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바다속으로 들어가는 태양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태양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요즘은 내가 웃을 일이 참 많다. 상상하는 재미가 많으니 웃을 일도 자연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일체유심조라고 했던가.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말이 새삼 내 가슴을 찌른다. 초점을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 어제까지만 해도 이익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것은 손해가 되고, 손해라고 여겼던 것은 이익이 되기도 한다.

밤도 깊은 시간에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노라면 내가 별에서 왔을지도 모른다는 예전의 막연한 생각이 확신으로 다가온다. 지구상의 모든 존재는 별과 별이 부딪혔을 때 발생한 먼지와 티끌로부터 시작됐다는 천문학 전공자들의 글을 읽을 때는 설마, 혹시, 했었지만 살아온 날이 많아질수록 나는 별에서 왔고, 그러므로 나는 곧 별이다 하는 생각이 굳어져 간다.

우주적 차원에서 볼 때 내 몸은 티끌 한 점 보다도 작다. 한 마리 작은 굼벵이의 눈으로 보자면 내 몸은 거대한 바위 아니 핵폭탄 급으로 보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진정한 정체는 무엇인가. 한 점의 티끌보다도 작은 미물인가? 핵폭탄 급의 거대한 괴물인가?

우리 집 마당에는 내가 일찍이 잡동사니 농법의 농사를 짓는다는 등의 허풍을 떨었을 정도로 수백 아니 어쩌면 수천 종류에 달할지도 모를 정도의 풀과 나무와 곤충 그리고 파충류와 새들이 있다. 풀과 나무와 곤충 그리고 파충류들은 내가 아직 이름도 모르는 것들이 수두룩하지만 나무는 덩치가 커서인지 대부분 그 성질과 이름을 알고 있다.

오동나무가 있는가 하면 흔해빠진 감나무도 당연히 있고, 살구와 배, 사과, 앵두, 매화나무도 없으면 안 된다는 듯이 사다가 심었다. 은행나무가 있고 호두나무가 있으며, 대추나무 옆에는 무화과나무가 있고, 그 옆에는 두충나무가 있고 두충 앞에는 산수유가 있다. 모과나무가 있는가 하면 골담초가 있고, 앵두나무에 탱자나무에 심지어는 측백나무와 노간주나무와 황칠나무와 단풍나무 그리고 으름넝쿨에 하수오, 백수오 등등 그야말로 없는 것이 없다 할 정도로 많은 나무들이 있다.

이 많은 나무들을 사거나 혹은 캐다가 심은 까닭은 꽃도 보고 단풍도 보자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우리 집은 가을이 깊어지면 낙엽 뒹구는 소리가 음악처럼 흐른다. 물론 바람이 불면 흩날리는 낙엽으로 인해 눈앞이 어질어질해지는 판타지가 연출되기도 한다. 마침내 겨울이 깊어져서 눈이 내리고 녹기를 되풀이하는 동안 낙엽은 수북이 쌓인 채로 흉물이 되어간다.

초기에는 그 모든 낙엽을 긁어모아서 불에 태우거나 땅에 묻었지만, 나중에는 지혜가 생겼다고나 할까, 시멘트로 퇴비 발효장을 만들어서 그 안에 쟁여 쌓기 시작했다. 전년에 쟁였던 낙엽이 여름을 지나는 동안 썩고 발효가 될 즈음이면 새로운 가을이 와서 새로운 낙엽이 생긴다. 작 익은 퇴비를 퍼내고 새로운 낙엽을 쟁여 쌓으려고 포장을 벗겨내고 삽질을 하노라면 여기저기 도처에서 굼벵이가 수도 없이 나온다.

 

마당에 쌓인 낙엽
마당에 쌓인 낙엽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장수하늘소와 매미의 유충인 이 굼벵이들은 아마도 낙엽 썩은 것을 고급 식품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그래서 어미가 땅이 아닌 퇴비 발효장에다가 굳이 알을 낳았던 것이겠지만, 사람이 그 퇴비를 사용할 목적으로 파헤칠 수도 있다는 데까지는 생각이 못 미쳤다. 어쨌든 굼벵이들은 이제 큰일났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목숨이 명제경각이다. 그렇다고 어미를 원망할 것인가. 아니다. 굼벵이 어미는 굼벵이들에게 생존의 기술도 유전자에 기록해 놓았다. 그것이 바로 저 유명한 죽은 체하기 전술이다.

