2년 반이 지났네. 시간 진짜 빠르다.”

“캔모어에서 2년 반이나 있었다니… 진짜 부럽다. 전 세계 수많은 나라 중에 캐나다를 선택한 이유가 있어?"

“영어권 국가에 살고 싶어서 미국이나 캐나다를 생각 했었는데, 미국은 여행으론 재밌어도 살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었어. 총기사고나 인종차별 문제가 가장 컸지. 그래서 자연 풍경도 좋고 사람들도 친절하다는 캐나다로 눈을 자연스럽게 돌렸던 것 같아.”

“나랑 시작은 조금 다르다. 나는 미국이 좋은데 비자를 받기 어려우니 미국 옆에 있는 캐나다를 선택한 거거든. 그런데 캔모어에서 살아보니 캐나다에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나도 캔모어를 선택하긴 했지만 캔모어에 오는 사람들이 아직도 참 신기하거든?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잖아. 왜 캔모어를 선택 한 거야?”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보라가 찍은, 보라가 찍힌 캔모어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나는 원래 큰 도시를 안 좋아해서 밴쿠버나 토론토는 생각도 하지 않았어. 그래서 자연스럽게 빅토리아랑 캔모어 중에 고민 했었는데 캔모어가 더 캐나다스럽더라고. 그래서 캔모어를 선택했어.”

“맞아! 나도 딱 사진 한 장 보고 캔모어를 선택했어. 내가 생각한 캐나다의 모습이었거든. 그런데 실제로 와 보니 사진과 달랐어. 사진으론 이곳을 못 담더라고.”

“맞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재밌는 곳인 것 같아. 그런데 겨울이 너무 길고 힘들어. 7개월이 겨울이라니… 하하하.”

“그게 캔모어의 유일한 단점이지….”

“아니, 한 가지 더 있어. 순대를 먹을 수 없다는 거. 나 순대귀신이거든."

“캘거리에서 순대 본 거 같은데?”

“응. 마트에 얼린 순대가 있긴 있어. 한번 사와 봤는데 너무 이상해서 한입 먹고 버렸어. 내가 순대를 버리다니…. 그 뒤로는 그냥 순대 잊고 살기로 결심했어.”

“내가 캔모어에서 들은 이야기 중에 가장 슬퍼. 잊어야 하는 존재가 있다니…. 하지만 그 외에 너무 많은 장점들이 있지?”

“응. 캔모어는 어디서나 멋진 산을 볼 수 있고, 좋은 공기를 마실 수 있어. 등산, 암벽등반, 스노우보드 등 다양한 레저 활동을 아주 쉽게 즐길 수 있고, 어려움 생기면 자기 일처럼 도와주려고 하는 따뜻한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어.”

“작은 마을이고, 록키산맥에 있어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참 많은 것 같아. 사람들은 흔히 도시가 즐길 거리가 많다는데 개인적으로는 공감하지 못 하겠어. 도시 사람들은 심심하면 쇼핑센터에 간다고 하는데 우리는 산과 호수에 가잖아. 그런데 쇼핑센터는 한국이 훨씬 잘 되어 있고, 산은 캐나다 산이 더 어마어마해.”

“맞아! 난 이번 겨울에 스노우보드를 배워볼 계획이야. 근처에 스키장이 있어서 쉬는 날마다 거기에 가 있을 거 같아."

“멋지다. 우리 너무 캔모어 자랑만 한 거 같아. 하하. 캔모아 뿐만 아니라 캐나다의 장점은 뭐라고 생각해?”

“내가 느낀 캐나다의 가장 큰 장점은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거야. 캐나다 사람들은 정말 직업, 인종, 나이에 대한 차별이 없는 것 같아.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있으면 고등학교 졸업 후에 대학교에 진학하기도 하지만 대학교에 안 가는 친구들도 많아. 입시를 위해 살아가는 게 아니지. 지금 같이 일하는 친구들도 정말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어. 싱어송라이터, 배우, 축구코치 등 그게 나한테 엄청난 자극과 신선한 충격을 준거 같아.”

“그 친구들은 나처럼 여행자, 혹은 이곳에 살면서 투잡을 뛰는 거네?”

“응, 여기는 외국인 친구들도 많지만 방학이나 휴가를 내고 캐나다의 다른 지역에서 온 친구들도 많아.”

“난 그게 참 신기해. 우리는 서울 사는 학생이 부산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지는 않잖아. 정말 신기한 곳이야. 그렇다면 캐나다의 단점은?”

“정부 시스템이나 관공서 일처리의 실수가 잦고, 느리다는 거. 더 이상의 할 말은 줄일게. 그냥 너무 느긋해.”

“맞아. 이야기 하다가 우리가 답답해질 수도 있어. 하하. 캔모어에 살면서 가장 잊지 못할 순간이 있을까?”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보라가 찍은, 보라가 찍힌 캔모어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신기하게 캔모어에서는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항상 그 타이밍에 힘이 되어주는 친구들이나 도와주는 사람들이 나타났었어. 여기 정착하면서 집이나 직장 문제 때문에 고민할 때 내 이야기를 들어주던 한국 동생들도 정말 우연히 만나게 됐고, 영주권을 지원 해줄 수 있는 가게를 찾으려고 여기저기 이력서 내고 다닐 때 지금 일하고 있는 가게 사장님을 만났지. 날 본적도 없는데 도와주고 싶다고 했어. 여기서 의지가 된 사람들을 만났던 순간순간들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

“내가 항상 하는 이야기인데. 역시 여행의 8할은 사람인 거 같아. 물론 너는 이제 여행자가 아닌 신분이지만 말이야. 워홀러일 때와 영주권을 준비하는 지금. 다른 점들이 있을까?”

