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는 김밥을 파는 천국이 있다
우리 동네에는 김밥을 파는 천국이 있다
  • 김양미 기자
  • 승인 2019.12.20 0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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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양미의 '해장국 한 그릇'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우리 동네에는 ‘김밥천국’이 하나 있다. 그 전에는 몇 군데 더 있긴 했는데 지금은 달랑 하나만 남았다. 같은 이름의 상호를 걸고 문을 여는 음식점들이 요즘은 많다. ㅇㅇㅇ치킨, ㅇㅇㅇ족발, ㅇㅇㅇ곱창 등등. 만드는 사람은 달라도 음식의 레시피가 정해져 있어서 그 맛이 그 맛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동네 김밥천국도 똑같은 메뉴의 김밥을 만들고 라면을 끓이고 오징어 덮밥을 만들었을 텐데 왜 단 한 군데를 제외하고는 1년을 못 넘기고 모두 문을 닫게 된 것인지 궁금했다.

저녁에 혼자 밥을 먹게 되거나 토요일 점심을 간단하게 때우고 싶을 때 나는 김밥천국에 자주 간다. 핸드폰을 보면서 혼자 김밥이나 라면을 먹어도 부담 없는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로지 한 군데만 살아남은 그곳에 대한 궁금증 같은 게 있었다. 그래서 밥을 먹다가도 가끔 그곳 사람들을 은밀하게 살펴보곤 했다. 주방에 있는 언니(나보다 나이가 더 많아 보이는) 둘. 홀에서 서빙 하는 언니 하나. 김밥을 말고 있는 언니 하나. 이렇게 네 명이서 일을 하고 있었다. 시간대에 따라 가끔 달라지기도 하는데 아마도 오전 파트와 오후 파트로 나뉘어 있는 듯 했다. 김밥천국이 문을 연 지 4년 정도 되었으니 그동안 있던 사람이 나가기도 하고 다시 들어오기도 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바뀌지 않은 사람은 딱 두 사람. 김밥을 마는 언니와 주방에 왕언니는 변함없이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서로에게 가질 수 있는 가장 선한 마음 속에 천국은 자리하고 있는 게 아닐까.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우리가 살아가면서 서로에게 가질 수 있는 가장 선한 마음 속에 천국은 자리하고 있는 게 아닐까.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뭐 암튼 내가 그동안 보아온 모습에 의하면 이곳에 일을 하러 온 언니들 간의 알력이 조금 있어 보였다. 제일 킹카는 주방의 왕언니고 그 다음 넘버2가 김밥을 말고 있는 언니, 그리고 나머지는 대략 뭐 비슷했다. 이곳에서 잘 지내기 위해서는 주방의 왕언니와 김밥을 말고 있는 넘버2 언니의 지시를 잘 따라야 한다. 반찬을 너무 많이씩 담지 말라고 왕언니가 말했는데도 입을 쭈욱 내밀고 양껏 담아낸다거나 국물이 흘러져 있는 반찬통 주위를 제때 행주로 닦아놓지 않으면 왕언니의 눈이 홀 언니의 등짝에 그대로 갖다 꽂힌다. 분위기 파악을 제대로 했다면 당장 반찬의 양을 줄여 담거나 지저분한 반찬통 주변을 말끔하게 닦아야 한다. 하지만 눈치 없이 그냥 창밖이나 멀뚱 쳐다보고 있거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앉아있다면 그 언니는 다음번에 밥을 먹으러 갔을 때 그곳에 남아있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잘렸거나 아니면 별 거 아닌 걸로 눈칫밥 먹고 싶지 않아 스스로 나갔거나 둘 중에 하나였을 거다. 세상에는 그곳 아니어도 김밥천국은 널리고 널렸으니까.

홀의 넘버2 언니는 양파처럼 맨들맨들하게 꽉 조여 묶은 단정한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쉴 새 없이 김밥을 말면서도 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총괄하고 있었고 주방에서는 왕언니가 주문 순서대로 차질 없이 음식을 만들어내고 포장 손님들이 기다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하지만 복병은 주방 보조 언니와 홀을 담당하는 언니가 자꾸 바뀐다는 거였다. 눈에 차지 않게 일을 했거나 지시에 따르지 않았거나 ‘내가 여기 나와서까지 잔소리를 들어야 돼?’ 라는 표정으로 성의 없이 일하던 언니들이 그곳을 거치고 거쳐 지나갔다.

하루는 비가 오고 추운 날이었는데 뜨끈한 것이 먹고 싶어 김밥천국에 갔다. 그런데 그날따라 뭔가 어수선하고 정신이 없게 느껴졌다. 자리에 앉아 주문을 하며 나는 그게 새로 온 홀 언니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주문 종이를 가져다주면서 탁자 밑으로 볼펜과 종이를 떨어트렸다. 너무 서두르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해장라면과 돈가스김밥에 동그라미를 치고 있는 동안에도 다른 손님들에게 음식을 날라다 주는 모습이 영 불안해 보였다. 나는 주방 쪽을 쳐다봤다. 왕언니가 왠지 불안한 눈빛으로 새로 온 언니를 지켜보고 있었다. 넘버2 언니 쪽도 슬쩍 봤다. 김밥을 말고 있으면서도 힐끔힐끔 불안해하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얼마 못가겠다 저 언니.’ 탁자 위에 돈가스김밥 한 줄이 먼저 올려졌다. 그런데 이번엔 뜨거운 국물을 서둘러 내려놓다가 쏟아져 버렸다. 나는 휴지를 뽑아 옷에 튄 국물과 탁자를 닦았다. 그런데 당황한 언니가 연신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다. 괜찮다고 내가 닦겠다고 말을 하다가 그 언니의 얼굴을 쳐다보게 됐는데.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진짜 온몸으로 나에게 미안해하고 있었다.