내가 만일 핵폭탄 급의 거대한 사람이 아니고 하루살이나 초파리 정도의 크기였다면 굼벵이들은 아마 퇴비가 파헤쳐져서 자신의 몸이 밖으로 드러나는 순간 그 즉시 어떤 방식으로든 탈출을 도모했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너무 크다. 서툴게 탈출을 도모하다가는 그대로 목숨이 끝나버릴 것 같다. 그래서 몸의 힘을 싹 다 빼고 가만히 있어 버린다. 얼핏 그냥 보면 정말로 죽은 것처럼 느껴진다. 죽어도 꽤 오래 전에 죽은 것 같다.

요 귀여운 녀석들. 어디 한 번 두고 보자. 흥미진진한 마음으로 가만히 몰래 웅크리고 앉아서 지켜보기를 뭐 그리 오래 할 필요도 없었다. 기껏 십 분이나 지났을까. 아니 어쩌면 오 분이나 겨우 지났을 것이다. 굼벵이 한 마리가 꾸물꾸물 움직인다 싶더니 너도나도 일제히 꿈틀걸음으로 달아나기 시작한다. 어떤 녀석은 아예 그 작은 발로 땅을 파고 들어가기도 한다.

굼벵이들이 보여준 살아남기 기술은 이 땅에 수도 없이 존재해 왔고 지금도 열심히 껄떡거리고 있는 작은 권력자들의 행태와 닮은 것처럼 여겨진다. 자기들을 그 자리에 앉혀준 큰 권력자가 명실상부하게 강력하면 납작 엎드려서 눈치나 슬슬 살피지만, 자유스럽게 느슨해지면 권력 자체를 물어뜯고 올라타서 보통 사람들을 아연실색하게 하는 작은 권력자들의 생존 기술은 사실 치졸하기조차 해서 굼벵이들의 그것과 대등한 무게로 비교한다면 굼벵이들이 모욕감을 느낄 수도 있다.

 

어느 날의 노을
어느 날의 노을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붉은구름
붉은구름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2019년은 아마도 ‘전대미문’과 ‘초유의 사태’라는 단어가 거침없이 막 사용된 한 해로 기록될 것 같다. 평생을 언론의 제자리 찾기에 헌신했던 청암 송건호 선생의 아호를 딴 청암언론재단에서 현직 검사에게 언론상을 주었다. 얼핏 생뚱맞기 짝이없어 보이고, 전대미문에 초유의 사건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 상을 받은 주인공이 그동안 해온 언행을 복기해보고 있노라면 언론이란 게 무엇인가 하는 문제의 정답이 나온다는 느낌이어서 가슴은 뭉클뭉클하고 눈에서는 눈물이 왁왁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아진다. 상을 받은 임은정 검사의 수상소감에 이런 말이 나온다.

“저는 지금도 언제 잘릴지 몰라서 전전긍긍해요. 솔직히 무섭기도 하고요. 그동안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벌벌 떨면서 울어댄 그 시간들은 앞으로도 아마 당분간은 계속되겠지요.”

검찰 제도의 기원을 추적하다 보면 약자보호라는 대원칙을 만나게 된다. 임은정 검사는 이 원칙에 충실해 왔다. 그러나 검찰조직은 검찰 자신의 이익이 무엇인가를 최우선 가치로 여긴다. 공익과 정의를 앞에 세우고 있지만 그것은 가짜라고 임은정 검사는 오랫동안 주장해 왔다. 그래서 임은정 같은 검사는 조직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검찰은 생각한다. 그렇다고 함부로 막 몰아내면 자신들의 본심이 드러날까 두렵다. 그래서 망설이고, 망설이면서 회유한다. 임은정 검사는 조직의 이런 본심조차도 폭로해 버렸다. 무슨 대단한 신문이나 방송을 통한 것도 아니다. 그가 사용한 매체는 달랑 하나 페이스북이었다. 그는 말한다.

“제가 검사 생활 이십 년이 넘었거든요. 이십년 넘은 검사의 월급이 얼마인지 아세요? 많아요. 굉장히 많아요.”

