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식 동시집/ 이시누 그림/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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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이주리 기자] 2010년 『어린이와 문학』을 통해 등단한 후 대산창작기금을 받는 등 주목받는 작품 활동을 펼쳐 온 이준식 시인의 첫 동시집 '나한테 밑줄 한번 쳐 줄래'가 출간되었다. 시인은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학교에서 마주치는 풍경을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실감 나게 그린다. 교사와 어린이의 관계에서 포착한 다정한 모습, 어린이들 사이에서 생겨나는 미묘한 감정, 가정에서 발견한 어린이들의 면모 등을 생생히 담아낸다. 순수하고 담백한 시선으로 품은 따뜻한 기운이 독자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는 동시집이다.

이준식 시인의 동시는 단순하고 담백하다. 시인은 자신의 생각과 말을 앞세우는 대신, 눈길이 닿는 대상을 지극한 눈길로 오래 바라본다. 눈길이 먼저 가닿는 대상은 다름 아닌 어린이다. 『나한테 밑줄 한번 쳐 줄래』에는 청소 시간에 빗자루를 들고 장난치는 천진한 어린이가 있고(「청소 시간」), 술래잡기하면서 복도를 달리다 갑자기 멈춰 서서 첫눈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는 어린이가 있고(「첫눈」), 졸업식에 모여서 다 같이 환하게 웃는 애틋한 어린이들이 있다(「졸업 사진」). 또 축구하고 노래하고 발표하고 환하게 웃는 모습에, 그리고 그 무엇도 아닌 ‘나’한테 밑줄을 쳐 주는 어린이가 있다.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시인은 자연스럽게 어린이와 함께 생활하는 교사의 모습을 자주 그린다. 학생의 생활을 살피느라 밥 먹으면서 쉬지 않고 떠드는 선생님을 묘사하고(「급식 시간」), 6학년이 신발 끈도 제대로 못 묶는다고 가볍게 타박하면서도 기꺼이 끈을 고쳐 매 주는 선생님의 모습도 담아낸다(「신발 끈」). 이준식 시인에게 ‘교사’라는 직업이 어떤 의미인지를 짐작해 볼 수 있는 「어디에 숨었나」는 특히 인상적이다.

시인은 교사와 어린이들이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어린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학교’라는 공간은 어떤 방식으로 어린이들을 감싸 안아야 하는지 넌지시 이야기한다. 시인이 동시에 그려 놓은 것처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어린이와 그들을 아끼는 교사가 어우러져서 즐겁게 생활하는 공간으로서의 학교란 모두가 꿈꾸고 그리는 바람직한 이상향이지 않을까. 어린이 독자들은 『나한테 밑줄 한번 쳐 줄래』를 읽으며 ‘학교’라는 공간의 의미를 새삼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시인의 동시에서는 특별한 시적 기교를 찾기 어렵다. 그저 어린이들의 모습을 받아 안으려는 태도가 느껴질 뿐이다. 그 겸손한 태도는 동시 속 아이들의 모습을 따뜻하게 품으면서, 읽는 사람의 마음에 훈훈한 기운을 불러일으킨다. 어린이 독자들은 『나한테 밑줄 한번 쳐 줄래』에 담긴 가족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자기 가족의 얼굴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될 것이 분명하다.

가정과 학교에서 생활하는 어린이를 바라보는 이준식 시인의 따스한 눈길이 미더운 것은, 그 눈길이 멀리 있는 사람에게도 다가가기 때문이다. 이준식 시인은 바람과 빗방울과 새가 잠시 머물다가 지나가는 나뭇가지의 흔들림을 포착해 낼 만큼 섬세한 눈을 가진 시인으로(「그만큼」), 아파트 옥상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오며 페인트칠하는 아저씨들의 모습을 오래 지켜보기도 한다.

시인은 순하고 담백한 시선으로 이웃의 삶을 바라본다. 다른 사람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기도하는 이웃의 삶을 동시로 옮길 뿐이다. 그 눈길이 마치 카메라 렌즈처럼 맑고 투명해서 오히려 시선을 잡아끈다. 『나한테 밑줄 한번 쳐 줄래』를 읽은 어린이 독자들도 순수하고 맑은 눈길로 학교를 오가는 길에 마주치는 이웃의 삶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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