“워홀러일 때는 확실히 지금보다 자유로웠던 것 같아. 원하는 만큼만 일하고, 휴가도 자유롭게 가고, 직장을 쉽게 바꿀 수도 있고 말이야. 그런데 지금은 직장에서 해야 할 일이랑 책임도 많아졌어. 당장 직장을 바꿀 수 없는 위치에 있어서 비교적 덜 자유롭다고 느껴지긴 하는데, 또 동시에 워홀 시절보다는 안정감이 더 들고 캔모어의 주민이 된 것 같은 소속감이 커졌어.”

“내가 겪어보지 않은 일들이기에 신기하다. 넌 처음 올 때부터 영주권을 생각 한 거야?”

“응. 이십대부터 외국 생활이 나한테 더 잘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외국에 살 생각이었어. 나중에 다른 곳으로 여행을 다니더라도 이제는 한 국가에 정착을 하고 싶었어. 그래서 캐나다에 올 때부터 영주권 생각을 했지.”

“꿈과 현실은 다른 부분이 있기도 하잖아. 힘들었던 순간은 없어?”

“영주권을 지원해줄 수 있는 사업장 찾아다니던 순간이 가장 힘들었어. 그 당시 일하던 곳에서 쉬는 날을 주면 매일 이력서를 돌리고, 면접을 보고, 거절당하기를 반복했지… 어휴.”

“거절은 아무리 당해도 적응이 되지 않지. 그런데 신기하게 널 본 적도 없는 사장님이 너의 영주권을 도와주기로 했잖아. 이게 흔한 일이야?”

“사업장 지원을 받아서 영주권을 받는 분들은 꽤 있는 걸로 아는데, 타이밍을 맞춰서 지원 받고 좋은 사장님들을 만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아.”

“그럼 그 일들을 진행하며 후회한 적은 없어?”

“이곳 생활이 잘 맞아서 후회 한 적은 없는데, 가족이랑 같이 보내는 시간을 놓치고 있다는 사실은 항상 아쉽지.”

“맞아. 짧은 여행을 하고 있는 나도 그 부분이 항상 아쉽고 속상하거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다시 돌아가도 여행을 떠날 거야. 넌 어때? 같은 선택을 할 거야?"

“고민 없이 같은 선택을 할 것 같아. 단순히 영주권을 따는 것뿐만 아니라, 이 과정을 지나며 ‘아 내가 스스로 해냈구나’하는 자신감을 갖게 돼서 앞으로 살아가는데 큰 원동력이 될 것 같거든. 그리고 아침에 집에서 나와 산을 볼 때마다 ‘내가 이런 곳에 살고 있다니 정말 복 받았구나’ 생각하고 있거든.”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보라가 찍은, 보라가 찍힌 캔모어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원동력이라는 말에 무척 공감해. 영주권을 받고 나면 어떤 일들을 하고 싶어?‘”

“1년 정도 나한테 자유를 주고 싶어. 영주권을 준비하는 기간이 너무 길었거든. 요리를 좋아해서 요리 관련 일을 해보고 싶기도 하고, 돈을 모아서 여행도 가고 싶고, 캐나다에서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지역인 퀘백으로 옮겨 프랑스어를 배우면서 살아볼까 싶기도 해. 그리고 내후년에는 캐나다에서 다시 학교를 다닐 예정이야, 살아보니 뭔가 기술이 있어야겠더라고.”

“배우고 싶은 기술이 있어?”

“와인메이커 과정을 생각하고 있는데 어떤 걸 하는 게 제일 재밌을까 계속 생각해 보다가 결정하려고.”

“이게 바로 캐나다의 가장 큰 장점인 거 같아. 나이에 구애 받지 않고, 언제든 무엇이 재미있는 일일까 생각할 수 있는 거 말이야. 마지막으로 보라에게 여행이란?”

“교과서적인 이야기 일수도 있지만 나한테 여행은 다양성을 배우고 추억을 쌓는 일인 것 같아. 갑자기 웃긴 이야기가 생각났는데 한국 제약회사 해외 영업팀에서 재직할 때 브라질에서 일을 했던 적이 있어. 브라질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시즌인 12월 중순부터 2월 삼바 카니발 기간까지 보통 휴가를 길게 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해를 못하겠지만 그게 그 사람들의 문화야. 그래서 당시 부사장님한테 브라질 관공서랑 모든 회사들이 두 달 동안 긴 휴가 가서 말씀하신 일을 기간 내에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보고를 드렸거든? 그랬더니 그런 국가는 없다고 엄청 화를 내시면서 브라질로 직접 오셨어. 그런데 변호사가 문전박대 하면서 두 달 뒤에 보자고 한 거지. 그때 충격 받던 부사장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어. 하하하. 물론 이건 극단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직접 가보지 않으면 그 나라 사람들만의 문화나 행동방식을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 같아.”

“우리가 캐나다 그리고 캔모어에 와서 이곳의 문화와 행동 방식을 알게 된 것처럼 말이네?”

영주권이란? 일정한 요건을 갖춘 외국인에게 그 나라에서 영주할 수 있도록 부여하는 권리를 말한다. 그렇다면 영주란? 길 영(永), 살 주(住). 어떤 한 곳에서 오래 사는 것을 말한다. 캔모어에 영주하고 있는 보라는 과연 앞으로 어떤 기술을 가지고, 어떤 곳에서 살게 될까? 어쩌면 한 가지 기술도, 한 군데의 도시도 아닐 수 있다.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동갑내기와의 재회를 위해 나는 오늘도 여행길이다.

 

김준아는...
- 연극배우
- 여행가가 되고 싶은 여행자
- Instagram.com/juna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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