그가 굳이 월급 얘기를 꺼낸 것은 이런 말을 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검사의 월급이란 곧 국민의 세금이라는 거, 국민의 세금으로 먹고사는 공무원이 개인의 이익을 최우선 가치로 둔다면 그것이 곧 깡패요 강도라는 거.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인 정경심 교수의 공판 준비기일에 나온 검사는 판사가 자신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해서 ‘전대미문’의 재판정이라고 볼멘소리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날 재판정에 나온 검사는 부장과 부부장 그리고 평검사 등등 그 숫자가 무려 아홉 명에 달했다. 사회부 취재를 많이 해온 기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전하는 얘기에 따르면 검사가 아홉 명이나 등장하는 재판정은 일찍이 한 번도 없었던, 이른바 초유의 사태라고 한다. 제아무리 큰 사건이라도 검사 서너 명 정도가 공판정에 나왔지 아홉 명씩이나 떼를 지어 나선 적이 없다는 것이다.

중국의 저 유명한 인해전술을 연상케 하는 이런 초유의 사태가 뜻하는 바가 무엇일까 곰곰 생각하고 있노라면 거기 어디에서 두려움을 만나게 된다. 검찰은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위클리서울/김용주 기자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위클리서울/김용주 기자

깊은 밤, 마당에 나와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가끔 꿩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기도 한다. 처음에는 어느 한쪽에서, 이를테면 서쪽에서 꿩 소리가 다급하게 들리기 시작하면 동쪽에서 무슨 일이냐고 묻기라도 하듯이 또다른 꿩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북쪽과 남쪽에서도 꿩꿩, 소리가 다급하게 난다. 아무렇게나 그냥 건성으로 들어도 평상시의 꿩 소리는 아니다. 처음 소리를 냈던 꿩은 예사롭지 않은 소리를 멈추지 않고 계속 내고 있지만, 동쪽과 북쪽 그리고 남쪽의 꿩 소리는 두세 번 반복되다가 차츰 그쳐 간다. 그때쯤 서쪽의 꿩 소리는 단말마의 비명소리가 되어가고, 소리의 강도는 차츰 잦아들면서 이윽고 멈춘다. 다복솔 밑에 웅크리고 앉아 곤히 잠들어 있던 꿩이 너구리나 족제비 혹은 삵 같은 것들의 기습공격을 받고 그렇게 소리를 질러대며 죽어갔으리라.

사람도 위기의식을 갖게 되면 소리를 지른다. 무슨 소리인지 알 수는 없다. 소리를 지르는 사람 자신도 자기가 무슨 소리를 냈는지 정확하게는 모른다. 되는 소리 안 되는 소리 그냥 막 질러댈 뿐이다. 청와대 인근에서 ‘문재인 저놈 목을 따자’고 주말마다 설교 명목의 소리를 질러대는 목사의 심리를 일반상식의 선에서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가 입으로 내뱉는 말이 구체적으로 무슨 뜻을 갖고 있는가 역시 상식의 선에서는 이해가 안 된다.

보통 사람의 언행은 대체로 상식과 통념이란 이름의 규칙을 따르고 있기에 누구라도 금방 이해가 가능하다. 심지어는 호시탐탐 한국을 먹어치우고자 해온 일본의 침략본능조차도 상식의 선에서 해결이 가능하다. 일본은 섬나라이고, 지진이 많고, 해마다 조금씩 물에 잠겨가고 있으니 이웃 나라로 이주를 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라고 말해줄 만하다. 문제는 솔직하게 까놓고 얘기를 하지 않고 성동격서 식의 온갖 속임수를 동원한다는 점이다.

속임수는 정치와 경제 병법 등 많은 분야에서 유혹을 받는 고급 기술이긴 하다. 다만 위험부담이 너무 크고, 속임수가 드러났을 경우 회생불능의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각오를 해야만 한다. 특히 사람의 정서를 파고드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종교 지도자의 성동격서 식 감언이설은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공황장애 속으로 몰아넣는 멸망으로 끝나기 십상이다.