사람이 살면서 실수도 할 수 있고 일을 잘 못할 수도 있다. 나 또한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내가 뭔가를 잘못했다고 해도 정말 진심으로 마음을 담아 미안해해본 적이 있을까. 실수할 수도 있지. 잘 못할 수도 있지. 너는 완벽해? 라는 마음이 한편에 있는 이상은 정말 진심으로 사과하고 미안해하지 못한다. 그냥 그런 척 할 뿐이다. 그런데 그 언니는 그 순간 정말 진심을 다해 나에게 미안해하고 있었다. 그 날 거기서 라면과 김밥을 먹는 30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에도 그 언니는 몇 번의 실수를 여기저기서 하고 다녔다. A가 주문한 음식을 B의 탁자에다 갖다 놓았고 남은 음식을 치우다 국물을 쏟았고 주방 왕언니의 지시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고 넘버2 언니가 건네 준 김밥을 들고 어디에 갖다 주어야 할 지 방황하고 있었다. 나는 그 언니를 보면서 조금 슬퍼졌다. 다음에 오면 못 보겠구나 저 언니.

그러고 나서 한동안은 그곳에 가지 못했다. 그러다 한 달 만인가. 오징어덮밥이 먹고 싶어 김밥천국을 찾았다가 문득 그 언니 생각이 났다. 당연히 나갔겠지. 아직까지 있을 리가 없잖아. 생각하며 그곳의 문을 밀고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홀에서 들려오는 하이 톤의 경쾌한 목소리. 그 언니였다. 한 달 전에 손님들 모두를 정신없게 만들고 왕언니와 넘버2 언니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그 언니가 당당하게 그곳에 살아남아 있었다. 종이와 볼펜을 갖다 주며 그때처럼 떨어트리진 않았지만 여전히 정신없이 서두르고 있었다. 주방에서 나온 음식을 주문한 탁자에다 올려놓으며 “맛있게 드세요!”라고 활짝 웃으며 돌아섰다. 손님이 나간 자리를 서둘러 치우고 바닥에 떨어진 휴지를 주워 올리면서도 옆자리 꼬마 손님에게 “아이 예뻐라. 맛있게 먹어요”라고 말하며 힘껏 웃고 있었다. 한 번 가면 될 걸음도 두 번 세 번 분주하게 움직이며 정신없이 일했다. 하지만 주방의 왕언니는 홀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음식만 만들고 있었고 넘버2 언니도 홀에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김밥을 말고 있었다. 마치 이런 표정으로 말이다.

“너에게 다 맡기겠노라.”

나는 오늘도 김밥천국에 가서 밥을 먹었다. 그곳에는 너무 많이 웃어서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 생겨버린 천사가 서빙을 하고 있다. 오늘은 넘버2 천사가 이렇게 말했다. “언니, 좀 앉아서 쉬어. 다리 아프겠다.” 왕언니 천사가 주방에서 매실 깡통 하나를 따서 홀 천사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너 이거 좀 마시고 해.”

우리 동네에는 밥집이 하나 있다. 김밥 맛이 대단해서, 라면 맛이 특별나서, 찌개 맛이 끝내줘서, 이곳이 바글바글한 것이 아니다. 세상은 이유 없이도 사람을 잘라내고 무시하고 짓밟기도 하지만 세상 또 어딘가에는 이유가 있어도 사람을 잘라내지 않고 무시하지 않고 짓밟지 않는 곳이 있다. 우리 동네 김밥천국에는 누군가의 작은 격려와 토닥임으로 내내 행복하게 웃으며 일하는 천사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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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김밥천국 -김양미

사박사박 눈 쌓인 길을 밟아 
저렴한 밥 한 끼 먹으러 왔더니
<하늘보일러> 작업조끼 입은 아저씨가
후루룩 후루룩 맛나게도 밥을 들이킨다
벌건 육개장인지 흘러내리는 콧물인지
땀 뻘뻘 흘려가며 쉴 새 없이 후룩후룩

보일러 빵빵 터져 돈벌이 좀 되는 계절
아저씨는 손발이 꽝꽝 얼도록 일했나보다
얼은 몸 뜨거운 육개장 국물로 녹이고
땀 흘린 벌건 얼굴로 콧물 패앵 풀어내더니
얼른얼른 돈 벌러 다시 길을 나선다 

김밥천국은 따뜻한 밥 한 그릇
아저씨에게 그렇게라도 먹여 보낸다 
고기보다 숙주와 고사리가 더 많은
꼴랑 6천원 짜리 육개장일 뿐이지만
24시간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참 서민적인 천국이 여기 있다

 

 

<김양미 님은 이외수 작가 밑에서 글 공부 중인 꿈꾸는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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