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영 지음/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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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이유리 기자] 은희경의 『새의 선물』, 천명관의 『고래』, 김언수의 『캐비닛』… 한국문학에 또렷한 이정표를 새긴 걸출한 작품들을 산출해낸 문학동네소설상의 제25회 수상작 '최단경로'가 출간되었다. 황여정의 『알제리의 유령들』 이후 이 년 만의 수상작이다. 개성 있고 신선한 상상력과 날카로운 시대정신을 갖춘 수상작들을 선보이며 단 한 번도 독자를 실망시킨 적 없는 문학동네소설상의 역사는 이번 수상작에서도 변함없이 계속된다. “어디를 봐도 흠잡을 구석이 없는 뛰어난 작품”(소설가 박민정), “에너지와 기운이 강력한 소설”(소설가 정용준)이라는 찬사를 들으며 수상의 영예를 거머쥔 강희영의 '최단경로'는, 전임자의 방송에서 알 수 없는 목소리를 발견한 라디오 피디 ‘혜서’와 교통사고로 아이와 엄마를 잃은 ‘애영’이 각각 소리의 정체와 사고의 근원을 추적하는 여정에서 불가해한 우연으로 마주치며 서로를 이해해나가는 이야기다. 각자 다른 시선과 상처를 지닌 인물들이 하나의 서사로 정교하게 수렴되는 탁월한 구성력과 완결성, 읽는 이의 마음에 곧바로 가닿는 간결하고 인상적인 문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라디오 피디인 혜서는 전임자인 ‘진혁’으로부터 인수인계 자료가 담긴 업무용 노트북을 건네받는다. 그런데 우연히 열어본 노트북 맵의 계정은 여전히 로그인 상태이고, 맵에는 진혁이 떠난다던 시드니가 아닌 암스테르담의 지명들을 검색한 기록이 남아 있다. 진혁의 방송에서 알 수 없는 희미한 소리까지 발견한 혜서는 늘 의뭉스러웠던 진혁의 태도에 의문이 더해져 맵의 검색 기록을 단서로 그의 뒤를 좇아 암스테르담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몇 차례의 엇갈림 끝에 애영과 마주친 혜서는, 고등학생 때 진혁과 연인관계였던 애영이 임신 사실을 외면하는 그를 뒤로한 채 암스테르담에서 미술가로서 새 삶을 시작했지만, 잘못된 지도 때문에 일어난 교통사고로 아이와 엄마를 동시에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뒤 진혁에게 그 사실을 알리는 과정에서 서로의 휴대폰이 바뀌어 애영이 그의 맵 계정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 아이의 애착인형이었던 곰 인형을 사고가 난 삼거리 신호등에 놓아두며 아이를 추모해왔던 애영은 끝내 안락사를 계획하고, 혜서와 애영, 그리고 애영을 이해하는 미술가 친구 ‘마이레’는 사라진 진혁에게 연락을 시도한다.

빅 데이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언제나 축적된 데이터가 도출해내는 빠르고 경제적인 노선을 추구한다. 그러나 그렇게 찾아낸 ‘최단경로’가 항상 ‘최적’의 경로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생의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는 길 위에는 갖가지 장애물이 놓여 있고, 아무리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해도 그것을 모두 짐작하고 피해 가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삶의 예측불가능한 돌발성을 쉽게 간과하곤 한다.

애영의 아이와 엄마를 앗아간 교통사고 역시 데이터의 작은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고를 낸 운전자의 지도에는 아이와 할머니가 건너던 횡단보도가 표시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애영은 무력하게 아이를 잃었다는 슬픔에 더해 어쩌면 이 사고가 누구의 잘못도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안락사를 선택한다. 작가는 “데이터를 경유함으로써 애도라는 무거운 감정을 독자가 상상해야 할 영역으로 비워두고”(문학평론가 강지희) 존재와 부재라는 삶의 양면성을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우직하고 고르게 드러냄으로써 인간에게 죽음이란 무엇인지, 그것의 무게를 어떻게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지 차분하게 묻는다.

진혁의 방송에 담긴 알 수 없는 소리를 반복해서 듣고, 노트북 맵에 기록된 지역의 실제 모습을 자신의 휴대폰에서 스트리트 뷰로 확인해가며 그의 자취를 좇는 혜서의 여정 역시 데이터와 몇 가지 기술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혜서를 추동한 것은 그러한 데이터, 혹은 진혁에 대한 의문만은 아니다. 경력직으로 입사한 혜서는 진혁과 같은 연차였지만 그와 달리 그녀에게는 성과를 낼 만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고 “외곽 시간대라고 부르는 한산한 자리에 편성된” 프로그램이나 공개방송의 협찬을 담당하는 업무만이 주어질 뿐이었다. 소설은 혜서가 여성으로서 겪는 차별과 부조리에 더해 불공정한 노동과 인종차별의 문제까지 곳곳에서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아이의 아빠인 진혁은 고작 자신의 존재를 감추는 것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혜서의 프로그램 작가인 ‘민주’는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살지 않는 이상 직접 차를 몰거나 택시를 타고 출근해야 하는” 새벽 시간대 프로그램에서조차 최저임금의 급여를 받을 뿐이다. 애영과 처음 마주친 네덜란드인 ‘가브리엘’ 역시 “곤니치와”라고 인사하며 그녀의 인종과 국적을 속단해버린다. 이처럼 현실 전반에 걸친 차별의 단면들을 요령 있게 암시하는 작가의 시선이 혜서의 여정과 애영의 선택에 설득력을 더한다.

'최단경로'는 신인 작가의 첫 작품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긴밀한 설정과 절제된 감정 표현으로 단단하게 직조된 소설이다. 도입부에서 몇 가지 복선을 내비치는 인공지능 화자가 소설의 마지막에 다시 등장해 인간과 죽음, 존재와 부재에 대해 사유하는 장면 또한 아름답다. 아이의 애착인형이었던 곰 인형을 사고현장에 놓아두는 애도의 방식도 마음을 울리지만, 무엇보다 귀중한 것은 마음이 무너지기 쉬운 장면에서조차 충분한 거리를 유지하는 작가적 태도이다. '최단경로'로써 작가의 길에 첫발을 내딛지만 “길이 좋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작가의 행보가 더욱 미더운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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