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위클리서울=박석무] 어떻게 된 일인지, 온통 거짓으로 둘러싸인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누가 말해도 그대로 믿기가 어렵고, 어떤 언론 매체도 보도하는 그대로를 믿기에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독재가 기승을 부리던 유신시절, 그렇게 혹독하게 민주인사나 학생들을 고문했던 수사관들이, 법정에서 고문을 당했다고 진실을 토론하던 민주인사나 학생들에게 눈도 깜짝하지 않고, 전혀 고문한 사실이 없노라고 뻔뻔스럽게 답변하던 모습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직 남아있던 신체에 남겨진 고문 흔적을 들이대면서 고문 사실을 폭로해도, 그들 양심을 숨긴 수사관들은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그런 사실이 없었다고 강변하는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다산 정약용
다산 정약용

부끄러움을 모르고 잘못을 뉘우칠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양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다산은 오래전에 ‘양심’의 문제를 거론한 내용이 있습니다.「자찬묘지명」과『사암선생연보』라는 글에 차이 없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기경(李基慶:1756-1819)이라는 다산의 젊은 시절 친구가 있었습니다. 다산의 자형 이승훈과 동문수학한 친구여서 다산과도 친하게 지냈고, 또 1789년 다산과 함께 문과에 동방으로 급제, 요즘 말로 고시 동기생이어서 유독 친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재주도 높고 글도 잘 해서 아주 가깝게 지냈는데, 시국이 바뀌면서 생각이 달라지자 끝내는 다산을 죽음으로 몰아가는데, ‘주모자’역할을 했습니다. 

이기경은 이승훈의 친구로서 서학(西學), 즉 천주교에 호의적이어서, 다산 등과 함께 천주교 책도 읽으며 깊이 관여했으나 바로 마음을 바꿔, 곧장 다산 일가를 공격하는데 앞장을 섰습니다. “신유옥사(辛酉獄事)에 기경이 ‘주모(主謀)’하여 반드시 다산을 죽이고야 말겠다고 하였다.(辛酉之獄 基慶主謀 必欲殺鏞而後已)”라는 내용에서 이기경이 얼마나 심하게 다산을 공격했는가를 알게 해줍니다. 그러나 다산은 이기경이 유배살이 할 때 ‘옛날 친구는 친구 삼았던 것 자체까지 없애서는 안 된다’고 여기고 그의 가정을 돌봐준 은혜를 베푼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연유인지, 그렇게 다산을 죽이려 했던 이기경이지만, 더러 다산과 인척 되는 사람을 만나면 다산이 불쌍하다고 눈물을 흘렸다는 것입니다. 

“홍의호(洪義浩:다산의 사촌처남)등을 대할 때에는 다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반드시 눈물을 철철 흘렸다니, 비록 큰 음모를 꾸며가면서도, 그 양심만은 마르지 않았음을 알게 해준다(對洪義浩諸人 語及公 必泫然流涕 雖大計所驅 可知其良心未泯也)”라는 내용에서 이기경같이 다산을 탄압했던 악한 사람조차도, 한줄기 양심만은 마르지 않아, 불쌍한 생각에서 눈물을 철철 흘렸다니, 양심을 속이기가 그렇게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나는 40년 전의 광주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서 그 항쟁을 지켜보면서 직접 목격하여 그때의 진실을 대강은 알고 있습니다. 또 그때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했습니다.(「5.18光州義擧 市民抗爭의 背景과 展開過程」) 그런데 누가 뭐라 해도 광주 양민 학살의 주모자는 전두환씨인데, 그분이 요즘 취하는 행위나 하는 말, 행하는 행동을 보면, 한줄기의 ‘양심’마저도 완전히 ‘마르게’하고 말았다고 여기는데, 이제는 양심까지 사라져버린 세상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광주항쟁을 왜곡하는 사람들, 제발 양심의 일말이라도 회복하면 어떨까요.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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