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주나 – 세계여행] 인도네시아 발리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여기, 주나>는 여행 일기 혹은 여행 기억을 나누고 싶은 ‘여행가가 되고 싶은 여행자’의 세계 여행기이다. 여기(여행지)에 있는 주나(Juna)의 세계 여행 그 열네 번째 이야기.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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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 깊었던 사원 Pura Tirta Empul. 기도를 하고 물로 자신의 근심을 씻어내는 사람들. 걱정이 많은 사람들로 보이기보다는 간절함이 많은 사람들로 보였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발리? 2004년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 배경이었던 거기? 그렇다. 나에게 발리는 그저 오래된 드라마의 제목일 뿐이었다. 그리고 한국인들에게 사랑받는 신혼여행지 정도.

이미 여행 3일 째에 비행기를 놓치면서 나의 여행은 무계획이 되었다. 2박3일 여행을 가도 빼곡하게 정리해서 준비하던 내가 1년짜리 무계획 여행이라니. 참 대책이 없다. 그래서 좋다. 가고 싶어지는 곳은 어디든 갈 수 있으니까.

여행지를 선정하는 기준은 굉장히 단순하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는 곳, 보고 싶은 친구가 있는 곳, 이동 경로가 짧고 비행기 값이 저렴한 곳, 혹은 사진 한 장으로 나의 마음을 건드린 곳.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여행지가 바로 인도네시아 발리였다.

 

정말 푸른 발리. 어딜 가나 대자연속에 있는 느낌이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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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 공항. 도착한 순간부터 떠나는 순간까지 숲 속에 와있는 기분이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여행을 떠나기 전만 해도 인도네시아는 관심이 가는 나라가 아니었다. 앞서 말했듯 발리는 그저 드라마 제목 때문에 알게 된 신혼여행지일 뿐이었다. 섬나라니까 바다가 아름답겠지? 하지만 난 이미 브룸에서 케이블 비치를 봤기에 그 어떤 곳의 바다에서도 감명을 받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런 내가 발리에 갔다.

호주에서 가고 싶은 곳을 찾지 않았다는 핑계를 대며 머물고 있었다. 이별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여동생, 그리고 호주라는 나라 자체와의 이별이 무척 두려웠다. 하지만 평생을 머물 수는 없다. 어디로 가면 좋을까 고민을 했다. 문득 방콕에서 만난 친구 디이지가 생각이 났다. 호주에서 이별을 하고 떠나지만 곧바로 친구와 만남을 할 수 있는 곳, 호주에서 비행기 값이 저렴한 곳, 내가 좋아하는 음식 팟타이가 있는 곳, 그리고 디이지가 방콕에서 보여 준 사진 속의 모습이 있는 곳. 바로 인도네시아 발리였다.

그렇게 무작정 발리행 비행기 표를 끊은 후, 인도네시아에 대해서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세상에. 시차가 3곳이나 다른 생각보다 훨씬 더 큰 나라였다. 그런 줄도 모르고 발리에서 떠나는 표까지 끊어 버린 나. (발리 이후의 일정은 정해져 있었다.) 5일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다. 하루는 디이지 만나서 수다 떨고… 그리고… 뭐 하지? 그렇게 계획이 없어서 가게 된 도시에 도착했다.

모든 입구에는 작은 향이 있다. 하루의 시작을 기도와 향과 함께 하는 사람들. 기도를 한다는 것은 삶에 간절함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지?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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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에서 만난 친구 디이지가 보여 준 사진 속 장소. 여행지를 선정하는 기준은 단순하다. 내 마음을 건드리는 사진 한 장.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발리는 제주도보다 약 3배 큰 면적을 가진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섬이다. 화폐는 루피아를 사용하는데 단위가 커서 계산하기 여간 복잡한 게 아니다. (100루피아 = 약 8.37원, 2019년 12월 기준) 인구의 90% 이상이 힌두교인데, 모든 시작을 기도와 향과 함께 한다. 그래서 모든 입구에는 작은 향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의 시작을 기도와 함께, 일터에 나가 일과의 시작을 기도와 함께.

