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 시인 / 수필가
박종민 시인 / 수필가

[위클리서울=박종민] 약이 있으면 독이 있고 독은 약이 풉니다. 상극(相剋)과 상생(相生)의 관계입니다. 상극과 상생의 개념을 생각해봅니다.

상극은 둘 사이에 서로 뜻이나 마음이 맞질 않아 충돌하면서 빚어지는 대등한 관계상에서 상호 간에 반목질시하며 과하다 싶으면 위해까지를 끼치는 관계이고, 상생은 둘이 함께 살아나가면서 서로 돕고 서로서로를 위하며 함께 살아가는 생(生)을 건강하고 건전하게 유지해나간다는 즉, 공생의 관계 아닌가 합니다.

그러하니 바람직한 공생을 위해서라면 우리 인생 삶에는 마땅히 상생이 있어야만 합니다. 허나 그게 쉽질 않습니다. 인생 삶 속엔 때론 서로 원수와 같은 상극도 필요하다 싶습니다. 다만 상생을 위한 상극이어야 합니다.

사람 누구나 서로 간에 천생연분을 지녀 상생하기로 태어난 존재는 없을 뿐만 아니라 애시 당초 상극으로 태어난 존재도 없습니다. 상극과 상생은 사람마다 각자 삶의 과정에서 잠시 의견이 다르고 뜻과 마음이 어긋나 나타나는 현상일 뿐인 것입니다. 

 상극과 상생의 상호관계를 약과 독으로 비유해봅니다. 약과 독은 서로 간에 상극관계입니다. 적대적입니다. 그러나 그런 약과 독도 상호중화작용을 거치면 상생 관계가 성립됩니다. 독을 치유하는 게 약이라면 약을 다스리는 것 또한 독입니다.

유해한 독을 와해시켜 치유하는 게 약인 반면 약의 과민한 반응을 제어하는 게 독입니다. 약으로서 유해한 독과 병을 치유하는 약 자체 속에도 독이 들어있습니다. 약이 있으면 반드시 독이 있고 독이 있으면 그걸 와해시킬 약이 있기 마련이란 얘기입니다.

현대의 의학적으로 밝혀진 좋은 약품 속에도 독성분이 들어있다는 말입니다. 지나치다 싶으면 약은 곧 독으로 변화하기에 명백한 이치입니다. 독을 풀어내기 위해 약이 탄생했지만 약을 제어하기 위해 독이 존재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리라 싶습니다.

약과 독은 서로 상극이지만 각각의 성분함량이 상호작용을 적절하게 조정하는 중화에 이르면 새로운 에너지가 될 수도 있고 서로 상생 발전하는 모멘텀(momentum)의 진리입니다.
    
 믿지 못할 얘기라 싶지만 필자의 실체적 체험이며 경험담입니다. 생물학이나 약리학이나 생화학상으로나 학술적 이론적으로 풀어내 체계화된 바 있는지 모르겠으나 우리 서민들의 일상 경험에서 취득한 사례를 한 가지 들어봅니다.

100가지 풀 즉, 백초(百草)는 분명히 약입니다. 그 안엔 약초도 있고 독초도 들어있습니다. 그 풀들이 상호상승작용으로 중화가 되면 약이 되는 것이란 겁니다. 필자가 터득한 체험으로는 분명하게 백 가지의 풀은 약이었습니다.

독초와 약초를 구체적으로 가릴 것 없이 무작위로 섞어서 백 가지 이상이 되면 그 성분함량은 곧 약초가 되어있었습니다. 최소한의 단위로 풀이 세 개가 있으면 약이 됩니다. 들판에서 갑작스레 상처를 입어 피가 날 경우 독초 약초 불문하고 풀 세 가지를 합쳐 으깨어 그걸 상처에 바르면 바로 지혈이 되더란 얘깁니다. 이게 약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이 글에서 약과 독을 꺼낸 이유가 있습니다. 정치사회문화는 물론 기업경영 교육 학술 등 모든 분야의 구성원이 약과 독 같은 사람들로 존재한다고 봅니다. 약과 독의 상호 상극과 상생이론의 진리가 내재돼있다는 말입니다.

약과 독과 같은 존재이므로 상호 견제가 필요하고 때때로 공생하며 협력하는 하이브리드(hybrid)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하는 겁니다. 약과 독이 때론 상호 간 성장 발전하는 동력이 된다는 말입니다.

다만 누가 나서서 중화시켜야 합니다. 요즘의 풀릴 기미가 보이질 않는 우리 사회 전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잘났다고 삿대질만 하질 말고 약과 독을 조정하여 중화해 화합하는 하이브리드 하시길 소원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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