설교의 형식을 빌린 목사의 ‘문재인 저놈 묵을 따야 한다’는 발언은 명백하게도 종교적 발언은 아니다. 종교의 외피를 빌린 정치행위인 것 같지만 그것만도 아니다. 목사의 그런 터무니없는 발언의 이면에 깔려 있는 것은 두려움이다.

 

겨울 해수욕장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한국의 일부 개신교 지도자들이 통일을 두려워 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만에 하나라도 통일이 되면 안 된다는 거. 통일이 되면 종교를 마약이라고 선포한 공산주의 사회의 물이 어떤 방식으로든 스며들 텐데 그러면 자기들의 밥그릇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거.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 시대를 맞이하면서 그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역대 어느 대통령인들 통일을 앞에 세우지 않았을까마는,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는 역대 여느 대통령들과는 궤가 다르다. 우선 청와대 안에서만 통일을 외치는 게 아니라 전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차근차근 포석을 놓고 있다.

‘문재인 저놈 목을 따야 한다’고 외치는 목사의 두려움은 일개 재판정에 검사를 아홉 명씩이나 투입한 검찰의 두려움과도 거의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리고 그것은 곧 나날이 극단을 향해 치달아가는 일부 극우 정치집단의 두려움이기도 하다. 이들 세 집단의 공통점은 두려움뿐만이 아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있으며, 사람들의 의식이 얼마나 많이 깨어나고 있는가 하는 문제에는 도통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도 목소리 높여 공익을 외친다. 공익을 외치는 목소리 뒤에 감춰진 사익추구의 욕망이 벌써 전에 드러나 버렸다는 것을 그들 자신은 아마 죽어서도 모를 것이다.

돌아보면 ‘문재인 저놈 목을 따자’고 외치는 목사의 설교가 처음부터 그렇게 과격한 양상을 띠었던 것은 아니다. 일부 극우 정치집단의 언행 또한 처음부터 그렇게 과격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 그런 자신감 넘치는 에너지를 심어준 것은 검찰이었다. 검찰이 조국 일가족을 상대로 하루에만 스무 곳도 넘는 압수수색을 하는 등 먼지털이를 시작한 이후 목사의 어깨에는 전대미문의 날개가 돋았고, 일부 극우 정치집단의 행보는 활기를 띠어 갔다.

검찰이 왜 그토록 집요하게 조국을 물고 늘어지는 것이냐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딱 하나였다. 조국 전 법무장관이 오래 전부터 일관되게 검찰개혁을 주창해 왔고, 그래서 검찰은 당연히 그를 기피한다는 것. 그런데 요즘 들어 후일담처럼 들리는 얘기에 따르면 민정수석 당시의 조국이 윤석열 총장 임명 건에 반대표를 던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윤 총장의 눈 밖에 났고, 총장의 그런 심기를 잘 읽은 일선 검사들이 조국 죽이기에 골몰하고 있다는 것이다. 윤 총장 본인이야 물론 터무니없는 억측이라고 하겠지만, 나 같은 보통 사람들의 판단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나 같은 보통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은 조국 전 법무장관의 딸이 소녀 시절에 받은 표창장이다. 표창장 한 장으로 시작한 수사가 돌고 돌아서 직권남용까지 왔다. 표창장 문제는 이제 거의 언급조차 안 되고 있다. 그동안 들어간 수사 인력이 도대체 얼마인지, 그에 따른 비용과 낭비는 또 얼마인지, 나 같은 보통 사람은 상상조차도 안 된다.

직권남용이라는 것만 해도 그렇다. 나 같은 보통 사람이 생각하는 직권남용은 공무원이 직위를 이용해서 타인을 괴롭히거나 업무를 방해했을 때 성립되는 범죄이다. 그런데 검찰은 민정수석이 비리 혐의가 있는 공무원을 검찰에 수사의뢰를 하지 않고 마음대로 사표나 받고 말게 했으므로 직권남용이라고 한다. 이런 식의 잣대라면 이 땅의 모든 공무원은 복지부동의 자세를 취해야만 한다. 정무적 판단 같은 것은 일체 하지도 말고 생각도 말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 대통령도 마찬가지이다.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보나 저렇게 보나, 오늘의 대한민국 검찰은 작아도 너무 작아 보인다. 이렇게 작은 가슴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그래서 묻고 싶어진다. 그대들은 어느 별에서 오셨느냐고.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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