종교가 없지만 마치 (모든)시작을 응원해 달라고 말하는 것만 같은 기도의 시간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가족들만을 위한 작은 사원이 있는 집들도 많았다. 무언가를 믿는다는 것은 참 좋은 것 같다. 그게 신이든 나 자신이든 가족이든. 기도를 한다는 것은 삶에 간절함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간절함을 가진 나라 발리에서 시간을 보내며 놀란 점은 의외로 한국인이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휴양지이자 관광지인 발리에는 호주 사람들이 가장 많았고, 동양인보다는 서양인이 더 많았다. 한국과 멀지 않고, 안전하고, 저렴하고, 예쁜 쇼핑 아이템들이 있고, 사진 찍기 좋은 곳들이 많고, 아름다운 바다가 있는 인도네시아 발리. 그런데 한국인이 드문 이유는 무엇일까? (나중에 생각해보니 내가 방문한 시기가 우기였고, 머무는 내내 비가 내려서 바다에서는 30분 이상 머물지를 못 했다.)

 

우붓에서는 알람을 맞출 필요가 없다. 꼬끼오 소리가 아침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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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로 만든 주나. 주문할 때 원하는 문구를 말하면 만들어 준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발리에서 한 가지 불편한 점이 있다면 대중교통이 없다는 것인데 이 또한 그랩(동남아식 우버)을 이용해서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다. 걸어서 30분 거리를 한국 돈 600원에 이동할 수 있다.

발리에 도착한 첫날은 친구 디이지를 만나기 위해 공항에서 가까운 꾸따라는 지역에서 머물렀다. 꾸따는 꾸따비치에서의 서핑으로 유명하고, 공항과의 거리가 가까워서 첫날이나 떠나는 날 머물기 좋은 지역이다. 2달 만에 만난 디이지는 내가 이렇게 빨리 발리에 올 줄 몰랐다며 연신 반가워했다. 하지만 백수인 나와 다르게 일을 하고 있는 디이지는 출근을 해야 해서 하루밖에 만나지 못했다. 디이지와 헤어진 나는 ‘이제 정말 뭐하지?’ 고민했다. 발리에 대해 검색하다가 이런 문구를 보게 되었다. “숲 속에 있고 싶다면 예술가의 마을 우붓으로 가라.” 그 단 한 줄의 설명을 보고 우붓으로 떠났다.

우붓에서는 알람을 맞출 필요가 없었다. 아침마다 “꼬끼오” 소리가 알람이 되기 때문이다. 나무로 가득한 숲속 마을에서 자연의 소리에 맞춰 일어나 내가 좋아하는 팟타이를 먹고, 요가를 하러 갔다. 요가 수업은 두 시간 동안 진행되고 한국 돈으로 약 만 원으로 인도네시아의 물가 치고는 비싼 편에 속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요가를 한 달 다니고 지루하다며 접은 내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열심히 수업을 들은 걸 보면 한국과는 확실히 다른 방식의 요가였다. 나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선생님이었는데 학생들 한 명 한 명 자세를 잡아주며 몸의 소리에 집중할 있게 했다.

 

몸의 소리에 집중하게 만들어 주는 곳. 요가원. 당일 날 등록하고 들을 수 있는 다양한 코스가 있다.
몸의 소리에 집중하게 만들어 주는 곳. 요가원. 당일 날 등록하고 들을 수 있는 다양한 코스가 있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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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노을의 조합만으로도 행복한데 전통 공연까지 볼 수 있다니.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태국에서 만났던 인도네시아 친구를 다시 만났다. 이게 여행이지!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요가 수업이 끝나고는 그냥 걸었다. 사람이 아닌 원숭이 때문에 가방을 조심하라는 안내문이 있는 몽키 포레스트도 걸었고, 향을 피우는 수많은 가게들이 가득한 시장도 걸었고, 예술가의 마을답게 공방이 가득한 거리도 걸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관심이 없었던 이곳에 꼭 한번 친구들이랑 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요가 수업 듣고, 예쁜 카페에서 수다 떨다가 “얘들아, 심심한데 노을이나 보러 갈래?”하면서 다 같이 손잡고 바다에 가면 참 좋을 거 같다. 그리고 마치 인도네시아 사람이 된 것처럼 하루를 마무리하는 기도를 하고 싶다. ‘친구들과 이곳에 다시 올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행을 하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나는 생각보다 ‘함께’라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혼자 여행을 떠난 이유는 모든 순간 나만을 위한 선택을 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곳에만 오면 소중한 사람들이 생각나고, 언젠가는 그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면 이제는 나만을 위한 선택보다는 누군가를 위한 선택을 하고 싶은 것 같다. 발리에서 생긴 나의 가장 큰 변화.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알기 위해 여행을 떠났나 보다.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 될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여행길이다.

 

김준아는...
- 연극배우
- 여행가가 되고 싶은 여행자
- Instagram.com/juna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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